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에 대해선 워낙 그의 책을 소개한 적이 많아 '이번에도 또?'하고 놀라실 것 같다. 그 유명한 <오베라는 남자> 이후, <할머니가 전해 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등 평범한 블로거와 칼럼니스트로만 활동하던 그가 갑자기 6개월에 한 권씩 신작을 쏟아내는 바람에 전 세계가 반가운 충격에 빠졌는데 특히 그의 글이 주는 솔직하고 따뜻한 감동에 그의 내면이 갈수록 궁금해지는 작가다.
<베어타운>은 그의 가장 최신작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존에 유지했던 그의 글 형식을 꽤 많이 탈피한 작품이다. 애교스럽게 등장하던 동물은 '베어타운'이 상징하는 '곰'으로 대체되지만 곰이 실제로 등장하진 않고 저마다 가슴에 곰을 하나씩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전체적인 스케일도 좀 더 커져서 이번엔 마을 전체가 이야기의 무대가 되고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허를 찌르는 엉뚱한 유머가 그의 글의 매력이라면 이 책은 묵직한 두께 감만큼이나 의외의 목소리를 담는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건 역시 그의 따뜻한 결말이다. 그러나 마을 전체를 위한 그 따뜻한 결말이 있기까지 아프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이슈를 동반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성숙한 그의 소설이라는 평가가 따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전형적인 소설의 결말을 택하고 있다.
한 가지 더, 570쪽이 넘는 이 방대한 이야기가 어쩌면 이다지도 현재 우리 사회의 난제들과 같은 맥을 갖추고 있는지 놀라운데 그렇게 느끼고 해결되는 결론 또한 비슷해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어처구니없는 탄성을 지를 뻔했다. 그의 소설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 그의 다음 책이 한층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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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p.11)라고 소설은 다소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쇠락한 마을, 베어타운. 숲속 한가운데 위치해 숲속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세 개의 학교가 한 개로 줄어들고 일자리가 줄어 실업률이 늘고 인구도 점점 줄어드는 비전을 잃어버린 도시다. 그런 이 베어타운에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하키'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아이스하키만이 삶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고 도시를 예전처럼 부활시킬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 있어서 하키는 도시의 자부심인 영예로운 스포츠이자 도시의 존폐와 궤적을 함께 하는 살아있는 존재다.
탕탕탕 아이스하키의 퍽(작은 공)을 날리는 소리, 탕탕탕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는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희망이자 절망이며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의 천재 하키 소년 케빈이 이끄는 청소년 팀은 곧 있으면 열릴 준결승전을 앞두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소설은 99점을 받아도 칭찬은커녕 틀린 1점을 추궁받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지독한 완벽주의자 케빈을 필두로 팀의 또 다른 구심점이자 케빈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는 벤이, 가난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빠른 스피드를 가진 아맛 등이 연출해 내는 하키라는 스포츠의 묘미와 소년들의 우정, 경쟁, 질투심을 그려나감과 동시에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세계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동료들의,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성장하던 케빈은 준결승전의 승리에 도취돼 어른들이 없는 떠들썩한 파티장에서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그러나 그 일이 벌어진 후 마을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 팀과 마을의 운명을 쥔 절체절명의 결승전을 망쳤다는 이유로 오히려 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고발한 소녀 마야와 그녀의 가족을 향해 쏟아지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은 그들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
그러지 않아도 맏아들 이삭을 어릴 때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자책을 하며 살아온 마야의 부모는 남은 두 아이라도 잘 지키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한 고통으로 힘겨워하고 거기에 이 마을의 첫 영웅인 마야 아빠 페테르의 단장 자리까지 뺏길 위기에 닥친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왜 그런 곳에 갔는지, 왜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 있었는지를 따지며 마치 피해자인 소녀의 행동이 남자들로부터 폭력을 자행하도록 부추긴 듯이 일차적인 책임을 묻는 데 반해, 남자들에게는 술 때문에 이성을 잃어서, 혹은 여성의 사인을 오해한 합의된 결과라고 면죄부를 주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케빈은 어떻게든 사건을 은폐하려고만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 사건에서 보이는 가해자들의 추하고 뻔뻔한 모습과 2차 가해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마야와 그 가족에게 쏟아지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친구들의 무관심과 외면, 폭언 등으로 지쳐갈 즈음 사건 현장을 목격했지만 하키장 청소를 하는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앞날만 생각하며 침묵을 지켰던 아맛이 증언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아맛에게 스스로 정직할 것을 다독이는 엄마 파티마와 딸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슴으로 껴안으려 했던 마야의 엄마 미라가 보여주는 부모의 사랑은 이 어지러운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켜야 할 숭고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특히, 마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던 라모나의 음성은 작게는 소설 속 이야기에,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통렬한 외침으로 깊고 여운 있는 울림을 전한다.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p.155)는 구절처럼.
소설 <베어타운>은 성폭행, 성과주의, 빈부격차, 진실을 침묵하는 것에 대항하는 목소리들을 다양한 가족 형태와 인물군을 통해 다채롭게 그렸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장황하거나 이질적이지 않고 작품 속에 잘 응집해 낸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간의 작품들이 그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우리의 수많은 감정과 사회적 통찰, 사유하는 과정을 침착하게 스토리와 엮어 조직해내는 능력이 탁월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해피엔딩이 과연 어린 한 소녀에게도 진정한 해피엔딩이었는지. 마야가 그 모든 걸 참고 극복해내기로 한 이유가 단지 '하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그러나 역시 배크만은 그만의 따스한 감동으로 냉혹한 사회의 이모저모를 꼬집기도 해 그다운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것이 그의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베어타운에 산다.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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