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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된 포도주
요한복음 2:1-11 95 279 289 288
예수님께서 첫 표적으로 가나 혼인집에 모자라는 포도주를 물로 만드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혼인집에 모자라는 포도주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11절에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타나내시매 제자들이 믿으니라”. 불과 며칠 전에 부른 제자들에게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상 교회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혼인집입니다. 그리고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된 교회에 성도들을 데리고 가셔서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실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가나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는 혼인집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주된 음료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즐거워야 할 혼인 잔치는 불평과 저주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혼인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다’고 말해 준 것은 혼인집에 떨어진 포도주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아들 예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고 전해 준 말씀을 처녀 마리아는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지만 그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마리아가 혼인집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예수에게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한 것은, 인간적으로는 어머니와 아들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죄인과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혼인집에 모자라는 포도주를 해결해 줄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곧 마리아의 기도입니다.
로마 카토릭에서는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라고 하며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모순입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의 문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리아는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죄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한 것은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혼인집에 떨어진 포도주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천주교 신도들은 마리아상 앞에 두손 모아 빌고 기도하는 것은 복을 줄 수 없는 우상에게 복을 비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지만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5)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마리아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섬겼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가 자신이 낳은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면 기도해도 응답도 없을 뿐 아니라 구원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대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4) 이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낳고 키운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가를 알아보는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어머니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낳고 키운 어머니라고 해서 믿음이 없어도 무조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돌아서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한 이 말은 그의 믿음을 확증해 줍니다. 자신이 낳고 키운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조금도 의심 없는 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성도의 기도에 응답받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그냥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 전에 기도하는 성도의 믿음부터 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때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었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만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다면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도 그대로 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도했을지라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고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한 것은, 혹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할지라도 믿고 그 말씀대로 하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그 말씀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들은 그 물을 다시 연회장에 갖다 주었습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라는 말씀은 그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연회장에는 포도주를 갖다 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들이 떠다 부은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는 것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았습니다. 물이 변하여 맛이 더 좋은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으로는 안 될 것 같지만 그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이든지 믿고 그대로 하십시오. 그 믿음이 복 받는 믿음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언제 변했습니까? 방금 그들이 떠다 항아리에 부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입니다. 그 물을 떠다 연회장에 갖다 주었습니다. 하인들은 마리아가 가르쳐 준 대로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하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도 믿고 순종하면 불가능한 일이라도 이루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말씀은 하인들이 연회장에 갖다 준 물을 ‘물로 된 포도주’(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는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이 곧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복음송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됬네. 나에게도 변화시켜 주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언제 죄인이 의인으로 변합니까?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 때에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의인으로 변합니다. 성도는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물’이 질적으로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죄인이 의인으로 변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물은 도덕적으로 부정하고 더러운 것을 씻고 깨끗하게 할 수 있지만 죄는 씻지 못합니다. 포도주는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속하여 주심을 믿을 때에 죄인이 의인으로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잔을 들어 감사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로 된 포도주는 속죄함을 상징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악한 죄인이 선한 의인으로 변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지옥 불속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당해야 할 죄인이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도 곧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일곱 귀신들린 여인에게 귀신을 쫓아내주신 막달라 마리아는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고침을 받은 것은 물론 된 포도주입니다. 맹인으로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바디메오가 눈을 뜬 것을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물로 된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평양 깡패 김익두가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하신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면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연회장 손님들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을 보고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주었도다”라고 칭찬했습니다.(10)
기독교는 포도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떡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하시고, 잔을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19,20)
교회는 예수님의 보혈을 찬송하며 성도들이 즐거워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감사하는 찬송이 없어지면 참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 불평과 원망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로 된 포도주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우리 모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혼인집과 같이 포도주를 마시고 즐거움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물로 된 포도주로 인하여 가나 혼인집과 같은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상교회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모신 혼인집입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머잖아 신부된 우리들을 데리려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 모두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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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음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