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다수결(多數決, Majority rule)은 어떤 문제 해결에 있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쪽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안에 관하여 의견이 갈렸으나 토론 등의 절차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의사 결정의 차선책이 다수결이라고 합니다.
가끔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다수결은 의사결정방법이지 그 자체가 곧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이론상 독재로 돌아갈 수도 있고 심지어 귀족정도 역사적으로 다수결을 의사결정방법으로 선택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귀족들끼리 만장일치나 다수결로 결정하는 건 절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민주주의가 주로 다수결의 원리를 채택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공자께서는 『논어』 「위령공편」 27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싫다 하여도 반드시 깊이 살필 것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좋다 하여도 역시 깊이 살필 것이 있다” 말씀하셨고, 파스칼은 『팡세』“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한 국가 안에서 숫자가 적은 소수자 집단은 약자의 지위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겁니다.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로 인해 필연적으로 국가 정책은 다수를 위한 것이고 소수자들은 늘 소외를 당하는 것이 현실일 겁니다. 그리고 소수자들의 의견은 대부분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일 겁니다.
<소수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없는 분위기의 조직은 붕괴될 위험이 높다.
리더는 누구나 자신과 조직을 위해 성공하고 싶어한다. 소통하는 리더가 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몇 번의 논란을 겪다보면 소통대상이 점차 줄고 불편한 만남은 피하게 된다. 자신을 발탁해준 리더에게 안 좋은 말을 하는 참모는 드물고 시각이 같은 사람들만 만나다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압축적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사회는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여유 없이 달려오느라 소수의견은 시간 낭비이거나 빨리 봉합해야 할 갈등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최근 정부·여당도 야당도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억압으로 일관하면서 조직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소통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대표를 바꾸고 창당을 해도 한국정치는 개발도상국이나 심지어 후진국 수준에 머물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1세기 미래사회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예언적으로 보여준 톰 크루즈 주연의 SF영화다.
인공지능차량, 개인맞춤형 광고, 실시간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e페이퍼, 손가락으로 파일을 조절하는 컴퓨터 인터넷의 3차원 입체영상, 홀로그램 등 영화가 보여준 미래사회의 많은 기술이 오늘날 현실로 구현됐다.
과학자들을 제작과정에 참여시켜 개연성 있는 미래를 보여준 감독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 영화는 1956년 미국의 SF작가 필립 K 딕이 ‘판타스틱 유니버스’라는 잡지에 출간한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The Minority Report)’에 기반하고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을 비롯해 딕의 소설은 거의 모두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원작소설을 보면 작품의 주제의식이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2059년 뉴욕시, 존 앤더튼은 범죄사전예방국에 해당하는 프리크라임 경찰국의 촉망받는 리더다. 프리크라임은 돌연변이 염색체로 인해 일어날 일을 미리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세 예언자의 예언에 따라 사건 발생 전 살인자를 체포함으로써 범죄 없는 사회를 구현해온 시스템이다.
어느 날 살인 예정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존은 순식간에 추적자에서 도망자로 입장이 바뀌며 그간 당연시해왔던 시스템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오디푸스적 인물이 된다.
예언의 세부내용을 알아내려 경찰국에 잠입한 존은 세 예언자들의 예언에도 소수의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세 예언자들 예측이 항상 일치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은 다른 예언을 내놓기도 하지만 다수의 결론에 의해 묵인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동안 체포돼 처벌을 받은 수많은 범죄 예정자들은 저지르지도 않은, 저지를 것으로 예상되는 범죄로 처벌받고 있었다는 윤리적 모순이 존재했던 셈이다. 예언이 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세 예언자의 능력에 따라 내다보는 시점이 다르고 상대 예언까지도 감지하는 능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1955~56년쯤에 쓰인 이 소설에서 딕은 이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예견하고 있다. 앵글로-차이나 전쟁에서 영미권연합동맹군을 이끌었던 사령관 카플란이 존을 음모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그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내 경찰국의 위상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소설은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1950년대 중반 냉전을 거치며 매카시 마녀사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전체주의적 미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우려를 담고 있는 셈이다.
“다수가 존재한다는 말은 그에 상응하는 소수가 있다는 뜻”이란 문장을 통해 딕은 ‘다수’란 의견을 함께하는 소수들의 합이라는 점, 다수나 소수는 유동적이고 서로 영향받는 개별인들의 총합임을 상기시킨다.
다수라는 집단 자체가 언제든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개인들로 인해 붕괴되거나 흩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하기에 조직 내 소수의견은 자주 들여다봐야 할 거울과도 같다.
소수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조직은 균형 잡힌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며 지속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일보. 우미성 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칼럼, 국민논단,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이너리티(Minority)”는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소수자’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두 예측 중의 하나인 소수의 견해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 둘이 있을 때에 다수결에 의해 채택이 되지 못하는 소수의 의견입니다.
저는 헐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늘 조금 보다가 말았는데 다시 방영이 되면 한 번 제대로 봐야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논의가 되지도 않는 일입니다. 다수가 조용할 때 몇 놈이 큰소리로 자기들 주장을 끌고 가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아예 설 자리도 없을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견리망의(見利忘義)자들만 날뛰는데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도 엄청 많습니다. 이건 다수결도 아닙니다. 다수결이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저도 동의하지만 소수가 집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