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명상의 세 갈래 길
영성적·치유적·실용적
◇ 명상에는 종교, 치료, 생활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비롯된 전통과 흐름이 존재한다. /출처=셔터스톡
명상은 여러 갈래의 전통과 흐름이 있다.
종교와 구도자 차원의 명상이 있고, 치료와 치유적 차원의 명상이 있으며, 생활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 차원의 명상이 있다.
종교와 구도자 차원의 명상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쯤 가고 있는가, 신(神)은 존재하는가, 우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cosmic consciousness), 진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삶과 죽음, 해탈과 구원의 문제 등을 주로 바라보고 탐구한다.
요즘은 명상과 관련해서는 종교라는 말보다도 영성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운동이 그것이다.
“나는 영성적이지 종교적이 아니다”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깊은 말이다.
이전에는 종교라는 말 속에는 영성, 신비, 예식, 교리 등이 함께 혼재해 있었고, 종교 지도자는 우상화 되고 그의 가르침은 신화(神話)화 되었다.
SBNR 운동에서는 이런 신화적 요소는 빼고 순수하게 자아를 초월하는 영성과 진리만을 추구하자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른다. 붓다의 다음의 예가 종교와 영성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어느 날, 붓다의 명성을 듣고 한 사내가 붓다를 찾아왔다. 그가 붓다에게 물었다. “당신은 천사나 신령입니까?” 붓다가 대답했다. “아니오.”
“그러면 신입니까?” “아니오.” “신도 아니라면, 그러면 당신은 그냥 인간입니까?” “아니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붓다가 대답했다. “나는 깨달은 사람입니다.”
붓다를 찾아온 사람은 종교적인 자세로 질문을 했고, 붓다는 영성적 차원으로 대답을 했다. 이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그 외에 어떤 종교에서나 같은 양상을 띤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은 깊은 영성적 깨달음의 내용을 가르치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기적이나 신비한 성향을 갈망하는 대중들은 가르침의 내용을 점점 절대화 하고 우상화 하여 교리를 만들고, 마침내는 근본주의자가 되어 배타성을 띠는 경향이 있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바르게 명상하는 사람은 종교의 예식이나 교리보다는 그 가르침의 영성적 내용에 관심을 둔다.
치료와 치유적 차원의 명상에서는, 명상이 어떻게 치유의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명상과 심신(心身, psychosomatic)의 관계를 주로 탐구한다.
치유적 차원의 명상은 하버드 의과대학의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과 매사추세츠 대학의 존 카밧진((Jon Kabat-Zinn)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명상파이다.
특히 존 카밧진 교수의 마음챙김 명상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상법인데, 이 명상법은 그가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병원에서 1979년부터 10여 년간 스트레스 완화와 이완 프로그램(SR&RP: Stress Reduction and Relaxation Program)에 참여했던 4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경험에 근거하여 1990년에 Full Catastrophe Living이라는 책에서 스트레스 감소훈련(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을 소개한 이후로 유명해진 명상법이다.
실용적 차원의 명상은, 명상의 개념을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장하여 실용적 유익성을 탐구한다. 예를 들면, 자기계발, 명상과 창의성 같은 주제도 이에 해당된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매일 적어도 2시간 이상의 명상을 했다고 하는데, 그가 주로 한 명상은 상상력 명상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상상하다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해 낸다.
연구소나 연구단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연구원들에게 R&D를 요구하고 강조한다. R&D는 연구(research)하고 개발(develop)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상하는 전문인은 연구하고 개발하기 전에 먼저 상상(imagination)하라고 한다. 그래서 R&D를 넘어서 I&R&D로 가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세 갈래의 명상을 살펴보았는데, 모든 명상에는 공통되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사마타(samatha)이며 다른 하나는 위빠사나(vipassana)인데, 이것은 붓다의 명상법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사마타를 지(止)로, 위빠사나를 관(觀)으로 해석하고, 명상은 지와 관을 두 축으로 수련한다 하여 지관쌍수(止觀雙修)라고 한다. 지는 고요함(定)을 가져오고, 관은 지혜(慧)를 가져온다 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도 한다.
글 | 윤종모 주교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