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에 대하여-/정임표
한 조각의 '공짜'는 나의 존엄을 몇 퍼센트나 갉아먹을까?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조타실의 아수라는 시스템의 결함이기 이전에, 인간 영혼의 가치에 대한 무심함에서 비롯된 역병이다. '법카'와 '몰카'가 폭로한 추악함의 밑바닥에는, '공짜로 누리고 싶다'는 당신과 내 속에 내재한 뿌리 깊은 유혹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무상으로 제공된 자리, 무상으로 흘러들어 온 돈 앞에서 인간은 자발적으로 굴욕의 바닥을 뱀처럼 기어 다닌다. 이건 아득한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나와 당신의 DNA. 나는 지금 공짜라는 미끼에 걸려든 영혼의 처참한 풍경화 앞에 서 있다. 공짜 밥상은 독이 든 성배다. 정치라는 장막 뒤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출판기념회는 '관계 유지'라는 가면을 쓴 거대한 연극이며, 알맹이 없는 종이를 수십 권씩 사고파는 그들의 거래는 살아서도 천당, 죽어서도 천당을 소망하는 비겁한 헌금이자 면죄부다. 세상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거든 사색의 동굴 속에서 고독하게 길어 올린 진짜 문인들의 저서를, 단 한 권이라도 정가(定價)를 지불하고 사 주라.
진짜 존엄을 아는 자는 절대로 허명(虛名)이라는 안개에 굴복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고독한 장인이다. 노력의 땀도, 인류에게 이익이 될 씨앗도 없는 글에 붙여진 상금이거든,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문학예술가의 굳건한 믿음이자 신앙이다. 자신의 작품에 새긴 영혼의 가격표를 그 어떤 세속의 흥정으로도 훼손하지 말라. 심혈을 기울여 쓴 자기 작품을 '풀빵 찍듯이' 대량 복제하여, '혜존'이라 인쇄된 문구를 성의 없이 풀칠해 보내는 행위는 그대 스스로 창작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짓밟는 것이다. 증정(贈呈)은 단순히 물건을 공짜로 건네는 것이 아니고, 그대 내면의 가치를 상대의 영혼에 이식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그 의식은 오직 마음과 글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고 비출 수 있는 단 하나의 거울에게만 보내는 것이 마땅한 예법이다. 그리고 반드시 자필로 존경의 념을 다해 "꼭 읽어주시고 귀히 간직해 주십시오"라고 써서, 책이라는 그릇에 담긴 그대 영혼의 무게를 받는 이의 손에 온전히 올려놓는 것이 진정한 문심과 문정의 나눔이다.
당신을 얽어매는 가장 교묘하고 파괴적인 구속은 '무상(無償)'이라는 사슬이다. 대수롭지 않은 그것에 한번 묶이면 그 무상의 그물이 나와 그대를 은혜의 눈치나 살피는 쓸모없는 그림자로 전락시킨다. 무슨 일에든 우리가 정직한 대가를 지불할 때, 지금은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환경일지라도 반드시 지불하겠다는 정신을 지킬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라는 이름의 왕관을 쓰는 것이다. 돈이든, 시간이든, 혹은 영혼의 고독이든, 정직하게 가치를 지불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의 형식이다. 일상이 ‘바겐세일’ 되어버린 너덜해진 그대 영혼의 가격표를 성스러운 불에 태우고, 자기 스스로 자기 존엄에 가장 절대적인 빛깔을 매기는 것이 지금 오늘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할 정신세계의 터널이다.
대가없이 취한 만족은 내 영혼에 붙는 가장 값비싼 청구서가 된다.
허명(虛名)의 유혹에 맞서라!
진정한 장인과 예술가는 스스로 매긴 가격표를 함부로 깎지 않는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인류에게 유익함도 없는 글에 붙여진 상금이거든, 그 달콤한 부당함을 단호히 거절하라. 돈이든, 시간이든, 노력이든, 정직하게 가치를 지불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창조 행위다. 오늘 이 시간,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닳아버린 내 영혼의 가격표를 떼어내고, 스스로의 존엄에 가장 높은 값을 매기라! 그런 결심을 하는 순간 그대는 “최고 존엄”이 된다.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방망이 하나에도 혼이 깃들어 있음을 알리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줄 알 때 우리 영혼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2025.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