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곶포구 에 대하여>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月串洞)에 있는 포구.
월곶은 육지에서 바다로 내민 모습이 마치 반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수군(水軍) 만호(萬戶)가 설치되었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다. 1992년부터 56만 4938㎡에 이르는 개펄 매립사업을 시작하여 1996년 12월 말 공사를 끝내면서 횟집과 어물전 230여 곳을 비롯하여 각종 위락시설이 조성되었고 이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시민들의 새로운 휴식터로 부상하였다.
밀물·썰물에 관계없이 24시간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어판장에서 즉석 경매가 이루어져 언제나 신선한 횟감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어시장에는 8곳이나 되는 도매상이 들어서 있어 중간상의 유통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포구 내에는 현대식 식당가와 무료 옥외 해수풀장, 놀이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부근에 있는 포동폐염전, 물왕저수지 등과 연계하여 관광하면 편리하다.
<소래포구에 대하여...>
소래포구는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된 마을입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축척 1:50,000 지형도에 보면 소래포구는 바다 한가운데 비쭉 나와있는 곳으로 시흥시 월곶동으로 건너다니던 도선장 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흥시 포동(당시는 포리) 새우개까지 바다였습니다.
그후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된 후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한산했던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파시로 부상했으며 지금은 새우 꽃게 젓갈등으로 널리 알려져 년 평균 30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발돋움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뒤안길로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는 썩은 침목위에 흔들리는 레일만이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게 해줍니다.
'소래'란 지명은 첫째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둘째 냇가에 숲이 많다. 즉 솔내(松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지형이 좁다, 즉 솔다 -> 좁다 등의 이유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래주(萊州)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뒤로부터 소정방의 '소(蘇)'자와 래주의 '래(萊)'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굳이 젓갈을 사기 위해 소래까지 찾는 사람도 예전처럼 많지 않고, 협괘열차도 운행하지 않아 예전과 같은 명성은 잃어가고 있다죠.
지금은 협궤열차도 없고 예전의 명성도 다소시들하지만 아직도 포구의 운치가 그대로 살아 있고, 값싸고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소래포구입니다.
철마다 꽃게, 새우, 광어, 놀래미, 삼숙이 등의 싱싱한 해산물이 계속 들어와 해산물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죠. 또 소래포구는 포구와 어우러진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합니다. 저녁 시간 소래포구의 노을을 감상하고 포구의 횟집에 들어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고 오는 가벼운 여행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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