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이냐 중수청이냐, 해킹 수사 주체 정하는 데만 3주일. 수사하기 싫은 사건을 서로 미루는 ‘사건 핑퐁’
조선일보
입력 2026.10.26. 00:10
김지용 중수청장이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수표동 중대범죄수사청에서 열린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이 ‘중대 범죄’로 분류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통보한 금융기관 해킹 사건에 대해 중수청이 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말 해킹 공격으로 신한은행 등 주요 금융사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건에 대해 지난 1일 내사에 착수한 경찰이 중수청 수사 대상인 ‘중대 범죄’라고 판단해 21일 사건을 중수청에 통보했다. 그런데 이틀 뒤 중수청이 사건을 맡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경찰이 계속 수사하게 됐지만 수사 주체를 정하는 데만 3주가 걸렸다. 다수 국민이 피해 입은 사건 수사가 시작부터 혼선을 빚은 것이다.
과정은 더욱 어처구니없다. 중수청법은 경찰이 중수청 수사 대상인 중대 범죄를 인지하면 중수청에 즉시 통보하고, 중수청이 요구하면 사건을 넘기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수사에 총력전을 펴도 모자랄 판에 해킹당한 금융사 시스템이 중수청 통보 대상인 ‘전자금융기반시설’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달라고 금융위원회에 유권 해석까지 의뢰했다. 중수청 통보 대상인지조차 헷갈려 정부 당국에 문의를 한 것이다. 수사 기관을 중수청·공수처·경찰로 쪼갠 뒤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 시행한 새 형사사법체계가 코미디 같은 상황을 낳았다.
중수청은 경찰 수사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된 점을 감안해 수사를 안 맡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중수청이 이 사건을 수사한다면 서울중수청 사이버정보수사과에서 맡아야 하지만 현재 해당 과장 자리가 공석이다. 더구나 중수청은 과학 수사 장비도 아직 다 갖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킹 범죄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수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중수청 통보와 무관하게 수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 주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하면 수사 강도가 떨어져 초동 수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패·경제 등 중수청 수사 대상 범죄와 경찰 수사 대상이 겹치는 데다 한 사건에 여러 혐의가 뒤섞여 관할이 중첩되는 경우 수사 주체를 놓고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사하기 싫은 사건을 서로 미루는 ‘사건 핑퐁’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해킹 사건은 그 예고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