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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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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必讀>이스라엘 케이스
해솔 추천 0 조회 96 15.12.29 10:1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b-7

 

이스라엘 케이스

 

 

 

레온 유리스(Leon Uris 1924-2003) 는,
책 한권을 쓰기위해

여러해 동안 지구를 몇번 돌 만큼의

거리를 여행하며 자료들을 모았다.


미국계 유대인인 그에게

그 작업은 흡사

사명과도 같은 것이기도 했을것이다.

그 책이 출간 되자마자

전세계 50여개국에서 번역되어

선풍을 일으켰으며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엑소더스-Exodus' 가 바로 그 책이다.
그게 1958년의 일이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속한 독서클럽에서

이책을 소개 받았으며

그 해에만 세번 계속해서 읽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다시한번 읽었다.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와 함께

나로서는 잊을수 없는 책이었다.


1967년 레온 유리스는

스파이 스릴러인 '토파즈'를 발표했으며

이책 역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아카바만의

오른쪽은 트랜스욜단 이지만,
왼쪽의 누에바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초소들이 있다.


이집트의 관할지역을 지나

이스라엘땅에 들어서면

같은 셈(Sem)족의 서로다른 형편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그건

세기를 달리하는 공존의 모습이다.


이집트의 낙후와 남루,

게으르고 거만한 관리들,

손질이 안된, 더러운 막사들을 지나


완충지대인 공간의 흙길을 걸어서

이스라엘 초소에 들어서면

문화,문명,청결,효율,단정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리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막사 주변엔

아름다운 꽃들이 심겨져 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특히 여자들은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매 들이다.


미소를 짓는 얼굴과

입국자의 모든것을 살피는 눈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아랍에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의 생존은

이미

국경에서 그 처절함이 느껴진다.

취리히에서

이스라엘 국영항공인 '엘 알' 을 타려면

비행기 탑승전

두번의 이잡듯하는 검색을 견디어 내야한다.


치약의 튜브까지 손끝으로 눌러보는

이스라엘의 보안경찰은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들이다.
그 대부분이 20대 여자들이다.


그들은,

텔 아비브(봄의 언덕 이라는 뜻)의

벤 구리온 공항에도 포진하고 있다.
최고의 프로가 아닌한

그들의 눈을 속인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벤 야후다 는 사어(死語) 가된

히브리어를 다시 살려낸 학자다.


예루살렘의 다운타운의 이름이

벤 야후다 거리다.

 


특히 밤에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활력이 넘치는 거리다.
안식일이 끝나는 밤은 더 그렇다.


내가 정말

이스라엘의 '현실' 을

처음 본것이 그곳에서 였다.


사복을 입은채

M16을 꺼꾸로 등에 메고앉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채 20이 안된 여군을 그때 처음봤다.


내게는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부대로 출퇴근한다.


그리고 개인화기는

실탄을 장전한채 개인이 가지고 다닌다.
모든 테러현장에서

그들은

바로 대테러작전의 전사가 되는것이다.

히브리대학 강의실을 구경하러 갔을때,
그 강의실에도 역시 군복을 입고

M16을 등에 꺼꾸로 멘 군인이

책상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건

정말 너무나 생소한 장면이었다.

 


부대장의 승인과 대학의 허락으로

그는 특정과목에 대해

군 복무중에도 계속 강의를 듣고있는 것이다.


군인과 학생의 신분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긴박한 현실, 형편이 피부로 느껴졌다.


우리들의 일상과

이스라엘의 일상은 그 근본에서 아주 달랐다.
그리고

그들의 특수한 현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의

벽 윗부분 공간에는 전투시에 필요한

무기,실탄,비상식량등이 들어있다고 했다.
학교건물 자체가

요새로 쓸수있게 설계돼 있었다.

네게브 사막에서 돌아오는 길의 휴계소.
나는 그곳에서

남자죄수(군인) 두명을

혼자 자동차로 호송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여자 헌병을 봤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지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그 여자헌병은 너무나 당차게 보여 기가찼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할 겨를이 없는게

이스라엘의 현실이다.
남여불문,

고등학교 졸업후 모두가 군대에 입대한다.
군복무를 마치기 전에는

어떤 사회활동도 할수가 없다.

세계최고의 싸움꾼이 이스라엘 군대다.
갈릴리 지역에서

마침

탱크전 훈련을 하고있는 예비군 부대를 만났다.
나이가 50대인 그들은

현역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터프가이들 이었다.
백전노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우리와는 그 개념부터가 다르다.
사실은

또 하나의 전투부대인 것이다.
그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병력이

예비군들이다.

에일랏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의 휴계소,
마침

이스라엘 군 부대가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작심하고 그들에게 다가갔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 부대를 살펴봤다.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것이

기능적이고 평범한 군복이었다.
장교와 사병의 차이를 알수없을 정도로

군복에는 견장이 없었다.


기본적인 개인화기는 M16.
허리에는

탄창과 수류탄을 차고 있었고,

군화는

사막의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는순간,

이 군대를 이긴다는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점이다.


그건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눈빛과 행동에서 교육이 묻어났으며,

군복안에 감추어진 훈련의 냄새가 났다.
4번의 중동전에서

아랍이 연패할수밖에 없는 '힘' 이 느껴졌다.
정말

세계최고의 싸움꾼들이 거기 있었다.

1948, 1956, 1967, 1973년

이렇게 4번

이스라엘과 아랍이 싸웠다.
특히

1967년 전쟁은 '6일전쟁' 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상징적 통계는 50 대 1 이다.
아랍측 전투기 50대가 격추되는 동안

이스라엘 전투기는 1대만 격추됐다.


공군력의 차이는

전투기가 아니라 조종사와 조종술이다.
50 대 1 은,
오늘의 아랍과 이스라엘을 설명할수 있는

상징적인 숫자가 된다.

지금대로 라면

아랍은 이스라엘을 따라 잡을수가 없다.


그리고

네게브사막 깊숙한 곳에,
주변 아랍국가의 심장부를 겨냥한

수백기의 핵미사일이 있는한,

아랍은 그들의 희망처럼

이스라엘을 지중해에 쓸어넣을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724만명에 대해

그들을 에워싼 22개 아랍국은

3억4천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어도 그렇다.

나는

이스라엘을 여러번 여행했고,
카이로는

그보다 더 많이 드나들었다.
지금도 제일먼저

다시 가 보고싶은 곳은 모로코다.
중동은 그렇게 매력적인 땅이다.


오래전,

처음 이스라엘에 갔을때

이상할 정도로 그곳이 친숙하게 느껴진 것은

전적으로
'엑소더스'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어떤과정을 거쳐 독립했는지를

그 책을 통해

암기할 정도로 알았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다가갈수 있었던 것이다.
전혀

생소하지가 않았다.

이스라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948년 8월에 건국했다.
그후 그들은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천년동안

아프리카의 한 오지에는

유대인의 한 부족이 살고있었다.
그게 잃어버린 '단 지파' 였다.


이미 흑인이 다 된

그들을 발견한 이스라엘 정부는

비행기로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했다.


수송도중,

비행기 안이 춥다고

바닥에 모닥불을 피우는 그들을

'현대인' 으로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쉽지않았다.


교육에 교육을 거듭한 끝에

우체국에서 편지에 스템프를 찍는

단순업무에 겨우 투입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셈족이면서

아랍을 완전히 압도하는 이스라엘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2007년말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724만명이며,
이중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계 팔레스타인인이 144만명,

전체인구의 약 20%가 된다.


아랍계를 제외한 580만명중

280만명이 아쉬케나지들이다.
나머지

300만이 '사브라-선인장'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2세들이다.


아쉬케나지 Ashekenarzi는,

유럽계 유대인들이다.


여기에 대해

스페인(포루투갈)계를

세파르딤 Sephardim 이라고 부른다.


같은 셈족으로,
똑같이

팔레스타인에 살고있지만

이스라엘이 아랍을 압도하는 힘은

아쉬케나지 에게서 나오는

문명, 문화, 과학의 힘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럽이다.
이스라엘을 여행해 보면

그점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

나는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동안

호텔에 투숙하는 일이 거의없다.
일부러 집단농장인

기브츠 나 모샤브 에 묵는다.

 


그 척박한 땅,

광야-사막에 식물을 기르는 일은

첨단의 과학기술과 피나는 노력뿐이다.


유럽에서 제일비싼 과일이

이스라엘의 오랜지다.
매년 히브리 대학에서

오랜지 제배법의 개량논문이

수십개 나오는 정도다.


기브츠나 모샤브에 가 보면

아쉬케나지의 문명, 문화, 과학이

그 척박한 땅과 접목하는현장을 볼수있다.


그들의

과학적 기계영농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이스라엘이 농업국으로

분류되는 이유를 알것같았다.

 

이스라엘의 오랜지

순수한 유대인으로

지금까지 각종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평화상을 제외 하고도 150 명이 넘는다.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 에 달하는 숫자다.


그 아쉬케나지들의 문명,문화,과학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떠 받치고 있는 기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선진국인 것이다.

1967년 6일전쟁때,
서울에 사무소를 가지고 있던

유대인 고철상(전세계적으로 고철시장은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은

즉시

문을 닫고 귀국했다.


거기엔

이런 메모가 붙어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 오겠읍니다.'

by/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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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든 삶,정든세월. ADAMAH(地坪) 원문보기 글쓴이: ADAMAH(地 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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