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72시간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 6.25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만든 뼈아픈 역사입니다.
그런데 전쟁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국군에 대한 맹추격을 멈추고 .3일간 지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6월 25일 새벽 .암호명 폭풍으로 북한의 남침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은 서울을 장악한 후 춘천 홍천을 거쳐 수원까지 점령할 계획이었는데 난관에 부딧혔습니다.
바로 춘천을 지키는 국군 6사단의 반격이 있었던 것입니다.당시 비상 경계령이 해제되면서 장병 대부분이
휴가를 가거나 모내기 지원을 나가면서 우리 군은 경비가 허술했습니다. 하지만 6사단 김종오 사단장은
북한 귀순병의 증언을 바탕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 했습니다.군의관 까지도 포사격을 할 수 있을많큼
전쟁을 준비했습니다.춘천 옥산포로 들어섰던 북한군은 예상치못한 6 사단의 기습 반격에 남침을 한 이후
처음으로 후퇴했습나다. 춘천돌파에 실패한 북한군은 6월 27일 까지 그대로 춘천에 머물다가 홍천에서
전투 중인 북한군과 연합하여 다시 돌격 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28일 춘천과 홍천이 점령됐지만".
400여 명의 사상자가 있던 국군에 비해 북한군은 2.000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전선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후 .6 사단은 전선이 끊길 것을 우려하여 6 월 29일 .충주로 전략적 후퇴를 단행하였지만
중동부 전선 일대의 북한군을 상대로 "춘천대첩" 이라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국군을 다시 정비하고 국민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6사단이 최 전선에서 벌어준 72시간 은 그야말로
기적의 3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6 사단에서 근무 하시고 기념비 세우느데 .찬조하여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자랑스럽게 올려 있어서 이 글을 을 올립니다.
첫댓글 조국 수호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 선열 및 호국영령 앞에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님의 기고 고맙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전쟁이지만, 정치인들의 야욕이 우리같은 유자녀라는 멍애를 안겨주었습니다.
맨땅에 나무 비석을 세우고, 돌맹 비석으로 바뀌고, 꽃꼿지 주물통이 비석 오른쪽에 꽂이고,,
30-40개월 아가들이 공짜 전절탔다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노인네가 되어 버렸습니다.
처다 보지도 않던 돈 몇푼 더 달라고 얼굴 붉히는 노인네가 되어 버렸습니다.
건강하게 힘있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식들에게 효도 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