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암산’이라는 본래 지명이 있음에도 전주시 도로표지판과 관광지도에는 ‘치명자산 성지’라는 특정종교를 지칭하는 명칭을 버젓이 쓰고 있다. 시는 언제부터 표지판의 명칭이 바뀌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전주 승암산(僧岩山)의 ‘치명자산 성지’ 명칭 사용과 관련해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실체규명에 나서야 할 전주시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5일 ‘치명자산(致命者山, 가톨릭 신자들 묻힌 산) 성지’ 명칭 사용에 대한 전주시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전주 도심 도로 표지판의 ‘치명자산 성지’ 표기 관련 지적에 대해 시 담당부서 관계자는 “언제부터 치명자산 성지라는 표지판이 설치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다만 표지판은 도로 개설과 함께 설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어 논란을 의식한 듯 “치명자산 성지와 승암산이라는 명칭을 병기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시민의 혼란이나 불편을 겪을 수 있는 표지판을 올해 말까지 정비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담당자의 해명과는 달리 명칭을 병기해 표기한 도로 표지판은 단 한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자체가 특정종교의 고유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치명자산 성지’로 표기된 도로 표지판 설치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전주시가 제작한 관광안내 지도와 안내책자 등에는 승암산이라는 명칭이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지도상에는 승암산 대신 ‘치명자산 성지’라고 버젓이 표기돼 사실상 전주시의 해명을 뒤집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주의 또 다른 산인 남고산은 지명 그대로 지도에 표기돼 의구심을 자아냈다.
실제 ‘치명자산 성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실질적인 증언도 나왔다. 시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주시 관광지도에 승암산을 ‘치명자산 성지’로 표기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논란이 일면서 새로 제작하는 지도에는 승암산이란 지명을 넣기로 했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또 이 관계자는 “지도상에 치명자산 성지라는 명칭에서 ‘산’이라는 글자를 빼고 치명자 성지로 표기할 예정”이라며 “빠르면 10월말 지역 내 안내소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승암산의 명칭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지금껏 시정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주시가 사전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도 회피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승암산 중턱에 위치한 동고사 주지 법륜스님은 “언제부턴가 전주 도심 곳곳에 승암산 대신 치명자산 성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며 “단지 특정종교인들의 순교지였다는 이유로 대대로 내려오는 산의 명칭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 행정기관이 특정 종교색이 드러나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것으로 밖에 간주할 수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승암산이라는 옛 명칭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2955호/2013년10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