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보리 푸르디 푸른 오월이다.
배고팠던 아이들은 이맘때가 되면
팔을 빙빙 돌리면서 보리밭가를 돌았다.
보리 빨리 익으라는 의식이었다.
그러다가 두어 명이 모이면 보리사리를 시작했다.
남의 보리밭에 들어가 일찍 익은 보리꼬타리 꺾어다가
모닥불에 그을려 먹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입이 모두 시꺼멓게 변했다.
아무리 숨겨도 검은 입 때문에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주인한테 혼이라도 나면
심술난 아이들은 들판에서 풀뜯고 있던 그 집 암소의 남산만한 배를 걷어찼다.
-음매~~~
소가 무슨 죄랴!
좀 더 자라서 까까머리 시절에는 순이와 종달새 알 줍던 곳이었다.
종달새 알을 찾느라 보리밭골 뒤지고 있으려면
저만치서 동네 형, 누나가 낮은 목소리로 싸우고 있다.
누나: 난 몰러~잉~~책임져!
형: 내가 뭘?
누나: 내 가슴도 만지고 ㅃㅃ도 했잖아...
참 순진했던 동네 누나였다.
요즘 남녀들은 이런단다.
모텔에서 사랑을 나눈 다음에 여자가 하는 말,
-야, 너 숫총각이었구나!
그 추억의 보리밭이 식량사정이 나아지면서 사라지다가
지금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경작을 시작한데다,
지자체별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청보리단지를 조성하고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청보리 가장 넓은 곳은 물론 고창 학원농장이다.
차령산맥이 나지막하게 지나는 구렁 30만 평에 청보리 넘실거린다.
봄에는 청보리, 가을이면 메밀이다.
아름답기로는 청산도와 제주 가파도가 으뜸이다.
청산도의 청보리밭은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유봉 가족들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추던 그곳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경치가 그만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제주 가파도를 으뜸으로 치기도 한다.
제구에서 조금 떨어진 섬 가파도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가
청보리로 요즘 갑자기 유명해진 곳이다.
가파도는 육지가 수면과 가장 가까운 섬이어서
17만 평의 땅에 청보리 넘실거리면
그게 바닷물결인지 보리물결인지 분간이 안 된다.
노을 배경으로 그 장면 잘 잡으면 국전사진전 대상은 확실해 보인다.
다음으로 춤추는 청보리를 보려면 영일만 호미곶을 가야 한다.
동해안이라 바닷바람이 거세다.
바람 때문에 다른 작물은 불가해서 보리만 심는다.
바람 불면 청보리는 진양조에서 휘모리장단까지 춤을 춘다.
그 외 김제 지평선 평야, 강원도 삼척의 청보리밭, 영광 청보리 축제도 좋다.
멀리 갈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은 서울 올림픽 공원이나
안산의 청보리밭이라도 둘러보면서 추억 한 모금 반추할 일이다.
그 순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노을~
첫댓글 정말 존경하고플 정도로 유식한 노을님.
덕분에 오늘은 보리밭 시찰 잘 끝냈습니다
애석하게도
노을님이 얘기한 청 보리밭중의 한곳도 아직 가 보질 못했네요
청보리밭 못보면 고호가 그린 그림처럼 누런 보리밭이라도
언젠가는 가봐야 겠어요
늘 좋은 글 감사
보리밭에서 해 보았니? 란 유머를 탄생 시키기도 한, 보리밭~~~ ㅎㅎ 우리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분들의 연애 장소~~ 낭만적으로 연애하고 열심히 살아 온 그때 그분들의 정서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제주에서 마라도를 가다가 오른쪽을 바라보면 있는 가파도... 가파도에서 꾼 돈은 마라도 가면 안 가파도 된다고...ㅎㅎ 실지 마라도는 모든게 무료인 지상 낙원~~ 세금도 한푼없어 전기료 등 공과금도 무료 집도 거저줘 자녀 공부도 무료~ 꾼돈도 안 가파도 되어~~~얼마나 좋아요~ㅎㅎ 누구 가실 부운~~~ (자장면 시키신분~~ 촬영지가 마라도라서 거기 가면 자장면 시키신분이라는 중국집이 딱 하나 있는 유일한 식당)
노을님 어찌 이렇게 맛깔스럽게 글을 잘쓰시나요 매번 너무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노을님이 모르는건 무얼까요? ㅎㅎ
청보리 보러 좀 더 있다가 올림픽 공원에 가봐야겠어요..
왕따나무가 보이는 곳에 청보리 밭이 있어요..
찍사들이 줄서서 사진을 담아요..노을이야기님 수필 같은 글..정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