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금 만원 내어 미안합니다..
춘천 소양댐 부근의 오봉산 청평사 주지로 머물고 있을 당시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70도 넘어보이는, 불공드리러 온 할머니 한 분을 만나뵙게 되었다. 할머니는 나의 방에 들어와 매우 겸연쩍어 하시면서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내 앞에 내놓는다.
"스님! 이거 정말 참으로 죄송합니다. 가정이 넉넉치 못해 불공금이 이것 뿐입니다. 늙은 몸이라 향초는 사왔지만 넓게 살피시어 저의 자식놈 일자리 하나 구할 수 있게 부처님께 정성껏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씀을 하시면서도 연신 미안해하는 표정이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니 곱게 늙으신 그런 깨끗한 얼굴이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할머니께서 청평사에 처음 오신것 같으신데 청평사에는 불공금이 정해져 있질 않습니다. 더구나 돈을 많이 내야 부처님이 좋아라 하신다면 그런 부처님은 청평사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흔히들 절에 올 때는 빈손으로 오면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부끄럽게 생각하고 생활이 어려운데도 향초를 사고 쌀과 과일을 준비하고 의례히 얼마만큼의 돈을 준비하는데 불교 신도분들의 의식 구조에 있어 다듬질할게 참으로 많습니다. 물론 모든 원인의 규명에 있어 우선적으로스님들한테 그 책임감이 막중한 줄은 알고 있습니다. 사찰 운영에는 필수적으로 경제적인 뒷바침이 병행되어야 겠지만 깨끗한 신앙심을 물질로 받아들이는 그릇된 가치관을 서서히 바로잡아 나가야합니다. 재물과 돈이 많으면 구원과 소원 성취의 지름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어렵게 착각하여 신앙을 물질화하는 그런 오염된 병폐는 단절되어야 될 줄 압니다. 오늘 할머니께서 내신 만원 중에서 7천원은 다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분들도 2천원내지 3천원씩 불전금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며 되돌려 드리는 7천원으로 꼬마 손자들의 학용품을 사서 부처님께서 선물하신 것처럼 나누어 주셨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는 매우 조심스레 얘기하면서도 할머니의 자존심에 멍울이 가시도록 애를 썼다. 할머니는 외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경제 불황이 빚은 감원조치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부부싸움이 자꾸 일게 되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처음으로 절에 온 그런 할머니였다. 나는 그 할머니의 집안사정 이야기를 들으며 신도분들이 사다준 메리야스와 내의를 챙기고 있었다. 한번도 입지 않은 그런 내의와 메리야스가 나에게 많이 있었기에 보자기에 곱게 싸서 할머니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 이 옷은 제가 한번도 입지 않은 상표가 그대로 붙은 새 옷입니다. 왜 이 옷을 할머니께 드리냐 하면 어제 밤 꿈에 이상한 꿈을 꾸어 이옷을 부처님을 대신하여 제가 드리는 것입니다. 집에 계신 아드님에게 갖다 드리시고 언제 시간을 내어 아드님이 할머님과 함께 다시 청평사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주신 옷이니 사양마시고 아드님이 오해 없으시도록 잘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 만원 내어 미안하다는 곱게 늙으신 할머님 찾아오셨다. 스님이 주신 내의를 입고 다른 회사에 시험을 쳐 무난히 합격되었다며 매우 고마워했다.
나는 그 할머니의 손을 덥썩 잡고 한동안 콧등이 찡하니 아려오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난한 자들의 가난한 소원이 가난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가난한 기쁨을 만끽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자는 신앙마저 가난하게 그늘진 곳에서 쓴 눈물을 안으로만 삼키듯 엮어가야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종교를 통한 생명의 구원을 전설 속의 요원한 이야기거리로 남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향봉스님의 글에서-
*시골 닭이 노망했다..
시골 닭이 노망했다. 요즘 시골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이 러시아워의 서울 장안의 차량들처럼 지켜야 할 선線을 지키질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아무 때이고 때가 없이 목청을 길게 뽑고 있다. 예전처럼 새벽 닭 울음 소리를 시계 삼아 장사길에 오르던 그런 시골 풍경이 흔들리고 있다. 암탉이 알을 품어 세상구경을 나온 그런 병아리들이 아니라 부화장에서 뛰쳐나온 그런 병아리들이라서 장닭이 되어서도 시간 분별 없이 아무 때이고 울어댄다. 양계장에서는 암탉이 밤낮의 분별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밤에도 환히 전기불을 대낮처럼 밝혀놓고 하루에도 계란을 두 개씩 낳게 하여 잔인한 수입을 올리는가 하면 암탉이 알을 품어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병아리를 만나는 그런 번거로움을 배제하고 부화장에서 기계로 구워내는 병아리를 어미닭도 없이 인간들이 키우고 있는 형편이니 시간 분별없이 시골 장닭들이 울어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예전 말에 줄탁동시란 글이 있어 병아리가 부화되는 순간에 알 속에서 병아리가 그 연한 부리로 알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암탉이 그 순간에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이 때 그 두개의 작업이 동시에 일어난다 하여 줄탁동시란 말이 생겼다 한다.
그런데 요즘의 병아리들은 줄탁동시의 알을 깨고 나오는 그런 아픔 속의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어미닭의 보살핌도 없이 거친 인간의 손에 의하여 어미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미닭이 되어서도 어미닭 구실을 제대로 한번 해볼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밤에는 대낮처럼 환히 밝은 전등불 밑에서 하루에도 어김없이 두개의 계란을 낳아주는 기계화된 어미닭으로 전락한 슬픔을 맛봐야 한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경춘천 가도를 달리다 보면 미금역을 조금 지나서 양계장마다 전등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밤에도 대낮처럼 전등불을 양계장마다 환히 밝혀놓고 그것도 부족하여 암탉이 운동할 수 없게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고 운동 부족으로 살만 찌게 하여 삼계탕이나 육계장집으로 보낼 준비에만 바쁜 인간들의 잔인한 손길이고, 신유년, 닭의 해를 맞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국민학교 저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개나리 꽃이 노랗게 물든 울타리에서 암탉이 병아리를 거느리고 노니는 원색의 그림은 머지않아 동화 속의 이야기거리로 남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인간의 잔혹성은 양계장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불교 신문사에서 머물고 있을 당시의 이야기인데 하루는 황성이 시인이 찾아와서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평군의 어느 마을에 가면 개를 키워 보신탕 집으로 보내는 집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보면 서른 마리도 넘는 개를 모조리 뒷다리를 꺾어놓아 병신개를 키운다는 설명이었다.
왜냐하면 뒷다리를 새끼 때부터 부러뜨려 놓아야 활동할 수 없어 운동 부족으로 살만 돼지처럼 찐다는 이론이어었다.
다음 날 나는 시간을 내어 그 마을을 찾아가 직접 그 엄청난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 병신개를 살찌우는 젊은 주인의 설명은 더 놀랄 일이었다.
"스님의 입장에서는 놀라실 일이겠지요.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수입 많이 올리는게 요즘 우리네 일상인의 생명줄 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분은 폐결핵에 좋다하여 갓낳은 강아지를 삶아먹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아셔야 합니다.
핏덩어리나 다를 바 없는 갓낳은 강아지를 찾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다하여 주문이 쇄도하는 지경이니깐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병신개 주인의 얼굴을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불길 같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잔인하게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아닌가 싶다.
하루 밤을 잠을 못자게 해도 몸시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일년내내 양계장에 전기불을 밝혀 닭들의 잠을 빼앗는 잔인한 수입올리는 방법이라든지 개다리를 절단하여 운동부족으로 살만 찌게하는 비극이라든지 정력에 좋다하여 눈도 안뜬 갓낳은 강아지를 삶아먹는 충격적인 비극중의 비극이 인간의 그 잔혹성을 그대로 대변해주지 않나싶다.
신유년, 닭해를 맞아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평 어느 마을에서 만난 그 뒷다리 질질 끌며 앞다리와 배로 기어다니는 30여 마리의 개의 환상이 지금도 가끔 꿈결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지극히 슬프디 슬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향봉스님의 글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_()__()_()_
할머님,,, 아미타불 염불하셔서 극락왕생하세요.
진심은 법계에서 알아주신다니깐 ^^
감사합니다_()_()_()_
두번째 글은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ㅠ.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불하소서.
감사합니다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