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비운의 왕족들
충격적인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비운의 왕족들
©Getty Images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를 경험하며,
왕족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전세계에 있는 많은
왕족들이 갑작스러운 죽음 및 사고를 겪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통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던 왕족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
©NL Beeld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은 필립 왕자의 삼촌이자
그를 멘토로 여긴 찰스 왕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영국 해군 제독이었던 루이스는 휴가를 즐기는 동안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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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이 백작의 목재 보트에 폭탄을 설치했다.
이 폭탄은 백작이 손자인 니콜라스 크나치블과 함께 낚시를
하고 있을때 폭발했다. 보트는 파괴되었고 백작은
어부의 도움을 받았으나 부상으로 즉시 사망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
©Public Domain
현재 스웨덴의 왕인 칼 16세 구스타프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는
1947년 1월 26일 네덜란드에서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발생한
비행기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예정대로 코펜하겐에서 잠시 멈추었던
이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50 m 상공에서 지상으로 추락하면서 폭발했다.
이 사고로 기내에 있던 승객 22명이 모두 사망했다.
그레이스 켈리
©NL Beeld
할리우드 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하기 위해 26살에 은퇴했다. 그러나, 그녀의 왕실 판타지는
1982년 9월 14일에 끝나고 말았다.
그레이스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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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 13일, 둘째딸인 스테파니 공녀와 함께
차를 타고 모나코를 떠났던 그레이스 켈리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발작 증세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켈리와 그녀의 딸은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켈리는 부상으로 인해 하루 뒤인 1982년 9월 14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다이애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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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비의 죽음은 현대 왕족 사회에서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비가 파리에 있는
리츠 호텔을 떠나다 비극적인 자동차 충돌 사고를 당했다
다이애나비
©NL Beeld
운전사였던 헨리 폴과 다이애나비의 남자친구였던
도디 알파예드 모두 사건 현장에서 사망했다.
다이애나비는 사고가 발생한 뒤 몇 시간 뒤에
병원에서 부상으로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그녀의 경호원이었던
트레버 리스 존스였다.
네팔 궁중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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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1일, 네팔의 왕족들이 끔찍한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29살이었던 디펜드라 왕자 (왼쪽)가 가족에게 총을
겨누었으며 아버지인 비렌드라 왕,
어머니, 남동생 및 다른 왕족들을 살해했다.
네팔 궁중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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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에 따르면, 어머니가 자신이 선택한 신부를 거절하자
디펜드라 왕자는 곧 격분하고 말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던 디펜드라 왕자는
혼수 상태에 있는 동안 왕위에 올랐다.
네팔 궁중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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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왕"이었던 디펜드라 왕자는 2001년 6월 4일에 사망했다.
새롭게 왕이 된 갸넨드라는 2008년까지 네팔을 통치했다.
갸넨드라는 네팔의 마지막 왕이었다.
스테파노 카시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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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카시라기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모나코 공녀 카롤린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그는 1990년 10월 3일에 비극적인 레이싱
사고로 30세에 사망했다. 그는 이 레이싱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었다.
마크 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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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숀드는 왕족은 아니지만
콘월 공작부인 카밀라의 남동생이다.
마크 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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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숀드는 뉴욕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참가한 뒤 사망했다.
바를 떠나던 그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조사 결과 숀드의 두개골의 두께는 단지
1 mm였다고 한다. 결국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곧 사망하고 말았다.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벨기에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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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공주로 태어나 벨기에의 레오폴 3세의
첫 번째 아내가 된아스트리드는 보두앵 왕과 알베르 2세 및 나중에
룩셈부르크 대공비가 되는 조세핀-샤를로트 왕녀의 어머니이다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벨기에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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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플은 1935년 8월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스위스로 떠났다. 8월 29일, 이들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산에서 하이킹을 하기로 결정했다.
운전사 대신 직접 운전을 했던 레오폴 3세는 조수석에 있던
아내가 가리키는 무언가를 보는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이들이 탔던 컨버터블 자동차는 곧
서양 배나무와 충돌하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아스트리드는 두개골에 금이 가면서
즉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9세였다.
요한 프리소 판 오라녜나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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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 여왕의 둘째 아들인 프리소 왕자는
1년 반 동안의 혼수 상태를 끝으로
2013년 8월 12일에 사망했다.
요한 프리소 판 오라녜나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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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오스트리아에 있는 스키 리조트에서
휴가를 즐기던 프리소 왕자는 눈사태를 당했다.
그는 18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앤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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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였다. 그녀는
세 번의 유산을 겪은 뒤 딸을 출산했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헨리 8세는
자신의 이전 정부이자 앤의 상궁이었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간통, 근친상간 및 음모설로 비난했다.
결국 앤 불린은 1536년 5월 19일에 유죄를 받아
4일 뒤에 참수형을 당했다.
알베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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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2월 17일, 벨기에의 알베르 1세는 벨기에
나무르 지방에 있는 막슈-레-담므에 올라갔다.
하지만 몇 시간 전에 출발했던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알베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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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조직된 수색대가 절벽에서 떨어져 숨진 시체를 발견했다.
알베르 1세의 뒤를 이어 레오폴 3세가 왕위를 이었다.
켄트 공작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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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의 네 번째 아들이었던 조지 왕자는
세계 2차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1942년 8월 25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던 그는
나중에 스코틀랜드에서 비행기 충돌 사고를 당했다.
마리나 공주, 켄트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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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왕자의 아내였던 켄트 공작 부인은
그녀가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켄싱턴 궁전의 소식이
발표되고 몇 시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968년 8월 27일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프린스 윌리엄 오브 글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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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의 첫 번째 사촌이었던
윌리엄 오브 글로스터 왕자는
휴가를 보내다 30세에 갑자기 사망했다.
프린스 윌리엄 오브 글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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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항공기를 소유했던 왕자는 아마추어 에어쇼 경기에 참가했다.
1972년 8월 28일, 그는 골드이어 인터내셔널 에어 트로피 레이스에 참가했다.
그가 탔던 비행기는 3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륙하자 마자 충돌했다.
벨기에의 보두앵 국왕
©NL Beeld
1993년 7월 21일에 벨기에 내셔널 데이를 축하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끝났을 때, 이 왕족 부부는
스페인 모트릴에 있는 별장으로 갔다.
아무도 이 여행이 왕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벨기에의 보두앵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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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뒤인 7월 31일, 보두앵 국왕은 아내인 파비올라 왕비와
휴가를 보내다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보두앵 국왕은 레오폴 2세 이후 가장 오랫동안 벨기에를
통치한 국왕이었다. 벨기에는 곧 깊은 애도의 기간에 들어갔다.
영국 왕자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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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7월 12일,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아들로 태어난
존 왕자는 간질과 자폐증을 앓았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샌드링엄 저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종종 "잊혀진 왕자" 또는
"잃어버린 왕자"라고 불려졌다.
영국 왕자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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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3살에 갑작스러운 발작 증세로 사망했다.
미래에 에드워드 8세가 된 그의 형은 편지를 통해
존이 "동물"같았으며 존의 죽음은 가족에게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안정"을 주었다고 말했다.
웨일스 공녀 샬럿 오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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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11월 5일 저녁, 샬럿 오거스타는 사산아를 낳았다.
몇 시간이 지난 뒤 그녀는 구토와 출혈을 하다
결국 사망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1살이었다.
Stars Ins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