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결혼했다]라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익숙하게 만날 수 있었던 컨셉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천년 인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여성과 남성의 성적 역할에 대한 혁명적 전이가 이뤄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풍속도는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조선시대 이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장을 만들어냈다. 이혼한 전 아내도 아니고 현재의 내 아내가 나를 놔두고 또, 결혼했다니! 실정법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를 따지는 것은 이 문장이 던져주는 충격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결혼한 뒤에도 상당기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현욱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그 제목이 던져주는 자극적인 호기심만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단군 이래 최고의 불황이라는 출판시장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40여만부가 팔려나갔다. 다시 말하자면, 결혼을 한 뒤에도 남편을 놔두고 또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의 욕망이 그만큼 팽배해 있다는 것이고, 그런 여자들의 도발적이고 능동적인 반란에 많은 남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결혼한 뒤 시퍼렇게 살아있는 아내를 놔두고 또 결혼해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되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처럼 결혼한 뒤에도 옛 남자가 사는 옥탑방을 찾아와 쉬쉬하며 이중생활을 하는게 아니라, 남편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선언하고, 남편의 동의를 구하고, 당당하게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자 주인공 주인아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 캐릭터이다.
남성과 여성의 줄다리기에서 주인아(손예진 분)가 노덕훈(김주혁 분)을 기술적으로, 심리적으로 제압했다고 특수한 경우처럼 [아내가 결혼했다]의 상황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주인아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녀는 착한 며느리이고(시댁에 가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하는 그녀는 시어머니로부터 아들보다 훨씬 사랑을 받는다) 아름다운 아내이며(주인아는 FC바로셀로나의 광팬이다. 지단의 열혈 팬인 남편과 프로 축구 이야기로 밤새 술잔을 기울일줄 안다), 회사에서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좋아할 정도로 예쁘고 착하고 능력있는 여성이다. 남녀관계에 대한 주인아의 말도 빈틈이 없다. 남자가 바람피니까 나도 핀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평생 한 남자만 사랑하며 살 자신이 없다. 대부분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상대에게 종속당하게 되지만 주인아는 그 관계를 뛰어넘는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핵심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도전이다. 인류 역사상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일부일처제, 그러나 인류진화사상 진정한 일부일처제가 시행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브론스키)라거나, 한 사람의 상대자를 평생동안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한 자루의 초가 평생동안 탈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톨스토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일처제의 희생자는 여성이다. 여자는 전통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으로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경제권 또한 남자가 갖고 있기 때문에, 결혼제도 밖으로 튕겨져 나가면 험난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여자를 집안에 묶어 놓는데 성공한 다음, 마음껏 밖으로 돌아다니며 다른 여자를 탐한다.
노덕훈이 주인아와 결혼을 결심한 것은, 그녀를 영원히 자신이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결혼은 여자의 무덤이었니까. 여자는 결혼하면 사회의 이목도 있고 결국 조신하게 현모양처의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니까. 휴일 늦은 오전, 남자가 소파에 기대고 앉아 TV 채널을 돌리는동안 세탁기를 돌린 뒤 빨래를 널고 방청소를 하고 부억에서 찌게를 끓일 것이니까. 그러나 주인아는 노덕훈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면서 전제조건을 내건다. 서로의 사생활은 간섭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덕훈은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결혼에 성공하면 결국 그녀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니까.
[아내가 결혼했다]의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그들이 결혼한 다음부터이다. 더 정확하게는, 주인아가 노덕훈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고, 그와 잤으며 이 결혼생활은 유지한 채 그와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부터이다. 주인아의 도발적 선언은 수천년 지속되어온, 좁게는 조선조 이래 이 땅의 생활규범이 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를 송두리체 뒤엎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 익숙한 남자들에게는 주인아의 발언은 서구사회에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만큼 충격적인 선언이다. 노덕훈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혼하는 것, 또 하나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결국 노덕훈은 후자를 택한다. 전자를 택하면 이렇게 매력적인 아내를 영원히 잃게 되지만, 후자를 택하면 그래도 절반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로 파견을 나간 아내는 주중에는 새로운 남편 한재경(주상욱 분)과 살고 주말에는 서울로 와서 남편 노덕훈에게 헌신한다. 헌책이나 프로축구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결혼제도의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연애주의자라는 점에서 주인아의 소울메이트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닮은 한재경에게 노덕훈은 질투를 느끼지만, 주인아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의 결혼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주인아가 임신을 하면서 노덕훈은 핏줄에 대한 본능적 집착으로 이중 결혼생활의 위기를 가져온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메시지는 일부일처제를 미덕으로 삼는 현 사회의 결혼문화에서는 매우 전복적이다. [예스터데이](2002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년)의 전윤수 감독은 심각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는 유쾌하고 경쾌한 아웃복싱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육화시킨 두 배우, 김주혁과 손예진의 연기 조화가 인상적이다. 손예진은 데뷔 이후 가장 자연스런 연기를 펼치고 있고, 김주혁은 조금 과장되었지만 보편적 공감을 살 수 있는 밉지 않은 연기로 배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이런 삶이 모든 남자에게는 재앙이며 모든 여자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은 유토피아적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갈등이 없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