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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른다 하지 않겠다.
여승동
모순의 계절
위선자라 했다. 나를.
이중인격자라 했다. 남편을.
이것이 결혼 20년차 나의 인생 성적표였다. 밖에서는 허풍떨고 집에서는 침묵하는 남자.
남들 앞에서의 표정과 둘만이 있는 집안에서의 얼굴이 너무나 다른 기묘한 야누스같은 배우자.
짐작은 간다.
그녀가 어째서 나를 이렇게 부르는지를...하지만 나는 원래부터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새벽이 오면 날이 밝아 너를 볼 수 있겠다 하였고, 저녁이면 하루를 어찌 보내었느냐 물었고, 비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함께 떠나고 싶었고, 바람 부는 날이면 술에 태워 너를 마셔버리고 싶었고. 달빛아래에서 너는 내 어둠의 초가 지붕위에서 피어난 박꽃이라 하였고, 까만 하늘아래 네 눈빛은 별빛보다 더욱 총총히 내 가슴에 내린다 하였다.
그랬다.
이슥한 밤마다 어둠 속에서 온통 너 뿐이던 시절, 너와 나의 모든 목숨이 녹아내려 온기(溫氣)와 통정(通情)하던 순간, 꺼이꺼이 죽음보다 더 자욱한 쾌락을 수없이 맞이하던 우리들의 세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스러지게 껴안아 아드득 아드득 소리치던 영원한 사랑의 유산, 온몸 부르르 떨리던 우리들의 기나긴 연애시대, 사흘이 멀다 하고 나는 너에게 쪽지와 편지글들을 강물처럼 흘려 보내곤했다.
그래, 모른다 하지 않겠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의 어긋난 환상, 빗나간 현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집안의 장남에게 시집와서 긴긴 세월 겪어야 했던 시집살이와 고부간의 뿌리 깊은 갈등, 성깔 있는 시누이들과의 교묘한 마찰,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채기들, 그러다 스스로 지쳐서 살아야 했던 짓무른 한숨, 겨울철 강물위로 떠돌던 얼음조각처럼 제가끔 겉돌던 우리들의 가족사,
일찍이 청상이 되어 한 평생 남편 바라보듯 나를 키우며 살아오신 내 어머니를 대할 때와 태어난 이후 최초로 타인의 사랑을 우리집안으로 끌어들인 내 여자, 그 여자, 아내라는 이름의 타인.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쉬건머리 없는 남편의 한계, 서로 다른 얼굴, 두 개의 얼굴로 살아야했던 나의 피로한 삶을 그녀에게 어찌 구구절절 말할 수 있었으랴. 그녀 또한 말로만 듣던 이 기묘한 집착과 애증을 어찌 납득할 수 있었으랴. 안다 해도. 이해한다 해도, 지금껏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그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뛰어든 이 결혼의 낯선 풍경 속에 이토록 깜쪽같은 아집과 오해와 체념이 일찍이 잠복하고 있으리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미안하다 내 여자야.
너와 나의 결혼이 이리도 갑작스레 어긋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토록 정갈하고 희생적이던 내 어머니가 우리들의 결혼 이후로 이리도 속 좁아 고집 센 여자로 돌변하리라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정녕코 몰랐다. 하지만 용서해다오. 내 어미는 바로 나 자신이니,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의 이력이니, 그러므로하여 나를 탓하거라.
미안하다. 내 여자야. 내 속에 유일한 여자야.
나는 수도 없이 빌고 또 사죄하였다. 허나, 아리고 쓰리도록 미안해한다 한들 사랑이 어찌 빌며 사죄한다해서 복권될 그 무슨 범죄이던가. 하지만 아니다.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흔해빠진 유행가처럼 사랑이야말로 치명적 범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내게는...그러나 정작 그보다 더욱 나쁜 것은 범행사실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범행사실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그걸 의식도 못한 채로 번연히 몸 섞으며 살아간다는 점,
그래서 희한하게도 범행 사실을 깜쪽같이 잊고 살거나 너무나 늦게 깨닫게 된다는 치명적 무감각함이었다. 무식한 사랑의 말로라고나 할까, 우리들은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어갔다. 마음속의 조아림과는 또 다른 리듬으로 일상은 무심한듯이 그렇게 흘러갔고 우리들은 껍데기처럼 살아갔다. 일찍이 우리는 초췌하고 겉늙은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바람이 불었고, 세월이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고, 우리들 인생에도 어느덧 가을이 왔다.
늘상 가슴 한 켠을 짓누르던 관계의 불안, 이 어눌한 결혼살이. 그래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내 여자와의 사이에 끼인 이 어색한 얼음을 깨뜨려야 해. 그것이 원하던 삶이었든 억지로 살아온 타의적인 삶이었든, 이젠 너무 오래 살아서 한숨으로도 플어야 하고 원망으로도 씻어 내려야 할 나이에 이른 것이지.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얼싸안아 녹이고 싶었으나, 굳어진 거리감은 좀 채로 허물어지질 않았다. 오래된 불신의 화석은 엔간한 체온으로는 쉽사리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고드름 같은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계절
그 무렵 어느 때쯤, 나는 두 번의 죽음을 목도하였다. 한사람은 나의 절친한 친구였고, 또 다른 한사람은 내 친구의 절친이었다. 그 한 사람은 일생동안 건강하고 반듯하게 제식훈련 교범처럼 살다가 회갑나이에 그림처럼 사라졌다.
강화도 인근에서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인근 야산에 올랐다가 그리 높지 않은 절벽바위에 걸려 굴러 떨어졌다. 그토록 조심성 많은 친구가 가느다란 실핏줄이 터진 상태에서 황급히 이송도중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져스트 인생 육십이었으니 그는 인생을 딱 한 바퀴 라운딩한 다음 아무런 고통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개운한 인생을 살다간 나의 오랜 친구.
또 다른 한사람은 위암판정을 받은 지 딱 6 개월 만에 세상을 뜬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위암으로 창졸간에 세상을 뜬 당사자가 아니었다. 전신에 암새포가 번진 말기 위암환자의 초췌해진 모습으로 죽어간 사람보다 그 곁에서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욱 침몰한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가 아닌 바로 나의 친구였다 .
나이 육십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실로 죽음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나 보다. 그는 사흘 밤 사흘 낮을 내리 퍼마시다가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한 친구의 죽음이 살아남은 자의 삶을 그토록 포기할 만큼의 슬픔이었을까 ?
그 두 사람은 인생의 절반을 함께 했으며, 마음과 마음으로 삶의 마디마디마다 칡넝쿨처럼 칭칭 얽혀 살았다. 그리하여 이제 삶의 운명적 동반자가 다 되어버린, 마음 속 배필같은 우정, 기나긴 세월, 서로 얼굴 부비며 등기대어 살아왔던 인생의 절대 언덕이 불시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살아남은 자의 허망함과 슬픔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토록 심각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남의 일이 아님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한 친구에게서 받은 충격이 그러할진데 나는 일생의 배필, 나의 여자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산 것일까 ?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보았다. 혼란스러웠다. 정리가 되질 않았다. 너무 오래 버려두어 이젠 빗질조차 할 수 없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꼬여버린 나의 인생, 구겨질대로 구겨져버린 삶의 회한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삶의 화두를 찾아서 홀로 여행을 떠났다.
바다멀리 어느 외딴 섬으로.. 물가에 앉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남해 욕지도에서 뱃길로 몇 시간을 떠내려가듯이 흘러가다 조우한 어느 섬. 그곳에서 나는 며칠간을 넋나간 사람처럼 바닷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저 알 수 없는 물속으로부터 내 삶의 실마리라도 건져보려는 듯이, 하지만 수도 없이 파도 속으로 나의 물음을 던져 넣어보았으나 번번이 헛챔질만 하고 말았다. 파도 위로 출렁이던 우끼가 봉긋 치솟는 듯하여 잽싸게 잡아채어보면 늘상 빈손이 되고 말았다. 사는 게 이런 것일까 ?
소설 속에서는 인생의 기승전결이 뚜렷하기만 한데, 도대체 현실 속 삶의 드라마는 원인도 뚜렷하지 않고 그렇다고 결과도 명료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것들 투성이일까 ? 원인과 결과가 서로 맞아 떨어지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사건과 곡절사이의 간극과 시차의 문제까지 겹쳐서 왜 이리 혼란스럽기만 한 것일까 ?
그 옛날 나는 그녀의 몸 속에 숨겨진 쾌감의 급소, 사랑의 꼭지점(love portion)을 아홉군데씩이나 뚜루루 꿰고 있었으나 정작 그녀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픔을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 코드, 마음의 비밀번호는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 찾아내지 못하였던 나의 어리석음,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 인생의 안개 속을 걷는 것은 신기한 것이 아니라 곤혹스러움뿐이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조금씩 지쳐갔다 .
그때부터 나는 하릴없이 섬을 어슬렁 어슬렁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간혹 쓰러질듯 겨우 버티고 서있는 바라크 지붕아래에서 들락날락 거리며 살고 있는 몇몇 섬사람들과 길에서 마주치곤했다.
나는 궁금했다. 저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 저들에게 삶은 과연 무엇일까 ? 한 개의 사실이 궁금해지자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절해고도와도 같은 머나먼 외딴 섬, 그들은 이토록 무료한 공간에서 도대체 어떤 짓을 하며 살아갈까 ? 인간은 심심할 때 무엇을 하고 사는 걸까 ?
사랑도 식어버리고 결혼도 거지반 숨을 거둔 나처럼 속이 다 비어버린 인간에게 남은 즐거움이란 무엇이 있을까 ? 저마다 격리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 혹독한 권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무엇일까 ?
나는 그들에게로 다가가 주섬 주섬 묻기 시작하였다.
어린아이처럼 다짜고짜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 심심할 땐 무얼하고 사시나요 ? “
“ 괘기잡고 살제. 밭에 나가 배추도 키우고,
뭍에 나간 자슥새끼 걱정도 하고...“
“ 결혼한 지 얼마나 돼셨나요 ? 이십년 삼십년 ? ”
“ 지업도록 살았제. 할마이도 나도 몽침이가 다 된기라 .”
“ 둘이서 마주앉으면 무슨 말들을 하고 사시나요 ? ”
“ 어데 할 말이 따로 있나. 한말 또 하고, 또한 말 또 하고
호롱불 밑에서 끄덕끄덕 자불다가 듣고, 듣다가 자불다가 그러다 보믄
날이 뿌옇게 새는 기라. 다시 밭에 나가 꿈지럭거리고 ,
여기는 전깃불도 없고 전화기도 없고 평생 감옥살이 하능기라. ”
“ 그럼 여기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 ”
“ 오래 됐제. 증조 할배 때부터 살았으이께. 한 백오십년은 됐나.. “
“ 그럼 옛날 조상님들은 지금보다 더 캄캄한 세상에서 살았을 건데
그때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요 ? “
“ 재미는 무신 재미.. 사는 기, 재미로 사나 ?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능기라. 섬이라카는 게 다 그런기라.“
그때 그는 꿈속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 몸을 추스르며 한 마디 했다 .
“ 아, 생각나는 게 하나 있구마 . 옛날에는 섬을 떠뎅기며 이바구를 팔아먹고 사는
이바구 꾼이 있었다 아이가.”“ 이야기꾼이라니요 ? ” 귀가 쫑긋했다.
“ 그래 생각난다. 뭍에서는 장날이라는 게 있지만, 섬에서는 봇짐장수들이 배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떠돌아다니면서 섬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팔아먹고 살았제. 그때 봇짐장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와서는 재미 난 이바구들을 풀어놓고 가능기라. 그기 섬사람들한테는 제일로 재미있는 구경꺼리제. 동네 누구 누구 집에서 이바구 한마당 한다 카믄 돈은 없고, 생선 몇 마리에 보리쌀 한 되, 고구마 한 소쿠리에 옥수수 한 보따리씩 싸들고 부리나케 쫓아가는 기라. 설거지하다말고 밭일이고 뭐고 다 팽개쳐 뿌리고. 그게 우리들에게는 유일한 낙이었제. 나도 아주 어릴 적에 한두번 들은 것 같구마.“
나는 그로부터 며칠을 그 노인네와 얘기하다 섬을 떠났다. 무언가 삶의 밑바닥을 들여다 본 듯하였다.
어렴풋이나마,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묵상 그리고 치유의 계절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인근 마트에 나가 자잘한 찬거리를 사오기도 했다. 그녀를 위해서 나의 주특기인 콩나물밥을 하고 싱싱하게 묻힌 산나물과 함께 된장찌개를 끓여 밥상에 올려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밥상머리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군지렁 군지렁하고 있었다. 말이 끊어진 부부의 유일한 치료제는 역시 말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섬에서 깨달은 것이다.
우리 부부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어 어느덧‘예, 아니오‘라는 단문 단답형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을 무렵, 바깥으로 뛰쳐나간 내가, 어느 모임에서 시작한 ’역사 문화이야기 마당‘을 그녀에게도 들려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어느 단체에서‘역사 문화 이야기 마당’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열심히 진행하여오고 있던 터였다.
그동안 타인에게는 친절하였고, 재미난 얘기들을 안주삼아 잘도 주워섬기던 터였지만,
정작 나의 아내, 그녀를 위해서는 내가 그토록 열심히 매달린 이야기 이벤트의 기쁨을
그녀에게는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불현듯 미안했고 반가웠다.
다만 어째서 지금에 와서야 내가 그런 생각에 이르른 것일까 ? 그것은 순전히 남해 외딴 섬의 이름 모를 이바구꾼 덕분이었으며 이제사 나는 진정으로 그녀와 화해의 단초를 발견한듯했다. 열심히 준비했고 재미나게 스토리를 이끌어나갔다. 텅 빈 나의 인생극장에서 관객은 오로지 단 한사람, 그녀뿐인 전용극장에서 그녀만을 위한 나의 이야기 마당 공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랑은 질문일까, 대답일까, 확신일까 ?
이것은 내 모노드라마의 첫 번째 화두였다. 오래된 신화,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과 결혼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믿지 못해 어이없이 살인까지 저지른 어리석은 남자 돈 호세와 바람둥이 카르멘의 이야기를 서로 비교하며 들려주었다. 그건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그녀가 오랜 세월 내게 따져 물었던 힐난이었으며, 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둘러대었던 반문성 질문이었다. 그러나 또한 그 질문을 통하여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속속들이 내 잘못을 까발려 보여주고 싶었던 일생의 독백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등장하는 노래‘사랑은 참새와 같아, 잡으려 하면 호루룩 날아가고, 무심한듯 버려두면 금새 제자리로 날아오지’라는 노랫말을 인용하면서 나의 무심했던 사랑과 결혼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보거나 보여주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결혼의 현실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게으른 실책을 마구 토해내면서...또한 말하지 못한 나의 진실에 대해서‘ 이제사 고백하오니, 그대 넓고도 아픈 가슴으로 나를 구하소서’라고 읊조렸다. 그토록 무심하고 시니컬하던 그녀의 눈빛이 순간 반짝하고 빛났다.
그로부터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는 더욱 재미난 이야기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역사와 문화를 파헤쳐 나갔고 인간의 관심사 전반에 걸친 나름의 해설과 무성영화시대의 변사를 연상케 하는 일인칭 모노드라마를 내 집안에서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해 욕지도에서 수집한 서포 김만중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은 곰살맞은 이야기 필담과 그로부터 탄생한 어문소설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뒤늦게 읽은 D.H Lawrence의 '아들과 연인'에서 어머니로부터 헤어날 수 없었던 엄마 콤플렉스가 내게도 있었던듯하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사랑은 걸림없는 바람같은 사랑이었고 또 하나의 사랑은 운명과 천륜에 얽힌 보편적 구속 같은 것이 사랑이었다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내 어미에게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랑에도 우편 사서함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을 나는 너무나 몰랐다고 자백했다. 이처럼 복합나선형 구조로 얽힌 나와 내 어미 사이의 사랑의 틈바구니에서 당신이 희생된 것 같다고 진술을 끝낸 다음부터 나는 웬지 홀가분하여졌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여자들의 영원한 고통, 남자들의 바람기를 확실히 때려잡은 중국 수문제의 아내, 독고황후와 오스트리아의 어머니이자 신성로마 제국의 근엄한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이야기를 들려 줄 때면, 그녀는 속이 다 후련해지는 듯 눈웃음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
오늘날 유럽 공동체의 시조가 된 아름다운 권력자 칼 마르텔 샤를마뉴 대왕과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죽기 싫어 발버둥쳤던 진시황제, 자신의 마음하나 다스리지 못한 그 사내는 어찌해서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갔던가.
욕망과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다가온 죽음을 그들은 어떻게 맞이하였던가, 인간의 영원한 숙제, 고독은 어떻게 탈출되어지는가. 절대고독의 유배지에서 맑고 투명한 영혼의 향기를 뿜으며 유유 자적했던 어느 선비의 유배일기, '임자도 일기'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비교하면서 존재의 밑바닥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내 이야기 속에 숨은 삶의 화두들. 수성천변 고수부지에 앉아서는 중세 일본의 역사 헤이안시대의 모노가타리 이야기를, 수성 못 둑에 앉아서는 힌두교의 전설같은 불경 이야기를, 오후 늦게 오른 용지산 절벽 앞에서는‘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겠노라’일갈하던 1300여 년 전 중국 선종의 돈키호테같은 선사 남악회양, 그 때 그는 과연 거울 만들기에 성공했을까 라는 물음을 이제 마악 떠오른 달에게 던져보기도 하였다.
천일야화같은 나의 이야기, 밥상머리에서부터 산책길로, 잠시 주저앉은 어느 길섶에서부터, 함께 오른 동네 뒷산 어느 바윗돌에 이르기까지 세설신화같은 나의 이야기는 참새처럼 조잘조잘, 빗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이제 그녀는 내가 이야기마당을 펼칠라치면 어느새 목마르지 않나 ? 배고프지 않아? 이바구 값을 내야한다며 커피 한잔에 쐬주를 따라 주곤한다. 그 때쯤, 이야기는 뉘우침의 화해가 되고, 눈빛은 용서의 악수가 되는 것이었다. 타인의 삶을 통하여 다시금 마음의 속살로 만나는 우리들은 죄의 수요일, 영혼의 사순절에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진정 마음의 일치를 이룬 담화는 어느 영화 이야기였다. 전쟁 중의 상처와 교통사고로 일생의 흔적을 깡그리 잃어버린 한 남자가 우연히 찾게 된 옛집의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찰각하고 돌리는 순간,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의 아내가 등 뒤에서 '스미스’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짓말처럼 지워졌던 기억들이 낡은 필름처럼 스르르 풀려나오는 기억상실증 환자의 이야기였다.
영화제목이 말하듯 우리들은 삶의 전장터에서 숨가삐 살아오다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마져 깜쪽같이 잊어버린 채‘마음의 행로’를 잃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로가 코앞에 있어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가족들은 모두가 역행성 기억 상실자들이 아니었을까 ? 은근히 감동한듯한 아내가 이제사 내게 묻는다 .
‘진작에 쫌 잘하지..’
그러나 나는 예의 실없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
- 이 바보야, 삶은 천박하고, 사랑은 지루한거야. 그래서 사랑의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이거든. 지루하고 따분한 삶의 끝에서 한번 거대하게 울컥하며 숨을 거두는 게 결혼의 종착역이야. Underst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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