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지기 신부님의 성지순례 사진을 보다가 ‘바그다드 카페’ 사진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터기 시리아 성지순례기라고 하셨는데 웬 뜬금없는 ‘바그다드 카페’인가 했지요. 혹 그 짧은 일정에 휘리릭 공간이동을 해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를 다녀오셨나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그다드 카페’는 영화 속의 그 <바그다드 카페>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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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오래된 영화이기도 하고, 국내 개봉당시에는 상영 일주일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린 영화인지라 저도 극장에선 보지 못하고 비디오로 본 것 같은데, 언제 누구와 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렇게 대접 못 받던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된 이후 이사람 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중동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아니라 미국 라스베가스와 디즈니랜드의 중간지점에 있는 모하비 사막이 배경입니다. 그곳은 화물차들이나 쉬어가는 초라한 카페이지만 마술이 있고, 웃음이 있고, 커피와 음악이 있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은 그곳에서 위로를 받고 휴식을 취합니다. 사막만큼 황량하고 삭막한 삶에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름은 흡사 <파리 텍사스>를 연상케 합니다. 미국, 좁게는 텍사스 안의 유토피아를 그린 빔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가 퍼시 애들론 감독에 와서는 <바그다드 카페>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사막을 배경으로 외모부터 성격까지 전혀 다른, 편견으로 말도 통하지 않던 두 여자가 메마른 삶 속에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거기에다 너무나도 유명한 주제곡 ‘Calling You'는 휑한 사막에 미묘한 표정을 불어넣듯이 애절합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관광여행 중인 독일인 부부가 라스베가스로 가는 도중에 대판 싸우게 됩니다. 무지 화가 난 남편은 아내를 사막 한 가운데 버려두고는 냉정하게 차를 몰고 떠납니다. 두꺼운 정장차림에 남편 것과 뒤바뀐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정처 없이 걷던 그 여자가 도착한 곳이 바로 허름한 주유소가 딸린 모텔 ‘바그다드 카페’입니다. 그 때 그 카페 주인은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여행객 야스민(Jasmin)과 일상에 지쳐 울고 있던 브렌다는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여자는 땀을 닦고 또 남편을 내쫓은 한 여자는 눈물을 훔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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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만큼이나 황량하고 삭막한 가슴에 거친 일상으로 지쳐 있는 브렌다는 속된 표현으로 참으로 박복한 여인네입니다. 일 하기 싫어하는 게으르고 무능한 남편은 집을 나갔고, 한창 놀고 싶은 10대 딸은 놈팽이들과 어울려 다니고, 아이까지 딸린 미성년 아들은 집 안 일은 나 몰라라 하며 매일 피아노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브렌다는 그 젖먹이 손자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주인의 모양새에 뒤질세라 카페의 모텔에는 이런저런 변두리 인생들이 묵고 있습니다.
왕년에 헐리우드에서 일하다 이 카페로 흘러온 루디 콕스, 바그다드 카페에 묵어가는 남자들에게 문신을 새겨주는 말없는 여인 데니,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인디언 종업원. 이들은 풍요와 화려함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중심 문화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잘나지 못한,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입니다.
권태와 무료함으로 가득 찬 카페는 야스민(Jasmin)의 출현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무능한 남편과 자식들 뒤치다꺼리와 일에 치여 사는 브렌다를 본 야스민(Jasmin)은 그녀를 돕기 시작합니다. 카페와 사무실을 청소하고, 브렌다의 젖먹이 손자를 돌봐주고, 브렌다의 아이들과 친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에 지쳐있던 브렌다는 이유 없이 자신을 돕는 상냥한 야스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합니다. 뚱뚱한 독일 여자와 고집불통 흑인 여자의 소통이 쉽지는 않지만 야스민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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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다가 야스민에게 쌓였던 마음의 벽을 허물었을 때, 카페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활기 없고 지저분했던, 커피도 맥주도 없던 ‘바그다드 카페’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카페는 야스민의 귀여운 마술로 인해 사람들로 북적이고, 늘 화만 내고 퉁명스럽던 브렌다는 조금씩 웃기 시작합니다. 꿈이 없던 브렌다의 아들은 엄마의 구박을 받지 않고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고 야스민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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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은 브렌다의 친구로 카페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관광비자로 체류기간을 넘긴 야스민은 다시 독일로 떠나야 했고, 카페는 예전의 나른하고 따분한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렇게 희망 없는 나날을 지내던 어느 날, 야스민이 환영처럼 그들에게 돌아오면서 카페는 전 보다 더 큰 활력을 찾게 됩니다. 야스민은 모두에게 사랑을 줬고, 모두들 야스민의 사랑을 받길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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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인종간의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야스민은 체류기간을 넘긴 불법 취업자로 강제 추방됩니다.), 가정문제와 여성문제 등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소통’의 문제입니다. 소통의 벽을 허무는 매개로 마술쇼가 펼쳐지고, 마술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그다드 카페로 다시 찾아옵니다. 야스민의 마술. 그녀의 ‘매직’은 비록 눈에 보이는 ‘쇼’이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여러 인연들이 얽히고 섞이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야스민과 그들은 서서히 그런 마술의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 ‘소통’이 이루어져야 그 다음 단계인 ‘사랑’과 ‘화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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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마음의 벽을 허물었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강한 것인지를, 그리고 변화는 작고 진실된 노력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힘 있는 정치가도 박식한 학자도 돈 많은 부자도 아닌 평범한 나 자신 일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나로 인해, 주변의 상황들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묵직하게 느끼게 해 준 영화입니다.
흐르는 시간이 덧없게 느껴지고, 무기력감에 지쳐가고, 또 누군가와 소통이 원할치 않아 답답한 요즘, 나른한 일상의 지리멸렬함에 몸서리 쳐지는 지금, 저도 <바그다드 카페>에 가서 브렌다가 내어 오는 진한 커피를 마시며 야스민의 ‘매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배려 깊은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야스민이 참 좋습니다. 누구나 힘들고 외로울 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야스민 같은 이웃이나 친구를 그리워하니까요. 그런데도 저는 자꾸만 거칠고 사나운 브렌다에게 곁눈질 하게 됩니다. 타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방어 상태를 유지하고 사는 브렌다가 마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무관심 속에서 살고 있는 제 모습과 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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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르고 황량한 바그다드 카페가 오아시스로 변해가는, 그래서 두 여자 모두 구원을 얻는 영화. 영화 시작 무렵에는 거친 모래바람이 입안에 서걱대는 것 같더니,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부드러운 미풍으로 살갗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러고 보니 주제가 ‘Calling You'는 구원을 얻기 위해 브렌다가 야스민을 간절히 부른 몸부림이네요.
“한 사람만 마음의 문을 닫아도 두 사람 사이에는 벽이 쌓인다. 반대로 한 사람이 먼저 다가가면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다. 다른 듯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삶을 달라지게 한다.” 는 누군가의 글귀가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첫댓글 아~~~저도 얼마전에 인터넷다운 영화로 인상깊게 봤습니다.
영화감상후기를 본 것만큼이나 잘 그려내신 고사랑님,
감사합니당~~ 어제가 말복... 이 더위 조금만 더 견디면 가을이...방실방실 다가오겠지요?
네 저도 오래전에 비디오로 봤지요. 배우들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잭 파란스'를 빼고는..영화 보다는 주제가가 더 유명했던 영화지요. 주제가(Jevetta Steele의 Calling You)는 우리가 많이 접했지요.,사막의 열기 만큼이나 끈적끈적하고 나른한 음악, "가슴 한가운데 사막의 문을 열면 ..." 지금도 상처받은 영혼들의 마찰음이 들리는듯 합니다. 아주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록은님은 야스민 같은 분이실 것 같아요. 저는 까칠한 브렌다에 가깝구요... <바그다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좋죠. 가칠한 부랜다래도, 푸근한 야스민이래도 상관없이 하모니카의 고음과 함께 calling you를 질러대는 그들에게 답을 들려줄 수도 있을지 압니까?
그래요. 야스민이 청소를 아주 잘했던것으로 기억됩니다." 바그다드 카페" 누군가 그랬죠 그런 영화가 재밌냐고 사람사는 야그 같아서 보았는데 별종취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상관없어요. 취향이니까요. 이렇게 추억을 되살려주시는 고마운 고시랑님도 계시니까요.
참 열심히 최선을 다해 청소하더라구요. 저는 사람사는 이야기가 좋더라구요. '타인의 삶' 을 좋아하시는 날쌘돌이님이시니까 영화 항개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 따님들이랑 함 보세용~~
브렌다나 야스민이나 둘 다 우리들 한부분같이 느껴졌어요, 두 여자를 보면서 저도 거기 같이 있고싶어 졌지요^^ 고시랑님이 희한한건 참 기억력이 좋으세요
저는 영화를 봐도 제가 느꼈던 것, 이미지, 이런것들이 단편적으로밖에 안 남아있는데 이렇게 눈앞에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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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주시니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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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땡이엄니도 '야스민'과 잖아요... 인간적인 매력이 흠씬 풍기는... 등짝 패인 끈달이 반짝이 드레스 입고 무대에 서서 " Calling You~~"를 불러보고 싶다는 뜸끔없는 생각이 불쑥!!!
고시랑님~ 오랫만이에요. 바그다드 카페 , 사진과 올려준 글로 잘 감상했네요. ㅎㅎ 사진을 보니 야스민으로 나온 독일 배우가 이곳 연속극에서도 늘 마음이 따듯하고 이웃을 배려해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아줌마라 참 좋아하는데, 사진을 아직 젊고 또 날씬(?)하네요. ㅎㅎㅎ.. 올려준 영화 줄거리를 읽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황량한 사막보다 더 메마른 마음들에 마술이 마음에 구멍을 내고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게 하고, 커피 향을 맡을 수 있게 하듯이.. 내가 보내는 미소와 작은 사랑의 마음들이 마술이 되어 구멍마다에 스며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벽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기를 바라며 샬롬
강변님도 안녕요~~ 야스민 역활을 했던 '마리안네 제게브레히트'라는 분이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국민배우, 국민어머니 시군요. ^^* ... 건강은 어떠세요? 그곳도 엄청 덥죠?
성가대카페에 가져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혼자 누리기 아까워서리~~~~
2시간째 아임 콜링하고있어요~~~
지가 부끄럼이 엄청 많아서요... 콜링 하셔서 목이 다 쉬었겠어요. ㅎㅎ ...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내용을 가진 영화이네요. 마음을 열고 살아야함에도 방어하느라 정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이세상은 소통의 마술이 필요함을 자주 느끼게됩니다.*^^
그러게요, 저도 늘 방어하고 살기에 바쁘네요.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직장동료끼리도... 소통이 참 중요하겠지요. 소통이 잘 안되기에 지금의 정부와 국민의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 거 겠지요. 지금 막 또 한바탕 하늘이 빗줄기를 긋네요. 좋은 저녁요~~~~
영화한편 본 것 같네요.....더위에 지치지 말고 살아남읍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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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줄을라꼬 악착같이 버팅기고 있습니다요~~~ 건강 잘 챙기세염!
파리 텍사스는 봤는데 바그다드 카페는 못봤네요. 간만에 고시랑님 글을 보니 반갑네요.ㅋ 음악 잘 듣고 갑니다. 더운 여름, 잘 나시길~
와~~ 이게 뉘신지요? ㅎㅎ 엄청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아랫녘도 대따시 덥죠? 휴가는 댕겨 오셨는지..... 우리 모쪼록 난세에 만수무강 하자구요~~
마음속에..등불 항개 켜지네유^^ 전 워낙 생김새가 까칠이 아닌 둥글둥글이어서유 그런데.가만 들여다 보니 내면은 꺼어칠~~하네유~ 영혼의 에센스....고시랑님 글이 듬뿍 발라주네유^^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성격이 얼굴에 나타단대요. 그러니 둥글둥글 곡스엄니는 내면도 동글 동글한 동글이... 그 동글이 반만 제게 좀 나눠주삼... 곡스 데불고 어디 물놀이라도 댕겨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