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닥쳐올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다른 고생으로 미리 대신함.”
사전에 수록된 ‘액땜’이라는 단어의 뜻이다. 출발이나 시작 단계에서 뭔가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불길한 조짐이라 느껴 첫 단계부터 좌절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비록 시작 단계에서부터 꼬이더라도 궂은일은 얼른 잊고 심기일전해 다시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액땜한 셈” 치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불행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태의 액땜은 극복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 출근하려고 차를 후진하다가 그만 진입로 옆 화단 경계석을 들이받고 말았다. 날마다 치르는 일임에도 실수를 한 것이다. 요란한 충돌음이 나기에 황망히 내려서 보니 뒤쪽 범퍼 오른쪽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후방카메라의 경고음이 있었는데도 무시한 게 화근이었다. 초보도 아니고 34년 차 운전자가 저지를 실수가 아니었다. 새해 벽두부터 이러니 올해 운수가 얼마나 사나울까 싶어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출근해서도 오전 내내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점심 뒤 떠올린 게 바로 ‘액땜’이었다. 좋지 않은 생각에 매몰돼 있을 게 아니라, 액땜한 셈 치고 얼른 잊는 게 상책이었다. 약간의 경제적 손실이 따르겠지만, 더 큰 사고 안 낸 걸 다행이라 여기면 될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출근길에는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두 차례나 추돌사고를 낼 뻔했으니 가벼운 실수가 외려 액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내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환갑을 맞는 데다, 일터에서 대안을 모색해 주지 않는 한 퇴직해야 하니 심적 부담이 큰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제 겪은 불상사는 자칫 마음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는 해를 맞아 새해 벽두에 나에게 울린 경고라 받아들이고 나니 외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 액땜을 방패 삼아 올해는 늘 긴장하고 매사에 신중히 처신하고 행동하자고 새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