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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달마도, 몽유도원도, 세한도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사람이 짓는 일 치고 사람됨의 화신(化身) 아님이 없다.
"그 사람에 그 그림(其人其畵)"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조선시대 화원(畵員)의 사람됨에 견주면서 그들 그림 11점의 아름다움을 파
헤친 미술역사서다. 단원 김홍도와 공재 윤두서의 그림은 2점을 다룬 까닭에 살펴본 화가는 모두 아홉 분이 된다.
화가의 사람됨에는 그가 꾸었던 달콤한 꿈도, 그가 처했던 아픈 현실도 녹아있기 마련이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는 '진단타려도(陳단墮驢圖)'를 통해 절대군주에게 치세를 고대하는 백성의 꿈을 대변하고 있다.
그림의 정경은 난세에 시달리던 중국 선비 진단이 좋은 군주가 나타났다는 깜짝 소식에 환호작약하다가 그만 타
고 가던 말에서 떨어졌음에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다.
선비 얼굴은 공재 '자화상'에 나오는 바로 그 모습인지라 선비는 화가 자신을 말함이고, 치세를 갈망하는 선비의
소망에 화답하는 화제(畵題)는 숙종 임금이 직접 적었다. 이런 내력 규명이야말로 요절한 오주석(1956~2005)의
집념이 일군 업적 하나다.
민주화 시대보다 만남에 금기가 더 많았을 왕조시대에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기가 있었다면 그 한평
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겠다.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그렇게 갈구해 마지않던 시서화 삼절의 진정한 표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그림붓을 든 심경을 적은 글 덕분에 유명세가 높아진 그림이다. 잘나갈 때는 주위가
북적대지만 벼슬길이 떨어지면 세상인심은 멀어지는 법인데도 어쩌다 변치 않는 우정을 만난 비감(悲感)이 내용
이다.
시서화 삼절은 선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중인 처지였던 단원 또한 진정한 시서화 삼절, 아니 그 이상이었다. '주
상관매도(舟上觀梅圖)'에 적은 화제가 두보(杜甫) 최만년의 율시에서 따왔음을 밝혀내어 단원의 시재(詩才)를 증
명했다. 게다가 지음(知音)이었음도 마저 밝혀 그를 시서화악(詩書畵樂) 사절(四絶)이라 부름이 옳다고 저자는 열
변한다.
'그 사람에 그 그림'이란 말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에 그 글'임도 실감한다. 치열한 머리의 소산인
글인데도 따듯한 마음의 사랑이 가세해서 읽기가 여간 푸근하지 않다.
오주석의 옛 그림 사랑은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
는 주상관매도를 고르고 싶다"는 독백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 지경에서 그림 그리기의 기쁨이 "왕조 최상위 벼슬
삼공과도 바꿀 수 없다(三公不換圖)" 했던 단원의 자부심은 이 책 저자에게 더욱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되었다.
세한도 그림 속의 집은 유배지 제주의 초가가 아니라 중국집인 것도 아쉽고, 그림 자체보다 뜻을 적은 글로 유명
하게 됐음도 흠이라는 날카로운 비판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림과 글은 같은 뿌리인 까닭에 뜻과 내력을 모
르면 무의미하기 십상인 우리 옛 그림을 전인미답의 경지에서 그 문예적 위상을 밝혀냈음은 사계가 오래 기억할
이 책의 미덕이다.
마침내 총론서로 일관하던 우리 전통회화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각론 수작(秀作)이 되었다.
- 김형국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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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은이는 우리 옛 그림의 올바른 감상을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옛사람의 눈길로 그림을 바라볼 것과 옛사람의 마음으로 작품을 느낄 것'.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옛 그림의 색채,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옛 그림 읽기, 옛 그림 보는 법,
옛 그림에 깃들인 마음 등의 미학 에세이 여섯 편을 사이사이에 곁들인다.
각각의 그림에 대해서는 구도, 필치, 원근법 등 기법에 관한 세부 설명은 물론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옛 화가들은
사물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그 결과 우리 그림에는 어떤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밝혔
다. 아울러, 함께 곁들인 한문의 번역을 통해 글과 그림이 어울린 시화의 멋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예술 작품을 작고 엉성한 사진 상태로 보면 그 감동이 반감되는 우려를 감안하여, 해당 작품의 원색 도판을 최대
한 원본에 가까운 상태로 인쇄하여 책의 끝에 첨부하였다. 도판을 떼어내 글과 함께 꼼꼼히 살피면서 감상하는
법도 가능하며, 표구를 하면 개인의 거실이나 서재에서 오랜 동안 감상할 수 있게 책을 꾸민 점도 이 책이 지닌 특
징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는 애초에 오주석 선생이 2004년에 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원고를 준비하 는 동안에 병마가 찾아들어 지은이가 타계하였기에, 몇 해 동안 미완인 채로 남아 있게 되
었다. 오주석 선생의 1주기에 맞추어 출간된 두 번째 책은 생전에 저자가 잡아놓은 틀을 토대로 완성되었다.
2권에서 선생이 읽어내는 옛 그림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
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등 모두 여섯 작품이다. 깊고 높은 통찰력으로 그림 한 점 한
점의 아름다움을 되살렸다.
수묵화는 점잖아서 보는 이를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감상자가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상력
을 발휘하면서 그림 속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올 것을 요구한다. 수묵화의 감상은 감각되는 형상에 수동적으로 지
배되고 압도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의 체험을 겪
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 1권 본문 중에서
술을 몹시 좋아한 김홍도의 다른 작품 '마상청앵도'에는 말을 타고 길을 가다 문득 멈춰선 선비와 말구종 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그저 꾀꼬리 한 쌍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상청앵도'가 운치 있는 건 '침묵의 몇
초 같은 여백'을 바탕으로 버드나무 가지, 제시, 그리고 '꾀꼬리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시선'이 모두 비스듬한
구도 선으로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상청앵도'는 '시선'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 2권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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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게 된다. 찬찬히 요모조모를 살
펴보고 작품을 통하여 그린 이의 손 동작을 느끼며 나아가서 그 마음자리까지 더듬어 가늠해볼 수 있을 때, 우리
는 정녕 시간을 넘어선 또 다른 예술 공간 속에서 문득 그린 이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바깥의 무엇엔가 깊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유한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축
복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
상 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산수화를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자연을
찾고, 꽃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꽃을 키우며, 인물화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태까지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참사랑을 갖게 되
는 것이다. - 1권 서문
날마다 외양이 바뀌어 가는 약빠른 세상살이 속에서, 나 자신 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자연과 한참 떨어져 살
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말하고 그 자연이 낳은 옛 그림의 세계를 이야기하기가 이따금씩 영 멋쩍고 부끄러운 감
없지 않다. 그러나 좋은 것은 변하지 않고 더욱이 가장 좋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아름다
운 예술품이건 참된 생각이건 혹은 알뜰한 사랑이건 간에 세상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것은 모두 선하고 결 고운
마음이 빚어낸 것이라 믿으므로,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두번째 책을 다시 내놓았다. - 2권 서문 - 오주석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여 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납니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
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추체험(追體驗)이라 부
릅니다. 오주석 교수는 조선 시대의 그림들을 격조 높게 풀어 나가면서 어떻게 할지 머뭇거리는 우리를 그러한
영원의 세계 안으로 인도합니다. - 1권 추천글
조선의 땅에서 살아온 조선의 화가들,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보내는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본 적이 있다. 글
씨든 그림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관찰하며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은 늘 경건하였다. 깊고 넓은 통찰력으
로 그림 한 점 한 점을 그토록 아름다운 운율로 드러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우리가 지나쳤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내면서 오주석은 그림에 그려진 나무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인물이 있으면 그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마침내 화가와 하나 되어 그와 '놀면서' 흥에 겨워했다.
그는 항상 그림 앞에서 꼼짝 않고 하염없이 뚫어지게 그림 구석구석을 살피곤 하여 그의 그런 모습이 지금도 눈
에 선한데 홀연히 간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아! 슬프다. 조선의 그림이 이제 비로소 그 독자적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일본의 학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그는 모든 조선 그림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다. 늘 중국의 그늘에서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
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역사는 아웃사이더가 엮어나가는 것이다.
- 2권 추천글 - 강우방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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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책을 펴내며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 김명국의 '달마상' - 옛 그림의 색채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 꿈길을 따라서 : 안견의 '몽유도원도' - 옛 그림의 원근법
4. 미완의 비장미 : 윤두서의 '자화상'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 옛 그림의 여백
6. 군자의 큰 기쁨 :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7. 추운 시절의 그림 : 김정희의 '세한도' - 옛 그림 읽기
8. 누가 누가 이기나 : 김시의 '동자견려도'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 이인상의 '설송도'
11. 노시인의 초상화 : 정선의 '인왕제색도' - 옛 그림에 깃든 마음
2권
오주석의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출간에 부쳐
책을 펴내며
1.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 옛 그림의 표구
2.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雅正)한 세계
3.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 정선의 '금강전도'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5. 뿌리뽑힌 조국의 비애 :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 조선과 이조
6. 한 선비의 단아한 삶 : '이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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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에 나온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과 다루는 작품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내용이 중첩되지나 않
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역시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러한 점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주역의 내
용을 토대로 해서 풀어낸 글에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주역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
했기 때문에 선생이 생각한 바대로 따라가면서 이해를 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새삼 동
양 고전에 대해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그만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음을 느끼지 않
을 수 없었다.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서적마저 여지껏 제대로 읽지도, 소화하지도 않았는데 거기에서 깊이
있게, 그리고 파생되어 나오는 각종 의미들을 어떻게 잡아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민영익의 "노근묵란도"를 해설한 글 다음에 곁들여져 있는 '조선과 이조'라는 제목을 단 글의 경우에는 아마 선생
의 우리문화에 대한 생각이 집약적으로 담겨있으면서도, 현 세태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 담겨있단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놓아두고 李朝라는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쓰는 세태에 대해서, 그리고 사대주의를 글자 자구
가 풍기는 어감에만 함몰되어 잘못 이해하고 있음에 대해서 오주석 선생은 우리 선조들의 갈고 닦아서 남겨놓은
옛 문화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무지의 소산(개인적으로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이
런 느낌을 받았기에 이런 말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을 사용)임을 밝히고 있다. 예전에 비교해 보자면 중
국의 문화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로 영향을 받는 기축이 달라지긴 했지만 오히려 현재가 좀더 몰지각
적으로 서구 문화에 종속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선생은 분명 반문하고 있다. 분명 새겨들어야 할
소리일 것이다.
책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유고를 읽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특별히 더 언급할 내용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오주
석 선생의 유고를 추스려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해 낸 유고 간행위원회가 선생과 관련된 글을 조금이라도 더 묶
어서 낼 수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선생이 남겨놓은 글 자체만을 묶어서 발간하
는 게 매듭을 짓는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책의 일관성을 지켜낸다는 측면에서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은 알
고 있다. 괜히 내용을 더 담는다고 그 분야를 전공한 다른 사람들의 글까지 사족으로 달아버리면 원 저자가 쓴 글
의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남는 것은, 오주석 선생을 알고 있는 지인이 그를 추억하며 기리는 글이라도 한 편 더 담아서 책
의 말미에 담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 때문에 비롯되었단 생각이 든다. 이는 아마도 당대총서류의 맨
뒤에 수기 형식으로 저자의 지적 역정이 담긴 '연보'라든지, 정약용의 '자찬묘지명'등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기대했
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하다. 어쨌든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겨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도 오주석 선생의 남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큰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마상청앵도를 보면 봄날 물안개 핀 길을 걸어가는 선비와 동자의 모습이 있다.
선생은 물안개를 과감하게 온통 여백으로 처리한 화가를 경애하는데,
나는 오히려 한 길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 아닌가 싶다.
즉, 그리고 싶어도 보이지 않아 그릴 수 없는 배경인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어떻게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가 보일까.
혹시 꾀꼬리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버드나무의 가지가 그려지지 않은 것도, 병아리인지 꾀꼬리인지도 구별 안 가게 대충 그린 것도,
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을 새소리만으로 연상하여 시각적으로 그린 까닭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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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숙
그림감상은 평면위에 점과 선, 면과 입체로 된 회화를 시각을 통해서 '눈'으로 감상한다. 이렇게 말하면 매우 피상
적인 감상법이 될 것임을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은 시사해 준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가 서문에서 보여주듯
그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감상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림 속으로 '마음'을 투영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리라.'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
면 이 책의 참된 감상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첫 장인 <달마상 撻磨像>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달마도를 옛 그림이나 표구를 다루는 액자가게나 표구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달마대사의 부리부리한 눈에 그 주위는 굵직한 선이 이어져 있으면서 분위기로 보면 위압적이다. 그러나 오주석
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결코 이 그림의 감상에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만 달마대사의 눈과 마음이
하나로 펼쳐져 있는 동양의 정신과 '색'을 만나게 된다. 동양의 '색'은 화려한 색이 아니라 바로 검고 흰색의 대조
로서, 아니 흰 바탕에 검은 필체와 그림으로 나타난다.
달마대사의 그림에서 검은 색 이외의 다른 '색'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바로 동양에서의 정신적 표상의 진수가 '검은
색'에 있음을 글쓴이는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달마도를 그린 작가 김명국이 그 그림에서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과 정치한 정신의 세계를 내보인다고 하겠다.
그래서 간혹 달마대사가 나오는 그림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달마대사의 그림을 걸어 놓으면 모든 악
귀와 부정이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광고를 덧붙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동양화를 수묵담채화에서 찾듯이 정신의 내면은 화려한 총천연색이 아니라 온갖 색이 녹아있는 색, 즉 검
은 색 또는 그로부터 다소 부드러운 색조를 지닌 회색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그림은 자기 나름의 해석이라고 해도, 또 그림 감상이 그 사람의 주관적 견해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또 다른 감상을 보여준다.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는 선비가 물을 바라보며 그 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고요히 음미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그림에서는 동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물'에 대한 화가의
소감과 느낌이 함께 혼재되어 있다.
너무도 유명한 그림에 또 하나의 서평을 덧붙인다는 것은 옥상 옥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 오주석의 감상
에 대한 관점이 새롭게 또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거나 진부한 감상이 되면 재탕 삼탕의 우려먹기식 감상으로 끝
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몽유도원도 夢遊桃園圖>를 보면 기존에 이미 그가 드러내서 보여주는 일관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몽유도원도>에서 확인하는 세 가지 조망법은 서양화에서는 근대화법이 아닌 한 결코 흉내낼
수도 없는 것이다.
화법이나 구성 또는 설계의 독창성에서 보면 김정희의 <세한도 歲寒圖>는 익히 그 명성이 말해주듯이 천재성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나아가 구성상의 비율이나 그에 등장하는 나무와 집의 배치, 구도에서 분석의 독특함을 읽을
수 있다.
이미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에서 그의 해석과 설명을 보아온 터에 9장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은 내용에
서 겹쳐진다. 그 외에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은 윤두서의 그림을 4장과 6장에서 두 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윤두서
의 <자화상>역시 <한국 美의 특강>에서 이미 검토된 내용이지만, 두 번째 <진단타려도 陳?墮驢圖>는 새롭게 내
놓은 감상문이다.
전체적으로 오주석이 주목하고 있는 그림에서는 그동안 그림 그린이를 '환쟁이'라는 평가절하에서 전통의 우리나
라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그 마음과 정신에서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음을 일깨워준다. 옛그림의 주인공들은 그
마음과 삶의 태도에서의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과 함께 빼어난 그림솜씨를 뽐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 동안 서양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은 탓도 있지만 서양화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깊이가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러나 오주석의 감상은 단순히 '우리' 나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거품을 들여 감상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가
내세우는 호평으로 인해서 우리 그림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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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관매도에는 느긋하고 한가로운 기운이 감돈다.
마치 여유롭고 유장한 평시조 가락이 허공 중에 여운을 날리며 떠도는 듯하다.
화폭은 커다란데 그려진 경물은 화면의 오분의 일도 채 안된다.
뿌옇게 떠오르는 끝없는 빈 공간, 그 한중간에 가파른 절벽 위로 몇 그루 꽃나무가 안개 속에 슬쩍 얼비친다.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는 이편 산자락의 끄트머리가 드리웠는데 그 뒤로 잠시 멈춘 조가배 안에는 조촐한 주안사
을 앞에 하고 비스듬히 몸을 젖혀 꽃을 치켜다보는 노인과 다소곳이 옹송그린 뱃사공이 보인다.
여백이 넓다 보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을 할 수 없다. 허공 중에 아스라히 떠오른 언덕 그것은 어
쩌면 신기루와도 같다.
그림 한복판의 언덕은 짙은 먹선으로 초점이 잡혀 있으나 오른편과 왼편으로 뻗어 나가는 필선은 점점 붓질이 약
해지고 말라가면서 뿌연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꽃나무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가지 하나가 쨍 하고 짙게 보이지만 그 좌우로 가면서는 역시 흐릿해지는 것이다.
나무 아래 언덕의 주름에도 김홍도의 순간의 흥취가 배어 있다.
척 하고 짙은 첫 붓을 댔다가 그대로 끌면서 아래로 비스듬히 쳐 내려갔다.
경물과 여백이 서로에게 안기고 스며드는 이 작품의 시적인 공간감각은 김홍도의 노년기 산수화에 엿보이는 특
징이다.
언덕의 풍경은 실제의 모습일까?
그렇지 않다. 언덕과 꽃나무는 우리가 바라본 것도, 맞은편에 앉은 뱃사공이 바라본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림 속의 주인공, 주황빛 도포를 걸친 노인의 늙은 눈에 얼비친 풍경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림 속의 노인이 바라보는 풍경이 그대로 화폭 위로 떠오른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옛 그림의 맛이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저 언덕 위를 치켜다 보고 있다.
그러니 아래쪽은 저절로 뿌예질 수밖에 없다.
작가 김홍도는 완전히 저 노인과 한마음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시선 또한 작품의 하변 바닥까지 내려와서 노인이 타고 있는 배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것처럼
그리고 있다.
김홍도는 작품의 화제(畵題)를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이라 썼다.
단원은 "늙은 나이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을 보는 듯하네"라는 글이 주인공의 쓸쓸한 심정을
묘사한 것임을 고려하여 그 글씨 역시 전체적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써서 그 연장선이 뱃전의 노인 쪽을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글씨 오른편 위에 두인으로 백문타원인(白文恕圓印) "심취호산수(心醉好山水, 좋은 산수에 마음이 취하
네)"를 찍고, 글 말미에는 작가인(作家印) "홍도(弘道)"와 "사능(士能)"을 찍었다.
그 작은 주홍색 인주 빛깔은 아래 주인공의 주황색 옷 빛깔과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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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그림 감상을 일러 '看畵'. 즉 '그림을 본다'는 말보다 '讀畵'. 곧 '그림을 읽는다'는 말 쓰기를 더 좋아하
였다. … 글씨와 그림이 한가락이므로 보는 방법도 한가지로 읽는 것이 된다. 그림에서 읽히는 내용 또한 형상
보다는 그린 이의 마음이 주가 되니 문인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이 책에서는 크게 11장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김명국의 호방한 線속의 禪을 느끼게 하는 '달마상',
강희안의 물을 바라보는 고결한 선비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고사관수도'
안견의 안평대군의 꿈속의 노닐었던 도원까지 길을 삼원법, 즉 고원, 심원, 평원의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 황홀한
무릉도원을 느끼게 하는 그린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정신을 전하기 위해 인물을 그대로 베껴 그리는 傳神寫照를 느끼게 하는 '자화상'
김홍도의 경물과 여백이 서로 안기고 스며들어 시적인 공간감각을 느끼게 하는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군자의 큰 기쁨을 느끼게 하는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과 두터운 사제의 정을 느끼게 하는 '세한도'
김시의 전경의 묵직함과 원경의 묵법을 통해 상쾌한 대조를 느끼게 하는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을 느끼게 하는 '씨름' 과 '무동'
이인상의 올곧은 선비를 느끼게 하는 '설송도'
정선의 임종을 앞둔 육십년 지기 이병연을 위하여 칠순 노인이 혼신을 다하여 그린 '인왕제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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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畵)과 그리움(慕)
한 뱃속에서 나온 그림과 그리움,
그 헤어짐은 애달픈 脫出記다.
타동과 자동, 능동과 피동
그 버거운 문법을 용케도 탈출하여
각자의 길을 찾았구나.
그러면서도 한 핏줄의 정을
못내 놓지 않았구나.
그림은 그리움의 체화(體化),
그리움은 그림의 채색(彩色).
그리움과 그림이
서로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워 그리는 그림이건만
그리움을 끝내 다 담아내지 못하니
餘白은 못다한 마음이다.
'그림'과 '그리움'은 어원이 같다. 어느 것이 먼저 태어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리다'에서 파생된 것들이
다. 그런데 타동과 자동, 혹은 능동과 피동의 문법적 관계를 지닌 짝말들(grammatical pairs), 예컨대 '아쉬워하
다'와 '아쉽다', 혹은 '섞음'과 '섞임'에서 쉽게 파악되는 의미관계가 '그림'과 '그리움'에서는 얼른 드러나지 않는다.
이 둘의 쓰임이 전혀 남인 듯하기 때문이다. 찬찬히 주위깊게 들여다보고 나서야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그림과 그리움이 우리처럼 어원을 같이 하는 언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을 같은
행위로 보았다는 점이 참 멋있지 않은가. 그림은 그리움을 담고 그리움은 그림으로 표출된다. 데려갈 길 없어 그
림으로 데려오는 그리움. 떠나보낼 수밖에 없어 그림으로 곁에 두는 그리움. 잊혀질까 저어하여 그림으로 떠올리
는 그리움. 언젠가 만날 것을 그림으로 기약하는 그리움. 그리고 영원히 만나지 못함을 그림으로 절망하는 그리
움. 그림은 그리움으로 채색되고, 그리움은 그림으로 체화한다.
꿈에 그리던이라는 표현에서는 그림인지 그리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아니 구분이 무의미하다. 母胎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어렵고 무의미하기까지 한 지경은 어떤 채색일까. 알 길이 없으니 여백으로 대신하는 것인가.
위 시의 마지막 구절은 오주석이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라는 책에서 한 여백에는 화가의 못다한 마음이 담겨있
다라는 말의 표절임을 고백한다. 시를 써본 적이 거의 없어 돌팔이라는 말조차 버거운 신세다보니 한심하게도
표절로 끝을 맺고 말았다. 분하다.
낙천성과 대범함에서 우러난 자연미
지금 저 사람들이 한창 질펀하게 놀고 있는 가락은 어떤 소리, 무슨 장단일까 (도1) 삼현육각(三絃六角),
즉 북 장구에 피리 둘, 대금, 해금까지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아가니 잘생긴 무동
(舞童)아이는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아마도 굿거리를 연주하는 듯 싶다.
그럼 이 자리는 무얼 하는 자리일까?
굿판일까, 탈춤판일까? 아니면 어느 복 많은 노인의 회갑 때 벌어진 잔치 자리일까?
삼현육각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유가(遊街)할 적에 스승, 선배, 친척 들을 찾아뵈면서 사흘 동안이나 광대를 앞
세우고 풍악을 잡혔다고도 하고 또 신임 사또의 부임 행차길에서도 연주를 했다지만 그것들은 다 서서 하게 마련
이니 이 그림과는 상관이 없겠다.
화가는 아무도 보고 듣는 이 없이 악공(樂工)과 무동만을 동그랗게 그렸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게 된다. 화가는 저들이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악기를 잡은 여섯 사람과 춤추는 아
이, 바로 그들의 음악과 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인 것이다. 이들은 사회 신분으로 보면 미천한 계층에 속한
다. 여기서 오라면 여기로 가고 저기서 부르면 저기로 불려가서 돈 많고 권세 높은 이들에게 한때의 즐거움을 파
는 광대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예술가다. 이제 저들만의 독특한 '짓'과 '투'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좌고(左鼓)를 치는 사람부터 보자. 왼다리는 접고 오른다리만 세워 상체를 곧추세우고서 양손에 궁글채를 잡아
큰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줄곧 대금과 해금 연주자에게 못박혔다. 채 끄트머리에 달린 술이 꽃
잎처럼 펼쳐진 것은 '덩 덕 쿵덕쿵'하고 울리는 북소리를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 같다. 장구 치는 이는 어떠한가.
흥이 달아올랐는지 무릎 위로 장구를 바짝 끌어안고서 오른손에는 열채를 쥐고 왼편은 맨손으로 북편을 치는데
유연한 손목 놀림으로 북편을 울린 저 '구궁' 하는 낮은 소리가 마음바닥에까지 와 닿았나 보다. 윗몸을 앞으로 슬
쩍 수그리고 어깨는 장단을 따라 들썩거린다. 코 위가 넓은 갓양태에 가려 보이지가 않아 그렇지 두 눈도 지긋이
감았음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북편 쪽의 쇠가죽 측면이 지나치게 넓어보이는 것이 조금 눈에 걸린다. 하지만 당
시의 장구 모양이 본래 그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피리 부는 사람을 보자. 우선 오른쪽에 벙거지를 쓴 사람은 들숨이 입안에 가득 차서 두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
랐다. 감발한 왼발을 위로 둔 양반다리를 하고 윗몸을 똑바르게 세우고 있는 까닭은 피리라는 악기를 연주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입술로 서(설舌 이라고도 하고 혀라고도 한다. Reed)를 무는 것부터가 까다롭다. 겉
보기엔 입술 모양이 익살맞은 듯 해도 본인은 무는 힘의 세기와 입김 조절이 어려워서 온 정신을 한 곳에 모으고
있다. 그 왼편의 갓 쓴 이는 벌써부터 입술이 아팠던 모양이다. 옆 사람과는 달리 삐딱하게 입가에다 고쳐 물고 능
청스럽게 가락을 불어낸다. 그 표정을 보자 저들이 벌써 한참을 놀았다는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대금 부는 사람이다. 키가 훌쩍 크고 마른 인상의 이 인물은 손가락이 길어야 불기 좋은 대금 연주자로 아
주 제격인 듯싶다. 대금은 젓대라고도 하는 순수한 우리 고유 악기로 넓은 취공(炊孔)에 댄 입술을 조절하면 음 높
이가 달라진다. 저 연주자의 입과 볼에 깃든 섬세한 표정을 보면 입김따라 하늘거리는 곱고 맑은 가락이 들릴 듯
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왼쪽으로 젓대를 잡았으니 오늘날 오른쪽으로 잡는 것과는 반대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
가의 실수가 아니다. 관악기는 사람마다 부는 자세가 달라 좌우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리 부는 두
사람의 손 모양이 서로 다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해금을 켜는 사람 차례다. 속된 말로 깽깽이라고도 하는 해금은 활로 줄을 마찰시켜 지속을 내기 때문에 우
리 음악이 갖는 농현의 멋을 극한까지 보여준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풍부한 가락의 굴절은 생각만
해도 신명이 넘치는데 아쉽게도 연주자가 뒷모습만 보여서 표정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모습에는 한곳
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바로 음 높이를 고르는 왼손이다. 해금을 연주할 때는 왼손으로
줄을 감싸안아야 하는데 거꾸로 손등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실수를 알아볼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
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점은 <씨름>에서와 마찬가지로 뒷모습이 그려진 사람은 똑같이 손 모양에 허점이 보인다
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춤추는 아이를 살려보자. (도판 2) 몇 살이나 되었을까? 어른은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
기에는 다소 숙성해 보이는 것은 흐드러진 춤사위가 너무나 멋스럽기 때문일까? 아무튼 수염이 없고 얼굴 생김
이 동그란 점으로 보아 열셋이나 열넷쯤 된 소년이라고 생각된다. 왼쪽 발로 힘차게 땅을 구르자 그 김에 절로 오
른쪽 다리가 둥실 들렸는데 덩달아 휘젓는 팔의 매무새가 소매 끝까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소년의 모든
체중은 맵시 있게 들어올린 발끝의 한 점으로 지탱되고 있다. 지금 이렇게 펄적 뛰어오른 자세를 보면 당초엔 느
렸던 가락이 한참을 이어지는 동안에 꾀나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년의 출렁이는 옷자락에는 그야말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멋드러진 묵선이 펼쳐져 있어서
눈이 번쩍 뜨인다. 우선 다른 악공들의 옷주름과 비교해보면 저들의 주름선은 대체로 굵기의 변화가 적어서 마치
요즘의 사인펜 선과 비슷하다 그러나 소년의 그것은 전혀 다르다. 첫째는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에 묵직하게 힘
이 들어갔고, 둘째로 팔꿈치나 손목과 같이 선이 꺾어져 나가는 부분에서 묵선이 우뚝우뚝 서면서 기운이 뭉쳤으
며, 셋째로 윗몸에 두른 끈이 바람에 날리는 부분이나 빨간 신발의 윤관선에 잘 보이듯이 선이 매우 빠르고 탄력
이 있다. 이렇게 빠르고 변화 많은 선으로 그렸으므로 아이의 춤사위는 절로 경쾌한 율동감이 넘쳐난다.
앞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잇는 멋드러진 선'이라고 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인물화에는 이와 유사한 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도 이와 비슷한 선을 쓰며 어쩌면 더욱 정교한 선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들
그림의 약점은 오히려 그 정교함에 있다. 이 소년의 경우처럼 인위적인 느낌이 없는 참 천연덕스럽게도 척척 그
어댔구나 하는 선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선이 있다.
하지만 그 경우도 역시 그들은 강렬함 자체를 너무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옛 그림에 보이는 자연스러움과
는 영 다른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만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우리 조상들의 타고난 낙천성과 대
범함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작품 전체를 보면 소년의 옷선이 가장 진하고 해금 주자, 대금 주자 순으로 점차 뒤에 물러나면서 먹선의 농
도가 일정하게 흐려졌다. 차례로 흐려진 묵선은 일체 배경이 없는 이 작품에 강한 내적 질서감을 준다.
구도는 <씨름>과 마찬가지로 원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심이 비어 있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음악이란, 특히 민속악이란 골똘하게 집중하는 그 무엇이라기 보다 오히려 흐드러지게 신명을 내면서 흥을 풀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도는 구심적이 아닌 원심적인 것이라야 주제와 어울린다. 화폭 가운데 가상의 원 중심
을 두고 살펴보면 무동의 옷자락이며 좌고의 둥글채, 그리고 오른편 피리, 대금, 해금의 선이 모두 방사선 모양으
로 펼쳐져 있다.
그리고 화가는 춤추는 아이로 하여금 그림의 초점을 삼고자 하여 다른 인물들로부터 약간 떼어서 그렸다.
특별히 짙은 연록색 옷을 입히고 보색으로 빨강을 써서 머리장식을 넣고 신을 신겼으며 또 율동적인 선으로 온몸
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삼현육각 연주는 실제로 그림에서처럼 둥글게 앉아서 노는 일이 없
다. 일렬로 앉아 연주하는 것이 판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원형 구도는 화가가 운영한 뛰어난 화면구
성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구도의 원심적인 요소가 신명 넘치는 우리 옛가락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조성했다며
원형 구도 자체로는 둥글게둥글게 넘어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해
냈다고 하겠다.
<무동>은 <씨름>과 함께 유명한 '단원풍속화첩'에 들어 있는 25점 낱장 그림 가운데 두 폭이다. 이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담배 곽의 디자인으로 소개된 이래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고 또 그 만큼 인기도 매우 높
은 작품이다. 그러한 대중적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소재의 친근성이다. 너무나 그리운 우리 조상들의
세상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림의 만화적인 성격이다. 작품이 마치 풍물시장을 보도
하는 신문 속의 삽화처럼 세부가 소상하면서도 익살맞다. 셋째는 단순하고 빠른 필선이다. 사인펜으로 그린 현대
의 캐리커쳐인 양각 인물들을 요령 있게 특징 위주로 그렸으므로 대하기가 편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작품이 정말 김홍도의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수학문제를 풀 듯 똑 떨어지는 판
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무동> 왼편 아래쪽에 보이는 백문방인 '김홍도인(金弘道印)'이라는 도서가 작품 제
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나중에 찍힌 가짜 도장이기 때문이다. 실물을 잘 보면 퇴색되고 자잘한 상처가 난 종이의
표면 위에 도서가 찍혀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글씨나 도서가 안 보인다고 해서 거꾸로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작품 내용상 이
제까지 알려진 다른 어떠한 작가보다도 김홍도의 화풍이나 솜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옛분들
의 전칭(傳稱)에는 가끔 잘못된 예도 없지 않지만 분명한 다른 반증이 없다면 일단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오주석(미술사가,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자료제공 솔출판사>
[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용상과 대우주의 조화 예술로 완결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하 오봉병)은 조선 궁궐의 용상 뒤에 쳤던 병풍이다. 조선의 왕은 반드시 이 병풍 앞에
앉는다. 멀리 행차를 할 때도, 죽어서 관 속에 누워도, 심지어 초상화 뒤에도 '오봉병'은 놓인다. 작품 오른편에 붉
은 해, 왼편에 하얀 달이 동시에 떠 있다. 그것은 낮과 밤이 공존하는 현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의 근원
을 그린 것이다. 화면은 완전 대칭에 광물성 물감으로 그려져서 화려 장엄하며 색채가 눈부시다.
'오봉병'의 세계는 관념적, 추상적이지만 우주의 조화를 상징한다. 하늘의 해와 달은 음양이다. 음양은 우주를 이
루고 지속시키는 두 힘이다. 하늘(天)은 하나(一)로 크고(大) 이어져 있다(―). 땅은 뭍과 물 둘(二)로 나뉘어 끊어
져 있다(――). 해와 달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한다. 하루도 예외 없이 정확한 시간에 주어진 행로를 걷는다.
땅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다. 두텁게 쌓여 자애롭게 만물을 실어 기른다.
다섯 봉우리가 있다. 오행(五行)이다. 그 좌우에 흰 폭포 두 줄기가 떨어진다. 물은 햇빛 달빛과 함께 생명의 원천
이다. 그 힘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을 자라게 한다.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고 도덕적인 존재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덕이 가장 커서 드높은 존재가 왕이다.
왕은 날마다 오봉병 앞에 앉아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의 정사에 임한다.
그러면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삼재(三才․우주를 이루는 세 바탕)가 갖추어진다.
음양오행은 동양학의 기본이며 사유의 틀이다.
그것은 1000가지 1만 가지로 분화 전개되는데, 인격인 경우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음양오행을 본받는다는 것은 굳셀 때 굳세고 부드러울 때 부드러우며 항상 인의예지신
(仁義禮智信)의 미덕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왕은 '오봉병' 앞에서 올곧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꿰뚫는 이치를 내 한 몸에 갖추어야 한다.
그 때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가 사람이라는 소우주 속에서 완성된다.(三+|〓王)
왕이 정좌하면 우주의 조화를 완결짓는 장엄한 참여 예술이 연출된다.
요즘 참여예술(performance)이라면 사람들은 발가벗은 여인이 겹겹이 싸맨 비닐을 하나씩 둘씩 내 던지는 장면
을 상상할 것이다. 인간의 참여란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거나 표피적 자극으로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평범한 삶을 북돋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겸허하게 자연을 배워 우주의
질서를 완성케 한다.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저 붉은 우주목(宇宙木)처럼….
(중앙대 겸임교수) 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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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남정네 애간장 녹이는 여인의 향기 미인도
함초롬한 여인이 다소곳이 섰다. 손을 대면 부서질 듯 고운 아낙. 초승달 눈썹과 촉촉한 눈매가 꿈꾸는 듯하고, 반듯한 이마와 넓은 인당(印堂․양 눈썹 사이)이 시원해 마음 설렌다. 단정한 코에 앵두 같은 입술, 갸름한 얼굴은 애처로운 빛을 띠고, 동백기름 먹여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칼이 더없이 정갈하다. 몇 가닥 살쩍이 가늘고 흰 목 위에서 하늘거리며, 여인은 상아빛 손으로 노리개를 붙들고 가만히 옷고름을 풀어 내린다. 깃과 고름, 곁바대는 진자줏빛이고 소매 끝동만 치마와 어울리게 옥색 선을 댔으니, 저고리 은은한 연황색 바탕이 삼회장 자줏빛과 보색 대비를 이루었다.
여인은 하얀 허리띠 위로 연지빛 속고름을 길게 드리웠다. 남정네 애간장이 남김없이 졸아버리겠다. 옥색 치마는 위에 촘촘하게 잔주름을 넣었으나 점차 벌어져 풍성하니, 밑에 여러 층 겹쳐 입은 무지기가 허리 아래를 푸하게 버틴 것이다.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전체 매무새는 머리에 쓴 커다란 트레머리로 절묘한 균형을 되찾았다. 반지르르하게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과 그 옆에 나부끼는 자줏빛 댕기가 그림 속 여인을 살아 숨쉬게 한다. 그리고 치마 밑으로 살그머니 내민 외짝 버선발. 상큼하게 들린 버선코가 보는 이의 마음자락을 비집고 스며들 듯하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그 어떤 이를 위해서 옷고름을 푸는 걸까? 아니, 저 앞에 애시당초 사람은 있는 것일까? 조선시대엔 여염집 여인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니 주인공은 기생이리라. 하지만 얕잡아볼 일이 아니니, 저 음전한 자태를 눈여겨보라. 기생 하면 요즘은 술 따르고 몸 파는 여자를 떠올리겠지만 옛 기생의 격조란 사람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랐다. 시문 서화 가무에서 예술의 절정에 오른 이가 있었는가 하면, 경전을 줄줄 외고 마상에서 활을 당겨 먼 과녁을 꿰뚫는 여장부가 있었다. 또 양반 아낙의 뺨을 칠 만한 굳은 절개를 간직한 기녀도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선비 김려(金싳)는 기녀를 위해 대학자에게나 마땅한 언행록까지 지었을까? 나 역시 이 작품에서 연연하게 다가오는 여인의 향을 느끼지만, 길가의 버들, 담 아래 꽃 식의 만만한 노류장화(路柳墻花) 풍류는 우정 애를 써보아도 찾을 수 없다. 신윤복은 가슴속에 서리고 서린 봄볕 같은 정/붓끝으로 어떻게 마음까지 전했을꼬(盤薄胸中萬化春 筆端能¤物傳神) 하고 화제를 달았다. 얼마나 흡족했으면 자화자찬의 화제를 지었으랴! 아마도 화가는 여인을 가슴에 품을 길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상상으로 홀로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화폭 속에 그렸으리라. 그림으로 여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겼노라 스스로를 달래면서…. 아서라! 아름다움은 흔하고 덕스러움은 드물레라.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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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정선의 '만폭동도'
걸작 '만폭동도'를 바라보노라면 영락없이 귓전을 울려오는 소리가 있다. 바로 판소리 '수중가(水宮歌)' 중의 중중모리 '고고천변'인데, 자라가 뭍에 올라 난생 처음 명산 구경을 하는 대목이다.
"예― 구부러진 늙은 장송 광풍(狂風)을 못 이겨 우줄우줄 춤을 출 제, 원산(遠山)은 암암(暗暗) 근산(近山)은 중중(重重) 기암은 층층 매산(每山)이 울어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루룩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쳐 천방저 지방저 월특저 방울저 방울이 버큼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에다 마주 꽝꽝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그렇다! '만폭동도'는 음악이다. 넓은 계곡을 휩쓰는 골바람이 온 산을 한 무리 악사(樂士)로 여겨 한결같은 장단으로 흔들어대면, 탄력 넘치는 붓질로 신명나게 뽑아 올린 노송 줄기는 굵었다 가늘었다 흥겨운 가락을 타며 자연의 춤사위를 보인다. 그러자 콸콸 쏟아져 내리는 여울물이 이리 돌고 저리 곤두박질치다가 깊은 소(沼)에 이르러 제멋에 겨워 빙빙 도니, 그림 속에는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 신령한 산 기운이 연달아 찍어 내린 바위 결 사이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화제 글씨도 날아갈 듯하다. "천 개의 바윗돌 다투어 빼어나고, 만 줄기 계곡 물 뒤질세라 내닫는데, 초목이 그 위를 덮고 우거지니 구름이 일고 아지랑이 자욱하네(千巖競秀 萬壑爭流 艸木蒙籠上 若雲興霞蔚)".
이 말은 본래 중국의 명산을 읊었던 고개지(顧愷之)의 절창이나, 이곳에 더 걸맞다. 그것은 작품이 사선(斜線) 위주 구성으로 속도감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른편 아래 앞 뒷산의 가파른 윤곽선이 너럭바위 주변 비스듬한 송림(松林)으로 여러 번 반복되며 메아리치고, 대소 향로봉은 이와 어긋나게 왼쪽 위로 불끈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교차하는 이 두 흐름이 칼날같은 좌선암(坐禪岩)에 함께 반영되었으니, 아래로 흐르는 듯하다가 직각으로 꺾여 멈춰 섰다.
하지만 화폭이 온통 대각선 운동으로 들썩거리면 역동적이기는 해도 안정감을 잃기 쉽다. 그래서 정선은 유람객 뒤에 오인봉(五人峰)을 화폭 중앙에 똑바로 세웠고, 너럭바위를 에둘러 물과 아지랑이로 적당한 여백을 주었다. 특히 왼쪽 아래 구석에 유난히 짙고 강인한 붓질로 금강대(金剛臺)를 우뚝 심어 의지를 삼았으며, 위로는 아득하게 중향성(衆香城)을 줄지어 세워 유원한 공간감을 확보했다.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 元化洞天)", 너럭바위에 새겨진 천고 명필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글씨다. 아무렴,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니니, "신선 사는 금강산, 조물주의 별천지"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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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들고양이 소동 영화보듯 생생
김득신 '야묘도추도'
이게 웬 소동이냐! 한가로운 시골집의 고요와 평화를 깨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검정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병아리를 그만 잽싸게 채서 달아난 것이다. 깜짝 놀란 어미 닭이 눈에 시뻘겋게 독이 올라 날개를 파닥거리며 죽을 각오로 고양이에게 덤벼들고, 나머지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꼭꼬댁 꼭꼬꼬꼬', 화급한 암탉 비명소리에 자리 짜던 주인 영감이 벌떡 일어나 긴 담뱃대를 내뻗어 후려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지 굳은 몸이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대로 고꾸라지며 탕건에, 자리 틀에, 재료까지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소란스런 와중에 영감 몸만이라도 성하면 천만다행이겠는데 아이쿠 이번에 정작 놀란 건 마나님이다. 허겁지겁 방안에서 뛰쳐나오느라 맨발 바람으로 쿵쾅거리며 엎어질 듯 영감을 붙들어보려 하지만, 일은 벌써 다 글렀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영감을 어찌 할거나! 도둑고양이는 여유 만만하게 달아나며 용용 죽겠지 하는 양, 긴 꼬리를 얄밉게 휘두르며 영감을 돌아다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화면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작품 이전의 상황부터 이후의 결과까지 마치 영화를 보듯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떠올릴 수 있다.
'들고양이가 병아리 훔치는 그림'인 '야묘도추도'의 매력은 이렇듯 난리법석인 흥미로운 일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장장 200년 후 현대인에게까지 그 실감을 전해 준 데 있다. 주제가 요란하다 보니 그림의 구성 요소들도 어디라 초점이 없이 화폭 전체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구도가 치밀하기 그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른편 위에서 왼편 아래로 흐르는 시선이다. 뜰의 살구나무 가지도 이 방향으로 뻗었지만 마나님은 영감을 보고, 영감 앞에는 암탉이 있고, 암탉은 다시 고양이를 쫓고, 고양이는 영감을 놀리듯 뒤돌아본다. 떨어지는 탕건조차 이 중심선 위에 놓였다.
화면은 또 마름모꼴로 정돈된다. 네 모서리를 비스듬하게 다듬어, 우상(右上)은 마나님 등, 좌상(左上)은 나뭇가지, 좌하(左下)는 고양이 쫓는 닭, 우하(右下)는 떨어진 자리 틀의 윤곽으로 사선을 그었다. 다시 그림을 십자로 나누면 우상에 툇마루와 방을 네모지게 그렸는데 좌하 역시 사각형으로 정리되었다. 즉 암탉을 중심에 두고 좌상에 고양이, 우상에 탕건, 우하에 병아리 셋, 좌하에 또 병아리 한마리를 펼침으로 해서 가운데 어미 닭의 안쓰런 모정(母情)이 절로 부각되었다.
김득신은 맺힌 데 없이 쓱쓱 그어댄 붓질로 생동감을 살렸다. 특히 잔가지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톡톡 쳐 넣어 봄날의 움트는 생명력을 시사한 솜씨가 김홍도와 어금버금하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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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신윤복 '월하정인도'
초승달 지는 깊은 밤 한껏 차려 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한다. 무슨 일일까?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수줍음 반 교태 반 야릇한 정이 볼에 물들었다.
저고리 깃과 끝동의 보랏빛이 옥색 치마 아래 진자줏빛 신발과 어울리고, 치마와 동색인 한층 연한 쓰개치마 맵시가 곱기도 하다. 그윽한 눈길을 건네는 사내는 오른손에 초롱 들고 왼손으로 허리춤을 뒤적인다. 애틋한 정표라도 전하자는 것일까? 도포 자락이 가볍게 흔들리고 긴 갓끈은 멋들어지게 어깨에 걸쳤는데 마음은 진작부터 초롱불 속처럼 뜨듯해서 발끝이 벌써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내로라 하는 장안의 한량인 사내의 가죽신은 코와 뒤축에 따로 옥색을 댄 호사스런 것이다. 여인은 치마를 묶어 올려 하얀 속곳이 오이씨 같은 버선 위로 드러났다. 아마도 함께 갈 낌새지만 안 그럴지도 행여 알 수 없다. 달빛이 몽롱해지면서 두 사람의 연정도 어스름하게 녹아든다.
배경이 뽀얗게 눅여져 있으니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진 두 연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윤복은 이 정황을 풍류 넘치는 흐드러진 필치로 이렇게 적었다. 달도 기운 야삼경/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화제(畵題)도 기막히지만 글씨 주위와 옆 건물 벽을 반쯤 여백으로 처리한 솜씨가 쏠쏠하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옛말에 "늙어 기첩(妓妾)을 두면 반드시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정승을 지낸 김명원이 젊어서 화류계에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만 사랑하는 기생이 권문세가의 첩이 되고 말았다.
그녀를 잊지 못한 명원이 어느 날 밤 담을 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크게 경을 치게 되었다. 때마침 형 경원이 급히 달려와 소리를 쳤다. "내 아우가 기운이 호탕하고 몸가짐은 거칠어 공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뒷날 크게 쓰일 인물입니다. 공께서는 아녀자 일로 나라의 인재를 정녕 죽이시렵니까?"
그러자 주인은 결박을 풀고 후히 술을 대접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는데 김명원을 끌어댄 것은, 화제로 쓴 시구가 들어 있는 한시를 그가 지었기 때문이다.
"창 밖은 야삼경 보슬비 내리는데/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리라/나눈 정 미흡해서 날 먼저 새려 하니/나삼(羅衫) 자락 부여잡고 뒷기약만 묻네"(窓外三更細雨時 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 更把羅衫問後期).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의 일은 갈피도 많고 두서는 없으며 반드시 은밀하게 마련이다. 신윤복은 그러한 남녀간의 정을 주제로 한 그림의 명수였다.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소설 한 편보다 더 소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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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김명국 '답설심매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주위가 하얗게 은세계(銀世界)를 이룬 가운데 한 선비가 짐 든 종자(從者)를 앞세워 길을 떠난다. 사립문에 기대 전송하는 동자는 잠이 덜 깬 듯 목을 잔뜩 움츠리고 등을 옹송그리며 소매 속의 손을 들어 매서운 바람을 가린다. 선비도 눈보라를 피하는지 아니면 아이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염려되는지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본다. 이들의 옷은 맵시는 커녕 되통스럽기까지 하다. 머리를 귀까지 싸매고 넉넉하게 솜을 둔 겨울옷을 껴입었기 때문이다. 나귀는 이런 일에 벌써 이력이 났다는 듯 터벅터벅 내딛는 발 모양새가 체념을 넘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아마도 먼길을 갈 모양이다.
멀리 눈 덮인 흰 봉우리가 흐릿한 윤곽을 드러낸다. 날카롭고 각지게 힘찬 마른 붓으로 그려서 삼엄한 겨울 딱딱하게 얼어붙은 자연이 실감난다. 밤새 함박눈이 내렸을까? 아니, 양지 바른 집 근처 나뭇가지에 눈이 녹은 것을 보면 겨우내 묵은 눈 같다. 그러니 봄이 이제 멀지 않았다. 다리 아래 얼음 무더기는 녹아서 흘렀다가 다시 얼어 이곳에 쌓인 것이 아닌가? 오른편 아래 구석에 폭포가 꽁꽁 얼어붙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심술궂어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지난 겨울이 남긴 상흔일 뿐이다. 머지 않아 가지 위에 따스한 볕이 쪼이면 매화 봉오리가 살포시 실눈을 뜰지 모른다.
하지만 선비는 조바심에 가만히 집에 앉아 기다릴 수 없다. 저 남쪽 어딘가 눈발 속에 첫 봉오리가 벌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집 앞 나무는 가지가 메말라서 뼈만 남았다. 단지 나무뿐 아니라 산도 물도 모두 얼어 자연의 뼈다귀를 드러내었다. 이것이 감상자의 심금을 맑고 투명하게 울린다. 예각으로 틀어지면서 험상궂게 옹이를 드러낸 나무들. 잔가지 획을 게 발처럼 뽑아 그렸기 때문에 해조묘(蟹爪描)라 부르는 이 필법은 혹심한 추위를 견디는 꼬장꼬장한 겨울 나무의 혼이다.
겨울 끝머리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퍼뜨리는 농주미인(弄珠美人) 매화. 간밤 꿈속에 선비는 '구슬을 희롱하는 미인'을 보았다.
눈 밟고 매화 찾아가는 그림 '답설심매도'는 첫눈에 눈과 추위로 격리된 닫힌 공간을 보여 준다. 하지만 오른편 구석 강렬한 흑백 대비의 바위를 중심으로 집, 나무, 나그네가 우선 펼쳐지고, 다시 위태롭게 솟아오른 절벽과 원산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간다. 보는 이는 이가 시리게 매서운 추위를 느낄지 모르나 차가운 설경 속 눈서리를 무릅쓰는 선비의 마음 속엔 흐뭇한 봄의 설레임이 있다.
옛부터 겨울 그림은 고상하고 심지 굳은 선비들이 좋아했다. 자연이 길을 막아 절로 속세와 멀어진 뜻이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겨울 그림은 무더운 여름에 감상하는 것이 제격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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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이인문 '송계한담도'
깎아지른 석벽 앞 평평한 냇가에 모처럼 세 벗이 모였다. 두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등을 보인 채 옆으로 기댔는데 낙락장송 성근 가지 사이로 솔 향기를 실은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계곡의 턱진 시내에서도 냇바위에 부딪쳐 나는 차가운 물소리가 콸콸 하고 쏟아져내려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준다. 풀벌레 소리 중에 이따금씩 쓰르람쓰르람 하는 쓰르라미 소리가 반갑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소리는 바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펼치는 사랑하는 벗들의 음성이다. '논어'에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하였다.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라"는 말이다.
마주보고 선 두 절벽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절집이 얼비친다. 그나마 아스라하게 머니 이곳은 속세와 인연이 먼, 깊은 자연의 속살이다. 군더더기를 다 떨궈내고 오랜 풍상을 견딘 늠름한 소나무 가지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제 생긴 모양대로 뻗었는데 그 조화는 정교한 글씨를 보는 듯 기막힌 균형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물주의 서예 솜씨다! 앞쪽에 그려진 각진 바위가 근경(近景)을 막고 다가서서 오히려 공간의 깊이를 아늑하게 해 준다. 이 바위와 오른편 절벽의 표면 질감(質感)은 도끼로 장작을 팼을 때 생긴 단면처럼 보인다. 붓을 뉘여 홱 잡아챈 부벽준(斧劈옸)이다.
이 도끼 자국 같은 붓질은 먹물이 말라 상큼한 느낌을 준다. 자연 속의 시원한 여름 맛을 한층 살린 것은 소나무와 시내 위쪽을 온통 여백으로 비워 둔 넉넉함에 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은 오른편 윗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흐르는 대각선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소나무의 긴 가지며 절벽에 친 부벽준, 그리고 물결이 모두 이 방향으로 흐른다. 옛사람의 글쓰기가 세로쓰기여서 같은 방향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다. 바위 윤곽선과 틈새의 잡풀을 묘사한 태점(苔點) 또한 성글게 흩뿌려져 답답하지 않다. 그것은 해맑게 펼쳐낸 파르스름한 바림 위에 떠서 더욱 깔끔하다.
벗들이 소나무 숲에 앉아 한가롭게 여담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송계한담도'는 이인문의 노년작이다. 언제 그렸다는 글씨도 없고 심지어 작가 이름을 적은 관지(款識)조차 없지만 이렇듯 칼칼하게 자연의 정수만을 뽑아 그려낼 인물은 그밖에 없다. 이인문은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눈빛이 형형했던 사람이었다.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환갑이 넘어 건강을 잃었던 동갑친구 김홍도와는 달리 이인문은 늙을수록 더욱 강건했다고 하는데 80세에 그린 정교한 병풍 그림이 아직도 전한다. 그의 호(號)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이다. 여기 그린 '늙은 솔(古松)'과 '흐르는 물(流水)' 역시 작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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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무병장수 만사형통 하소서"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양지바른 풀밭 위에 화사한 빛깔 잔치가 벌어졌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환해 보이는 주인공들은 주황빛 새끼 고양이와 검정빛 큰 제비나비, 그리고 고운 주홍색 패랭이꽃과 수줍은 자주색 제비꽃이다. 고양이는 눈이 호박씨처럼 오그라든 채 호기심 어린 눈길로 훨훨 나는 나비를 올려다본다. 귀를 오똑 세우고 고개를 돌리니 그렇지 않아도 통통한 몸이 귀여워 꼭 안고 싶다. 나비는 활짝 날개를 폈는데 긴 날개꼬리가 우아하기 그지 없다. 정말이지 저렇듯 짙푸른 물감을 써서 나비를 가볍게 허공에 떠오르게 한 솜씨는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가운데 부분에 하얗게 긁힌 상처가 있다.
'고양이가 나비와 노는 그림'인 '황묘농접도'는 생신 축하 선물이다. 중국어로 고양이 묘(猫)는 칠십 노인 모(쎗), 나비 접(蝶)은 팔십 노인 질(챫) 자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각기 칠팔십 세의 노인을 상징하는데,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니 칠십 고개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께 드린 그림인 듯 하다.
왼편의 크고 작은 돌은 두말할 것 없이 장수의 상징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표면에 푸르스름한 이끼가 끼었다. 패랭이꽃은 석죽화(石竹花)다. 죽(竹)은 축하한다는 축(祝) 자와 통하니 역시 '돌처럼 장수하시기를 빈다'는 뜻이다. 이 꽃은 분 단장한 듯 고운 까닭에 '청춘'을 뜻하기도 한다.
제비꽃! 함초롬한 자태의 이 봄의 전령은 여의초(如意草)라고도 부른다. 제비꽃은 꽃자루 끝이 굽어 꼭 물음표(?) 머리같이 생겼다. 그 생김새가 가려운 등을 긁을 때 쓰던 도구, 즉 여의(如意)와 닮았는데, 여의란 내 맘대로 어디든 척척 긁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여의는 점차 귀금속으로 만들어져 귀인(貴人)들이 지니는 치렛거리가 되었지만 뜻은 여전히 "만사가 생각대로 된다"는 상징을 갖는다.
그러니 전체 그림을 합쳐 읽으면, 생신을 맞은 어르신께서는 부디 칠십 팔십 오래도록 청춘인 양 건강을 누리시고 또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축원이 된다.
봄에 피는 제비꽃과 여름에 피는 패랭이꽃을 한 화면에 그린 것은 상서로운 뜻을 살리기 위함이다. 한껏 강조한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안정된 삼각구도, 그리고 양쪽 윤곽선을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 쌍구법(雙鉤法), 잡풀까지도 일일이 정성 들여 묘사한 것은 작품이 생신 선물인 까닭이다. 가운데 세로 접혔던 금이 있어 원래는 화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리 화첩에 그려 넣은 김홍도의 작품을 필두로 화첩의 뒷장에는 잔칫날 모인 내노라 하는 선비들이 뒤질세라 앞다퉈 쓴 축수(祝壽) 시와 문장이 갖가지 서체의 글씨로 줄줄이 이어졌을 것이다. 오른편 위쪽 글씨는 화첩 주인이 화가의 인적 사항을 적어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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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
김수철의 '하경산수도'
무더위 끝에 몰아친 시원한 장대비로 산과 물이 세수하고 말쑥한 얼굴을 내비친다. 티끌 한 점 없다. 저 맑은 하늘과 드넓은 호수가 두 눈 가득히 다가온다. 그림 속 조각배와 강가의 작은 집을 바라본다. 깨끗하고 밋밋하고 슴슴하다.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맺히거나 잡히는 곳이 없어 시선은 하릴없이 화면 바탕을 투과해야 할 판이다. 화가는 가늘고 고르고 옅은 선을 그냥 죽죽 그었다. 까탈스런 데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팔 뻗어 나가는 대로 무심한 듯 그어댔다. 담청빛 먼 산을 본다. 산뜻하게 각이 진 모습, 청량한 시골의 여름 맛이 가슴 속 묵은 때를 씻어준다.
제시(題詩)는 이렇다. "몇 번이나 낚시가 물려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번엔 또 물풀에 핀 꽃이 좋아 한 해를 더 머물겠네(幾回倦釣思歸去 又爲 花住一年)"
참 세상에 이런 핑계도 있다. 서재 창 틈으로 엿보이는 글 읽는 선비가 이따금 시골 생활을 무료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대처(大處)로 돌아갈까 생각을 했지만 이번엔 그만 물풀에 핀 꽃에 마음을 뺏겼단다. 이게 턱없는 소리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건너편 갈대 숲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며, 집을 둘러싼 교목이 드리우는 넉넉한 그늘, 그리고 아침저녁 아련하게 들리는 뱃노래 가락에 속병이 단단히 든 인물이 아니란 말인가?
예로부터 이런 병을 천석고황(泉石膏킰)이라 하였다. 명치 속 깊숙이 자연 사랑하는 정이 스며들어 고질이 된 것이다. 병자는 욕심 없는 것이 증세로 고요하고 텅 빈 것을 좋아한다. 우리 옛 그림에서 중요한 것도 가공하지 않은 백면(白面)이다. 선인들은 특히 크고 위대한 사물, 즉 하늘과 물을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하경산수도' 역시 오른쪽 반이 거의 다 비어 있지만 그것은 조금도 허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왼편의 산과 집, 나무 등의 경물(景物)을 의지 삼아 텅 빈 하늘과 망망한 물을 그윽이 바라보는 데에 그림 보는 맛의 진국이 있다.
시점(視點)은 다양하다. 위로 수려한 주산(主山)을 올려다보는가 하면 아래로 키 큰 나무 사이 작은 집을 다정히 내려다본다. 먼 산을 보는 시선은 평평하고 가없이 멀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형상을 곡진하게 묘사하기보다 심상(心象)을 따라 대담하게 변형하고 단순화했다. 채색은 가벼운 갈색과 산뜻한 청색이 깔끔한 대조를 이루는데, 뱃사공과 서재의 탁자만 얄밉게 약간 홍색을 입혔다.
담담한 나머지 자칫 무미해지지 않도록 나뭇잎을 호초엽(胡椒葉), 어자엽(魚子葉)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했고 농담도 운치 있게 조정해 썼다. 그 농담과 성글고 촘촘한 소밀(疏密)의 효과는 먼 산의 수목을 흩은 점으로 표현한 태점(苔點)에서도 반복되고 있다.(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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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정선 '통천문암도'
바다가 덮쳐 온다. 끝없이 넓고 깊은 동해 바다, 그 푸르고 차가운 물결이 천군만마(千軍萬馬)처럼 천둥소리를 앞세우며 밀려온다. 인간이 대체 무엇이랴? 세상에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장할 수 있으랴? 바다 앞에 서면 누구라도 왜소해진다. 그러나 맹자는 말했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은 물에 대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닐던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보는 데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반드시 물결부터 보는 것이다."
강원도 통천 넓은 해변가에 깎아지른 두 절벽이 마주보고 솟구친 절경이 있다. 사람이 그 사이를 왕래하면 마치 문처럼 보여 문암(門岩)이라고 하는데, 지금 긴 지팡이를 끌며 한가로운 유람 길에 나선 늙은 선비가 막 지나치고 있다. 선비는 고개를 돌려 집채같은 파도가 일렁이며 쏟아내는 물보라를 돌아본다. 그런데 저 웅대한 파도를 보라! 뒤로 갈수록 점점 커지고 오히려 더 짙어지고 있다. 실경(實景)이 이럴 수가 있는가? 그러나 누구라도 저 바닷가에 직접 서면 바다의 광대함에 압도되어 바로 이렇게 보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저 한량없이 크나큰 물, 그 위대한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맹자는 또 말했다. "해와 달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빼놓지 않고 비친다. 흐르는 물 역시 작은 웅덩이를 하나하나 다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군자가 올바른 도에 뜻을 둔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소한 몸가짐 하나부터 찬찬히 바루어 나가지 않고서는 이르지 못한다."
그림 속의 선비는 이 글을 익히 외웠을 것이다. 물론 겸재 정선, 당대 '주역'의 최고 대가였던 화가 자신도 그랬으리라. 그랬기에 작가는 저토록 파도를 엄청나게 그려냈다. 덕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지 않으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듯이, 온갖 역경을 거쳐 대양을 이룬 드넓은 바다의 위용을 그린 것이다.
정선은 잔 붓을 여러 자루 한데 묶어 휩쓸 듯이 호탕하게 파란(波瀾)을 그렸다. 굼실굼실 넘실대는 장쾌한 바다의 혼을 한꺼번에 지면 위에 쏟아내었다. 그 장대한 파동은 왼쪽 위 화제(畵題) 바로 아래 흐르는 구름에까지 영향을 주어, 부드럽게 굽이치는 중첩된 S자 곡선으로 그려졌다. 해천일색(海天一色). 온 우주가 한 흐름이다. 물가에 우뚝 선 암벽은 억겁 세월 속에 위쪽에 뻥 뚫린 구멍이 나 있고 그 속에 천년 노송이 뿌리 박고 서서 해풍에 머리를 씻긴다. 바위를 보니 굳센 뜻이 골수에 들었지만 표면은 오랜 세월에 눅어 오히려 부드럽다. 다시 바다가 덮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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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강희안 '고사관수도'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길다란 덩굴 몇 가닥을 흔들흔들 그네 태운다. 그러자 잔잔하던 물 위에도 결 고운 파문이 인다. 바위에 기대 편안히 엎드린 선비는 볼에 와 닿는 바람결이 흐뭇했는가, 아니면 마음 속을 스쳐 가는 상념 속에서 혼자만의 뿌듯함을 느꼈는가,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앞머리가 벗어진 넓적한 얼굴의 선비는 이제 세상살이를 꽤 이해할 만한 지긋한 연배의 노인이다. 눈과 눈썹은 짙은 먹선으로 대충 쳐서 그렸으되 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넉넉한 빛을 띠었으며, 사람 좋아 보이는 납작한 코와 인자해 보이는 입가와 수염 그리고 넓은 소맷자락에 인간사를 초탈한 듯한 여유로움이 번져 있다.
선비를 둘러싼 주위 배경은 단출하다. 뒤편으로 절벽이 있고 그 위에 뿌리 박고 자라난 나무를 휘감아 내려온 덩굴 몇 가닥과 큰 이파리 몇 개가 보일 뿐이다. 앞에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물가에 자라난 갈대 같은 거친 물풀, 그리고 물 위로 솟아난 작은 바윗돌 셋이 전부다.
선비 아래 듬직한 바위는 툭툭 끊어지는 호쾌하고 대범한 먹선으로 윤곽선을 둘렀으며, 아래쪽으로는 시커멓게 거친 바림을 베풀었다. 그 선의 성질은 선비 옷의 윤곽선과 아주 닮았다. 즉 굵었다 가늘었다 변화가 많고 꺾여 나가는가 싶다가는 곧 끊어진다. 특히 선비의 다리 오른편의 바위 형태가 다리 모양과 거의 같아 보여, 화가는 마치 선비가 바위이고 바위가 곧 선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아래에 의자처럼 편편한 작은 바위가 하나 더 있다. 누구든지 와서 함께 해도 좋을 공간이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고요한 그림이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니 고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이 물의 흐름처럼 잔잔하지 않은가? 시선이 고요하고 그윽하므로 그림의 공간은 화면 바깥으로 안온하게 확장된다. 정작 화폭 속에 보이는 공간 자체는 아주 작은데도 느껴지는 것은 제한된 그 무엇이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화면의 대부분이 돌이다. 세상에 돌만큼 천성적으로 침묵을 좋아하는 것은 없다. 돌은 태초에 놓여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거센 비바람과 매서운 눈서리에도 꿈쩍이지 않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저 바위를 닮은 노인의 시선을 보면 그 역시 성품이 바위처럼 듬직한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돌은 흙의 정기가 뭉친 것이다. 그러니 선비 또한 오랜 공부와 수양을 통해서 사람의 정기인 올바른 도(道)를 한 몸에 모두고 있음직하다.
선비는 오늘 한가로움을 얻었다. 그리하여 완전히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선비가 자아내는 잔잔한 삼매경과 여유와 고요함이 너무 좋아서 나 또한 그림 속의 인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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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
이재관의 '오수초족도'
나른한 초여름 오후 하늘 맑고 사위가 고즈넉한 날, 나이 지긋한 선비 한 분이 깜빡 낮잠이 들었다. 걷은 휘장 사이로 살펴보니 평상 위에 놓인 책 더미에 윗몸을 기대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에 걸친 채 그대로 오수삼매(午睡三昧)에 빠졌다.
아마도 책을 읽다가 잠깐 무거운 눈꺼풀을 쉰다는 게, 그만 "새 소리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에 낮잠이 막 깊이 든(禽聲上下 午睡初足)" 모양이다. 이곳은 깊은 산 속 시골집이다. 그것은 마당에 낀 푸른 이끼를 보아 짐작이 되니 여간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것이다. 고요함과 한가로움, 느긋함과 편안함이 화면에 스며든다.
◆한가로움-느긋함 화면에 스며
'오수초족도'는 당경(唐庚․1071~1121)이라는 사람의 글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다/내 집이 깊은 산 속에 있어/매양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푸른 이끼는 섬돌에 차 오르고/떨어진 꽃 이파리 길바닥에 가득하네/문에는 두드리는 소리 없고/솔 그늘은 들쭉날쭉하니/새 소리 오르내릴 제/낮잠이 막 깊이 드네." 서안(書案)에 가득 쌓인 책을 보니 지난 세월 선비가 공부한 내력을 알만한데, 저 이는 분분한 세상사를 접어두고 애써 한적한 곳에서 맛을 찾았다.
작은 기와집은 늙은 소나무와 석벽(石壁) 사이에 자리했다. 마당은 물 뿌린 듯 정갈하고 이마가 빨간 학 두 마리가 신선경인 양 소나무 아래 어슬렁거린다. 티없이 해맑은 표정의 동자가 다로(茶爐)에 불을 지피다가 이제 막 고개를 돌려 한가롭게 울려 퍼지는 학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잠시 후면 선비는 깨어나 차 한 모금을 찾을 것이다.
글 내용이 "이윽고 산의 샘물을 긷고 솔가지를 주워/쓴 차를 달여 마시고/마음가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과 '태사공서'/그리고 도연명, 두보의 시와 한유, 소식의 글 몇 편을 읽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짙은 묵선으로 단조로움 없애
화가는 하늘이며 마당을 모두 여백으로 깨끗이 비워 놓았다. 선비의 심사가 무욕해서 집 뒤 대나무처럼 속이 비었으니, 맑고 자연스런 여백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청정한 분위기를 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림은 멋도 있어야 한다. 노송의 둥치와 가지 곳곳에 짙은 묵선을 더해 단조로움을 깼고, 뿌리와 가지 끝은 붓질을 짐짓 날카롭게 갈지(之)자로 휘갈겨 마무리했다.
반면 오른편 석벽은 너그러운 붓질이 푸근하다. 선을 모두 물기가 넉넉한 붓으로 힘들이지 않고 쓱쓱 그려내서 이따금씩 눕는 붓질과 어울려 더욱 편안한 느낌이다. 화제 끝에 찍은 인장은 '筆下無一點塵(필하무일점진)'이다. "붓 아래 세속의 티끌 한 점도 없다."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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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
정선의 '금강전도'
새해를 앞두고 정선은 '금강전도'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대작에 걸맞는 제시(題詩)를 썼다.
"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 모습 그려내리/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玄妙)한 도(道)의 문(門)을 가렸어라/설령 내 발로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그 어찌 베갯맡에 기대어 실컷 봄만 같으리요!"
제시를 보니 산 위쪽 푸르스름한 바림은 하늘빛이 아니라 명산이 뿜어내는 향기다. 그런데 자신의 그림을 가리켜 감히 금강산보다 낫다고 한 뜻이 무엇인가? 또 무슨 속 깊은 '뜻을 써서' 작품을 그렸다는 것인가?
그렇다! 과연 큰 뜻이 숨어 있다. 정선은 우선 '주역(周易)'의 대가답게 호기롭게도 금강산 뭇 봉우리를 원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반씩 쪼개어 태극을 빚어냈다. 맨 아래 짙은 장경봉(1)에서 중앙 만폭동(2)을 지나 소향로봉(3), 대향로봉(4)을 거쳐 비로봉(5)까지 이어진 S자 곡선, 이것은 바로 태극이 아닌가. 태극은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뜻한다. 동시에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첫걸음이다. 음양은 원래 상반되지만 태극으로 맞물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룬다.
정선은 우뚝 솟은 비로봉과 뻥 뚫린 무지개 다리(6)로 거듭 음양을 강조하였다. 그 다음 이번에는 심오한 오행(五行)의 뜻을 심었으니, 만폭동(2)에선 든든한 너럭바위(土)를 강조하고, 아래 계곡(6)에는 넘쳐나는 물(水)을 그렸다. 그 오른편 봉우리(7)는 촛불(火)처럼 휘어졌고, 중향성(8) 꼭대기는 창검(金)을 꽂은 듯 삼엄하다. 끝으로 왼편 흙산(9)에 검푸른 숲(木)이 있다.
이러한 오행의 배열은 선천(先天)이 아닌 후천(後天)의 형상이다. 정선은 금강산을 소재로 겨레의 행복한 미래,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기린 것이다.
음양에는 건순(健順)의 덕, 수화목금토 오행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덕이 있다. 군자는 음양오행을 본받아 굳셀 때 지극히 굳세지만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럽다. 또 봄볕처럼 자애롭고(仁), 가을 하늘처럼 의로우며(義), 초목이 여름에 무성해도 질서가 있듯이 예를 지키고(禮), 흙에 묻혀 겨울을 나는 씨앗처럼 지혜롭다(智).
그리고 중심에 늘 변치 않는 믿음이 있다(信). 제시를 쓴 방식도 절묘한데, 가운데 1행이 사이 간(間) 자다(10). 이것은 두 문짝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니,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 그 좌우 2행은 두 글자씩이요, 다시 바깥 4행은 네 글자씩이다. 태극의 첫걸음은 1→2→4로 끝없이 펼쳐져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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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정선의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
연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피었다. 금강산 1만2000 봉우리가 막 버는 꽃봉오리인 양 눈부시게 환하다. 줄지어 선 흰 화강암봉이 꽃 이파리라면 그 사이로 깊게 음영을 드리운 계곡들은 마치 겹겹이 포개진 틈새의 그늘 같다. 흙산은 왼쪽 위에서 아래로, 다시 오른편으로 넓게 에워싸면서 연잎처럼 꽃을 안았다. 흙산과 바위산이 음과 양으로 서로 의지해 편안한데, 양산(陽山)은 더욱 날카롭고 음산(陰山)은 그만큼 부드럽다.
정녕 놀라운 건 산 전체를 어안(魚眼) 렌즈로 본 듯 둥글게 휘어 부채 중심에 모은 점이다. 정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금강산 온갖 봉우리를 한 손에 쥐어보자는 기겁할 발상을 했을까?
금강산은 겨레의 혼이 숨쉬는 영산(靈山)이다. 수려한 금강산은 한민족의 자랑이요, 국토애의 원천이다. 겨레가 너무나 사랑하고 외경했기로 산 이름도 철 따라 달라진다. 새싹 트고 향기로운 꽃이 만발한 봄에는 금강산(金剛山)이다가, 녹음이 짙푸르게 깔리는 여름이 오면 신선이 사는 봉래산(蓬萊山)이 되고, 다시 가을 깎아지른 검은 절벽에 새빨간 단풍이 온 산에 핏빛 불을 지르면 풍악산(楓岳山)이 된다. 그리고 한겨울 차가운 암봉만이 뼈다귀처럼 우뚝 서서 새하얗게 눈을 이고 있는 장관을 일러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의 눈길을 따라 천천히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시선을 옮겨 본다. 처음 눈에 뜨이는 산 둘은 유난히 먹빛이 짙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처음엔 하늘 반 땅 반이다가 점차 올라가면서 산은 가파르고 하늘은 가까워져 급기야 최정상 비로봉에 이르자 하늘이 머리에 닿겠다. 메다꽂듯 내리찍은 암봉의 필획들은 빠르고 예리하고 각지고 중첩되니, 봉우리마다 변화무쌍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또 어떤 곳은 붓 두 자루를 한꺼번에 쥐고 그었는데 짙고 옅은 농담의 변주가 절묘하다. 골짝 사이로 아스라히 먼 곳에 절집이 어른거린다. 이렇게 절경을 빚어내는 솜씨는 조물주에게나 비길 수 있으리라.
정선은 금강산을 사랑해서 평생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을 남겼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단연 이채를 띠는 걸작이다. 저 짙푸른 흙산의 녹음 속 오른편 끝에 보이는 장안사(長安寺)의 무지개 다리는 유달리 청량한 느낌이 든다. 단오 무렵이면 선인들은 갖가지 부채를 만들어 썼다.
부채그림이란 그 얼마나 멋들어진 것인가? 간편하게 명화(名畵)를 손에 쥐고 다니다가 어디서나 이따금씩 척, 하고 펼쳐본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결을 그윽이 음미한다. 이 부채를 들고 금강산 1만2000 봉을 한 손에 틀어쥐어 솔솔 부친다면 아마도 봉래산 향내에 취하여 그대로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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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
김홍도 '해탐노화도'
게 두 마리가 갈대꽃 송이를 꼭 끌어안았다. 행여 놓칠세라 집게까지 열 개의 다리가 제각기 분주하게 어기적거리는데, 그 와중에 윗 놈은 그만 흰 배를 드러낸 채 뒤로 자빠졌다. 게가 갈대꽃 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는데 어쩐 일로 저리도 부산할까? 이 그림에는 뜻밖의 우의(寓意)가 숨어 있다. 한자로 갈대는 로(蘆)인데 이것이 옛 중국 발음으로는 려와 매우 비슷하다. 려는 원래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고기 음식이다.
▼장원급제 기원하는 의미 담겨▼
그 뜻이 확대되어 전려 혹은 여전이라고 하면 궁중에서 과거 합격자를 호명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은 것은 소과(小科) 대과(大科) 두 차례 시험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요, 꼭 잡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붙으라는 의미다. 그 뿐이랴?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을 이고 사는 동물이니 그 딱지는 한자로 갑(甲)이 된다. 이 갑은 천간(天干)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의 첫 번 째니까 바로 장원급제를 의미한다. 참 욕심도 많다. 과거에 붙어도 소과 대과를 연달아 붙되 그것도 꼭 장원으로만 붙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서로운 상징을 지녔으므로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蟹貪蘆花圖)'은 과거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주기 마련이다.
그림에 담긴 뜻이 호탕하니 화법(畵法)도 시원시원할 수밖에 없다. 우선 모든 필획을 중간치 붓으로 단번에 휘둘러 그렸는데 윤곽선이 따로 없는 이같은 화법을 몰골법(沒骨法)이라 한다.
▼'품성대로 올곧게 살라' 교훈▼
원래 게란 뼈가 없는데 그림에 윤곽선이 없는 화법도 뼈가 없다고 하니 기억하기 쉽다. 화가는 맨 처음 갈대꽃을 그린 다음에 활달하고 간략한 붓질로 두 마리 게를 척척 그려내었다. 그 다음 위쪽 갈댓잎부터 치고, 둘째로는 내려긋고, 마지막에는 교차해서 비스듬히 그었다. 아! 그러고 보니 첫째 이파리가 아무래도 좀 짧은 듯하다. 세 번째 이파리 긋던 붓을 들어 첫째 잎에 덧대 좀더 길게 빼본다. 딱 보기 좋게 되었다.
끝으로 화제(畵題)를 쓸 차례다. 단원은 정말 속이 다 시원해지는 후련한 필치의 행서로 "海龍王處也橫行(해룡왕처야횡행)"이라고 썼다.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과거시험은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참된 시작이다. 정신 차리고 하늘이 내려준 품성대로 똑 바로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권력 앞에서 쭈뼛거리지 말고, 천성을 어그러뜨리지 말고, 되지 않게 앞으로 버정거리며 이상하게 걷을 것이 아니라, 제 모습 생긴 대로 옆으로 모름지기 삐딱하게 걸을 것이다. 정문일침(頂門一針)! 참으로 뼈가 선 한마디다. 그렇다. 선비의 길은 자연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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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옛그림읽기]
김정희 '세한도'
시절이 하 수상타. 세상이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느라 분분하니 흙먼지가 인다. 어제의 벗이 손바닥 뒤집듯 오늘의 원수가 되고, 그렇다고 진정 미운 사람도 없어서 누구하고나 쉽게 손을 잡고 웃음을 판다. 어느 세상엔들 이런 한심한 꼴이 없었으랴만, 돌이켜보면 세상이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150년전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귀양을 살았다. 일찍이 명문가 자손으로 참판(차관)까지 지냈지만 그보다는 학문과 예술로 한 나라를 대표하고 나아가 중국에서도 크게 이름을 떨쳤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날개 떨어진 그를 누가 돌아나 보랴! 사귀어 득 되기는커녕 권문세가의 미움을 살뿐이다. 그러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한결같았다. 멀리 베이징(北京)에서 사들인 귀한 책들을 해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천리 바다 건너 스승께 보냈다.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제자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해 뼛 속 깊이 새겨진 뜻을 그려낸 작품이다.
추사는 썼다. "옛 글에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사람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세한도' 쓸쓸한 화면에는 여백이 많아 겨울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데, 보이는 것은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뿐이다. 까슬까슬한 마른 붓으로 쓸 듯이 그려낸 마당의 흙 모양새는 채 녹지 않은 흰 눈인 양 서글퍼 보인다. 그러나 '세한도'엔 역경을 이겨내는 선비의 올곧고 꿋꿋한 의지가 있다. 집을 그린,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墨線)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차분하고 단정하다. 초라함이 어디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집주인 김정희, 그 사람을 상징하는 작은 집은 외양은 조촐할지언정 속내는 이처럼 도도하다.
추사는 이 집에서 남이 미워하건 배척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 나아갈 길을 묵묵히 걸었다. 고금천지에 유례가 없는 강철같은 추사체의 산실이 바로 여기다. 그러나 이것은 집이 아니라 추사 자신이었다.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逆遠近)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 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 우뚝 선 아름드리 늙은 소나무를 보라! 뿌리는 대지에 굳게 박혔고, 한 줄기는 하늘로 솟았는데 또 한 줄기가 길게 가로 뻗어 차양처럼 집을 감싸안았다. 그 옆에 곧고 젊은 나무가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집은 그대로 무너졌으리라.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 제자 이상적이다.
'세한도'엔 추운 시절에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옛 정이 있다. 그래서 문인화의 정수라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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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강세황 '자화상'
강세황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근엄한 표정의 선비를 보고 왜 웃는지 궁금하면, 잠깐 또 다른 그의 초상부터 살펴보자. 작가 미상의 '강세황상'은 머리에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상반신에 흉배 붙인 단령(團領)을 입고 각대(角帶)를 둘렀으니, 바로 예를 갖춘 조선의 관복이다.
그런데 '자화상'에서는 평복 두루마기에 오사모만 덜렁 썼으니, 이건 신사복에 운동모자를 쓴 것과 정반대지만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정조때 예술계를 주름잡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강세황, 저 유명한 김홍도의 스승이라는 분이 왜 이런 장난을 치셨을까?
'자화상' 머리의 좌우 여백에 빼곡이 쓴 찬문(贊文)은 강세황 자신의 글씨인데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 사람이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머리에는 사모 쓰고 몸엔 평복을 걸쳤구나/오라, 마음은 시골에 가 있으되 이름이 벼슬아치 명부에 걸린 게라/가슴엔 수 천 권 책을 읽은 학문 품었고, 감춘 손엔 태산을 뒤흔들 서예 솜씨 들었건만/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내 재미 삼아 한번 그려봤을 뿐/노인네 나이 일흔이요, 노인네 호(號)는 노죽(露竹)인데/자기 초상 제가 그리고 그 찬문도 제 지었으니/이 해는 임인년이라."
알고 보니 찬문에도 장난 꽃이 가득 피었다. 강세황, 이 분은 3남6녀 남매 중에 부친이 64 세에 얻은 막내로서 갖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늦동이였다. 그래서 유달리 밝고 해학적인 성품을 지녔으니 제자 김홍도 역시 농담에 능했고 음악부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이르는 여러 교양을 섭렵한 것이 모두 그 스승으로부터 온 내력이다.
강세황은 다른 글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 "체격이 단소하고 인물도 없어서 잠깐 만나본 이들은 그 속에 탁월한 학식과 기특한 견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자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싱긋이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이 글을 아울러 생각해 보면 강세황의 우스꽝스런 복장에 걸맞지 않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그저 우스개만은 아닌 성싶다. 특히 옷주름 선이 다른 초상에 비해 좀더 굵어 굳센 느낌이 있고, 어깨 윤곽선 아래며 옷주름 근처에 진한 바림을 더해서 견실한 양감을 강조한 점이 그러하다. 얼굴 묘사는 섬세 정교하며 음영을 나타낸 입체감에 서양화법이 내비친다. 주인공은 고운 옥색 두루마기에 진홍색 세조대(細條帶)를 느슨하게 묶어 낙낙하게 드리웠다. 오사모의 검정색과 더불어 품위 있는 색감 연출이다. 뛰어난 자화상 솜씨에 유려한 글씨며 문장력까지 보여주었으니 가히 삼절(三絶)의 저력이 드러난 걸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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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김명국의 '달마상'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그리고 한일(一)자로 꽉 다문 입. 화가는 턱선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마치 달아오른 장단에 신들린 고수(鼓手)처럼, 점점 길게 점점 더 여리게 연속적으로 퉁겨내듯 그렸다. 옷 부분은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쳤다. 꾹 눌러 홱 잡아채는가 하면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냈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자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두 손은 마주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지만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지그시 화면을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부분에 날카롭게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그림 속의 필선(筆線)은 각각 서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가? 선과 선 사이로 하나의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이른바 획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그것이다. 이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기(氣)의 주인은 김명국인가, 달마인가?
달마는 인도 스님이다. 석가모니가 꽃 한송이를 들어 올렸을 때 스승 뒷편에서 조용한 미소로 답하여 그 심법(心法)을 전수받았다는 가섭 이래 제28대 조사(祖師)다.
그는 중국에 와서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최초로 펼친 중국선(中國禪)의 제1대 조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달마는 선(禪)의 대명사다. 그는 9년 동안이나 벽을 마주하고 수련했다고 전해진다. 달마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던 진정한 대장부였다. 그 무서운 집중력은 어떠한 원력(願力)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그토록 용맹 정진할 수 있었던 심지(心地)는 대체 어떠한 것이었을까?
'달마상'을 보면 달마를 알 수 있다. 거침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본질이 아닌, 온갖 부차적인 껍데기들은 모조리 떨어 낸 순수 형상이다. 그러므로 몇 줄의 짙고 옅은 먹선으로부터 강력한 의지와 고매한 기상이 곧바로 터져 나온다. 아무도 곁눈질할 수 없게 하는 이 맹렬함, 이것은 바로 선(禪)이 아닌가? 그러나 저 눈빛을 보라. 달마는 한편 이 모두가 허상이라는듯 진정 거짓말처럼 깊고 고요한 눈매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달마상도 결국은 달마가 아니다. 그냥 약동하는 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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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읽기]
이정의 '風竹圖'
바람이 불고 있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화폭 가득 세차게 부는 바람. 어린 대나무는 그 바람에 밀려 줄기가 활처럼 휜다. 매몰차게 부딪히는 바람은 댓이파리들을 일제히 파르르 떨게 한다. 이파리는 곧 끊어질 듯 끝이 파닥이며 뒤집힌다. 화폭 한중간 유난히 길고 가는 잔가지 하나, 이제라도 곧 찢겨나갈 듯 위태롭다. 하지만 저 기세를 보라. 쭉쭉 뻗어 올라간 줄기는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먹색은 흐려지지만 기백은 더욱 장하다.
잎은 위로 갈수록 더 짙고 무성하며, 낭창낭창한 잔가지는 탄력 속에 숨은 생명의 의욕으로 넘실댄다. 그렇다. 첫 눈에 가득했던 것은 거친 바람이었지만 끝까지 남는 것은 끈질긴 대나무의 정신이다.
대나무는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사람이다. 그것도 대단히 어진 사람이다. 식물을 어째서 사람, 그것도 어진 사람이라고 하는가. 다섯가지 훌륭한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첫째, 대나무는 뿌리가 굳건하다. 어진 이는 그 뿌리를 본받아 덕을 깊이 심어 뽑히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둘째, 줄기가 곧다. 몸을 바르게 세워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다. 셋째, 속이 비었다. 텅 빈 마음으로 도를 체득하며 허심으로 남을 받아들인다. 넷째, 마디가 반듯하고 절도가 있다. 그 반듯함으로 행실을 갈고 닦는다. 그리고 다섯째, 사계절 푸르러 시들지 않는다. 편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은 마음을 지녔다.
대나무는 대인군자의 상징이다. 그래서 대개 점잖은 먹빛으로 그린다. 어떤 이가 빨간 대를 그렸다. 사람들이 "세상에 빨간 대가 어디 있느냐"고 힐난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새까만 대나무는 어디에 있소" 하고 대꾸하였다. 대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색과 모양을 넘어선 정신이다.
낙백(落魄)한 선비처럼 비를 맞고 축 처진 대나무, 미소년처럼 환해 보이는 아지랑이 속의 대나무, 역경을 이겨내는 지조인 양 차가운 백설에 잎새가 눌려 있는 대나무, 그렇게 대그림에서는 정신이 느껴져야 한다. 통 굵은 늙은 대나무가 가운데 토막에서 퍽 소리를 내고 터져 분질러진 것을 보면 비장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대나무는 군자다. 죽순은 음식이 되고 죽공예품은 삶을 돕는다. 쪼개면 책(죽간․竹簡)이 되고, 잘라 구멍을 내면 율려(律呂)의 악기가 되어 우주의 조화에 응한다.
대나무의 조형은 너무나 단순하다. 줄기와 마디와 잔가지와 이파리, 그것이 대나무의 모든 것이다.
그런 대를 옛사람들은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이라 일러 왔다. 줄기 하나, 이파리 하나를 이루는일획을 잘 긋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획 하나를 잘 그으면 열 획, 백 획이 다 뛰어나다. 그 일획 속에 바람이 있고 계절이 있고 말로는 다 못할 사람의 진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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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
김홍도 '씨름'/ 현장감 생생
씨름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철 이른 부채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막 힘든 모내기가 끝난 단오절인가 보다. 씨름꾼은 샅바를 상대편 허벅지에 휘감아 팔뚝에만 걸었다. 이건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지방에서만 하던 바씨름이다. 흥미진진한 씨름판, 구경꾼들은 한복판 씨름꾼을 에워싸고 빙 둘러앉았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1)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이겼다. 뒷사람(2)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른손까지 점점 빠져나가 바나나처럼 길어 보이니 곧 자빠질 게 틀림없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니 상대는 순간 그 쪽으로 낚아챈다. 이크, 오른편 아래 두 구경꾼(3, 4) 이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 순간 상체는 뒤로 밀리고 오른팔은 뒷땅을 짚었다(3). 판 났다! 이들 구경꾼 위쪽에 씨름꾼이 벗어놓은 짚신과 발막신(5)이 보인다. 짚신 주인은 아마 소매가 짧은 앞사람(1)이고, 비싼 발막신 주인은 입성 좋은 뒷사람(2)일 게다. 오른쪽 위 중년 사내(6)는 승자 편인지 입을 헤벌리고 좋아라 몸이 앞으로 쏠리며 두 손을 땅에 댔다. 그 옆의 잘 생긴 총각(7)은 털벙거지를 앞에 놓았으니 마부인가 보다. 저렇게 누워 있는 걸 보면 씨름판은 시작한지 퍽 오래되었다.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 왼편 위쪽,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어리숙한 양반(8)은 아닐 성싶다. 갓도 삐뚜름하고 발이 저려 비죽이 내민 품이 좀 미욱스러워 보인다. 그 뒤 의관이 단정한 노인(9)은 너무 연만하시니 물론 아니고, 옳거니 그 앞의 두 장정(10, 11)이 심상치 않다. 갓을 벗어 나란히 겹쳐 놓고 발막신도 벌써 벗어 놓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등줄기가 곧으며 내심 긴장한 듯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낀 채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있다(10). 그러나 다음 선수 두 사람의 초조함과는 무관하게 엿장수(12)는 혼자서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먼 산만 바라본다. 엿판에 놓인 엽전 세 냥이 흐뭇해선가….
공책만한 종이 위에 스물 두 사람을 그렸는데 인물은 아래보다 위에 더 많다. 구도가 과분수니까 씨름판의 열기는 저절로 우러난다. 그런데 구경꾼은 모두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렸고 씨름꾼만 아래서 치켜다본 모습이다. 그렇다, 위에서 보고 그렸으면 난장이처럼 왜소해졌을 것이다. 화가는 구경꾼들이 앉아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그림 보는 이가 씨름판에 끼어든듯 현장감이 살아난다.
한번 더 그림을 휘 둘러 보니, 아니 여자가 하나도 없다! 춘향이처럼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타러 갔나 보다. 작은 그림이지만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찬찬히 바라보면 옛적에 내외하던 풍습까지 읽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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