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샬라를 넘어선 신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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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 너머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랍인들의 ‘인샬라(하나님의 뜻이라면)’를 숙명론적인 체념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다릅니다. 우리의 ‘인샬라’는 어차피 정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포기가 아니라,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기에 나는 오늘을 살겠다는 처절한 신뢰입니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할 수 있습니다. 그 절규는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그 절규를 외치셨고, 신약성서는 그 눈물 어린 질문에 ‘부활’이라는 거대한 대답을 두고두고 내놓았습니다.
큰 일에는 큰 의미가, 작은 일에는 작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도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그러나 기쁘게 걸어가 봅시다.
심장이 가르쳐준 지혜
인샬라를 넘어선 신뢰의 고백
밤의 묵상
시편 기자는 밤마다 심장이 자신을 교훈한다고 했습니다. 꿈속에서, 혹은 깊은 적막 속에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말을 거시지요. 저에게는 오늘이 그런 밤이었습니다.
고난과 인샬라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아랍인들이 말하는 ‘인샬라’는 ‘될 대로 돼라’는 체념이 아닙니다. 비록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는 ‘지독한 신뢰’의 다른 이름입니다.
절규는 대화다
우리는 절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그렇게 외치셨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 절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큰 일에는 큰 의미가, 작은 일에는 작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걸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 안에서 우리는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을, 그분을 신뢰하며 다시 걸어갑시다. 우리는 이미 영원 속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