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힘
성경에 보면 울면서 살았던 사람들,
눈물 때문에 위로와 힘을 얻고,
하나님과 친해지고 복을 누리며
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원전 700년경
남유다 왕국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던 사람입니다.
일찍 왕이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느라
너무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게 되었고,
그 결과로 몸이 일찍 망가져서
큰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을 찾아왔습니다.
당연히 목사님께서 오신 것이니
병 낫기를 기도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이사야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히스기야의 죽음을 선포하고 가버리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히스기야는
너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순종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 보다 더
훌륭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라도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신하들을 물렸습니다.
모든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동안 잘못했던
일들이 생각나 많이 울었습니다.
또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썼던 것을 기억해 달라고,
선하게 행한 것이 있거든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하는데 많은 눈물이 흘렀고,
왕의 눈물은 큰 울음이 되고
통곡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그 통곡소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제 성읍을
다 빠져나오기도 전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다시 임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은 그 말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왕하 20:5-6]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엄청난 눈물 뒤에 엄청난 말씀이 들렸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눈물은 나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끈이 되었고,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붙여 놓는 접착제가 되었고,
내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영양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욥도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가축이 죽었습니다.
자녀들도 죽었습니다.
아내는 욕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이혼당하고, 자녀들 죽고,
사업은 망하고, 몸에 병이 깊어졌습니다.
위로와 힘이 필요할 때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다 네가 죄 많이 지어서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하나님께서 공연히 너를 심판하신 것이 아니고
다 네가 숨겨놓은 죄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야유를 하고 있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는 맞는데
왜 그렇게 인생이 안 풀리는 건지.
한숨만 푹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그냥 속상하고, 외롭고, 힘드니까
눈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더 많이 생각이 납니다.
친구들의 조롱과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무관심이 느껴지는 순간 욥은
원망하거나 분노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성경에 나오는 눈물의 왕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6편의 제목을
어떤 주석 책은
이렇게 붙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죄를 확신하며 드리는
왕의 참회의 기도!’
참 멋지고 바른 제목입니다.
다윗은 죄를 지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람이니까 다 죄를 짓고 사는데
다윗의 위대함은 그 죄를 그냥 넘기지 않고
늘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시를 시작합니다.
[시 6:1-2]
1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런 후에 그는 시의 끝머리에
이런 고백을 싣고 있습니다.
[시 6:6-8]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그는 눈물과 함께 회개했고,
그 눈물의 회개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으니
이제 나를 조롱하는 대적자들도 다 떠나가라고,
비난하는 너희들은 다 떠나가라고,
이제는 내가 그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이 아닙니다. 고라자손의 시에도,
이름 모를 시인들의 시에도
늘 눈물이 뭍어났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도 우셨고,
베드로의 통곡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눈물도 있었습니다.
[행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신앙생활은 눈물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절대로 창피한 것이 아니고
패배한 것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들 눈물의 삶,
눈물의 기도의 끝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계 7:15-17]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성경 요한계시록 마지막부분은
영양제눈물을 잘 먹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 놓지 않습니다.
[계 21:1-4]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이라는 영양제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크게 성숙해지고,
천국의 소망이 더 커지기를 기도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