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11(월)-15(금)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4月 ☞정직과 순종하는 습관☜ ※보고서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기록하여 각 카페에 입력해 놓으면, 6월 30일 복사해갑니다. 마27:27-66절)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다 예수님은 드디어 금요일 로마 총독(總督)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處刑)하도록 선고(宣告)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드디어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웠을 뿐 아니라, 죽음 그 자체도 엄청 고통스럽고. 길었습니다. 아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처음에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죽어야 했는지*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그 고통스러움 죽음으로 죽었어만 했을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온 인류(人類)의 죄(罪)를 대신해서 죽는 죽음이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죽음이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비밀리에 어떤 사람의 칼에 찔려 죽든지. 하는 식으로 죽어서는 그 죽음은 효력(效力)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나무에 달려서 공개적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서 목이 매여서 죽든지. 창에 찔려서 죽든지. 빨리 죽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안 되는 것은 구약 성경의 예언(預言)때문이었습니다.
시22:16절)개들이 나를 에워 샀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운명(運命)하시면서도 성경의 예언을 하나씩 이루어가야 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죽어서는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나무에 달려야 했고. 손과 발이 찔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엄청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에 의해 공개적인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과학자가 연구를 많이 해서 로봇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로봇들이 작당을 해서 이 과학자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 버렸다면. 그 과학자는 자기가 만든 로봇들을 모두 다 부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을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영생(永生)을 얻게 하셨습니다. 영생(永生)은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인데. 그냥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원한 숙제가 있는데. 그것은 곧 죽음이라는 과제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우리 모든 인간은 영원히 저주(咀呪)받는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永生)을 주시기로 약속(約束)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죽음은 수술받기 위해서 잠깐 마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난 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生命)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운명(運命)하시면서 우리 인간이 죽으면서 겪는 모든 고통을 친히 다 당하셨습니다.
즉 머리에 가시관을 쓰셔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셔서 완전히 손발이 망가졌고. 또 음식도 못 드시고. 물도 마시지 못해서 목말라하시고. 힘이 없어 십자가를 매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긴 시간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오해와 조롱(嘲弄)까지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모든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히2:18절)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자신이 아프거나. 다쳐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고통을 친히 다 겪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다 도우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Ⅰ.예수님이 당하신 고통 사람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侮辱)을 당한다든지. 매를 맞는다든지 하면, 모든 자존감(自尊感)이 다 깨지고. 마음이 그렇게 비참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27:26절)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로마 군인들의 채찍질은 고통주기로 유명했습니다. 즉 로마 군인들은 채찍 끝에 못이나. 뼈를 달아서 채찍질 할 때마다 살이 찢어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살이 찢어지는 채찍질을 수십 번 이상 당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등과 배와 목과 얼굴은 채찍으로 이미 다 찢어져서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이 너무나 찢어져서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의 모든 병(病)과 고통으로부터 치료(治療)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벧전2:24절)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또 구약 사53: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채찍에 맞아야 하고. 창에 찔려야 하고. 뺨을 맞아야 할 죄인(罪人)들인데,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맞으셔서 우리는 더 이상 맞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 매를 맞거나. 욕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로마 군인(軍人)들은 그것으로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예수님을 모욕(侮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이 가시는 아주 날카로운 것으로 한번 씌우면. 머리 피부가 다 찢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로마 군인들이 홍포(紅袍)를 입힌 후. 앞에서 절을 하면서 *왕이여 만세*라고 하고는 머리를 막대기로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수치(羞恥)스러운 것이요. 자존감(自尊感)같은 것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시22:6절)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가는데. 이미 예수님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매를 맞아서 도저히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온 힘을 다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가시는데. 쓰러지고. 또 쓰러졌습니다. 나중에는 몸이 일어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군인들은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을 붙들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되는데. 곧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너무나도 *재수가 없이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자기가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軍人)들은 예수님을 골고다라는 곳으로 끌고 가서 거기서 십자가에 눕게 하고. 두 손과 두발에 녹이 슨 엄청나게 큰 못을 박았습니다. 못을 한 개씩 박을 때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자기도 모르고 엄청난 비명(悲鳴)을 질렀을 것입니다.
못이 박힌 손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과 팔은 고통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못 박히는 고통을 네 번씩이나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놓은 사람의 십자가를 세우게 되는데. 그때가 정말 죽는 고통이었습니다. 그 때 다시 온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무려 여섯 시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보는 여러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었고. 원수 마귀(魔鬼)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나 미워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그가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를 믿는 여인들도 먼데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살아나실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을 못을 모두 다 뽑아버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악(惡)한 자들을 모두 다 심판(審判)하시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모든 천사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끝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혹은 견디지 못해서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Ⅱ.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몸무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무게를 약 70kg정도라고 생각한다면. 그 몸무게를 못 네 개를 산채로 박아놓고. 무한정으로 고통 받게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양 옆에 있던 두 죄수(罪囚)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 너무나 아프니까 힘이 있는 동안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발악(發惡)을 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너무나도 더운 날이었으므로 그 고통은 가중(加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야말로 온 몸에 안 아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가만히 꾹 참고 계셨습니다. 시69:20절)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 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동정(同情)해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둘러보았지만. 한 사람도 없었고. 자기를 위로(慰勞)해줄 자가 있을까? 해서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예수님을 잠시나마 들어주기만 해도 그 십자가의 고통에서 조금은 쉴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목마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몇 시간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고통을 당했는데, 또 태양(太陽)이 내리쬐면서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시22:15절)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이어서 예수님을 더 고통스럽게 한 것은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십자가 바로 밑에서 한 조롱(嘲弄)입니다. 즉 *네가 남을 구원하면서 왜 너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고 조롱(嘲弄)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嘲弄)했습니다. 27:42-43절)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그런데 놀랍게도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조롱(嘲弄)한 것은 시편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시22:8절)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동안 놀랍게도 성경 말씀의 예언(預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은 대개 사형수(死刑囚)들이 가진 물건(物件)을 자기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즉 이들이 부자(富者)를 처형(處刑)했다면, 금(金)목걸이라든지. 금(金)반지 같은 것을 가졌겠지만, 예수님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입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통으로 짠 것이기 때문에 나누면. 못 쓰게 되니까 제비를 뽑아서 한 명이 가졌습니다. 이것도 시편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22:18절)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강도(强盜)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양쪽 옆의 강도(强盜)들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사53:12절)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박혀 있는 동안 성경의 예언(預言)은 놀랍게도 이루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우연(偶然)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罪)를 대신해서 속죄(贖罪)제물(祭物)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오전에는 땡볕이 비쳤는데. 오후에는 해가 어두워져서 주위가 캄캄해졌습니다. 다른 복음서(福音書)에 의하면. 횃불을 켜야 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태양도 빛을 잃는다는 말씀을 성취(成就)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27:46절)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라” 이 말씀은 시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22:1절)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기 위에서 버리시고. 우리를 자녀로 택(擇)하셨던 것입니다. Ⅲ.예수님이 운명하심 드디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여섯 시간 만에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運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지르신 소리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진짜 운명(運命)하셨습니다. 성자(聖子)하나님이 인간의 손에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혀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예수님은 오히려 이루신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병자(病者)를 다 고치신 것도 아니고. 모든 불의(不義)한 자를 다 심판(審判)하신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을 다 전도(傳道)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양적(量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다 고칠 수 없고. 모든 좋은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이상적(理想的)인 세상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걷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죽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나. 예수 믿는 여인들은 가슴을 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인간과 아무 다를 것이 없이 죽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도 인간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을 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곧 성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성소(聖所)에는 맨 안쪽에 큰 휘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 휘장(揮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고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운명(運命)하시는 그 시간에 바로 *그 성소(聖所)휘장(揮帳)이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서 두 동강이 나고 만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밖에서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를 훤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7:51절)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예수님은 죽으시면서 대제사장으로서 성소(聖所)휘장(揮帳)을 찢어버리고.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밤낮 사흘 정도는 죽지 않고.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섯 시간 만에 운명(運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여섯 시간 만에 운명(運命)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예수님이 죽으시고 나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예수님의 숨은 제자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屍體)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 빌라도는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니까 거기에 있던 백부장이 *틀림없이 죽었다*고 보고(報告)했습니다. 그러나 양쪽 옆에 있던 두 강도(强盜)는 그때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예수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시체(屍體)를 내어주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그때까지 살아있던 두 강도(强盜)의 다리뼈를 꺾어서 죽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에 *다리뼈를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는데. 물과 피가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손과 발을 통해서 제법 몸 밖으로 빠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에 남아 있던 피는 물과 함께 배에 고였던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까 물과 피가 배에서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개의 성경 말씀이 성취(成就)되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이 되면 양(羊)을 잡는데. 하나님은 뼈를 꺾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富者)였기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묻히려고 골고다 가까운 곳에 새 무덤을 파놓았습니다. 그 새 무덤은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리마대는 예수님의 시체(屍體)를 자신의 새 무덤에 넣어 장사(葬事)지냈습니다. 사53:9절)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 번역에는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富者)의 무덤에 장사(葬事)가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대개 이런 죄수(罪囚)들의 시체(屍體)는 쓰레기더미 같은 곳에 버리기 때문에 들개가 뜯어 먹든지. 독수리 같은 새가 뜯어 먹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무덤은 공동묘지(共同墓地)가 아니어서 그 시신(屍身)이 다른 사람의 시신(屍身)과 혼동(混同)될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또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무덤을 아주 큰 돌로 막았고. 빌라도는 그 위에 인봉(印封)을 치고. 군인들로 하여금 사흘 밤낮 단단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루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부활(復活)하실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음속에 늘 예수님의 십자가가 새겨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나를 영생(永生)에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을 붙잡고, 끝까지 순종(順從)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265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알 림 ◈4월1일-5월31일 춘계 대심방과 셀 현장 점검을 위하여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신청해야 심방이 가능합니다. ◈6월 30일 셀보고서 결과로 소속이 결정됩니다. ◈리더(leader)는 1단계 *필수과목* 자격증을 취득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직분도 반드시 *필수과목*을 필하고 *세례를 받아야*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천주교인 포함). 그 이유는 연구원 유지 및 신앙성숙을 위해 계속 불통과 불순종하는 비 소속은 후반기부터 일방적으로는 차별이 불가피합니다. 딤후3:13-14절)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 의심하고 망설이면 좋은 기회를 놓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