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objAAtfbmg?si=6vbP53WXQEmBeos3
김원중 - 나는 바이크타고 시베리아에 간다
‘기회의 땅’ 시베리아 모터바이크 12000㎞
김현국의 유라시아 탐방기
프롤로그
199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블라디보스톡~모스크바
탐험가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탐험이라는 말은 여행이나 관광이라는 말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행이나 관광은 그 지역의 연구나 조사보다는 단순히 유람을 목적으로 하며 그 지방의 풍습이나 풍경, 문물을 구경하는 것에 그친다. 난 내 자신을 소개할 때 탐험가라고 소개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탐험은 13세기 동방견문록을 기록했던 마르코폴로(Marco Polo.1254~1324년)나 대서양을 횡단한 콜럼버스(Columbus.1451~1506년)를 떠올린다. 좀 더 탐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북극점을 가장 먼저 정복한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Robert Edwin Peary.1856~1920년)나 남극점을 정복한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1872~1928년)을 생각하기도 한다.
한국의 문화 속에서 탐험가라는 직업을 가진 내 모습이 어떻게 보여질지 궁금하다. 나는1987년 전남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91년부터 현재까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독일, 네델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터키,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거주하고 돌아보며 조사하는 일을 해왔다. 법학도인 내가 무슨 이유로 단순한 여행이 아닌 탐험을 목적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는지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상당히 길다. 하지만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다.
독립운동을 하신 나의 백부는 조국 해방의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만주 벌판을 누비셨던 분이셨다. 그런 백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내 안에도 독립운동을 하시던 백부의 DNA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역마살과도 같은 그런 모습이 내겐 싫지 않았다.
대학시절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년)의 ‘사할린 섬’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안톤 체홉은 마차와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사할린에 체류하게 되었다. 그는 3개월을 그곳에서 체류하면서 소설이 아닌 현장보고서를 썼다. 인간과 자연에 깊이 고민하는 글들이었다. 실증적 기록문헌인 그의 글은 유형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였다.‘사할린 섬’이라는 안톤 체홉의 글을 읽고 나는 시베리아 탐험이라는 매력에 마법처럼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을 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졸업시즌이 되었다. 솔직히 내 자신은 취업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취직을 위해 입사원서를 들고 대기업을 이리저리 뛰어다녀보지만 길게 늘어선 입사준비생들의 모습을 보며 절망적이 되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답답한 현실과 장래문제를 생각할 때 내 가슴은 무거워져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즉석복권을 사게 되었다. 마치 행운처럼 즉석복권은 나의 삶에 작은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100만원이라는 거액에 당첨된 것이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궁리하게 되었다. 이때 시베리아 횡단이라는 부푼 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안톤 체홉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는데 나는 말 대신 말과 비슷한 바이크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나는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바로 중고 모터바이크를 사서 시베리아를 횡단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내 삶을 탐험가라는 낯선 길을 가게 되었다.
1996년 졸업과 동시에 바이크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길에 나서게 되었다. ‘지구 대동맥 이동 시리즈’라는 프로젝트명을 가지고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바이크로 횡단을 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rans-Siberian Railway.TSR)로는 장장 9282㎞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모터사이클로는 1만2000㎞의 거리다. 철도는 있었지만 육로로는 길이 없는 곳이 많았다. 세계 최초요, 한국 최초로 모터사이클로 시베리아를 단독횡단하는데 성공을 했다. 이것은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 아무도 도전해 보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과 같은 일이었다. 5개월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길과 숲에서 들짐승처럼 보냈다. 그 이후로 두 번을 더 횡단했다.
횡단 이후 ‘바위섬’으로 유명했던 가수 김원중씨가 노래로 나의 삶을 담고 싶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그를 통해 ‘나는 바이크 타고 시베리아에 간다’라는 노래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김원중 5집 음반 타이틀에 이 노래를 실었다. 바이크를 타고 시베리아와 유라시아를 횡단하면서 내 삶에 대한 고민들은 한결 가벼워졌다. 새로운 많은 환경과 사람과 문화를 대하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었다.
시베리아는 기회의 땅이다. 무궁무진한 비전의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320㎞의 작은 한반도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로 치열한 대전을 치루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삶에서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직접 그들을 넓은 세계로 데리고 나가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싶다.
1996년, 러시아와의 첫 만남 이후, 23년의 인연을 맺으면서 이루어진 세 번의 유라시아대륙횡단이다. 모두 모터사이클로 이루어진 행위이다. 1991년 12월에 이루어진 소비에트의 몰락으로 러시아를 중심으로 독립국가연합이라 불리는 유라시아대륙은 새로운 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서 서방세계에는 20세기 마지막 기회의 땅이 되었다. 나는 이 대륙에서의 기회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동안 대륙횡단계획을 준비하고, 1996년 졸업식 날 모터바이크를 비행기에 싣고 시베리아로 떠났다. 10개 지역의 시차와 120개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나라를 8개월에 걸쳐 횡단했다.(이동수단-모터사이클 1만2000㎞. 시베리아횡단기차 9288㎞)
2014년 유라시아 대장정은 2010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과 2014년 한러 무비자협정의 발효가 그 배경이 되었다.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유럽의 끝으로부터 극동에 위치한 한반도까지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은 대륙으로 향하는 두개의 국제고속도로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아시안 하이웨이1, 6호선이 그것이다.
부산에서 시작되는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은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북한의 원산과 나진.선봉을 거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만난다. 그리고 유럽의 끝인 로테르담까지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은 엄청난 역사이다.
2014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나는 통행료 한 푼 지불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대륙의 끝까지 모터바이크로 달릴 수 있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자동차 길을 통한 물류의 운송이 기차나 배와 비행기에 대해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2014년 대륙횡단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이동수단-모터사이클 2만5000㎞. 시베리아횡단기차 9288㎞)
귀국을 하자마자 시베리아를 지나는 유라시아 대륙횡단도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에 대해 강연과 전시회를 확대해서 전국투어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2017년 나는 다시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대륙횡단에 나섰다.
팀을 만들어 이 대륙횡단도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자료화하고 싶었지만 결국 나 홀로 길을 나섰다.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배가 출발하는 동해시를 향해 밤을 새워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홉 명의 바이크 여행자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해 10인의 무사들이다.
휴학한 대학생으로부터 조기 퇴직한 중년과 60대의 멋쟁이 아저씨까지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
물론 서로 처음 만났거나 서로를 오랫동안 알지 못한 사이들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확장된 공간으로서의 대륙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래왔다.
이들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반도로부터 이어지는 대륙의 맛을 볼 수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나의 계획이 2014년과 같은 로테르담까지에서 바이칼 호수까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지금 당장, 일상에서의 이동 수단을 이용해서 대륙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바이칼호수까지는 4000㎞ 정도이다.
14일 정도의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샐러리맨을 기준으로 자신이 현재 타고 있는 자동차로 당장 지금 움직였을 때 왕복할 수 있는 거리가 바이칼 호수였다.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는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으로서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이다.
2017년의 유라시아 대장정에서 ?나는 러시아의 도로와 주변 인프라의 완성도와 양국의 무비자 환경과 세관에서 바이크를 찾는 작업 등을 잘 정리해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이 대륙의 맛을 볼 수 있는 자료를 구체적으로 만들고 돌아왔다.(이동수단-모터사이클 7000㎞ 육로왕복. 시베리아횡단기차 1000㎞)
2014년 러시아 바이칼스크의 외곽, 검은담비 산에서 열린 모터바이크 축제에서 만난 러시아방송은 페이스북을 통해 나와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나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시안 하이웨이 라는 국제고속도로네트워크에 대해 설명을 했으며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유라시아대륙이 길로 연결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가 확대된 세계화 시대이자 실시간으로 지구 저편을 바라볼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시대인 지금,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정보를 따라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의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활성화 되는 시대이다.
다국적 자본은 대륙의 길을 따라 지구의 오지까지 유통망을 넓혀가고 있다.
역시 중앙아시아의 다디단 과일들은 저기(지구) 숲의 끝인 툰드라의 구멍가게까지 점유해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400여㎞ 안에 갇혀있는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이번 연재를 통하여 지형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 상생의 문화가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는 사고의 확장을 기대한다.
탐험가/ ‘당신의 탐험’ 대표세계탐험문화연구소 소장
김현국의 유라시아 탐방기
첫댓글 우리나라와 붙은 시베리아를 못가본다는것도 아이러니한 일이죠 통일이 우선이지만 ^^
우리집에서 불과 40여분거리에 아세안하이웨이6호선(국도7호선)이 지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더 이상 북으로는 가지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통일은 머나먼 이야기 이겠지요
이런 노래를 발표하다니!
대단합니다~ 박수박수ㅡ
잘 아는 고향후배 입니다
지금은 무등산 자락에 있는 수만리에서
생활하면서 광주에서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