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본문 : 요9:1-3
제목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갈릴리의 베세다에서 태어난 요한과 야고보의 아버지는 세베대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인데,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이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서 '보아네게', 즉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실 정도로 성격이 무척 급하고 다혈질적이었습니다. 요한은 오순절 성령 충만의 영적 체험 후 성격과 마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입니다. 그는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도미니안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펄펄 끓는 기름 속에 들어가 순교할 뻔했지만, 주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12명의 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채석장에서 늙은 몸을 이끌고 고생하던 요한을 만나주시고 그를 통해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계시를 부어주셔서 요한계시록을 쓰게 하신 것입니다. 그 후로 요한은 독수리 복음이라 불리는 요한복음, 그리고 요한 1, 2, 3서를 기록했습니다.
신앙은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자리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서 도망쳤지만, 사도 요한은 믿음의 여인들, 즉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 자신의 어머니 살로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고, 마리아에게는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고 의지하며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 요한'이라는 말이 참 아름답습니다. 교회 안에 참된 가족을 만드신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의 말씀대로 마리아가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섬기며 돌봤습니다. 도미니안 황제가 죽고 새 황제가 즉위한 후 자유의 몸이 된 요한은 유배 전 담임목회자로 사역했던 에베소교회로 돌아가 주님의 일을 많이 하다가 96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4복음서를 에스겔 1장의 4가지 생물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마태복음은 사람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 마가복음은 사자의 모양으로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던 침례 요한, 누가복음은 소의 모양으로 산 제단의 참된 제물 되신 주님, 요한복음은 독수리 모양으로 하늘의 높고 깊은 곳까지 날아 정확한 신앙과 광활한 영적 깊이를 가르치신 주님을 각각 상징합니다. 특별히 독수리는 태양을 보아도 시력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태양처럼 밝고 뜨거운 복음의 빛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진 것처럼 기록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인 요한복음 9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곧 참된 영생의 길인 주님께서 가시던 길에 한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거지였고 시각장애인이었던, 정말 어렵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난한 시각장애인의 삶은 참 힘든데 그때는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아이가 소경으로 태어나면 어머니는 평생 집안 어른들에게 구박 받으며 죄인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이 소경에게는 어엿한 집과 가족들이 있었지만, 녹록하지 않은 집안 사정 상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에서 구걸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길에 주님께서 계시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길이 예수님의 길로 이어져 있는가'입니다. 인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확인해보니 죄만 가득하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비록 헐벗고, 아프고, 가난해도 내가 걷는 이 길 끝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반기며 안아주신다면 나의 인생은 세계의 그 어떤 위인들의 삶보다 값지고 은혜로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서 제일 소중하고 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으로 다시 돌아와서 보겠습니다. 그 가난한 소경을 본 제자들은 '랍비여, 이 사람의 장애는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질문을 보면서 그들의 신앙의 상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들은 의식주의와 율법주의에 빠져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고치시고 소생시키시는 그 주님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는 그들의 신앙 수준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립니다. 주님을 곁에 두고도 그분의 뜻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율법에서 배운 대로 앵무새처럼 말하고 즉흥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여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절망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을 두고 그 죄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모습이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이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주여,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 사람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 사람을 지으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아오니 고쳐주시고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소서."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그 소경 앞에서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질문한 제자도 소경도 무척 놀랐습니다. '저 말이 사실일까?'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보통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얻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주로 병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신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9:3-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신 후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받은 소경은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은 소명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이 거대하고 귀한 사역이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까? 주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가난한 그를 기쁨으로 창조하셨고 온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오늘 이 자리에서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신32:10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흙과 침으로 만드신 진흙의 은혜를 소경이었던 그와 우리들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사용하신 흙에 창조주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침을 담아 새롭게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소경은 그 은혜에 순종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성전에서 실로암까지의 거리는 약 2km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걸어가기엔 매우 먼 거리였지만 그는 순종했고, 실로암에 가서 씻었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9:7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참된 순종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준비합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께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아버지를 철저하게 신뢰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 삶에 순종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