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서사기행 31 / 마르세이유Marseille

마르세이유의 저녁식사 마르세이유에 밤이 깃든다 공복은 늘 우리 생을 시험하던가 오늘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전채前菜는 한 잎의 그리움 메인은 반짝이는 침묵 한 톨 후식은 먹다먹다 아직도 다 못 먹고 남은 한 스푼의 외로움 내 마음의 식탁에는 언제나 단 세 가지의 메뉴뿐 그리움 한 잔 마시고 침묵 한 입 맛보고 외로움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군다 |
31. 마르세이유Marseille
옛 갈리아 땅의 북쪽에서 첫발을 내디디며
남으로 남으로 우리는 흘러왔다
지금은 바다바람 드높은 마르세이유의 밤
어디선가 높은 목청으로 힘주어 부르는 군가가
귓가에 들릴 것만 같은 밤
마르세이유 지방 의용군의 군가가
마침내 국가가 된
저 삼엄한 노래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무기를 들어라, 시민 동지여
대오를 갖추어라
전진하자 전진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실 때까지
그러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마르세이유의 밤을 가까스로 비껴서 지나갔다
나는 아무 소음도 더는 듣지 못했고
사방의 밤은 고요했다
마르세이유Marseille -
기원전 7세기 경에는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어 ‘마살리아Massalia’라 불린 도시
‘마살리아’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마르세이유’가 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수도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
오늘에 이르러서는 프로방스 지방의 지중해를 바라보는
평화로운 항구도시
이런 조용한 항구도시에서
어떻게 그처럼 살벌한 극가國歌가 태어났을까
피를 부르는 하도 섬뜩하고도 호전적인 가사로 인해
자라는 어린 세대에게는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를 바꾸자는 말
그대로 두자는 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공식 국가
마르세이유 의용군이 처음 부른 노래가
온 갈리아의 국토에 들불처럼 번져
한 번 채택된 노래는 쉽사리 바꿀 수도 없는 형국
이방인인 나는 마르세이유에 왔고
저 격렬한 노래
군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선동성을 동반하는 선율
‘라 마르세예즈’의 노래 한복판에 담겨 있다
일어나라, 조국의 자녀들아
영광의 날이 왔노라
우리에 맞서는 저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올랐도다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흉포한 적들의 소리가
그들이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대들의 처자식의 목을 베러 온
그러나 ‘라 마르세예즈’는 조용히 우리를 비켜갔다
밤바다에 바람이 인다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가
마르세이유 항구로 돌아오던 밤도 이러했을까
당그라르는 아직도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당테스의 연인 메르세데스를 빼앗아 간
페르낭은 샤또디프에 갇힌 연적이 탈옥할까봐
아직도 어둠 속에 숨어서 떨고 있을까
비르포르는 지금도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까
몬테크리스트 백작은 지금쯤
고단한 복수의 생애를 내려놓고 안식하고 있을까

마르세이유 항구에 밤바람이 인다
알베르 카뮈는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저 이름 높은 서사시의 세계인
트로이와 헬렌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여겼거니와
제국의 항구는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높은 밤 파도가 인다
마르세이유 남쪽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노트르담 드 라가르드 대성당Basilique Notre-Dame-de-la-Garde 의 불빛이
항구의 바다를 조용히 적시고 있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은
라 마르세예즈의 폭풍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질풍 같은 현란한 드리블로
이른바 ‘마르세이유 턴’을 몸에 익혔을까
조숙한 반역아인 시인 랭보Rimbaud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지어 반항하다가
차라리 이 저항의 도시에 묻히기를 희망했을까
나의 말은 신탁神託이다
거짓도 허위도 없다
그리하여 시대의 반항아는 이렇게 노래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 보니 지독한 바보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에게 의탁했다.
반역적 시인은 가고
바다의 파도는 방금도 높다
옛 마살리아 땅에는 언제쯤 파도가 잠들까
폭풍의 도시에 향연이 찾아와서
신성한 술잔을 들어올려
파도치는 밤을 거룩하게 할까
이 지역의 저 이름 높은 생선 요리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먹으며
지독한 저항의 목소리를 쏟아내던 아픈 시인을
조용히 달래볼 수 있을까
부야베스를 먹는다
항구도시의 식사는 고즈넉하다
밤바다의 물결은 시끄럽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저녁식사에 파도소리를 섞어 먹는다
안식의 밤이 오고 있다
문밖에 서 있는 자든
문안에 쉬는 자든
지금은 말없이 누워야 할 시간
목마른 자든
풍요로운 자든
제 둥지로 돌아갈 시간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도 지금은 잠이 들었다
에드몽 당테스의 불우한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고요한 아침’에서 찾아온 나그네가 쉰다
밤의 파도가 조용히 사람의 피로를 달랜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