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는데 방을 나오자마자 가죽피리 소리가 요란합니다.
저녁을 먹다가 잠시 자세를 바꾼다고 궁뎅이를 살짝 들었다 놓는데 피식 새기도 하고요.
전철 계단을 오를 때 뒤에서 오는 사람 얼굴을 향해 발사될까 싶어 힘을 꽉 주기도 하고요.
지난 일요일에는 울아들 저녁 먹여서 보내려고 센트럴시티에 있는 '구슬함박'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신호가 슬슬 오더라구요.
근데 하필 옆 가게 유리창 옆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방귀를 뀐다고 해도 소리나 냄새가 전달될 리는 만무였지만 제 똥꼬가 그쪽 식탁을 향하고 있어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꾹 참아야 했지요.
소파나,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를 참느라 똥꼬 떨림현상이 생길 정돕니다.
전에는 아무리 방구가 나오려고 해도 가볍게 제압이 됐는데, 이제는 부지불식간에 새어나오는 경우가 잦습니다.
똥꼬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도때도 없이 샙니다.
그래도 아직은 방구라는 게 다행입니다.
확실히 방구다 싶을 때는 힘차게 가죽피리를 불지만 어느 순간 똥인지 방군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오겠죠?
하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가 또 이 방구 아니겠습니까?
병원에서 수술하고 나면 이 방구 나올 때까지 굶어야 하잖아요.
장내 가스자동배출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건강한 장을 위하여! 냄새 안 나는 방구를 위하여! ~^.^~
♥관악02번 버스기사 아저씨♥
"학생 서울대학교에 다녀요?"
녹두거리 편의점 파라솔에 걸터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웬 낯선 아저씨가 와서 물었어요. 아마 제 과잠을 보고 아셨나 봐요.
"네."
"신림동에서 자취하나 봐요?"
"아니요. 통학합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벌써 도망가야 했을 멘트였지만 전 남자여서, 의심쩍지만 그냥 대답했어요.
"어이구, 통학하는데 왜 이 시간에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힘들어요?"
그래요. 그날따라 좀 마음이 허했어요. 시험도 있고, 과제는 많고,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아서 벌려놓느라 이리저리 꼬이고...
인간관계는 갈수록 어렵고,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고, 시끌시끌하던 새내기 시절이 한참 지나가고 나니 남은 대학생활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만 남았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그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녹두에서 약속이 끝나고 이젠 새벽 2시가 가까워 오는데 집에 가기가 너무 싫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땡겨서, 비칠비칠 편의점 앞에 외롭게 걸터앉은 참이었거든요.
때마침 누가 말을 걸어주니 의심쩍지만 내심 반가운 마당에, '힘들어요?' 한 마디에 스스르 마음이 풀렸어요.
"네... 힘드네요. 하하..."
"왜, 공부가? 사람이?"
"그냥요. 이것저것... 공부든 사람이든 다 힘들죠. 학년 먹을수록 힘든 그런 거..."
잠깐 기다리라면서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비싼 외국 맥주랑 안주를 사 오셨어요.
먹으라고 하면서 아저씨가 말했어요.
"학생, 관악02 타 본 적 있어요?"
"네, 당연하죠."
"내가 그거 버스기사 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지금 관악02를 실제로 운행 중이신 현직 기사님이셨어요.
이제는 낙성대 일대는 눈 감고도 다니신데요.
아저씨는 딸이 하나 있으셨어요.
공부도 엄청 잘해서 서울대학교 입학하는 걸 오래 전부터 꿈꿨대요.
집안이 넉넉질 못하고 아버지가 버스기사라 돈도 많이 못 벌어다 준다고 매번 미안해했는데도 불평 한 번 안 하고, 하루 진종일 일하고 집에 녹초가 돼서 떡볶이 순대 사 들고 집에 들어가면 늦은 시간인데도 늘 공부하고 있었대요.
그렇게나 예쁘고 착한 아저씨 딸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간지 얼마 안 되고, 하필이면 또 버스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저씨는 모든 걸 포기할까도 생각하셨대요.
매일매일 낮밤으로 술만 퍼마셨고 아내 분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셨대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잔뜩 취한 채로 신림동 일대를 비틀비틀 지나가다가 딸하고 너무 닮은 학생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친구들이랑 재잘대면서 지나가더래요.
문득 술이 확 깨면서 '딸내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제 대학교 입학했겠구나, 아마도 서울대에 들어갔겠지.' 하는 생각이 드셨고, 그 길로 다시 버스 운전대를 잡게 되셨대요.
딸이 지금쯤 제 나이쯤 되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집에 자랑했을지도 모른다고,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키시고는 허허 웃으셨어요.
"그때부터 버스 타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뜯어봐요. 그때 우리 딸 닮은 학생도 탔나 하고.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잠바 뒤에 적힌 말이 뭔지를 몰라. 과에다가 전화를 해 보겠어, 뭘 하겠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우리 딸도 아니고, 딸 닮은 사람 하나 찾자고 이거 시작한 셈이에요.그러다가, 처음에는 안 닮은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고 남학생들도 넘어가고 그렇게 보다가, 나중 가니까 얘들이 우리 딸 친구 후배 선배겠구나 싶으니까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여요.
어쩜 다 이뻐. 삼삼오오 모여 가지고 좋다고 떠드는 것도 예쁘고,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한숨 푹푹 쉬면서 버스에 타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그렇게 또 이뻐, 그렇게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이제 우리 딸도 졸업 다 했겠네. 근데도 아직 버스 몰아요. 습관이 되고 일이 돼서."
"따님 닮으신 분은 찾으셨어요?"
"아니 결국 못 찾았어요. 아마 졸업했을 거에요.
그럼, 어때. 매년 3천명씩 아들딸이 들어오는데요."
"아"
"서울대 버스기사 귀 열고 몇 년 하다 보면 시험기간이 언젠지도 다 알아요. 유명한 수업은 이름도 외고, 어떤 교수가 얼마나 못 가르치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럼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는 잘 알겠어요.
아무튼간에... 힘든데 무작정 힘 내는 것보다, 힘들면 가끔 이렇게 맥주 먹고 쉬어.
그리고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응원해 주고 있다고 생각도 해보고 그래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이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고 느끼면 얼마나 가슴 따뜻하고 좋아."
힘들죠. 힘든 세상이에요. 취업도 힘들고, 뭐 해 먹고 살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은 군대 간다, 대학원 간다, 교환학생을 간다... 하나 둘 떠나고, 새내기 때 맘 맞던 친구들도 연락이 슬슬 끊기고.
어떻게 보면 제가 앞서 했던 고민은 아저씨 얘기 들었다고 해결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새내기 시절을 보내고서 남은 대학생활은, 아니 남은 인생은 정말로 그저 외로움을 참고 견디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몰라요.
-세상의 모든 감동/서울대학교 대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