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단월(丹月)은 고려시대 문종15년(1061년) ~ 인종14년(1136년)부터 있었던 오랜 지명입니다. 이곳이 주요 교통로가 되다보니 단월역(丹月驛)이 있었고 이전에는 단월부곡(丹月部曲)이 있었습니다.
단월역(丹月驛): 옛 단월부곡(丹月部曲)의 땅으로, 주 남쪽 10리에 있다. 역 남쪽에 계월루(溪月樓)가 있다. 丹月驛。古丹月部曲之地。在州南十里。驛南有溪月樓。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충주목 우역(郵驛)
대소원면(舊 利柳面) 검단리는 조선시대부터 검단리(檢丹里)라 표기하였고 전국에 검단(檢丹)이 여럿 보입니다. 지명유래가 애매하고 풀이도 제각각인데, 처음에는 어느 일정한 지점(地點)을 가리켰으나 시대 흐름에 따라 이동하여 넓은 범위를 부르는 지명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월(丹月)이란 지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도 양평군(楊平郡)에 단월면(丹月面)이 있고, 음성군 원남면(遠南面)에도 단월리(丹月里)가 있었으나 해석은 다릅니다.
<채색필사본 동여도(東輿圖). 1849년 ~ 1863년 간행.>
검단(黔丹), 달천진(達川津), 연주산(連珠山),
단월(丹月)이 보입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861년 간행.>
검단(黔丹), 달천(達川), 단월(丹月)이 보입니다.
채색필사본 동여도(東輿圖)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1872년 지방지도>
단월역(丹月驛) 발참(撥站) 자관남거십리(自官南距十里). 충렬사(忠烈祠), 사창재달천 자관남거십리(社倉在達川 自官南距十里) 라 써있습니다.
단월(丹月)의 유래는 단월역과 관련 있는데, 단월역(丹月驛)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 1910년 측량, 1913년 제판.>
하단월(下丹月), 송정리(松亭里), 상단월(上丹月)이 보입니다.
여기서 유의해 볼 것이 상단월(上丹月)과 능동(陵洞, 가타카나로 눈코루라 써 있는데, 능골을 일본어로 음표기한 것이다.)사이 대로변(大路邊)에 작은 검정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이 곳이 유주막(有酒幕)입니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 1915년 측량, 1916년 제판.>
단월리(丹月里), 하단리(下丹里), 단신리(丹新里), 송정리(松亭里), 상단리(上丹里)가 보입니다. 단월리(丹月里) 빼고 나머지를 괄호()로 표시한 것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반영합니다.
단월리(丹月里)가 법정리동(法定里洞)이 된 것이고 하단(下丹), 단신(丹新), 송정(松亭), 상단(上丹)마을은 자연마을로 보면 됩니다. 한국의 법정리동(法定里洞)은 1914년에 정한 걸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2차지도에서 언급한 유주막(有酒幕)이 3차지도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1914년>
주막명(酒幕名) 유주막(有酒幕) 유주막 단월리(丹月里)가 보입니다.
<충주관찰지(忠州觀察誌) 1931년. 정삼철 편역>
'달천강(達川江) 상류의 주막(酒幕)에서 도수(導水)하여'란 구절이 나오는데, 유주막(有酒幕)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도 유주막 부근에서 농업용수를 끌어다 달천 일대에 관개(灌漑)하고 있습니다.
상단(上丹)마을 토박이 어르신께 유주막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주막이 여섯 집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유주막(有酒幕)은 무슨 뜻일까요? 주막(酒幕)이 여러 집 있으니 <주막거리>며 유주막(有酒幕)이라 한 것입니다.
이제 검단(檢丹)과 단월(丹月)이란 지명을 살펴 보기로 합니다. 흔히 쇠를 순우리말이라고 착각하나, 한자에 뜻과 음이 같은 쇠(釗)자가 있으므로 한자에서 온 말이 분명합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말이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검정(블랙 black )의 검자는 한자 검(黔)에서 나온 말입니다. 검정은 한자로 검정(黔睛)이고 검댕이도 검(黔)자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흙이 검어서 <거무스름하다, 검다>라는 말이 흙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잘못입니다. 흙은 꼭 검은게 아닙니다. 검정은 북 현무(北 玄武)란 말을 보면 북쪽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말 <검다>라는 말은 한자 검(黔 검을 검)자에서 왔다고 했는데, 인천광역시 서구에 검단동(黔丹洞)이 있습니다.
전국에 검단(檢丹 혹은 劍丹, 黔丹)이란 마을이름과 산이름이 많습니다.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黔丹)이란 지명을 풀이하기를 <갯벌 색깔이 검고 붉은데서 유래했다>하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검은건 맞지만 붉은데서 유래했다는 말은 잘못입니다. 그냥 글자풀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명 끝에 붙는 단(丹)은 땅이란 뜻입니다.
충주시 대소원면(大召院)과 앙성면 단암리(丹岩里)에 검단리(檢丹里)가 있는데 대소원면 검단리는 마을이 커져 상, 하검단리로 나누어졌고, 앙성면 검단리(檢丹里)는 말암리(末岩里)와 한 자씩 따서 단암리(丹岩里)가 되었습니다. 즉 단암리(丹岩里)의 한 마을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둘다 한자로 검단리(檢丹里)라 쓰는데 연관이 있을 겁니다.
한자 그대로 뜻풀이하면 말이 안됩니다. 검단(檢丹), 붉은 것을 검사한다? 이런 경우 이 지명은 애초에 한자로 지은 지명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지명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애초부터 한자로 지은 지명. 이런 지명은 뜻풀이가 쉽습니다. 예)탄금대(彈琴臺).
2. 우리말지명을 한자로 음표기한 지명.
예) 충주댐 인근에 있는 사우앙산(四雨央山).
3. 우리말지명을 한자로 뜻을 옮겨 쓴 지명.
예) 범바우를 호암(虎岩)으로.
4. 우리말지명을 한자로 음옮김 + 뜻옮김한 지명. -- 이 경우가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떤 소리를 먼저 듣고 뜻을 새겨 알아듣는다고 한다면 왜 이 방법이 쓰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은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는 소리이며 음성입니다. 사람이 하는 말을 음성(音聲)이라 합니다.
예) 엄정면 논동(論洞).
논동은 논골에서 온 지명으로 논(畓)을 음옮김하여 논(論), 골을 뜻옮김하여 동(洞)자를 썼습니다.
5. 우리말지명을 한자로 뜻옮김 + 음옮김한 지명. ---> 이 경우도 뜻을 잘 새겨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 대소원면 검단(檢丹).
위에 쓴 것처럼 검단(檢丹)이란 말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말이 안되므로 애초에 한자로 지은 지명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말 지명을 뜻이 좋은 한자를 골라 음표기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시행착오법을 써 볼 필요가 있습니다. A, B가 조합하는 순서쌍을 (AA, AB, BA, BB)라고 쓸 수 있습니다. 검단(檢丹)이란 암호를 분석하는데 있어 <검 + 단>으로 말을 나누어 여러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선 검(檢)자는 땅이름으로 부적절해 보입니다. 위에 썼지만 어떤 말을 알아들으려면 음(音)이 중요합니다. 음(音)이 뜻(意)보다 우선합니다. 그렇다면 <검>자는 적당한 한자로 음(音)을 옮긴 말로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검, 감, 곰>자는 신성한 의미를 지니는 <神 혹은 크다 뜻>이라 하는데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검단>에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자를 연상해서 검단(儉壇)을 신성(神聖)한 것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검은 바위를 <검배>라 하고 한자로 현암(玄岩)이라 씁니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현암리(검배, 검바위)가 있습니다. 많은 추측과 분식(粉飾 ㅡ포장)이 있지만 여기서는 배격(排擊)합니다. 원뜻을 알아보자는 겁니다.
검배는 <검은 바위>를 말한다고 썼는데 크고 멋진 바위에 기도 드리는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이 땅에 살던 여인들의 풍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신성한 바위였을 것입니다.
검단(檢丹)의 검(檢)자는 <黔>자 대신 쓴 한자(漢字)일 것입니다.
장례식때 상복(喪服)의 색깔이 검정색인데 귄위를 상징하지만 때로 부패 혹은 불결의 이미지입니다.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음식의 색이 검어서 먹기 꺼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오골계(烏骨鷄)가 그런데 부패한 음식이 검은색입니다. 이런 이유로 검(黔)자를 회피하고 대신 음이 같은 검(檢)자를 선호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에는 단(丹)를 해석할 차례인데 지명에서 앞자는 <땅의 성질>을 뜻하고 뒷자는 <땅, 마을>의 뜻입니다. 일본어에서 <타니たに>는 <계곡, 골짜기, 골>의 뜻입니다. <타니를 줄이면 탄이 되고 변형하면 단>이 됩니다. 그리고 땅의 옛말이 <단 혹은 탄>에 가까운 발음이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예) 예전 충주에 있었던 이차탄부곡(異次呑部曲),
연탄처(淵呑處).
예전 진천군에 있었던 지명 협탄소(脇呑所).
그렇다면 검단(檢丹)은 검단(黔丹)이며 <검은땅, 거문골>의 뜻이 됩니다. 과거 대소원면 검단리에는 철광산이 있었고 쇠를 벼리는 풀무골이 있었다고 합니다. 철성분이 많은 땅은 쇳가루(사철砂鐵) 때문에 검습니다. 철이 많이 함유된 바위도 검습니다.
*하검단이【 마을】먹검단이라고도 부름.
*풀무골【 골】하검단리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풀무질을 하였다 함. [충주의 지명, 1997년]
반대로 생각해서 <거무스름한 땅>을 한자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검(黔 ㅡ뜻옮김) + 단(丹 ㅡ땅의 음옮김] 로 쓸 수 있고 후대에 검단(檢丹)으로 표기하였다고 봅니다. ---> 검다는 이미 우리말이 된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뜻옮김이라 했습니다. 검을 검, 하지만 음도 검이니 음옮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자에서 유래한 우리말이기 때문입니다.
※ 거무스름한 땅 ㅡ> 검은땅 ㅡ> 검땅 ㅡ>검단(黔丹) ㅡ> 검단(檢丹).
충주시 단월(丹月)의 경우 다른 지방에 같은 지명이 보이는데 단(丹,붉다는 뜻) + 월(月,달. 양달, 응달, 난달, 비탈(빗달))에서 보듯 뒷글자 달을 밤에 보는 천체 달(月)로 보기보단 땅(地)으로 보고자 합니다.
가까운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는 오미자마을로 유명한데 한자로 생달리(生達里)라 씁니다. 생달리(生達里)란 지명의 유래를 <산달리>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풀어쓰면 <난달리>입니다. 양달을 달리 <난달>이라 하는데 험준한 산속에 자리한 <볕이 잘 드는 마을>이란 뜻에서 쓴 말일 겁니다.
그러면 단월(丹月)은 <붉은땅>이란 뜻이 됩니다. 단월(丹月)이란 지명은 가까운 음성(陰城)에 있었고 전국에 몇 군데 있습니다. 왜 땅이 붉은색이었을까요? 이 지역은 달래강 인근이 되는데 주기적인 물난리로 들에 붉은 뻘이 쌓여 <붉은땅, 붉달, 북달, 단월(丹月)>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다른 하나는 석회암이 풍화된 땅은 철분성분이 풍화되어 검붉은 색을 띕니다. 테라로사 토양이라 하며 붉은 진흙땅입니다.
단(丹)은 현대에는 <붉다>고 새기는데 조선시대에는 <발글 단>이었습니다. 뜻은 밝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말한것 같이 지명에서 단(丹)자가 앞에 오면 <붉다> 는 뜻이 되지만 뒤에 오면 <땅>이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