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드라이브샷은 101등, 퍼팅은 1등… 미국 PGA 플레이오프 1000만달러짜리 반란
스니데커
민학수 기자/조선일보 : 2012.09.25.
페덱스컵 보너스까지 챙겨… 우즈·매킬로이 이름값 못해 통산 4승 선수의 놀라운 퍼팅 - 2.4m 이내 퍼팅 안 놓쳐 간이식 받고 응원온 아버지, 출산 앞둔 아내에게 큰 선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챔피언십 우승 상금 144만달러와 올 시즌 플레이오프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페덱스컵 보너스 1000만달러 등 모두 1144만달러(약 128억원)의 상금을 받은 브랜트 스니데커(32·미국)는 "엄청난 돈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까지 포함해도 2007년 투어 데뷔 이후 4승밖에 거두지 못한 그는 "늘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해서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묻곤 했는데 오늘은 그 같은 꿈을 이루게 된 날"이라고 했다.
▲ 24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 우승으로 모두 1144만달러(약 128억원)의 상금과 보너스를 벌어들인 브랜트 스니데커(미국)가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작지 않은 체격(185㎝·84㎏)이지만 스니데커는 드라이브샷 거리(288.7야드·101위)와 정확성(60.5% ·101위), 그린 적중률(63.75%·109위) 등에서 모두 PGA투어 100위 이내에 못 들 정도로 그리 깊은 인상을 주는 골퍼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중 2.4m 이내에서는 실패한 적이 없고 10m 안팎의 거리에서도 버디를 쏙쏙 잡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퍼트 능력이 그를 '1000만달러의 사나이'로 거듭나게 했다. 스니데커는 PGA 투어의 퍼팅 능력 측정 방식인 '퍼팅으로 획득한 타수(strokes gained-puttingㆍ거리별 평균 퍼트 수를 대조해 누가 퍼팅을 잘하는가를 측정하는 방식)'에서 올 시즌 0.860타를 기록해 2위 루크 도널드(0.797타·잉글랜드)를 크게 앞설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스니데커가 챔피언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고향에서 출산을 앞둔 아내, 지난해 간이식 수술을 받고도 응원 나온 아버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있는 스윙 코치의 아들을 살뜰히 챙기면서도 눈앞의 한 샷에 집중할 줄 아는 내면의 힘이 있었다.
24일(한국 시각)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 4라운드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레이크 골프장(파70·7154야드)에는 강풍이 몰아쳤다. 30명의 정상급 출전 선수도 러프로 날아가는 샷과 속출하는 3퍼트에 고개를 흔들었다.
일생의 꿈이 걸린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서도 스니데커는 애틀랜타의 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다. 스윙 코치 토드 앤더슨의 아들로 평소 조카처럼 아끼던 터커가 이달 초 큰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아직 혼수상태인 터커에게 "세계 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이길 수 있을까"라고 물었는데, 터커는 마치 우승을 기원하듯 한쪽 눈을 찡끗하는 것처럼 보였다. 터커를 위해서라도 스니데커는 꼭 우승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간이식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비행기를 타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대회장을 찾은 아버지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함께 2타 차 공동 선두로 출발한 스니데커는 3번홀에서 3m 버디 퍼트에 성공해 단독 선두로 나섰지만, 6번홀(파3)에서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며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하지만 로즈도 5·6번홀 연속 보기를 기록하며 함께 흔들렸다.
8번홀(파4)에서 12m 버디 퍼트, 13번홀(파4)에서 6m 버디 퍼트에 성공한 스니데커는 15번홀(파5)에서도 버디를 잡아내며 선두를 달렸다.
로즈는 11·15번홀에서 버디를 잡았다. 우승을 결정 짓는 한 방은 17번홀(파4)에서 나왔다. 티샷을 깊은 러프에 빠뜨린 스니데커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저드로 둘러싸인 그린을 직접 공략했다. 두 번째로 샷 한 공이 해저드와 그린 경계에 걸려 한숨 돌린 스니데커는 8m 거리에서 웨지로 친 어프로치 샷이 그대로 홀에 들어가 버디가 된 덕분에 2위 로즈와의 격차를 4타 차로 벌렸다.
18번홀에서 보기를 한 스니데커는 이날 버디 5개,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로 2타를 줄이며 합계 10언더파 270타를 기록해 로즈(7언더파)를 3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이날 스니데커의 퍼트 수는 25개에 불과했다. 플레이오프 3차전까지 페덱스컵 랭킹 5위였던 스니데커는 이번 우승으로 2500점을 얻어내 합계 4100점으로 매킬로이를 제치고 페덱스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스니데커는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와 아프신데도 응원 나오신 아버지, 그리고 교통사고에서 회복 중인 터커에게 이 우승을 바친다"고 말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두 차례나 우승한 매킬로이는 마지막 날 4타를 잃으며 투어챔피언십 공동 10위(1언더파)에 머물러 페덱스컵 랭킹 2위(2827점)로 밀려났다. 페덱스컵 2위 보너스는 300만달러였다. 타이거 우즈(미국)도 2타를 잃고 공동 8위(2언더파)에 그쳐 페덱스컵 랭킹 3위(2663점)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계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종전에 진출한 존 허(22)는 투어챔피언십 29위(14오버파)를 기록했고, 페덱스컵 랭킹에서도 29위에 올라 보너스 18만달러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