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74/‘노나메기’]문화가 뭐예요?
모처럼 발품을 팔아 서울로 문화여행(박수근전, 박재동 시사만평전, 백기완 추모회화전)을 다녀온 축령산 도반님이 새벽단상을 보내왔다. <대한민국 문화의 보고/옛날 같으면 태어나서 몇 번 못가고/지구와 결별하는데/대중교통이 너무 좋아/언제든지 마음만 내면/삶을 충전할 수 있는 곳/서울이다/가끔 다녀가면 좋을 것같다//삶의 필수 비타민은 문화이고/인생 2막 소화제는 예체능이다//서울 사람은 자연으로/시골 사람은 서울로/비타민 충전하러 갑시다>
삶의 필수 비타민이 문화이고, 인생 2막 소화제가 예체능이란다. 그의 단언이 귀에 꽂힌다. 낙향거사의 애로사항이 있다면, 대한민국 문화의 90% 이상을 서울지역이 독차지하고 있기에 늘 ‘삶의 비타민’에 목마르다는 것이다. 마음을 내어 삶을 충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文化를 생각한다. 문화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얼마 전 ‘백기완노나메기재단’(https://baekgiwan.org)’ 초기화면에 있는 특강동영상에서 백선생이 정의한 ‘문화’는 이렇다. “한번 물어보겠수?/문화가 뭐예요?/문화는, 문화는,/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안 보일 때/가랑잎이라도 모아서 불을 지펴가지고 앞을 밝혀주는 것을 문화라 그러는 겁니다./맞습니다. 문화라는 것은/썩어 문드러진 쓰레기들을 모아 불을 질러/추위에 떠는 우리들의 몸을 따뜻해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앞을 밝혀주는 것/요걸 가지고서 문화라 그러는 겁니다./그런데,/우리가 지금 쓰레기를 모아가지고 불을 당겨서 앞을 밝히고 있어요?/하고 있냐고!” 문화라는 것은 가랑잎이라도 모아 불을 지펴 앞을 밝혀주는 것이란다. 하하. 역시 선생님답다. 문화라는 것을 이렇게 쉽게 풀이한 정의가 누가, 언제, 어디 한번 있었던가? 맞다. 보지 않아도 트레이드인 말갈기머리를 손으로 빗어넘기며 열강하시는 모습이 선하다. '(불을 밝히는 일을)하고 있냐?"고 벼락같은 웨장을 지르는 듯 모습을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문화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윤활유’라고 생각해 왔다. 문화가 없다고 생각해 보시라? 그야말로 앞이 캄캄해지지 않는가? 지구촌을 열광하게 만드는 ‘K-문화culture’의 놀라운 행진과 그 위업들을 보라. 샤이가, 방탄소년단이, 조수미가, 봉준호가, 윤여정이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음악, 미술, 영화, 문학 등 문화의 정수인 예체능이 사정없이 꽃들을 피우고 있다. 문화선진국이라해도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자랑스러울손! 한반도 문화강국이여!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문화는, 우리의 ‘오래된 미래’에 다름 아니다. 결단코 흔히 섹스로 빠지기 쉬운 '쾌락'이 아니다. 그런데도 몰상식한 정치는 한때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 은밀히 목을 조였다. 그게 어디 21세기 백주대낮에 될 법이나 한 짓인가? 백기완(1933-1921.2.15.) 선생은 독재정치를 비롯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모든 행태에 한평생 분연히 나섰다. 1986년 겨울, 대학로에서의 사자후獅子喉를 들어보았거나 기억하시는가? 이런 사자후는 70대초 장충동공원 30만인파와 1992년 여의도광장 100만인파를 휘어잡던 정치인 김대중 선생의 사자후와 버금갔다고 하면 서운할 일이다. ‘영원한 거리의 투사’ ‘불멸의 재야’ 한 시대 '당당한 역사'이셨던 당신이 가신 지 1년이 막 지났다. 선생님을 기리는 43명이 추모글이 아닌, 당신의 뜻을 잇겠다는 다짐의 글을 모았다. 『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여럿이 함께 씀, 돌베개 2022년 2월15일 펴냄, 403쪽, 17000원)가 그 책이다. <모내기>로 유명한 민중화가 신학철 님등 열 여덟 분이 그림을 그려 추모회화전을 3월 2일까지 열고 있다(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 많은 분들의 힘을 모아 ‘노나메기재단’을 만들고 ‘백기완기념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말 노나메기의 뜻을 아시는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며,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드러진 우리말인가. 영원히 고마울 선생님은 불굴의 ‘청년혁명가’였다. 민중사상가이고, 통일운동가였다. 예술가였는가 하면 우리말 전도사(한글애호가)였으나, 바보가 아닌 ‘울보’였다.
1년 전, 누구도 알아봐 줄 이 없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선생님을 기억하며 졸문을 썼다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편지 36신]아, 백선생님 - Daum 카페. 생각지도 않았는데, 전라도 광주에서 펴내는 월간지 <전라도닷컴>에 실려 깜짝 놀랐다. 눈 밝은 편집자가 무척 고마웠었다. <백기완 우리말>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문화에 살고 문화에 죽자!
첫댓글 거장들의 문화에 대한 비유를 비교해봐도 되나요. 우천님!
백기완 샘 ^ 불쏘시개^
축령산 고수님 ^ 비타민^
우천 샘 ^윤활유^
각각의 비유 우열불가입니다.
그러나, 느낌상으로는 윤활유가 최고!
인생2막에서 맘이 녹쓸면 우울해져요. 윤활유로 기름칠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