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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예닮
Chapt 2. 하나님 대사의 행동 지침
06.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빌3:12-14
{오륜교회 이야기 ------}
지난 1989년 설립 예배를 드린 오륜교회가 걸어온 30년을 생각해보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한 멤버 없이 재수생 두 명과 함께 개척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는 1만 8000명이 주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다니엘 기도회’는 이제 1만100여개 교회가 참여하는 한국 교회의 진정한 연합 기도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세워진 ‘사단법인 꿈이 있는 미래’는 3000여 교회가 그 콘텐츠를 이용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인수한 영훈 초.중,고등학교는 5명의 교목을 두고 자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채플을 드리는 한편,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진정한 미션스쿨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영훈 학교와는 별개로 2019년3월9일 기독교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의 용사를 세우고자 ‘꿈미 대안학교’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사모 리조이스’는 목회 현장에서 이러저러하게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7,345명의 사모님들에게 쉼과 회복을 얻게하고 있습니다. 2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IDOS 인터넷 꿈희망터’는 연 40만명 이상의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치유하며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프렌즈’는 학교 사역과 우물 사역들을 비롯해 13개국 976명의 아동들을 돕고 있고, ‘섬김과 나눔 위원회’에서는 독거노인, 다문화 가정, 탈북자, 소년소녀 가장 등 연 300명을 섬기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 선교회’에서는 주일마다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양질의 진료와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륜교회는 1년에 60억원 이상의 재정을 구제와 선교에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륜교회를 한국 교회를 섬기며 동시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교회로 세워 주셨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일으키고 가정을 치유하며, 주의 오실길을 예비하는 교회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지난 30년을 멈추지 않고 달려 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려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달려가노라 --------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 끊임 없이 달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본문에서 ‘달려가노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b)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b)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이 후 끊임없이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죽음이 임박한 순간까지 변함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사도바울은 죽은 바로 직전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인생을 회고하며 ‘걸어온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달린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 안디옥에서 구브로 섬, 버가,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드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레아, 아덴, 고린도, 에베소, 예루살렘, 나중에는 로마에 까지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은 길입니다. 인생은 걷고 달리는 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며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왜 달려야 하는가? -------
첫째,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3:12a)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고, 삼층천까지 다녀오는 등 누구보다 많은 기적과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나 자신이 아직 구원의 온성에 으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 즉 부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믿음이 자라야 하는데 아직 그렇게 자라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닮은 거룩한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은 구원을 받았고,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기 위해서,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계속적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라”(빌2:12b)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때문에 오늘도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둘째,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달려가는 인생을 살지 않으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페달을 지속적으로 밞지 않으면 아무리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라도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려가지 않고 멈추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맞습니다. 백번 강조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속도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주님께로 정한 사람입니다. 저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방향이 분명합니다. 만약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속도를 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다면 필시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속도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선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분명 해서인지 ‘이만하면 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 여러 가지 이유로 멈추어 있습니까? 오늘 이후로 다시 일어나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
달리지 않고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걷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너무나 많은 세상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세상 것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들입니다. 바로 그 보이는 것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실족하여 넘어지고 맙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던 분들중에 어떤 사람이 시험에 들고 신앙의 행진에서 낙오하던가요? 속도를 늦춘 사람들입니다.
뉴질랜드에는 키위라는 새가 있습니다. 부리가 긴 이 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날지도 못합니다. 키위는 살고 있는 곳이 화산지대여서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하다 보니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날개와 눈의 기능이 퇴화해 버렸습니다. 육체의 기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재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농담처럼 30세가 넘으면 밥먹는 근육과 수다 떨고 잔소리하는 근육만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고인 물이 썩듯이 인간도 안주하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는 날까지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달려가지 않은 인생은 넘어지고 맙니다. 대형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이 왜 넘어져서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까?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도 지금이 안주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30년 넘게 쉽 없이 달려 왔으니까 좀 쉬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기를 멈추면 넘어짐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갑니다. 만약 제가 오늘 이 상황에 지난 30년의 부흥과 성장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오륜교회 역시 썩고 병들고 말 것입니다. 머지않아 생명력을 잃고 화석화된 교회, 종교인들만 북적거리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달려갑니다.
둘째,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믿음의 행진에서 뒤처지게 되면 반드시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사탄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서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신25:18a)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말렉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을 상징합니다. 아말렉이 구원받고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공격했습니까? 비열하게도 피곤하여 행군 대열에서 뒤처진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대열에서 이탈한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무리에서 뒤처져 낙오한 자들이었습니다.
신앙의 행진에서 사탄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뒤처져서는 안됩니다. 군대에서 행진할 때 뒤쳐진 병사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부대우너 전체가 전우애를 발휘하여 군장과 총을 대신 메고, 부축하여 함께 행진을 계속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모든 성도가 홀로 걷지 말고 뒤처진 자가 있으면 붙잡아 일으키며 세워주며 함께 저 천성을 행해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달려가는 인생을 사는가? ------
첫째로 사명이 분명한 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b)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명입니다. 바울은 사명을 주 예수께 받은 것이라고 말했고, 그 사명을 위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행20:24a)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명과 사명입니다.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대사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 나아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에는 기본적 사명, 다른말로 하면 스스로의 사명이 있고,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깊은 연관성이 있고, 우리의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기본적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자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또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대사로 보냄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목사와 선교사만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나 어떤 달란트를 가지고 있든지 다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로 부터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감당하는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또 이 사명 때문에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달려가는 자에게 푯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푯대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푯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이유이며 내 인생의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푯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늘상 던지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과정을 밟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처럼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람은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푯대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거룩한 비전을 품게 하고, 그 비전을 따라 행하시는 분입니다.
오륜{우리}교회 비전은 무엇일까요? 상가에서 의자 13개를 놓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님께서는 제 마음에 오륜교회가 한국 교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강력한 마음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았지만 저는 이 비전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하나님은 그 비전을 지금도 이루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왜 지금 다니는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연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비전을 그 교회에서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며 함께 달려야 합니다. 반대하는 자가 있고, 핍박하는 자도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우리는 비전을 향해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미국의 탁월한 기독교 지도자 존 맥스웰은 ‘성공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과 비전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그 꿈을 위해 끊임 없이 나아가지만 야망을 가진 자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하지만 비전의 사람은 계속 나아갈 뿐 아니라 도전하며 나아갑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증기선 실험이 있던 날, 증기선으로 뉴욕에서 올버지 까지 가는데 무려 32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그날 사람이 노젓는 것보다 증기선이 더 느려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 되었을 때 마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느린 자동차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맨 처음 공중을 날았던 비행기는 불과 몇 초만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경멸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월리엄 케리의 말처럼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 위대하신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주하지 말고 은혜의 지난 시간을 뒤로한 채 또다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하나님의 대사는 한결같이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패배자처럼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주 예수께로 부터 받은 사명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달리는 인생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비전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거룩한 비전을 바라보며 달리는 인생을 사십시오. 멈추면 넘어집니다. 속도를 늦추면 시험에 듭니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십시오. 주님이 내 인생을 부르시는 그날까지 저는 힘껏 달릴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의 대사여 가라 세상으로. 김은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