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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문명 교류 길목, 유통, 장터로 우뚝
한때 대구의 8대 구군(區郡) 중 낙후지로 분류되며 ‘대구의 오지’로 불리던 북구가 대구의 물류, 유통,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1988년 관음동에 한강 이남 최초로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서더니, 1992년에는 산격동에 ‘유통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대구종합유통단지가 들어섰다.
칠성동, 팔달동, 원대동, 산격동 등지에는 해방 이후부터 전통시장들이 곳곳에 들어서며 민초들의 생활경제, 골목경제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통시설, 전통시장, 물류단지는 보통 지역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장의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 게 보통이지만 북구의 시장, 물류, 유통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시장의 필요’외 역사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시 북구가 유통 1번지로 자리매김한 과정은 많은 역사·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키워드를 ▷금호강 ▷팔달교 ▷고속도로 접근성으로 요약한다. 이 세 요소를 잘 조합, 정리해 보면 북구가 어떻게 대구 유통의 중심으로 부상 했는지 알 수 있다.
‘유통 북구’ 도약에는 금호강의 후광이 있었다. 고대사에서 모든 문명의 발전과 전파는 강(江) 중심으로 전개된다. 선사시대 이미 대구엔 많은 부족들이 문명의 싹을 틔우고 있었는데 이 정치세력들은 금호강을 따라 문물을 교환하고 있었다.
적게는 대구경북의 금호강 수계(水系)부터, 넓게는 금호강-낙동강-한강을 연계한 일본, 북방까지 교역 루트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금호강을 따라 전개되었던 문물교류의 흔적은 대구경북의 고분에서 숱하게 확인된다. 대표적인 것이 불로동고분군에서 발견된 상어뼈다. 동해, 남해세력의 문물이 낙동강-금호강을 타고 올라와 불로동고분군 세력에게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림문화재연구소 박승규 소장은 “금호강 연암산 밑자락에서는 상어 뼈는 물론 정어리 같은 생선뼈가 심심찮게 출토되고 있다”며 “이는 선사시대 금호강이 남해 해상세력과 내륙을 연결하는 교역로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사시대 금호강을 통한 교역은 삼국시대-고려-조선에까지 이어져 왔음이 확인된다. 특히 조선 후기 사문진은 부산-서울을 있는 중요 물류 기지였을 뿐 아니라, 일본 제품의 수입 루트로도 기능 했다. 당시 금호강이 특산품, 세곡(稅穀) 조운(漕運)을 담당하는 주요 수운(水運) 통로로 활약했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현대에 들어와 ‘유통 거점 북구’를 가능하게 했던 직접적 사건은 1988년 팔달대교의 건설이었다. 대교의 건설은 교통에 있어 대구 경제의 남북을 있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물류, 유통 차원에서 칠곡, 구미, 안동, 영주, 군위 등 농산물이 대구로 유입되고 대구의 공산품이 경북의 중·북부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4년에 완공된 중앙고속도로는 대구시 북구의 전통시장, 유통경제 차원에서 더없는 호재였다. 근거리, 소규모, 지역 상권에 머물던 북구 경제가 경북의 중·북부로 확대되면서 광역 유통망을 형성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1970년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도 대구 물류의 동서축 연결과 김천, 구미, 칠곡, 경산 경주에 이르는 농·공산품 유통망 구축에 든든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칠성시장: 해방 이후 대구에 장터 열어 민초들에게 경제 터전
북쪽 하늘 북두(北斗)의 기운이 넓은 장터를 열어 민초들에겐 상리(商利)를 베풀고 나라에는 기업을 열어 국리(國利)를 펼쳤던 현장, 바로 칠성시장이다.
도시철도 대구역사 광장에는 일곱개 바위가 놓여있는데 이 바위들이 칠성시장의 유래가 된 바로 ‘칠성바위’다. 이 바위들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로 오래 전부터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늘이 지역민들을 먹여 살릴 길지(吉地)로 장터를 예비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한국 경제에 큰 획을 그은 삼성, 쌍용, 대성 세 기업이 이 일대에서 태동한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
칠성시장이 북구에 장터를 연 것은 1946년. 해방 직후 정부가 전통시장들을 재정비 하면서 시장공영화정책에 의해 ‘북문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됐다.
개장 초기에는 동촌, 하양 등지에서 사과와 농산물이 많이 집결했고, 한때는 동천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칠성시장’ 이라는 단일 이름으로 불리지만 시장 전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장연합체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칠성시장 ▷경명시장 ▷대성시장 ▷칠성꽃시장 ▷대구청과시장 ▷삼성시장 ▷북문시장 ▷능금시장 ▷가구시장이 각개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취급 품목은 만물상급으로 다양하다. 가장 많은 품목은 식자재로 농산물, 청과물과 수산물이 주종을 이룬다. 거기에 식기 및 주방용품, 생활용품도 많이 거래되고 근처에 가구거리, 화훼거리, 문구거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쨌든 칠성시장은 해방직후 혼란한 정국에서 장터를 활짝 열어 민초들에게 생활, 유통, 경제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칠성시장의 맛집들=칠성시장의 점포수는 노점을 포함해 2,000개 쯤 된다. 이 중 식당은 약 300여 곳. 칠성시장 식당 음식의 특징은 다양한 메뉴. 횟집, 돼지고기, 족발, 곰탕, 국밥까지 전 메뉴를 망라하고 있다.
칠성시장 맛집의 원조는 43년 동안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닭곱창의 명가 ‘진주식당’이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닭곱창은 막걸리 주당들을 불러들이며 꾸준히 맛집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출연 여부가 맛집 기준은 아니지만 지난해 진주식당은 이경규의 ‘편스토랑 추억의 닭곱창 편’에 소개돼 전국 미식가들을 자극했다.
닭곱창이 막걸리파들을 자극한다면, 소주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곳은 석쇠불고기의 명가 ‘단골식당’이다. NH농협 남쪽에 있는 석쇠불고기골목은 몇 해 전 박세리가 방문해 화제가 된 곳이다. 이골목이 대구를 넘어 전국적인 명소로 데뷔한 것은 2015년 SBS ‘삼대천왕’에 나오면서부터. 당시 백종원 씨는 나주 연탄불고기·김천 고추장불고기와 함께 단골식당을 3대 석쇠불고기 맛집으로 선정했다. 달달한 양념 맛이 밴 돼지고기와 연탄불과 기름이 엉겨 붙은 절묘한 불맛이 이 집만의 비밀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손님들이 이 골목을 거쳐 갔다. 1980년대엔 운동권 학생들의 은밀한 모의 장소였고, 삼성 야구가 잘나갈 땐 프로야구 팬들의 뒤풀이 장소였다. 카바레 춤꾼들의 작업(?) 장소였고, 공사판 날품팔이들의 허기를 달랠 주는 생계현장이었다. 언택트로, 비대면으로 사람과 사람사이 연대가 점차 희미해지는 요즘, 과연 누가 이들 뒤를 이어 시장으로 향할까.
◆팔달신시장: 1986년 팔달대교 완공 후 대구 농산물 집산지로
서두에서 언급했 듯 고대 금호강은 지리상의 요충지, 수상교역의 중심이었다. 4~5세기 불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해산물, 남해세력의 부장물은 고대에 이미 부산 낙동강과 금호강을 잇는 수상 교역로가 있었다는 증거다. 금호강 특히 지금의 팔달교 일대는 대구의 남북을 연결하던 교통, 국방의 요충지이자 남해 해상세력들이 드나들던 수상교역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현재의 ‘팔달’(八達)이라는 지명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역사와 전통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팔달시장은 1969년도에 형성 되었으니 올해로 개시(開市) 53년째를 맞는다. 1986년 팔달대교 건설은 팔달시장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대교가 들어서기 전 대구 농수산물은 칠성시장에서 주로 거래되었는데, 이 다리가 들어서면서 팔달시장이 지역 농산물 유통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전통시장이 활성화 되었던 30년 전만 해도 팔달시장은 통로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장꾼들의 왕래로 시장이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상인들은 ‘그 때가 진짜 시장 냄새, 사람 냄새가 났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팔달시장은 1988년 매천동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한 후 상권이 급속히 위축됐다. 도매 기능이 매천동으로 넘어 간데다 골목마다 대형마트, 연쇄점들의 등장해 상권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팔달시장은 전체 700여 점포 중 과일·채소점포 300여곳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농산물전문시장으로써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팔달시장의 맛집들=쫄깃한 곱창, 얼큰한 육수, 당면... 이 정도면 50~60대 주당들의 미식(美食)코드를 맞추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시장 북편에 자리잡은 ‘의성곱창’은 구시장 시절부터 영업을 해오던 53년차 노포(老鋪)다. 팔달신시장이 노원 1가 쪽으로 신축 이전하며 시장의 본류에서 멀어졌지만 옛 맛을 기억하는 술꾼들이 잊지 않고 찾는 덕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골·곱창구이 1인분에 8천원, 여기에 소주 한 병을 추가해도 둘이 2만 원이면 요리·식사·술이 해결된다.
북구 주민들의 심야 간식 명소 ‘팔달포차’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운영되는 포장마차다. 결정적인 흠은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시내에서 밤새 ‘달린’ 술꾼들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됐다.
이곳 메뉴는 다섯 가지. 김밥(2,000원), 콩국(2,500원), 우동(3,500원), 토스트(3,000원), 라면(3,500원)이 전부. 가격이 저렴해 테이블 회전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술을 과감히 포기했다.
◆매천시장: 한강 이남 최초,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 도약
한강 이남에 최초,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이 수많은 경쟁지를 제치고 현재 위치에 들어선 배경에는 ‘팔달’이라는 지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통팔달’의 줄임말 ‘팔달’(八達)이 의미하듯 현재 북구지역은 대구의 북쪽 관문과 남북 연결로로서 의미를 갖는다. 팔달교 일대가 칠곡, 달성은 물론 대구의 중·서·남구의 도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팔달대교의 건설은 강남, 강북으로 갈려져 있던 북구의 유통, 물류경제가 하나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 남부내륙의 한복판인 대구에 이런 큰 매천시장이 자리 한 것은 이런 지리, 교통, 유통의 이점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매천시장이 들어선 것은 1988년 10월인데, 이 시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구의 여러 사건들과 교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1986년 팔달대교의 개통이다. 팔달대교는 대구경북의 물류 연결이라는 큰 그림 하에서 건설되었다. 이 다리 건설 이후 경북의 농산물과 대구의 공산품이 본격 교역시대를 열어갔다.
1994년에 완공된 중앙고속도로는 대구시 북구의 전통시장, 유통경제 차원에서 더없는 호재였다. 근거리, 소규모, 지역 상권에 머물던 북구 경제가 경북의 중·북부로 확대되면서 광역 유통망을 형성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칠곡지구 택지개발사업도 북구 지역의 도시세와 경제규모를 키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칠곡택지개발은 1~4지구와 학정지구, 도남지구, 금호지구를 거쳐 오며 북구에 인구를 대거 유입시켜 ‘몸집’을 키워왔다.
이 결과 1980년대 후반 3만명 대에 머무르던 북구 칠곡지구 인구는 현재 23만명을 넘어서며 자족(自足) 생활권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인구의 급격한 유입은 매천시장의 튼튼한 배후이자, 든든한 내수(內需)시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매천시장을 방문한 시민들은 일단 엄청난 규모에 압도된다. 16만㎡가 넘는 크기로(약 5만평) 축구장 25개를 펼쳐 놓은 크기다.
주요시설로는 ▷청과부류 경매장 ▷수산동 ▷관련 상가 ▷냉동창고 ▷서비스동 ▷관리동이 있다.
청과부류에는 ▷대구청과 ▷농협대구공판장 ▷효성청과 ▷대양청과 ▷대구경북원예농협공판장 등이 있고 수산부류에는 ▷대구수산 ▷대구종합 수산 ▷신화수산 등 3개 법인이 있다.
매천시장은 2019년 총거래액 9,363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1조원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농산물 가격 하락세 지속에도 불구하고 ▷청과부류 56만4,689톤 (7,870억원) ▷수산부류 1만2,689톤(909억원)의 거래를 기록 했다.
대구시민의 과일, 채소 수요량 90%를 공급하고 있으며 1일 유동인구가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북구경제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계절 싱싱한 수산물 공급=매천시장에서 팔려나간 농산물들이 대구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책임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매천시장은 수산시장으로 더 유명하다. 사시사철 지역들에게 싱싱한 해산물, 횟감을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산동 1층 회센터는 동해의 웬만한 도시의 시장, 회센터와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횟집에서 만난 한 시민은 “바다가 없는 내륙도시 대구가 바닷가 도시를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매천시장 수산시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겨울철 별미인 대게, 대방어, 생굴, 대하, 과메기부터 전복, 조개류 등 온갖 해산물들이 맛객들의 미각을 유혹하고 있다.
◆산격종합시장
: 북구 아파트, 단독주택지 주민 생필품 보급처
산격시장이 북구 동북로에 자리를 잡은 건 1981년. 처음엔 대구교육박물관, 산격초등학교 근처 대단위 주택가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산격동 일대 주택 단지의 생필품, 식품, 잡화 보급처로 기능 하던 시장은 1999년 산격대우, 산격에덴, 산격 보성 등 아파트가 대거 들어오면서 규모를 키워나갔다.
여기에 반경 1km 내 산격초교, 산격중, 대구북중, 성화여고, 경상고부터 영진전문대, 경북대 등 대학까지 거느리며 매머드급 상권으로 성장했다.
산격시장은 학생 유동인구, 대단위 아파트, 주택가를 배경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곳 역시1996년 유통시장 개방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홈쇼핑, 전자상거래, 온라인, 비대면 거래로 다변화되면서 오프라인거래의 대표격인 전통시장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산격시장은 2010년 이후 유동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시설 노후화, 시장상인들의 고령화로 상권 퇴조 현상이 뚜렷해지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먼저 2018년 11월 대구에서 처음으로 청년몰을 개장했다.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에게 창업과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북구청은 중소벤처부 청년몰 사업에 공모해 국비 6억여원을 확보하며 결실을 이뤄냈다. 청년몰의 다른 이름은 ‘신(辛)다림길’. 매운맛이 강한 대구의 음식 문화와 ‘사람이 다니는 길’ 의미가 합쳐졌다.
현재 청년몰에는 식당 9곳, 디저트 가게 4곳, 홈패션 3곳 등 16개 점포가 입주해 있다. 청년 상인들은 자체 블로그, SNS를 운영하며 젊은층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산격시장 발전을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대구시, 경북도에서 준비했다. 권영진 시장과 이철우 지사는2018년부터 ‘대구경북 한뿌리 사업’에 힘을 쏟았고 ‘도농상생 직매장’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구경북 도농상생 직매장은 산격시장 내 노후건물 960㎡를 리모델링 했으며, 상설판매장 66개 점포, 커뮤니티센터, 홍보관을 갖추고 있다. 상생장터에서는 앞으로 경북 23개 시군 291곳 농가와 납품 계약을 맺고 이곳에서 생산한 과일, 채소, 농산가공품 등 800여개 품목들이 대구의 소비자들과 만나게 된다.
#산격시장 청년몰의 한계=‘젊은층을 시장으로 끌어들여라’ 캐치프레이즈로 산격시장의 청년몰은
활발한 주문, 배달이 이루어지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젊은층들이 전통시장을 노크하고 청년몰에 접근이 활발해졌다는 것은 평가할 만 했다. 필자가 최근 현지를 방문했을 때도 택배기사들이 배달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들은 직접 시장을 찾은 것이 아니라 SNS나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몰 바로 앞 보리밥, 칼국수 노점이 노인, 주부들이 빈 자리 없이 꽉꽉 들어차 있는 현상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전제되고 있기는 하다.)
어떻게 하면 젊은층들이 직접 시장으로 나와 구매를 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산격시장이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
◆전통시장 몰락 위기 딛고 ‘유통 거점 북구’ 명성 회복해야
1996년 유통시장의 개방은 전통시장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까르푸, 월마트 같은 국제 대형마트부터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같은 대형소매점들이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까지 진출하며 골목 상권을 순식간에 잠식해 버렸다.
여기에 온라인 쇼핑 등 다양한 업태가 등장하고, 더욱이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쇼핑 문화가 등장하면서 전통시장을 점점 압박하고 있다.
유통시장 개방 후 26년이 지난 지금 전통시장의 몰락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전경련이 실시한 유통실태 조사결과도 전통시장에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2030 유통 현안조사에서 MZ 세대들의 55%가 온라인으로 물품을 구입한다고 응답했고,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비율은 1.2%에 그쳤다.
이런 전통시장의 급격한 위축과 쇠퇴는 북구 지역에서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위주 소비 행태 변화, 젊은 층들의 전통시장 외면, 대형마트들의 골목 상권 침해 같은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북구지역의 물류, 유통, 시장들이 타지역에 비해 상권과 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대구에 전통시장 ‘넘버 2’ 칠성시장은 아직 서문시장과 대구 전통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상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서문시장이 섬유, 의류, 양말 등 패션 분야에 특화 되었다면, 칠성시장은 농수산물 도소매로 76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양한 먹거리와 맛집들은 연중 맛객들을 시장으로 불러 들이며 ‘미식 스트리트’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유명한 팔달시장과 매천시장은 팔달교를 사이에 두고 대구 농수산물 유통의 양강(兩强)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매천시장의 거래액은 해마다 증가를 거듭해 올해 내로 1조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팔달시장의 700여 점포도 새벽부터 불을 밝히며 대구경북의 농산물 유통 집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격동 아파트, 단독주택 주민들의 생필품, 잡화, 식료품 공급처 기능을 담당해온 산격종합시장도 예전만은 못 하지만 아직까지 전통시장으로써 위상을 지키고 있다. 2018년 시작된 청년몰도 다른 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해온 사례와는 달리 평균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타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제 2028년이면 대구경북에 다시 통합신공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때 북구는 신공항과 고속도로, 도시철도, KTX로 연결되며 국제공항 시대를 함께 열어가게 될 것이다.
유통의 거점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북구가 통합신공항 시대를 맞아 국제유통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