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을 기르며 / 여세주
호박이 왜 못생겼다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연노란 꽃잎이나 탐스러운 열매, 그 어느 것도 나무랄 게 없지 않은가. 태풍이 휘몰아쳐도 끄떡하지 않겠다는 덩굴손의 다부진 생존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오래전부터 인간은 우주 자연의 질서를 배우고 따르려 했다. 요즘 나는 자연의 이치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곤 한다. 그래서 곧잘 나무들을 고요히 바라보며 세상살이를 되돌아본다. 버거운 열매를 달고 힘겹게 버티는 호박을 보면서 삶의 무게를 떠올린다.
호박이 자라는 모습은 왜 진작 살피지 못했던가. 어린 시절부터 호박이 자라는 것을 무수히 보았으되, 그저 그렇게 자라면서 흔한 식재료의 하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느 날 호박과 사람이 닮았다는, 아니 내가 좀 더 일찍이 호박을 알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박꽃의 암술과 수술은 특히 사람과 많이 닮긴 닮았다. 도톰하게 부푼 암술은 엄전하게 정곡을 오므리고, 삐죽하게 내민 수술은 당장이라도 돌기할 태세다.
시골에 이사한 후로 텃밭에 매년 호박을 심었다. 호박 넝쿨이 뻗어 울타리를 타고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자취하는 아들을 보러 온 어머니가 담을 넘어온 이웃집 호박잎을 뜯어다가 끓여준 된장이 생각나서일까.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행운이 울타리 너머까지 줄줄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박 넝쿨은 매년 내 바람대로 자라주지 않았다. 이웃 촌로들에게 물으니 거름을 듬뿍 주라고만 한다. 포기 주변에 비료를 뿌려주고 가축 거름을 덮어줘 봐도 매년 그 모양이었다. 곁눈질로 이웃을 흉내 내면서 정성을 쏟고 부지런을 떨어 보아도 텃밭 농사는 게으른 농부를 따라가지 못했다.
웹사이트 이곳저곳을 뒤지며 호박 잘 기르는 법을 수소문했다. 무엇보다도 산모래를 부어 돋운 토양 탓인 듯했다. 자양분이 부족하면 안 된다고 한다. 스스로 비옥한 환경을 찾아가지 못하는 호박에게 그동안 내가 기름진 토양을 마련해주지 못한 것이다. 사람에게도 태어난 환경이 중요하지 않은가. 지나치게 비옥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척박하면 생장에 어려움이 많다.
식물이 자라는 데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밑거름이었다. 호박 구덩이를 삼사십 센티 이상 깊고 넓게 파서 그곳에 가축 거름을 가득 붓고 흙을 한 삽 섞어 모종을 심으란다. 호박을 성장시키는 촉진제가 밑거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부족했던가 보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설프게 알아서는 모르는 것만 못 하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부러움이 앞섰다. 지식의 밑거름이 저토록 잘 되어 있으니 그 분야에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일찍이 알려고 바득바득 애쓰지 않은 것에 자책감도 뒤따랐다.
역시 무엇을 안다는 것은 밑거름이고 힘이다. 올해는 드디어 힘차게 자라나는 호박순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천고의 의문을 풀어낸 듯이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한 달을 지나지 않아 다시 풀이 죽고 말았다. 또 다른 미궁에 빠졌다. 곁가지들만 무성할 뿐 넝쿨이 길게 뻗어 나가지 않았다. 한두 줄기만 키워야 한단다. 호박 넝쿨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정없이 잘라내야 했다. 그래야만 어디까지든 뻗어갈 것 같아서였다. 인생의 목표도 그렇지 않은가. 오직 하나를 향해 달려가야 그것에 도달하기가 쉽다. 무수히 내미는 욕심의 가지들을 잘라내지 않고는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덤비다가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꽃망울이 콩알만 한 열매를 달고 조금씩 자라더니 안개 자우룩하던 어느 아침 활짝 꽃잎을 열었다. 암꽃이다. 배드민턴 공 같다. 머잖아 애호박을 선사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꽃이 지고 난 얼마 뒤 열매가 더 굵어지지 않고 누레지더니 떨어져 버렸다. 다시 원인을 찾아 나섰다. 열두세 마디까지에 열리는 암꽃은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코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 다시 깨달았다. 무엇에 대하여 배우려면 끝까지 파고들어 모두를 알아야 한다. 한두 가지 알고 있는 것을 다 안 것처럼 우쭐대다가 또 낭패를 본 것이다. 왜 열두세 마디까지인지는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남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내야 된다. 아마도 수꽃이 피기 전에 성급히 화엽을 연 암꽃은 수정할 수 없으니, 헛되이 원기를 빼지 않도록 미리 따 주라는 말인 듯하다. 먼 인생길을 가려면 힘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호박은 마디마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호박꽃이야말로 별을 닮아 별꽃이라 불러야 제격에 맞을 성싶다. 저토록 맑은 노란색을 낼 수 있는 화공이 있을까. 물감으로는 흉내 내지 못할 별빛처럼 신비롭다. 아득한 우주에 길을 여는 별들처럼 호박꽃은 시골의 아침을 환하게 여는 눈부심이다. 누구를 향한 포용이며 관용인가. 둥그런 나팔을 입에 대고 꽃말을 외치는 듯하다.
넝쿨이 텃밭 울타리를 타고 이십여 미터를 뻗어가고도 멈추지 않는다. 덩굴손을 내밀어 악착같이 삶을 붙든다. 삶의 길이 외줄처럼 위태롭다 하더라도 우선 살아남아야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듯이…. 넝쿨의 행진은 한순간의 쉼도 없다. 먹구름 드리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도 가야 할 만큼 간다. 가고야 만다. 목적지는 어디일까. 아마도 생명이 다하는 그곳이 아닐까. 인생의 목적지도 죽는 그 순간까지라면 호박 넝쿨처럼 묵묵히 가야 하리.
길이가 짧아도 호박 넝쿨은 못갖춘마디가 없다. 마디마다 꽃을 단다. 인생의 마디는 어떤가. 몇 마디나 될까. 저마다 마디의 길이나 숫자는 다를 터, 짧은 여러 마디이거나 몇 개의 긴 마디일 수도 있겠다. 마디가 몇이든 나는 그 마디마다 어떤 꽃을 피웠으며 얼마의 열매를 달았던가. 돌이켜 보면 목표나 목적지도 없이 분주히 생명의 줄기만 뻗어가다가 마디조차 매듭짓지 못하고 열매는커녕 특별한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듯하다. 학교를 졸업하여 직장을 얻고 직업에 충실하며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간, 그저 평범한 인생도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피운 꽃과 열매는 무엇이며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남은 꽃망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