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김욱 노령 작가
고립이라는 요물이 찾아오는 시기는 대체로 배우자와 헤어진 직후,
또는 자녀가 커서 결혼하고 독립했을 때.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혼자가 되었을 때
고립이라는 요물은 천천히 그 본색을 드러낸다.
지인 중 한 명이 스스로 마음을 닫고 이 요물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55년을 함께한 아내를 암으로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삶은 놀랍도록 변해버렸다.
아내가 건강했을 대는 함께 산 장남 부부와도 나름대로 잘 지냈다. 지인은 머리가 좋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어서 성격이 조금 강한 며느리와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며느리와 생각이 맞지 않을 때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항상 며느리 편에 서서 양보해 주었다.
특히 아들 내외의 사적인 생활과 그들이 겪게 된 문제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부모가 끼어들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녀에 대한 의존도는 크지 않았다.
<중간 생략>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특히 배우자의 죽음은 한 사람의 인격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충격이다. 지인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등산이나 낚시에 흥미를 잃고 세상사에도 관심을 끊고 급기야는 외출까지 거부하게 되었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으로 고스톱이나 치면서 늙어 홀아비가 된 신세를 한탄하며 지내는 것이
마지막 역할인 듯 행동했다. 나이에 비해 밝고 전향적이었던 그가 마이너스 사고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부정적인 말밖에 하지 못하는 ‘할아방구’ 가 되어버린 것이다.
<중간 생략>
친구도 만나기 싫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예전에 즐기던 취미도 더는 못하겠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는 것도 귀찮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이
한 사람의 인격을 이만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비록 나이는 들었다고 하나 강인하게 살아남은 노련한 남자가 이 정도로 마음을 무너뜨리게 될 만큼
거대한 시련이었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만 보니 지인은 자녀에 대한 의존도가 약한 대신 배우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강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태도에 자녀와 친척, 지인들이 지쳐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지인은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는 버겁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중간 생략>
그는 지금도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 싸운다기보다는
하루하루 버텨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텨냈던 적이 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일 아침에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아무도 없는 내 방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내가 무서워졌다.
나도 내가 무서운데 가족이나 친구들, 이웃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창피하고 겁나고, 그래서 화가 나고 조금씩 안쪽에서부터 무너져 갔다.
삶이 더 이상 고맙게 느꺼지지 않을 때가 한 번쯤은 온다.
나이 먹고 겪는 절망은 젊어서 열병처럼 앓고 지나가는 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젊은 시절의 절망은 내 뜻대로 되어 먹지 못한
세상과의 부딪힘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늙은 절망은 내 안에서 시작된 실망감에서 비롯된다.
누가 나한테 뭐라고 그러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나를 바라봤을 때
이토록 약한 사람이었나.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그 기나긴 세월은 다 헛수고였나.라는 좌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싹트고,
절망감을 혼자 이겨내지 못해 주위에 벽을 쌓게 시작한다.
그렇게 사람은 늙어 혼자가 된다.
다들 먹고살기 바쁜데 어른이 되어가지고 위로는 못해줄망정 자기 앞가림도
벅차하는 아이들에게 이 나이 먹고 신체 타령이나 늘어놓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고, 속으로 삭히다 못해 끝에 가서는 병을 만들고 만다.
<중간 생략>
그렇다고 죽음을 피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죽기 전까지 병원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생애를 타인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죽하면
영국 의사들이 ‘가장 재수 없는 환자’ 1위로 매년 버나드 쇼를 뽑았을 정도였다.
그런 쇼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I Knew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해석하면 “우물 주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내 비록 110세까지의 생존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사람의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었다면 내 인생이 이처럼 다사다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해야 되고, 하기 싫은 일도 피해서는 아니 된다.
사는 게 좋아서가 아니다.
인생은 매 순간이 전쟁이고,
전쟁에서 상처 하나쯤 입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나는 그 아픔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고지가 눈앞이기 때문이다.
아직 점령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내 삶에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0145~
출처> 도서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 김욱 지음
주제<고립이라는 요물과 투쟁하라 인생이란 원래 외롭고 아프다>편에서
≪후기≫ 유성 박한 곤 solbalam1224
의지의 약해감과 상실을 먼저 두려워하자!
늙어서 걷는 길에 두려워할 것은
의지意志가 육신보다 더 빨리 여위어 감이다.
정신력과 의지만은 죽음의 순간까지
유지하고 키워가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에 부여받는 지울 수 없는 사명감使命感이다.
어떤 매체를 통해서라도
약해져 가는 삶의 뿌리 격인 의지에
새 힘을 불어넣는 방법을 찾아봄이 매일 일과의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 김욱 선생님의 글에서
또 새 에너지를 감사히 얻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노령 작가님의 용기 넘치는 생생한 조언으로 하여금
뇌성雷聲처럼 진한 감흥의 불씨를
더 없는 감사로 받아들입니다.
意志
1. 어떤 일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마음
2. 특정 목적의 달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
3. 생물이 어떠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능동적인 마음의 작용
첫댓글 올해가 결혼 50주년 되는 해입니다,
아직은 아내도 건강하고 나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니 ~~
의지와 상실을 주의하며 그날을 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