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다음 이미지 및 위키백과 사전 내용 참조
나는 꼼수다 봉주 19회 -장준하 의문사편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의문사 편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고상만저
장준하, 묻지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37년을 거슬러 올라가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여름
여야 대선후보가 경선으로 정해지던 시기였다.
연일 야당 분열이 조선일보를 장식하며 요란할 때
여당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은 싱겁게 끝이 났다.
이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일찍부터 대선후보로 단독 선두로 나선터라
그의 대선후보 수락 연설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해
대한민국의 기후는 아열대 기후로 바뀐듯 했고
스콜처럼 쏟아지는 비 때문에
곳곳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2012년 5월에 장준하 선생님 묘도
홍수 피해로 붕괴가 된다
이로인해 묘역 이장이 불가피해졌다
유족들은 이장을 결정하고
8월 20일 묘를 이장했다.
그렇게
잊혀진 재야 인사 장준하의 유골이
37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2012년 8월 20일
18년 유신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수락 연설을 하던 날이었다.
37년만에 드러난 유골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먼저 유족들이 사망 당시에 부검을 하지 않은 건
유신 독재 시절에 검찰이나 검안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가 첫번째였다
또한 그 당시 의문사한 사람이나 고문을 받은 학생들
장례식장에서 기간원이 들이닥쳐 시신을 뺏어갔다.
그리고 사인을 알 수 없도록 화장시켜 버렸다
그래서 유족들은 시신를 빼앗길 염려와
영원히 사인을 알수 없게 될 두려움에
사망 당시에 부검을 요청 하지 않고
검찰이 발표한 실족사에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사족-
시신탈취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로
인혁당 사건도 판결 8시간만에 사형하고 가족들은 시신을 보지도 못하고 화장해 버렸다
이는 고문이나 의문사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해오던 짓이었다 .
그리고
꽤 최근까지도 이런 일은 일어났다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한진 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부상을 당하고 입원해 있던중
병원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장례식장에 경찰병력이 투입되어
부검한다는 명목으로 고인의 시신을 탈취해 갔다
그리고 부검결과 자살로 결론짓고 화장해 버렸다
-최근 윤일병 사건으로 군대 의문사가 다시 주목받자
군대에서는 의문사한 장병의 부모가 3년이내에
시신을 인계 하지 않으면 화장한다는 법을 몰래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유족들은 부검 대신
문상객으로 가장해
외과의사 두분과 내과 의사 한분을 모시고 왔다 .
(장례식장에도 감시 정보원이 있었기에 때문에 이 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
의사들은 겉으로 보이는 상처만 확인했다.
귀 뒤에 약간의 피가 흘러나와 찾게된 머리쪽 함몰된 곳 하나
<부검을 할 수 없으니 어느정도 크기 인지 확인 못하고
벌어진 상처로 성냥개비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함몰된 자국만 확인했다 >
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없었고
오른쪽 허리에 주사바늘 자국 두개가 있었다
동석했던 내과 의사는
주사를 맞고 얼마되지 않아 사망 하게 되면
주사 바늘 자국이 커진다 라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약물을 투입할 경우에도 이와 같이 커진다고 한다>
그외 보이는 것은
양팔 안쪽에 생긴 멍
<양쪽 어깻죽지를 잡고 끌고 간것 같이 안쪽에 생긴 멍>
이것이 전부 였다.
그 당시 의사들도 추락사는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
이후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장준하 선생님이 추락한 곳의 구조는 그림과 같다
경사가 75'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추락지점까지 15M (아파트 5층 높이)
흙이 아닌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절벽이다
목격자 김용환은
이곳이 빠른길이라고 장선생님이 먼저 안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무를 잡고 뛰어 내리다가 실족
하셨다는게 그의 죽음 관한 목격진술 전부이다.
75년도 당시 경찰 조사와
김용환의 진술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이와 같은 상태에서 사람이 떨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 나는지 실험했다
장준하 선생님 당시 몸무게 70KG정도
같은 무게의 돼지를 도축해 15m에서 떨어뜨리는 낙하 실험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장기와
모든 뼈가 부러졌다
이외에도 12가지 시물레이션을 했다.
머리에는 골절이 생기고 가슴에는 뚜렷한 상처가 남는것이
12가지 시물레이션에서 공통된 특징이었다
산에서 떨어졌다고 하면
움직이는 사람은 발버둥치게 되므로
상식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나무나 돌등 자연물에 긁히거나 부딪혀서 생기는 상처들이다
옷도 당연히 지저분해져 있을 것이다.
[* 사망 당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시신 사진이라 무서워 할꺼 같아서 안가져 왔오 ㅠㅠ
혹시 궁금하다는 댓글이나 괜찮다는 댓글 있으면
요 자리에 사진 넣을게 ]
장준하 선생님 발견 당시 사진을 보면
머리에 골절이나 가슴에 상처가 없을 뿐아니라
얼굴에도 상처하나 없었다.
옷도 깨끗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시신이 손상되지 않은 이유는
추락한 지점에만 고운 모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발표했다
유골이 드러나기 전까지
추정할수 있었던 것은 여기까지였다
남겨진 사후 사진과
시물레이션 결과로 추측할 수 있는 건
유족들이 모시고온 의사들과 같은
적어도 추락사 하지는 않았다. 였다
그리고
장준하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37년의 세월이 흘러
역사의 사건은 우연에서 비롯해서 필연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말처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유골이 세상에 드러났다.
<진상조사 당시 유골을 조사 하지 않은 것은 유족이 외국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가족입장에서는 관을 열어서 조사한다는 것이 부관참시 같아서 차마 하지 못했는데
2012년 홍수 피해로 이장을 하면서 공개하게 된것이다.
또한 관을 열었다고 해도 유골이 이미 진토가 되버리면 확인 할 길이 없는데
37년이 지났어도 유골이 잘 보존 되어 이번 조사를 할수 있었다.
홍수로 묘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다시 관을 열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유족은 말한다. >
< 공개된 유골사진>
이번에 공개된 유골로 인해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처음으로 밝혀지게 된다
장호권 (장준하 선생님 장남)
공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원형의 큰 망치 형태의 가격흔 이라고 설명했다
유골에서는 이 가격흔 말고 다른 흔적은 없었다
아파트5층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했으나 갈비뼈가 부러진 흔적도 없었다 .
또한
정확하게 함몰된 두개골 자국으로 볼때
움직이는 상황이 아니라 고정된 상태에서
단 한번의 가격으로 사망
마취제나 다른 약물 투약이 의심스럽다는 결론이었다.
그럼 마지막 목격자 김용환은 증언으로
돌아가 보자
<75년 8월 19일 문익환 목사가 녹음한 그의 육성이 생생하다 >
"선생님이 나무 윗부분을 잡으시고
어떻게 잘못 뛰셨는지 기억이 안나고
그래서 제가 여기서 봤을때
나무가 휘는 걸 봤어요
옆에서 봤어요 "
1975년 8월 19일 저녁 어딘가에서 나타난
김용환은 문익환 목사 함석헌 선생 그리고 유족 앞에서
분명히 이렇게 진술했다
혼자 올라가는 장선생님을
김용환이 뒤쫓아간 후
장준하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가 진짜로 본 것은 무엇이었나
진상조사위원회 팀장 고상만은 후에 이렇게 말한다
2003년 조사 당시에 거짓말 한 사람이 세명 있었습니다.
한사람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김용환 씨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명은
그 당시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장준하 선생님 유골을 본 순간
모든 거짓말이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나머지 두명 거짓말한 인물은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의문사는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그때 그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말을 바꾸는 일이 없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반드시 밝혀집니다.
모든 증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날
1975년 8월 18일 오후 4시 43분-5시30분
보안사령관(현 기무사) 진종채는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와 독대한다
대화가 이루어진 장소는 집무실이 아닌 박정희 개인서재였으며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 알수는 없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이 박정희와 독대한 경우는 75년 그해
1975년 8월 18일
단 한번이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골이 발견된 것으로 인해 타살이 확실시 되었으니 진상조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박근혜 당시 여당 대통령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 그것은 진상조사 위원회 그리고 현장의 목격자 해가지고 조사가 쭉 그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이 대답으로
아버지시대에 일어난 의문사를
본인의 시대로 끌고 들어왔다
아버지시대의 역사를 본인 시대로 끌고 온 것처럼
역사를 되풀이 하듯이 말이다.
-장준하 선생님 죽음 그후 ....
장준하 선생님을 국립 현충원에 모시지 않았던건
현충원에 친일파와 군사독재 세력들이 묻혀있는데
그곳에 모실수 없다
세상이 좋아져 그들이 현충원에서 이사가면 몰라도 그전에는 그곳에
묻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이었다
갑작스레 변을 당하셔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유족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먼 친척이라고 하며 공원 묘지 하나를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나마 길이 새로 났으나
그 당시에는 38선 경계 근처라 길조차 없던
후미진 곳
가는 것 조차 어려워 사람들이 추모하기도 쉽지 않은곳
파주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 할 수 없었던 유족은
그곳에라도 모시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장준하 선생님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쪽 천주교 공원묘지에
영면하시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서 비서처럼 모셨던
첫째 아들 장호권 은 아버지의 죽음을 쫓다가
다음해인 1976년 4월 19일
밤에 귀가중에 서너명의 남자들에게
너가 장호권 맞냐 까불고 다니지 마라
라는 물음을 받은후
폭행당해
턱뼈와 코뼈가 8조각나는 부상을 당하고
이대로는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아버지 죽음을 밝히지 못하고 죽겠구나 싶어
살아야 겠다는 일념하나로 야밤도주 하다시피
말레이시아로 밀항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
광복군이자 대표 언론인 민주주의 투사였던 장준하 선생님의 가족은
그 이후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
동아일보 기자가 장준하 선생님이 돌아 가신후
그의 죽음과 수사결과가 의문스럽다는 기사를 쓴다
그리고 이 기자는 구속이 된다
외신 기자들도 추방 당하게 된다
놀랍게도 2012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바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의문의 살해/자살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구속당할 뻔한 사건이다.
2011년 9월 북한산에서
박근혜 5촌조카 두명이 죽는다
한명을 살해하고 다른 한명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추적하던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자살한 사람의 위장에서 죽기 30분전에 복용한
지사제가 발견된점
자신을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자필인지 확실하지 않은>유서
살해했다는 칼에 지문이 없는점
그리고 실제 살해할 때 사용된 칼이 준비된 칼과 다른점
무엇보다 살해 당한 인물은 조폭출신의 유도 선수 출신 거구였고
용의자로 지목된 자살한 남자는 키170정도의 60키로 작은체구의 사촌형제였다.
그리고 현장에서 휴대전화가 사라진 점
<이 휴대전화는 육영재단 사건 때 박지만이 살인을 청부했다는 녹음이 있다고 추측된 전화기 였다
-살해당한 5촌 조카는 박지만의 심복으로 알려져 있으며
육영재단 재산 다툼 때 박지만 박근혜 쪽에서 박근령을 내쫓는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일이 녹음 된 휴대전화가 사라진 것이다. >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이에 의문을 품고 사촌간 살해/ 자살 사건으로 종결된 수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2012년 11월 30일 시사인에 쓴다
<이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도 험난 했다고 한다 -
재판참관 하면 뒤에 와서
이봐 어이... 니 배에는 칼이 안들어 갈꺼 같지...
라는 살해 협박을 무수히 받았으며
이 살인 사건에 관련된 친인척은 취재해주시는 것은 고마우나 큰일 나신다고
차라리 감옥가시면 그곳이 안전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당시 박근혜 새누랑 대통령 후보측은
명예훼손및 허위사실 유포로 주진우 기자를 형사 고소 했다
<형사 사건은 검사가 기소하고 징역삽니다 >
이에 주진우 기자는 해외취재중 소환되어 조사 받는다
그리고 사전 구속영장까지 발부되어
유치장 신세까지 지면서
구속 적부 심사를 받았으나
세상에는 박근혜 굿판 기사로 재판을 받는다고 보도된다.
1심과 2심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사실 이 무죄까지의 길이 쉽지 않았다
구속될 가능성이 컸다.
현재 대법 상고심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고소한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모든 역사와
모든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는
2015년은
1975년을 걷고 있는 듯 하다
1918년 8월 27일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한해 전에 태어나
15살때까지 조국의 국기 태극기조차 못보고 자란 망국의 소년이
내 나라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중국땅 6000리를 걸어 광복군에 찾아간
29살 청년으로 성장해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전란과 혼란으로 뒤섞인 시대에서
독재와 친일 앞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1975년 8월 17일에 의문의 사망을 한다
그의 나이 불과 57세의 일이다.
장준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
1975년 5월 심장병으로 인해 병보석으로 풀려났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제자 백기완군을 두고 내가 나오게 되어 괴롭다 ....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이 어린 제자들에게 하대하지 않고
항상 존칭을 사용해 부르셨던 장준하 선생님은
제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방패가 되어주었던 스승이었다
제자들 보다 먼저 앞서 걸었던 어른이었다
적어도 제자들에게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독재에 맞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가능한 모든 행동을 했다.
장준하 선생님 당신을 늦게 알았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들에게 못난 조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스승이셨습니다.
책상에는 윤동주 가슴에는 장준하
두 친구 사진을 품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1.< 그때 그시절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프롤로그 그리고 윤동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019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4.[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첫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356
5.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두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468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0. [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feat .오후 3시 의문의 괴전화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5900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43159
* "빨간 글씨는 새빨간 거짓말 "
첫댓글 진짜 무서운세상이다
나는 왜 한국에서 태어난걸까ㅠ..에휴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에 대해 들어보긴 했으나 이렇게 자세히 읽는건 처음이다 진짜 더러운 나라야..여시 고마워
하ㅠㅠㅠ진짜 안타깝다.. 유골이 저렇게 남아 있다니ㅠㅠㅠ 어쩌면 멀쩡히 살아계셧을 수도 있는 분인데
이런 좋은 글에 조회수 댓글수 얼마 없는 것도 안타까워ㅠㅠ 더많은 여시들이 알게 되고 관심가져줬으면!
@2015 다 이루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좋은 글 읽게 해줘서 고마워 ^3^♥♥
겁나눈물난다...ㅠ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어서 진실이 밝혀지고 그들은 인정하길
왜 그들은 늘 이런식일까...
하..........고 김영삼 전대통령님 서거때문에 마음 안좋은데 이거까지 보니까 진짜 너무 먹먹해지고 무거워져.......누가봐도 타살인데 하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게 미워하고 남의 나라나 빠는것들이랑 같은 나라에 살다니 휴
댓글수 저조한것도 너무...하
눈팅이라도 좋으니 글 꼭 읽었음 좋겠다
여시 정리 잘해줘서 너무 고마워
여시들아 이 글 한번만 읽어주라ㅠㅠ
잊지 않겠습니다ㅠㅠ 정말 화가 난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시려했다는데.. 지금은 못나다 못해 나라 망하게 하려는 친일파 조상들이 넘쳐나요ㅠㅠㅠㅠ... 이 개같은 세상 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눈물난다...아..... 너무화가나..
너무 맘아프다정말..역사가 반복되고있다니..닭살돋을정도 (심한욕)여시야 정말 잘봤어 고마워!
글쓴여시 너무 좋은글이라 쩌리로 다시 퍼갈게요! 혹시 싫으면 말해주떼요ㅠㅠ 바로지울게여!
여시 대왕연어지만 그래도 이 좋은 글을 읽고 댓 하나 안 남기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댓 남겨ㅜㅜ 장준하 선생님 찾아보다가 봤는데 정말정독했고 눈물도 흘리고ㅜㅜ 여시가 추천해준 책도 다 읽어보려고! 고마워♡♡
연어하다 왔어ㅠㅠㅠ 잊혀질때마다 볼게 ㅠㅠㅠㅠ
ㅠ 앗 사진 궁금한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