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온다
초록사이 상쾌한 느낌을 풀벌레들은
제멋데로 즐기고 있다.
사람들 사이 추억도 옷을 갈아 입는다
타인에 대한 호 불호의 감정을 뇌는 단 몇 초 만에 판단한다는 명제를 떠올렸다. 이런 소재를 다룬
그 영화 비포선라이즈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씨줄과 날줄이 얽혀 만들어진 모시처럼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순간 서로에게 끌리는 두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을 최근에는 못 본 것 같다. 상영관을 찾지 않은 해수만큼 영화가 멀어진 탓도 있을게다.
“최악의 이별이 뭔지 알아? 추억할 만한 게 전혀 없다는 것”
기차여행 중 만난 제시가 셀린에게 했던 비포선라이즈 속 대사다. 셀린의 한마디를 인용했다. “어제 내가 한 말 오래된 부부는 서로 뭘 할지 뻔히 알기에 권태를 느끼고 미워한댔지? 내 생각은 반대야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거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지. 그게 사랑이야.”
일상과 판타지를 함께 담고 있는 대사들이다. 현실을 얘기하는 제시, 미래를 그리는 셀린의 말이 동화처럼 들린다. 47년 만에 재회하는 늑대소년이 소녀에게 했던 말 “많이 기다렸습니다.”처럼.
일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재로 글을 썼던 로버트 제임스 윌러. 낯선 작가다. 길 위의 사랑-원제 Border Music-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얘기하면
“아” 하는 반응을 하면 분명 올드팬.
소설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가 더 많이 알려진 작품.
제시와 셀린은 기차여행에서 만나 하루 밤 동안 대화를 나눈 뒤 비엔나에서 함께 내리자고 했고,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한 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사람이란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결말 때문이다. 킨케이드의 유품을 담은 상자 속에 두 사람을 맺어 준 쪽지, 낡은 카메라가 담겨 있었다. 이별 후 십 수년을 그녀를 기억 속에 품고 살다가 재가 된 뒤 로즈먼 다리에 그는 자리를 잡았다.
분석하는 것은 전체를 망쳐버린다. 무언가 신비로운 것들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한다. 조각을 보면 신비는 사라지고 만다. 킨케이드를 사막의 성자, 유성꼬리를 타고 날아다니는 표범이라고 생각했던 프란체스카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은 완성된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품고 있는 걸 끌어내어 전달하는 작업이며, 창조라고 말했던가.
작품을 해석할 안목은 내게 없다. 다만 분석하면 신비가 사라진다고 했던 킨케이드의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야생화를 담기 위해 산을 찾고, 멋진 뷰다 싶으면 셔터를 눌러댔다. 이런 시간들을 보낸 뒤에 느낀 바가 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며, 머릿속에 그린 주제를 렌즈에 담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분석만은 그만하라고 이성이 말했다. 반면 분석은 신비를 사라지게 한다는 이 문장마저 분석하라고 감성은 보챈다.
소설 속에 담긴 상징적인 요소를 찾아보았다.
1965년 8월 16일이란 숫자와 꽃다발 속에 묶인 데이지였다. 숫자는 불확실한 현상을 구체화 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없음을 0으로, 0과 1 두 숫자가 컴퓨터를 작동하는 알고리듬으로 기능한다. 0과 1사이에도 한없이 많은 수가 있음을 증명했다. 기원전 해마다 우기가 되면 나일 강에 발생하는 경작지 유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땅을 측정하던 행위가 요즘은 아파트 평수로 몇 평이란 숫자로 빈부를 가름한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1년 단위로 환산하면 어디쯤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8월은 인생에 비유하면 청춘에 해당될까? 아니다 중장년, 초로의 출발선에 놓인 시즌일 듯. 10년 전엔 8월 15일이 지나면 더위가 꺾여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는 시기였다. 7월의 열기를 닮은 사랑이 끝나고, 사람 보는 안목이 개안하는 8월 중순, 두 주인공이 만난 시기와 초로에 접어든 중년이며, 중년의 사랑을 다루기엔 괜찮은 시즌이다.
20년 동안 아이오와주 윗터셋의 시골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 산 프란체스카를 알아본 사람 킨케이드, 내셔날 지오그래픽 사진기자로서의 삶, 문명과 비문명의 삶을 카메라로 담던 그를 사막의 성자로 성장시켰다. 카메라는 피사체의 삶을 투영하는 도구이자,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기구였다. 프란체스카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물을 주어지는 대로 찍지는 않습니다. 뭔가 내 개인적인 의식이 정신이 반영되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목적지를 찾기 위해 리차드의 집으로 찾아와 프란체스카에게 인근에 있는 지붕이 있는 다리의 위치를 묻는다. 킨케이드를 본 그녀는 그에게 끌려 목적지까지 동승한다. 로즈먼 다리를 찾게 된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그녀에게 야생화와 노란 데이지로 만든 꽃다발을 건넨다. 데이지의 꽃말은 명랑, 순수한 마음이다. 그녀의 내면을 봤던 걸 암시하는 꽃이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생활은 아니에요.” 오랜 세월 동안 묵혀 두기만 하고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말이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녀의 고백에 그는 이렇게 화답했다.
옛날에 꿈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게 그런 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저자신도 그 말의 뜻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그걸 써먹을 작정입니다. 부인의 기분을 저도 알 것 같군요.”
이별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 괴롭다’는 말을 두 사람은 경험했다. 그녀의 삶을 이해했기에 그녀의 생각을 존중했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도 남편 사후에 킨케이드와의 만남을 추억하는 의식을 매년 가졌다. 69년간의 삶에서 단 4일 동안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 준 사람과 사랑을 나눴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그녀는 비밀 일기를 썼다.
53년 전의 논픽션이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랑을 잊게 하는 그런 오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랑도 프란체스카처럼 상대방에게 힌트를 던지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런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 현실, 단지 생존이 목표인,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 세상,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판타지 소설로 받아들이길 강요하는 얄궂은 세상에서 요즘 우리는 살고 있다.



비포선라이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