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버스 타기☆
아침에 일어나 기상 유튜브를 보았다. 일본으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초강력 태풍이 접근 한다는데 걱정이다.
우리나라를 거쳐간 태풍 중 가장 강했던 사라호 태풍이 중심기압 951.1헥토파스칼, 바람의 세기가 초속 51.1미터라 하였으니 그때와 비슷할런가?
그런데 항상 남의 불행에 염장지르는 인간들이 있다. 소꼬리에 붙은 초파리 같은 무리들이 댓글창에 악풀을 늘어 놓는다. 너죽고 나살자며...
부산엔 오전 오후 두차례 비가 내릴 것 같다. 일기예보가 맞다면 두시간쯤 비비람과 맞서기로 각오하고, 내가 좋아하는 코스인 동구 산복도로를 걷기로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동이나 대신동에서 출발하여 산복도로를 타고 가야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단환승장에 내려 충무동행 버스를 탔는데, 이게 다대포를 향해간다. 분명히 코스를 확인했는데...버스를 거꾸로 탔나?
낯선곳에서의 버스 타기는 쉽지 않다. 기사에게 물으라고?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내리고 보자. 조금 걸어 반대편 버스정류소에 도착했다. 잠시후 같은 번호의 버스가 왔다. 이젠 틀림이 없겠지!
그런데 이게 을숙도 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누구처럼 고약한 오기가 발동했다. 아무데나 가보자.
그런데 버스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녹산? 이건 전혀 아닌데...한참을 가다가 다시 내려 반대편 버스를 탔다. 기사가 어디서 날보았나?
"여기서 또 타세요?"
"이래서 늙어 찾아갈 곳은 집과 공원묘지뿐이라고 했던가요? 아직은 아닌데..."
오늘 하루 나는 또 '신이 버린남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오래 살았다는 기분은 들것 같다. 무지하게 길고 재미가 없어 시간이 안가면, 그게 내가 오래 사는구나! 하고 느끼는 체험인 것이다.
☆우리네 살림살이는...☆
대신동에서 버스를 내려 민주공원을 향해 올랐다. 평지가 끝나니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이다. 이곳 처음은 아니지만 더운 날씨엔 부담스럽다.
공원엔 토박이 노인네들의 숫자가 줄었다. 더위 탓일까? 태풍 소식 때문일까? 설마? 의정대란(?)이랬다. 제발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고, 바람이 간간히 불어왔다. 보수동 산복도로를 걷다가 길위의 오래된 아파트가 궁금해졌다.
이곳의 시영아파트는 동구의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에 사용승인이 난 11평, 13평형의 아파트들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년이 넘었다.
아직도 사람들이 사는가? 궁금하여 계단을 올라가니 1층입구에 화분들이 많이 놓여있다. 그중에서 처음보는 꽃을 찍는데 누군가가 "그게 그렇게 좋으세요?" 하고 말한다. 돌아보니 50대 후반쯤 세련되어 보이는 여인이다.
"좋아요. 어딜 가시나보네요? 젊은 시절 지나던 곳이라 궁금해서 또 와봤어요."
"여행 다니시나 봐요. 더운데 조심해서 다니세요."
"감사합니다."
대략 이런 대목에서 여자들은 체면을 구길까봐 고개를 돌리기 마련인데 말동무까지 해주니 내겐 고마울 뿐이다.
하늘엔 이불 빨래를 위해 솜이불 해체한듯, 군데군데 흠집난 뭉게구름이 서편 하늘 향해 바쁘게 흘러간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북항엔 파도가 고요하다. 일본엔 언제쯤 상륙한다고 하였더라? 제발 체급이 낮아져 피해가 적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거리 어슬렁 거리던 개도 사라진 현실, 산복도로 길가 가게마다 문이 굳게 잠겼다. 예전엔 동네장사, 상부상조의 형태로 삶을 이어져왔던 흔적들이 멈추어 서버린 것이다.
대체 무엇으로 먹고 살까? 아껴 저축한돈, 연금과 지원금?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복도로 맑은 공기로 먹지 않아도 배부름일까? 하여간 전국 대도시중 부산의 1인당 소득이 가장 낮다고 들었다.
그래도 오래된 공장을 쫒아내고, 바닷가와 대로변에 무섭게 성을 쌓아가는 고급 아파트는 딴세상의 모습 같았다.
걷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맙게도 비는 맞지 않았다. 근래들어 기후변화에 의한 악천후는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살림살이 피해가 없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