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思無邪
허 열 웅
집안엔 달력 없어/ 어느 땐지 모르겠고
시린 샘 표주박엔/ 별들만 자맥질 한다
문패를
떼어버리고 풍경風磬하나 내 걸까. (사무사-필자의 졸시)
사무사思無邪는 시를 논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회자되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다. 세상의 어지러움과 위정자와 제자들에게 경고를 많이 하고 있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編에 수록되어 있는 공자의 전후 말씀은 이렇다. 자왈 시삼백 일언폐지 왈 사무사(子曰 詩三百 一言蔽之 曰思無邪)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詩經의 삼백 편의 시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 라고 한데서 나왔다. 하지만 해석은 비슷하다. 조선 왕족 실록에 따르면 노산군(단종)이 경연에서 사무사란 무슨 뜻인가? 라고 질문을 하자 사육신 박팽년은 ‘생각하는 바에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니 마음이 바름을 일컫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미 바르면 모든 사물에서 모두 바름을 얻을 것입니다. 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詩經은 은대殷代로부터 춘추春秋에 이르기까지 전해오는 3천 여수의 민요들 가운데서 민간에서 채집 한 노래 160편(風)과 궁중에서 쓰이던 작품 105편(雅), 그리고 신과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송(頌)을 합쳐 305편을 선별하여 공자가 편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자는 시의 공리성을 믿고 제자들과 시의 효용에 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알려진 논어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그대들은 왜 시를 배우려하지 않는가? 시는 감흥을 자아내게 하고, 사물을 관찰하는데 도움을 주고, 여럿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도 하고, 또한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게도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는 일이며, 또한 금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도 한다.
나는 시나 수필을 주로 새벽 2 시경부터 쓰기 시작한다. 이 시간이 되면 세상은 모두 잠들고 하늘엔 별들만 쏟아지고 불침번을 서는 가로등만이 졸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일상사의 오만 가지 생각을 버리고 침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러다보면 삿된 생각은 멀리 사라지고 가까운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또한 긴장 아닌 긴장으로 세상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을 해 본다. 그러면서 지나간 삶을 뒤 돌아보며 시간의 흐름 안에서 소멸하는 것들을 소환하고 사전을 찾아 시어의 옷을 입힌다. 살아오면서 스쳤던 인연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언어의 사진에 찍어 보관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완성시킨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유가 소통이 잘 되는 날은 글이 제법 쓰여 지지만 중간에 사악한 생각이 끼어들기라도 하면 꽉 막혀버린다. 몇 줄 쓰다가 중단되는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암흑의 저편에 사는 비밀스러운 나의 욕망이 꿈틀대고 때문이기도 하다. 한 편의 좋은 글이 탄생하기 까지는 수도자의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철저한 고독이 함께해야 된다. 그 고독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산물로 한 사람의 독자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나는 만족할 것 같다.
사무사思無邪를 현대시로 표현한다면 윤동주의 한 편의 시가 아닐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 서시 일부)
세월의 나이테에 곰삭힌 나를 들여다보면 많은 희로애락의 숲을 거쳐 왔다. 오늘의 나 자신을 곧추세우고 투명의 실눈을 떠본다. 생각이 사악하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여 나를 평정할 수 없었던 때가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삿된 생각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에 나는 아직도 너무 서툴다.
오늘 날 우리나라에서 공자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또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열띤 논쟁이 일고 그 논쟁을 초점으로 대학 교수 간에 책도 출간되었다. 중국에서 조차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나라를 세계사에서 뒤처지게 한 원흉이라 하여 배척하였으나 지금은 유교를 사회통합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출발로 지난 2011년 1월 11일 날 텐안먼 광장에서 청동 공자상孔子像제막식이 열렸다. 좀 떨어진 마오쩌둥 초상화를 비스듬히 내려다본다. 그러면서 ‘평생 동안 행할 만한 한 마디가 있을까요?’ 묻는 자로子路의 질문에 “그건 용서” 라고 답변을 한다. 그런 공자님이 ‘자기 허물은 화투패 같이 숨기며 남의 잘못은 바나나 껍질처럼 까발리는’ 오늘의 이 어지러운 세상을 본다면 사무사思無邪는 없고 사무사思無私만이 넘쳐나는구나 하시며 한탄하실 것만 같다.
날이 밝아 온다. 하늘을 바라보면 부끄러움이 새털구름처럼 흩어져 있고 한강을 내려다보니 모자람이 물 주름지고 있다. 앞으로는 사무사의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의 언덕을 넘어야겠다. 사무사의 마음으로 시간의 나무를 심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세상을 보다 밝고 맑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을 써야겠다. 사악함이 없는 사무사思無邪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