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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종자
서둘러 불을 켰다.
저녁상 막 물리고 회관에 모인 석포리 서촌마을 노인네들이 끄먹끄먹 숨기운 접으려는, 늘어진 낙지처럼 후줄근해진 모양으로 점등(點燈)한 방안에 몸체를 드러낸다. 흐르는 땀을 연신 쓰윽쓰윽 훔쳐낸다. 벽걸이용 낡은 선풍기 몇 대가 줄곧 돌았지만 장마 뒤끝, 저녁 동풍도 없는 열대야(熱帶夜)에 눌려 소리만 자못 윙윙거렸다.
─영화가 어찌 껄쩍지근허네, 그랴.
젓갈 가게에 든 중 보듯 아예 두 눈 질끈 감고 자울거리던 앞줄의 노인네가 땡감 씹다만 떨떠름한 입안을 헹구려는 양, 이 빠진 잇몸 이내 드러내며 오물오물 하다 케엑, 한 소리 내지른다.
─금메. 똑, 똥 누다 말고 마른번개에 놀라서 밑도 안 닦고 보리멍석 거두러 가는 것맹이로 뒤가 물컹허니, 덴덕시럽고만.
저녁 9시 뉴스를 보다가 저런 우라질 늠에 시상을 잠, 보게. 참말로, 어쩌고저쩌고⋯. 이를테면, 세상 물정에 능통하여 통 큰 해설로 닿는 신소리 몇 마디 고시랑거리다 피익 꼬꾸라져 노루꼬리만큼 짧은 여름밤, 초저녁 단잠에 빠지게 되거늘 하필이면, 그 달콤한 잠에 붙들리게 될 시각에 불려나와 이도저도 도통, 요해가 잘 안 되는 서양것들 활동사진을 본 것에 잔뜩 부아 돋은 얼굴로 누군가 금세, 되받는다.
─무신 모꼬진가 싶드라마는, 젠장.
졸다가 깬 예의 노인네가 사탕 하나를 군입정 삼아 입에 넣으며 주위를 휘익 둘러보다, 초저녁잠 빼앗긴 속내를 입정사납게 다시 메어꽂는다.
시골 노인들에게 보여줄 영화가 따로 있지, 장마 끝물의 참외 맛 같이 밋밋한 영화를 돌리다니 이게, 무신 애들 장난이여, 시방? 하는 불콰한 얼굴들을 부러, 드러내놓는 것이다. 더욱이나, 양놈들 혀 꼬부라지는 말인고로, 귓바퀴 쭝긋 세우고 들어도 도무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만 들리는 데에다가 우리말 자막 또한 부랴사랴 사라져버려, 그렇지 않아도 가방끈 짧은 늙은이들 기죽이는 듯해서 여간, 시뜻한 것이었다.
곽(郭) 상수 노인 역시 그랬다.
딴은, 어른 섬길 줄 아는 말품새도 그렇거니와 토종씨앗을 지켜야 헙네, 하며, 한껏 핏대를 올리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그나마 가상하다 여겨,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고자 쌍심지 돋운 채 안광이 지배(紙背)를 철할 만큼 화면 또한 응시하였거늘, 어섯만 보았을 뿐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 오늘 방영되는 장면이 주인공 남녀의 애정 편력만이 아니라 건국의 기틀을 다지는 평정을 이뤄내느냐 거기서 도태되고 마느냐, 하는 정점의 한 대목이란 예고이고 보면 애간장 잔뜩 태웠을 모 방송사의 창사 특집 연속사극(史劇)마저 그만, 놓친 터였다.
덧붙여, 웃논 둑 터서 아랫논에 물 대는 절기인고로 줄창, 논두렁 헤집고 다녀야 했으니 여름농사 아침농사가 반타작인데, 낮잠부터 챙길 일이고 보면 익일, 점심 숟가락 놓은 바로 뒤에 한다는 사극 재방송은 애당초 안중에 넣어 두질 않았다. 그래, 곽 노인도 쓴소리 한 도막, 입방귀를 막 뀌려는 참이었다.
─씨앗은 우리 것이 젤인디, 양늠덜이 개량혀 놓은 걸로 갖다 심궜다가는, 법원 신세를 져야헐 지 몰른다. 그러니, 토종씨앗을 써야 헌다, 이것이제라, 이.
거친 저녁상 물리고 부리나케 달려온 노인네들 입씻이로 내놓은 수박 담은 쟁반을 앞으로 밀어놓으며 이장이 냉큼, 앞장을 선다.
─옳거니. 이장이 판세를 끌어야제, 이.
─아제는 어찌코롬 봤는디라?
─이녁 밭이서 바람타고 넘어온 씨앗도 내 밭이서 싹이 돋으먼, 그것도 벱을 어긴 거시기다, 이거신디⋯ 그게, 시방?
곽 노인이 아무려나 영화는 그렇다고 하지만 도대체 수용할 수 없는 경우라 여겨 고개를 갸웃한다. 누군들 시비를 가렸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좌중을 훑어본다. 이장 빼고 노인네들 일색인 회관 안에 섣불리 나설 이가 있을까 싶던 차에,
─지 발로 걸어온 거시긴디, 그것까장 책음을 지라고 헌다먼, 여드레 삶은 호박에 송곳 안 들어갈 말이제, 원.
내내 졸던 앞서의 노인네가 올강올강 사탕을 빨다 잇몸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걸 후다닥 우겨넣으며, 곽 노인의 의중을 거들고 나선다.
─화동(華洞)냥반은 연신 고개방아 찧동만, 귀는 열어놓고 잤능게비요, 이.
잠 속 헤집다 나온 터수로는 그래도 응수가 얼맞은 것이다.
─돌부리 차먼 발부리 아프다고 그만큼 일렀으먼 알아들었을 거싱마는. 어, 디서고, 먼, 일이고, 간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는 저 냥반땀시 죽겄당게, 글씨.
연지곤지 바르고 꽃다운 이팔청춘에 시집온 이후로 한 이불 속에서 알콩달콩 지금껏 사셨을 댁(宅)네의 썩썩한 입성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금시 진다. 화동양반이 그러는 노파에게 밸부린 눈길을 건넨다.
나 또한 헛헛한 웃음을 흘린 뒤 입을 닫는다. 더운 바람 훅훅, 내뿜는 선풍기 소리만 이내 진동했다. 아무래도 거들고 나서야 할 판세라 여긴다.
─금방 본, <식량의 미래>(주1)는 캐나다라고 허는 그러니께, 미국 바로 우에 있는 나라이서 진짜로 있었던 경우를 기록헌 영환디요. 줄거리를 요약헐 짝시먼 이장님과 마을 개발으원이신 곽 자(字) 어르신께서 말씸하신 대로다, 이겁니다. 물론, 몬센토라고 허는 머시냐,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종자를 생산허는 회사이서 우리 농촌까장 쳐들어와서 재판을 걸고, 그러코롬은 안즉까지는 안 허고 있기는 허지라.
─⋯.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 눈만 멀뚱히 뜬 채 실내가 잠잠하다.
─우신 지가 방향을 쪼매 달리혀서 말허자먼, 쩌그 저, 구례 산동면이서도 실지로 저짝 밭이서 심군 씨앗이 바람에 날라 와서는, 이짝 밭이서 싹을 틔웠더랍니다. 그란디 그게, 알갱이가 괜찮다 싶어서나 모아뒀다가 다음해에 심궜는디 그만, 터미네이터 처리된 씨앗이었던 까닭에 낭패를 봤다는 사람도 있고요. 멫 년 전이넌, 경남 거창 농민 60여명이 다국적종자기업 세미니스코리아으 종자를 사다 뿌맀는디, 종자에가 이상이 있었던 갑디다. 바이러스가 생겨 분 것이제라. 그리서나, 농사 망쳐 뿌따고 소송을 안 냈더랍니까. 그란디 이게, 어느 나라 법원인지 농민들 손을 들어주덜 않고 머시냐, “배추종자 포장지에 ‘조기 파종 시 바이러스병 발생의 우려가 있으니 적기에 파종하라’는 경고 문구”도 안 보고 농사를 짓느냐고 됩대, 농민들을 호통쳤다는 것 아닙니까, 글씨. 아니, 누가 포장지까장 일일이 봄서 농사 짓남요? 또 이참에, 경북 성주서는 몬센토 자회사인 신젠터코리아라고 허는 종자회사으 참외씨앗을 사다 심궜는디, 종자가 불량이어서나 열매허고 이파리서 얼룩이 생기는 머시냐, 오이녹만-모나리자-바이러스라고 헌다든가 허는 요상헌 이름으 병해땜시 낭패를 봤다고 지금 난리가 안, 나부럿능가요. 예를 들자먼 한도 끝도 없지만 하나만 더 들자먼요. 쩌그, 보성 벌교 어느 마을이서는 병해충에 강허다는 오이 모종을 심궜었는디, 그 동안 보고 듣도 못헌 병해충이 확 돌더랍니다. 알아본즉슨, 그 씨앗회사이서 만든 농약을 써야만 잽힌다고 허니께 도리없이, 더 비싼 그 회사 농약을 뿌렸다는 것 아닙니까. 죽긴 죽더라느만요. 그런디 이게, 소출보담 농약값이 더 들었다는 것이제라. 다시 말씸드리자먼, 종자, 지가 병해충을 데리고 다니는 종자 아닌가, 허는 으구심이 드는 그런 종자를 맹글어서 팔지 안혔냐? 허는 게지라, 지 말은. 그리서, 이럴 짝이먼, 어디다 호소를 혀야만 되느냐? 허고 농업기술센터이다 문이(問議)를 혔동마는, 그 사람들 왈, 앞도 몰르고 뒤도 몰르고 암것도 몰르고 있다가는 되레 어찌코롬 혀야 되는 쌍판인지를 물으러 왔다고 안 허요⋯.
영화 내용보다 더 앞서는 현재 상황을 들먹인다. 이 마을 역시 종묘상 씨앗을 파종하거나 육묘회사 모종을 심고 있는 경우이고 보면 필시, 씨앗이나 모종 이상으로 해서 농사를 망친 경험이 한두 번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그에 대거리하지 않고 우선 몸부터 사리는 경향이 짙었다. 한 번 나섰다 하면 어느 단위 여느 세력보다 불일듯이 일어서지만, 그토록 나서게 하는 데에까지 공력을 여간만 쏟지 않고는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게 그 동안의 경험이었다. 해서, 노인네들의 속내를 우선 긁어 놓고 본론으로 접어들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연유였다.
─⋯.
─몬센토나 다른 외국으 여러 씨앗회사이서, 여그서 날라가서 쩌그서 나는 경우까장은 안직 걸고 넘어지질 않고 있기는 헙니다만, 저 양코베기들이 우리 모감지를 언지고 간에 틀어쥘 수 있는 코에 걸먼 코걸이, 귀에 걸먼 귀걸이 같은 법을 맹글어 갖고 있어놔서 언지 졸르고 들어올 지 몰르는 일이다, 이거시고만이라, 이 영화으 내용인즉슨.
─⋯.
동창(東窓)과 서창(西窓), 어디로든 바람 한 점 들락거리지 않는 여름밤이었다. 회관에 모인 서촌마을 노인네들이 눈길을 천정에 두었다가 방바닥으로 돌렸다 할 뿐 누구 또한 댓구 한 마디 없다. 곧잘, 거들고 나서던 화동양반도 입을 한 일자로 봉한 채다. 나설 계제가 아니라고 직감한 듯하다.
─⋯.
더운 바람이나마 쏟아내던 동창 쪽 선풍기가 돌돌돌 하다가 그만 멈춘다. 연속으로 작동하지 않고 시간을 재어 켜둔 모양이었다. 누군가 일어서서 줄을 잡아당겨 다시 켠다. 그러더니, 그냥 앉기가 무료했던지 방안을 휘휘 둘러보고는 엉거주춤 선 채로,
─우리는, 밭 한 고랑이나 되게 쬐끔 갖고 있는디, 땅 속 헤집고 삐죽삐죽 나오는 잎사구를 호미 들고 한 핑생(平生) 산 사람이 짤라불 수가 없어놔서 남새, 두어 소쿠리 거둔 적이 있는디, 해당이 되까라, 젊은 냥반?
씨우적씨우적 말을 놓은 댁네는 화동양반 안주인이었다.
─저런, 저런. 시렝이 말리다 소네기 맞을 에펜네, 허고는.
화동양반이 삿대질 하면서 끌끌, 혀를 찬다.
─어, 디 서고, 먼, 일이고 간에 나서는 건, 산전(山田)떡 아니더라고.
누군가 덜퍽지게 소전(笑田)을 갈아놓는다.
─데리다 쓸 디 있으먼 쓰라고 혀. 작것, 안직은 팔다리 심 있응게.
산전댁도 우격다짐에는 질 일이 없어 보였다. 내외가 피장파장인 듯했다. 이렇듯 이죽거리면서라도 주눅들지 않은 웃음이나마 끌어내고 있는 농정(農情)이 아직은 푼푼하게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인자는 부는 바람도 못 오게 장막을 쳐야 헐 판이네, 그려.
뒷산 중턱까지 깎아놓은 산밭과 마을 앞으로, 옆으로 아무렇게나 줄을 그어놓은 듯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밭고랑에서 여러 남새가 푸릇푸릇 키를 세우고 있었다. 밭농사로 많은 소출을 내는 동네는 아닌 듯했다. 한샘꽈리풋고추, CR하광 배추, 무청 좋은 서호무 등속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외국계 종자회사의 품종들이었다. 필시, 씨앗이나 모종으로 인한 피해를 몇 차례 보았을 것이었다. 함에도, 다국적종자기업에 종주먹 휘두르며 대거리할 품새는 애당초 옆구리에 끼고 있지 않음도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시상이, 눈먼 말 타고 벼랑 지나는 것맹이네, 똑.
다국적종자회사들이 우수한 토종씨앗을 사들여 터미네이터 처리 등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개량한 씨앗으로 특허를 받아 되파는 방식의 토종씨앗 잠식 전략은 몇몇 선진적 농민운동가나 유기농재배자들의 자각과 외침의 저항 말고는 농업관련 정부부서나 민간기구 혹은 도시인들,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에서 은밀히 벌어진 일이었다.
─워디, 우리 서촌마을만 그러겄어?
─금메. 천지가 다 그런다고는 허지만도 어찌⋯.
시나브로, 드러내지 않은 채 그러나 마치 농촌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삼투압 삼아, 전 국토에 걸쳐 토종씨앗의 자리를 내몰고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생산하는 종자가 우리 들녘을 점령한 지, 이미 오래 전이었다.
─토종씨앗으로 육묘 내는 회사도 있다, 허동마는?
딱 한 마디, 듣게 된다. 곽 노인이었다. 나는 되었다 싶어,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여기서 멈춰야 했다. 이어갈 다음 단계를 정해 두고 있는 터수였다. 이장에게 시계 들여다보며 눈짓을 보낸다.
─질문 있거들랑 다음으로 미루고 강사님 말씸 듣고, 마칩시다, 이. 가셔야 허니께.
이장의 말에,
─까치가 떨군 박 속으 보물이 들었다 허먼 그것도, 원래 박씨 주인 것이다, 허는 겡운디. 사다 심군 것이라 헌다치먼 맹근 회사이서 내놓으라고 혀도, 내줘야 허것고만, 이?
곽 노인이 마치, 당신 집 울타리 밑으로 조롱조롱 달려 있는 박 속에 보물 들었으면 어찌 해야 할까, 하는 심정으로 회관 안을 훑어보며 꽈리 달인 약물을 넘기는 듯 뜨악한 표정을 내짓는다.
─시상 천지에 없는 겡우니께⋯,
불쑥 허허로운 듯 한 마디 내뺕더니, 덧붙인다.
─말인즉슨, 강사 선상이 늙은 것들 가심 속으다가 무신 숙제를 내준 것맹이로 묵지근헌디, 그걸 풀어주덜 안 허고 가불먼 어찌 것다고 그런단가? 허는 거시기고만, 내 말은.
─그리서 지가, 다시 오겄다 허고 말씸 드릴라고,
말길을 싹둑 잘라먹는 건 화동양반이었다.
─다음이도, 오늘맹키로 시시껄렁헌 필림 나부렝이럴 갖곤다치먼, 집구석이서 구들짱 짊어지고 누워 있을팅게 이장, 나는 아예 찾덜 말어, 이.
2. 입추 앞둔 하현달
그렇지 않아도 8월 말경에 짬을 내려던 차였다 그런데, 곽 노인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이골저골 다니던 중 드문 경우였다. 회관은 여전히 더웠다. 노인네들이 둘레둘레 앉아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함지로 해 자빠진지 그 삼년인디, 여전히 찜통 속이고만요.
흐르는 땀을 쓰윽 문지르고는 우선 인사부터 차린다.
─오느라 목 말랐을틴디, 막걸리 한 사발 얻능 받게나, 이.
틈에 끼자, 화동양반이 술잔을 내민다. 내려놓는 가방을 힐끔 건너본다.
─음, 머시라더라. 아, 그런 필림 있잖여? 그런 거. 꼭 담아오니라 이르라고, 이장헌티 신신당부를 혔는디, 워쩐당감? 오늘은 망구들도 안 올틴디.
─금시초문인디요?
─이장헌티서 그런 소릴 안 들었다고.
─금메요?
─아니, 이장. 자네는, 마실 나간 정신을 그러코롬 여직도 못 챙기갔고 어찌코롬 이장질을 수행헐라고 그런가, 시방?
─더운 밥 자시고 식은 소리 그만 허시잖고는.
화동양반이 이장한테서 눈길을 거두고 내게로 쏟는다.
─무신 교육이다 험서 동니에 나댕기는 사람이먼 그런 것, 한둘썩은 숨기갔고 오도만.
─교육헌다치먼 덕금에미처럼 잠만 퍼자문서, 무신.
─그 연장, 헛간에 매달아 둔 지 십수년 넘었을틴디, 양기만 입으로 잔뜩 올라갔고, 원.
먼젓번에 못 봤던 어르신이다.
─이녁맹키로 뒷구녁으로 호박씨 까는 것보담 낫제, 무신 소리여.
화동양반 응수에,
─저런, 똥친 막가지를 입구녁에 처넣고야 말 화상허고는.
─이목냥반도 참. 만내기만 허먼 어찌 남셍이등걸맹이요, 글씨.
이장이 말막음 하자 이내, 둘이서 이지렁스레 웃어넘긴다.
─농민회헌다는 야그는 농민회 기웃거리는 이장헌티 들었고. 말 허는 씨로 보먼 저짝 충청돈디, 말 허는 투를 보먼 여그 사람맹이로 전라도네, 그려?
화동양반에게 끙, 자 놓은 이목양반이다.
─여그서 쬐께 가는 K읍이서 ‘푸른 농약사’라고 허는 농약사를 허는디요. 지집은 원래 강원도에 가까운 충북 제천으 송학면이라고 허는 골짝이고만요. 집사람이 K읍 사람이어서 살러 왔지라.
─오지랖은 넓게 생깄고만. 뒷간 허고 처갓집은 멀어야 쓴다고 허는디.
─남쪽이라놔서 따땃허기도 허고 또 머시냐, 농토가 많아서 농사 지슬라먼 남녘 땅이 젤이다, 허는 마음이 솟고라져서나 오게 됐지라.
─먼 농사를 헌당가?
─쪼끔 짓느만요.
─멀 심구는디?
─미맥 스물닷 마지기 허고 남샛거리로는 그때 그때, 봐감서 이것저것 소출허고 있어라.
─이녁은 어찌코롬 농사를 짓는당가?
─⋯.
─지난 참이 종자가 어찐다고 혔다는 야그를 들은 게 있어놔서 그란디, 이녁은 씨앗을 어찌코롬 혀서 심구는가, 허는 야그제.
─종자, 받아뒀다 심그제라.
─⋯자가채종 헌다, 이거제, 이. ⋯글먼, 손(孫)은 멫이나 뒀당가?
아연, 좌충우돌이다, 싶다. 이런 양상으로 끌고가는 시골양반 한둘, 으레 있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난디, 이번이 또,
─요즘, 젊은 사람은 아닌 맹이네⋯ 다복허고만, 이.
말을 자르고는 오달지게 잇는다.
─나가 허고자븐 말은, 여그 촌구석이서 자석들 키워 갔고는 암것도 못혀묵는 반푼이 맹글기, 따논 당상인디, 그거를 몰르고 어린 손지놈들 촌구석으 사는 늙은이들헌티 맽게 불고는 아예, 눈질 한 번 주덜 안 허는 년놈들이나, 어린 아그들 데리고 여그서 흙 파묵고 산다고 허는 것들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이거여, 나 말은.
시골 마을을 돌면서 농민들과 자리를 갖다보면, 누군들 나서서 앞뒤 없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그 흐름에 더덩실 따라가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맞장구치며 판세를 좇아가다 보면, 의외로 의기가 투합된다거나 이르고자 하는 지점에 닿는 데에 적잖이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
딴은, 시골의 처처에 경제 파탄으로 혹은 이혼 등으로 해서 시골 고향으로 보내진 손자녀(孫子女)들을 돌봐야하는 노인네들이 적지 않았다. 이목양반의 이어지는 말흐름을 막고 나선 건, 곽 노인이다.
─지금, 그런 말 늘어 놓을만치 한가헌 때가 아닌 게 옆질로 새덜 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붑시다, 이.
─또 먼 꿍꿍이속이 있능가, 몰르 것는디,
이목양반의 붚달은 입성을 곽 노인이 다시 틀어쥐고 나선다.
─꿍꿍이속이라니? 잘 살어 보자는 거시제. 시대으 요청에 맞께끄름.
─그끄저께 여그서 이녁 허는 말을 듣고시나 막 한 마디 놓을라다가, 막걸리 한 사발 얻어묵은 게 있어놔서 입을 닫고 말었는디,
─그리도 무신 야근가 들어는 봄세, 이.
이목양반의 말길을 끊고 나선 건 화동양반이다. 이목양반이 그를 힐끗 쳐다보며 큼큼, 마른기침을 내뱉는다. 목이 컬컬한지 따라놓은 막걸리를 후루룩 들이킨다.
─쩌그, 창무리 백초마을 이장네 담부락에 나불대는 천조각에 써진 걸 보니께 ‘친환경농업, 이제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라고 딱 허니 붙어 있던디, 우리라고 못헐 것 머시 있다냐, 이거제. 친환경재배단지를 우리 마을이서도 조성혀야 쓰겄다, 이런 말이제. 지난 번이, 여그 앉아 있는 젊은 농약상을 모시고 토종씨앗 야그를 혔는디, 그 말인즉슨, 유기농이다, 이것 아니더라고. 요새 뚫린 입 두고 사는 이들이먼 죄 그 질만이 살 질이다, 허니께 말여. 그란디, 그게 말처럼 쉽덜 않혀놓응게 이참에 그런 야그를 혀 보자 혀서, 이러코롬 다시 모이도록 혔다, 이겁니다. 자, 그리서⋯,
이목양반이 잠시 뜸을 들이고 있는 곽 노인의 말을 피라미 먹잇감 채듯 낚아챈다.
─딱, 한 소리 짚어야 쓰겄네, 이.
─낮은 구름 보고 우산부텀 핀다더니, 개발으원 야그가 안즉 더 남은 것맹인디, 쪼매 지둘리지 않고넌.
이목양반의 부풋한 말품을 화동양반이 다조지듯 단속하고 나선다. 어느 마을이고 간에 친불친(親不親)이란 있는 터였다. 곽 노인네와 화동양반네가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음식 서로 이엄이엄 나누며 살아온 앞뒷집이라 했다.
─달밤이 도깨비 춤추대끼, 꺼덕대고 그러는가, 자네는.
이목양반이 우집듯 쏘아부친다.
─아 달르고, 어 다른 벱인디, 꺼덕댄다니.
중중거리는 화동양반을 이목양반이 흘깃 내립떠 낮추보고는, 곽 노인에게로 다시 말길을 튼다.
─우리 동니 펭균 여녕이 멫인지 모를 리 없것제? 70여명 사는 디서 자그만치 69세여, 육십아홉이란 말이시. 막가지 안 짚고는 서서 댕기덜 못허는 80 노구가 여덟, 아홉이나 있는 디서, 새치로 멀 헌다는 거여, 시방.
─안즉 팔다리 심 남아도니께 철마다 여행 싸댕기고, 오장육부 실혀서나 막걸리통 지고는 못 가도 뱃구럭에 출렁출렁 담아 갔고는 가는 이녁이, 그게, 먼 소리당가. 보리 수매꺼정 허고 있음서나.
막걸리잔 든 이목양반의 힘줄 돋은 팔뚝을 곽 노인이 힐끔 쳐다보며, 두동진 이목양반의 행태를 된통 짓씹는다. 입안에 들이부은 막걸리를 꿀꺽 삼킨 이목양반이 손등으로 입가를 쓰윽 문지르고는, 되알지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보리야 뿌려 놓기만 허먼, 손 댈 것도 없이 지가 저절로 영그는 거시긴디, 심 있고 없고가 무신 문제라고 그려, 시방. 글씨 나 말은, 인자 우리 입구녁에 넣고, 자석들 사는 서울로, 어디 APT로 죄, 보내고 나먼 농사 끝, 아니더라고. 지금 동니서 그나마 젊은 놈들 서넛 빼고는 다들 그러코롬 짓고 있는 거 뻔히 알고 있음서, 새삼시랍게 무신 억만금을 산다고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허냐, 이거제.
길게 숨 한 번 몰아쉰 뒤, 이목양반이 여전히 핏대선 어투로 이어간다.
─글고, 여그 앉아 있는 50줄, 이장 또래 두엇 있다고 허드라도 멫 년 안 가서 저 사람들도 골골허는 시상이 될 것이 뻔한 이치인디, 이녁은 또 먼 심이 안즉 남아서, 무신 일을 꾸밀라고 허냐, 인자는, 핀한 시상 살자, 이런 말이제, 나말은, 흠흠.
─저런, 저런. 그러니께, 촌것들이란 소리나 듣제.
─그렁게, 이녁이 막무가내로 우겨서나 뻘밭을 논으로 맹글어 놓은 뒤로 입때껏까장, 회관이 모있다 허먼 이러니저러니 뒷말이 튀어나오는 거셔, 젠장맞을.
─말 한 번 잘 혔네. 입에 풀칠도 못 허고 죄우, 죄우, 살던 동니서, 자석들 대처로 보내고 이녁 자석맹이로 대학물 묵은 놈들도 멫이나 안 나왔당가. 뻘밭 기고 다님서 짠물 뒤짚어 쓰던 거시기서 땅 갈고 흙냄시 맡고 살게 헌 그기, 누구 덕인디 인자와서, 어쩐다고?
곽 노인의 응수 또한 날카롭다.
이장, 정두중의 말에 따르면, 서촌마을은 낮으막한 뒷산의 산밭 일구고, 마을 앞으로는 죄 합해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 두어 배 쯤이나 될 성 싶은 논에서 겨우 식량이나 대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마을 옆으로 반의 반 마장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남해안의 전형적인 리아시스식 깊숙한 만(灣)을 이룬 뻘밭에서 곧잘, 바지락이며 꼬막 등속을 캐어다 밥상에 올리고 남은 두어 소쿠리 장에 내다팔던 궁핍한 농어촌이었다. 그런 터에, 간척사업으로 인해 농어촌에서 아예 농촌으로 바뀐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1.5톤짜리 낡은 동력선을 저쪽 바다 가까이에 있는 이웃 포구의 선착장에 메어두고 있는 집이 없는 건 아니나 그건, 면세유를 타다 쓰려는 꼼수일 뿐 바닥(바다) 일에 나설 노인들도 이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딴은, 대규모 간척사업도 아니었다. 동네사람들끼리 열두어 마지기씩 불하받을 정도의 물막이사업이었다. 새마을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이곳 남해안 일대에 국가사업으로 추진된 간척사업이 독려되고 있을 즈음, 관청에다 알랑방귀 뀌며 조금 공들이면 될 성 싶던 차에, 그나마 면(面)사무소에서 말단으로 있던 곽 노인의 힘도 한몫 보태어져 쉬이, 이뤄진 일이었다. 천한 대접 받는 바닥일 제발 그만 두고 가까운 화동리처럼 논두렁 밭고랑에 나앉아 피 뽑고 김매고 싶어 안달이었던 게, 원수 같은 생각이었다고 되짚어 후회한들 소용없는 짓이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뻘밭에서 건져내는 수익이 전답(田畓)에서 소출한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어, 더욱이나 아쉬움이 컸다. 그때 그 일을 앞장서서 추진했던 곽 노인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씩 가끔 내던지기도 하지만 그나마, 마을 대소사에 곽 노인이 나서지 않으면 성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목양반이 속내를 다지려는 듯 사발에 막걸리를 천천히 따라 놓는다.
─바지락, 꼬막 등속을 멫 가마니 둘러업고 시장바닥으 내놔봐야 쌀 한두 됫박 사먼 그만이던 때 허고 쌀끔이 되레, 바지락 끔으 반만도 못허게 된 지금 허고 견주는 것은 시세(時世)를 몰르고 나불거리는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혀서, 당시 간척사업은 잘 헌 거시기다, 여기고 있제, 나는.
이목양반이 한 발짝 물러서는 듯했다. 잠시 말을 끊고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붓고는,
—그런디, 나가 말 허고자 허는 거시기는, 그 때게, 바닷물 막음서, 서로 이러쿵저러쿵 허는 논으(論議)도 없이 마을 사람들을 아조 둘되게 보고시나 이녁 혼자서 주물딱주물딱 혀 놓응게, 지금도 마을이 찌그락짜그락 허지를 안 허능가, 허는 야그제. 그러니, 이번이 또 무신 일을 꾸밀라고 헌다치먼, 저번이처럼, 혼자서 꿍꿍이속으로다 허덜 멀어라, 이거여.
곽 노인의 일버릇(作風)인 모양이었다. 이목양반이 각단지게 짚어낸다.
─허먼? 거그서 나서 보잖고.
곽 노인이 버럭 성깔을 낸다.
—마을 개발으원이라고, 혼자서 지지고 볶으고 다 헐라 허먼 안 된다, 이거제.
—찢어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내뺕으먼 되는 거여, 시방.
─캐캐묵은 야그는 그만, 접어뿝시다. 시도때도 없이 워째, 그런다요. 강사 선상, 오래 지둘리게 허먼 실례니께 인자, 야그를 한 번, 들어봅시다, 요.
이장이 말막음하면서 판세를 끌라는 눈짓을 내게 보낸다.
간척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농촌공동체가 무너져 있는 걸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서로 갈라지고, 찢어지고, 등 대고 사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무슨 개발이다, 저리영농자금 대출이다, 해서 이른바, 눈 먼 돈이 쏟아지자 마을 사람들끼리 혹은 갑계원들끼리 또는 농민회면 농민회, 작목반이면 작목반끼리 서로 겹보증을 서면서까지 끌어다 쓰면서 농사에 퍼부었다가 죽을 쑤기도 하지만, 대처에 나가 있는 자식들 사업자금으로 대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우스농사 몇 해 말아먹고는 밤봇짐 싸고 줄행랑을 놓거나, 자식들 사업이 잘못되어 부도가 나면 줄부도로 망하기도 하고 동네가 모두 쇠고랑을 차게 될 지경에 이른 경우 또한 있었다. 설상가상,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의 급속한 진척으로 인해 마을 회관을 중심으로 한 대의(代議)문화까지 야금야금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나는, 서글픔을 짓누를 수 없었다.
─영화 한 편, 우신에 봅시다요. 우리말로 돼놔서 이번이는 쪼매 나을 것이고만요.
─흉년이는 배암도 조이삭을 먹는 벱이니께 더운 밥 찬 밥 가릴 것 없다, 이거제이? 기생 말년에 좆 큰 놈 만내분 형국일세, 그랴.
‘망구들’ 오지 않아 그런 지 화동양반이 거시기, 하게 양념을 친다.
프로젝터를 서둘러 작동한다. 일일이 맞장구쳤다간 뭇방치기를 자못 즐기는 화동양반의 입에서 깨진 독 서슬 같은 언사를 또 다시 들을 것만 같아서다. 불을 끄자 빠르게 영화 속으로 빨려드는 분위기다. <위험한 연금술>(주2)은 7월 4일자로 KBS에서 방영한 환경스페셜 다큐멘터리였다.
불을 켜자, 화동양반이 먼저 나선다.
─인자 보니께, 저그 ‘몬산’ 머시라고 허는 저 회사가 근사미, 맹근 회사라는고만, 이.
—월남이서 밀림(密林)으다 들입다 붓어분 고엽제도 거그서 맹글었다느만요.
이장 말에,
─근사미 털어넣고 죽은 구신덜이 이 골 저 골, 안직도 혼백으로 떠돌 거시기네마는⋯.
─금메. 숟가락 놓을라치먼 딱 한 모금이먼 확실허제, 지금도.
이목양반이 그렇게 죽은 피붙이라도 있어, 회억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근사미 허옇게 뿌려대도 그 속이서 푸릇허니 사는 콩 종자는 얼마나 독허까이?
—심구고 있잖여, 다들.
—양석(食糧)이 아니라 독약이제, 독약.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고 허지만 근사미 안 치고 그 종자 안 심구먼 애시당초, 콩으로 메주 쓸 일도 없을틴디, 어쩔 것인가?
—그러게 말이시. ⋯그런다고 허지만도.
—공판 혀서 돈 사문서도 껄쩍지근허제.
—내다 팜스나 누군들 맴 핀히 묵는 사람, 있당감?
—콩 헌티도 죄 짓는 짓이제.
─옛날이넌 약 안 쳐도 싹 잘 나고, 열매 잘 여무는 씨앗이 많었는디⋯.
─여그 땅 허고 기후에 딱 맞는 종자니께, 그랬제.
─씨앗 챙기는 것도 한 짐, 아니었더라고. 명년이 지슬 씨앗 챙겨 두고시나, 괭이고 낫이고를 갈무리 혔으니께.
─금메, ‘나락씨는 봉태기에 담아 시렁에 얹어두고 조와 수수는 이삭째 엮어 방 안 보꾹에 매달아 놓’(주3-1)덜 안 혔다고.
─그랬제. ‘참깨씨, 팥씨, 녹두씨 같은 자잘한 것은 무명주머니에 담아 역시 보꾹 서까래에 달아 놓’(주3-2)았고.
─‘목화씨는 박두구미에 담아 바깥 처마 밑에 매달아두고 삼(대마초)는 촘촘하게 엮은 짚오쟁이에 담아 역시 서까래에 매’(주3-3)달아서 ‘쥐한테 먹히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해 씨앗이 썩지 않도록’(주3-4) 단속혀 놓고서야, 발 뻗고 잤제, 옛날이는.
─옛날은, 무신. 바로 엊그제 같고만.
─먹고 살어야허니께 양석이다 싶으먼 이것저것 죄 심궜다고, 안.
─그러게. 씨앗도 씨앗도 수가 백 가지라. 나, 기억만으로도 ‘돼지나락, 까투리나락, 쌍두배나락, 오두바리수수, 눈까막이수수, 개파리콩, 어금니콩, 게발차조, 개똥차조, 물푸레차조, 오누이강냉이’(주3-5), 하이고, 숨 넘어 갈 만큼 많았제.
─어맀을 적 경상도 우리 어매, 허던 말씸 생각나네. ‘야아들아, 자지감자캉 보지감자캉 한데 두지 마라, 바람피운다.’(주3-6) 그 말 듣고 우리 어매 입심 걸다, 허문서나 얼굴이 얼매나 빨개지던지. ⋯어려서 그랬제, 이.
기실, 영화는 양념일 따름이었다. 굳이 영화 이야기를 판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런 자리 자체가 아예 이뤄지지 않은 연유여서 농민들 스스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을 뿐이었다. 농민들 가슴에 옹송그레 똬리를 틀고 들앉아 있는 건, 이런 농심(農心)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기농이다, 이거 아니라고.
곽 노인이 메지를 내자,
—워따, 워따. 토종씨앗이라느만, 그러네.
이목양반이 암팡지게 못을 박고 나선다.
—그게, 그거제.
─토종씨앗이 바로 우리, 아니더라고.
누군가 맞장구치고, 막걸리 한 순배씩 흔쾌하게 돌려진다. 마음이 이렇게 모아진 적도 근래에 없었던 듯, 정두중 이장이 흐뭇해하는 눈치다. 서촌마을 회관 밖으로 흘러나오는 웃음 듣고, 입추 앞둔 하현달 또한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 것이었다.
3. 땅도 살리고 농촌도 살리는
—머시라 그런당가?
쉬잇, 하면서 곽 노인이 ‘지둘려 봐’ 하는 손짓을 내보인다.
─채소전(菜蔬田)은 어렵다고 허니께 알다시피, 우리 마을 답(畓)이 모다 간척지라서, 쌀농사만이라도 ‘친환경재배단지’로 가능허겄다 싶고, 또 멫 년 전서부텀은 딱 한 번 치거나 거의 안 허는 저농약쌀을 수확허고 있어놔서, 마을이서 단지를 지정혀도 암시랑토 괜찮다고 허니께, 간판 맹글어 달았다, 이거여. 그리혀 놓으먼, 거그서, 소리쟁이, 자리공이서 뽑은 추출액을 준다기에 신청혔는디, 안 된다먼, 머시냐, 이거제.
─정해진 규정⋯ 물량이 적⋯ 기간도 지⋯.
─이유가, 그거여?
─지가 결정⋯ 게, 아니⋯.
전화기 저쪽에서 건네지는 몇 마디가 틈틈이 들렸다.
─규정, 규정, 힜쌌는디, 그게 무신 벱이랑가?
─⋯.
─새칠로 시작허는 디를 우신에 줘야제, 거그서 정 허는 대로 따라 오이다, 허먼 그거는 아니다, 이거시제.
─⋯.
저쪽에서 아무런 응대가 없자, 곽 노인이 더욱 분을 내어 짱알짱알 퍼지른다.
─나도 국가 녹을 삼십년간이나 먹다 나온 사람여. 말 허자먼 알 것, 모를 것, 안즉도 머릿속으 다 입력되아 있다, 이거여.
─곽 주사님. 지가, 잘 알지만⋯.
─안다믄서, 물량이 어쩌니 기간이 저쩌니 험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허능감?
─⋯.
수화기를 든 쪽에서 짓는 심드렁한 표정이 훤히 보였다. 이런 투의 대거리에 대처하는 그네들의 응수라는 게, 고분고분 들어주는 척 하며 전화를 건 쪽에서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게끔, 느글느글 잡아끄는 것이었다.
─김 주사가 그런당가? 이리 건네 보소이. 나가 한 소리 헐랑게.
이목양반이 전화기를 건네주라 한다. 농업기술센터 00상담소 김 주사라면 둘째 아들 친구라 했다. 곽 노인이 이목양반에게 손사래를 치며 바싹 죄어친다.
─글먼, 거그서 우리헌티 혀주는 거시기가 머여, 도대체.
─잔류농약 확인⋯, 친환경인증⋯ 단지 별로 혀주⋯.
─그걸 몰라서 허는 소리가 아녀. 자네가 하도 깝깝시랍게 구니께 허는 말이제.
─⋯.
─미꾸라지맹이로 빠져나갈 구실만 대믄서, 이 마을 저 동니 나래비 세워 갔고 준다커니 못 준다커니 험서, 책상에만 주질러앉어서는 이장헌티 전화로 이리라, 저리라 안즉도 권이주으를 내보인다치먼 그기 지금, 어느 시상으 자세냐, 이거여, 시방.
─⋯.
말이 없자, 곽 노인이 목소리를 한층 더 치켜세운다.
─젠장헐, 거그서 영농교육 헌다치먼, 동니 사람들 죄 끌어 모아서 참여를 허곤 혔는디, 인자는 아니다, 이거고만. 글고, 말이 나왔응게 한 마디 보태자먼, 65세 이상 농민들헌티는 앞으로 보조금도 안 준다고 허는디, 그럴라먼, 차라리 죽여부러라, 이거여. 촌구석 어디고 간에 사오십 줄이 멫이나 된다고 거그다가 다 준다니⋯ 그거이 말여, 막걸리여.
─자다가 봉창 뜯는 야그를 헌디야, 시방.
이목양반이 다시 수화기 주라며 말막음을 하고 나선다.
─그러게. 거그다 대고 헐 소리는 아니고마는.
화동양반 또한 거들고 나선다. 앞뒷집의 친불친 관계라 해도 잘못 짚은 말푼수라 여기는 듯했다. 나는 화동양반을 쳐다보며, 자잘한 웃음을 건넸다. 곽 노인이 화동양반을 힐끔 건네본다 싶더니, 저쪽에다 대고 말대포를 쏘아대는 것이다.
─말이 났응게 허는 디, 아예 죽여주라고 헐 판여, 인자는. 그리서, 11월 11일 서울서 헌다는 전국농민대회, 거그 가먼 육오 이상은 모다 죽여 준다니께, 다음 주 전국농민대회에, 여그 서촌마을서는 지팽이 짚고 나뎅기는 팔공 축들 빼고는 다 갈틴게, 알아서들 혀, 시발놈으 시상.
─그런 야그⋯ 여그으다 헌⋯? 번지수 틀,
말길 한 번 트였다 하면 그냥 내지르는 성깔인 듯싶다. 곽 노인이 저쪽 말을 싹둑 부러뜨려버린다.
─번지수가 틀리긴 머가 틀렸다는 거여. 농사판이 엎어진 시루판이라는 걸 누구보담 더 잘 알고 있는 거그서 그러코롬 나오는디, 다른 디서는 볼짱 다 본 것 아니더라고. 적어도 나 말은, 그짝이서 먼첨 이리허고 저리허니 우에다 더 요청혀서 줄 수 있도록이 허것씀다, 혀야지. 나 몰라라 허고 뒷짐지고 앉어만 있으먼, 우리 늙은 농민들을 한숨이서 건져줄 디가 어디냐? 이거여. 그러니, 11월 11일 서울서 헌다는 농민대회 가서 이런 거시기를 죄다 고하고, 죽여주라 목심 내 놓겄다는 거시제. 내 말이 틀렸는감?
─씨도 안 멕힐 야그 험서 머시라고 핏대를 세운디야?
이목양반이 헛다리짚는 곽 노인을 타박한다. 농민대회에 참가한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기밀유지 사항이다, 싶은 것이다. ‘푸른 농약사’의 젊은 농약상이 권하는 집회 참가지만, 관(官)에다 미리 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싶은 속내였다.
—아니, 이녁은 배알도 없고, 쓸개도 없남.
곽 노인의 앙칼짐에,
—무신 소리여, 시방. 허벅다리걸기건 바깥다리걸기건, 걸고 넘어지기라먼, 거그 보담 내가 한 수 더 위제. 그러니께, 나 말은 기술센타으다 대고 백날 떠들어 봤자, 입만 아프다, 이거여.
—여그 건, 저그 건, 가리고 자시고 헐 계제가 아니다, 이거제. 늙은 농민들 생매장 허것다는 시상(世上) 꼬라지를 볼 짝시먼, 어디다 대고라도 한 판 붙어야, ⋯아, 가만. 이런 쥐붕알 같은 놈 보게나, 이. 전화를 끊어 부렀다고, 안. 이런 잡녀르,
말끝을 접고 곽 노인이 막 회관문을 박차고 나서려 하자,
—놔둬 불세. 우리가 언지는, 관것들 보고 논두렁밭고랑으 나댕겼당감?
화동양반이 거들고 나선다.
—그려, 그러제. 인자는 우덜 저 깊은 속이서 우러나는 맘으로다가 논밭 일궈야허니께, 거그다대고 심 뺄 것도 아니란 말이시, 이.
누군가 그렇게 덧붙이자, 늙은 농사꾼들이 고개 주억거리며 한통속이라도 된 듯 회관 마당으로 나선다. 담배 생각이 간절한 탓이었다. 남녀가 둥게둥게 앉는 회관 안에서 담배는 언제부턴가 금지였다. 마당으로 나가 피우게 된 풍토가 은연중 자리잡은 것이었다.
담배 한 모금 베어 물고 하늘을 쳐다본다. 아닌 게 아니라, 할망구들 입김이 거세진 것에 배알이 꼴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 걸음 진화되어 나아간 풍습인 것인즉, 된통 틀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담뱃불 붙여 문 늙은 농사꾼들이 새삼스레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며, 흠흠거린다.
이목양반이 연기를 내뿜으며, 검지를 추켜든다.
—저 봐, 저그.
이목양반이 가리키는 들녘으로 무와 배추, 생강, 당근 등속의 가을 소채들이 푸릇푸릇 키를 세우고 있다. 곧 김장 시장에 낼 남새였다. ‘푸른 농약사’에서 건네받은 토종씨앗으로 파종한 작물이다. 토종씨앗을 끝내 지키겠다는 사훈(社訓)을 내걸고 있는 <농우바이오>사와 <흙살림>이라는 농민단체가 연계하여 농촌에 보급하고 있는 재래종 씨앗이었다.
—땅심을 키워놓응게 보기에도 실, 허드만요.
줄곧 곽 노인과 이장을 통해 지력(地力)을 키우도록 독려했다. 우선 흙을 살리는 게 초기 유기농의 필수였다. 발로 뛰어 일군 세 번째의 토종씨앗 재배 마을이었다. 들녘을 질러온 늦가을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차갑지 않다. 나는 새삼스레, 바람에 실려온 풋풋한 흙내음을 크게 들이마신다. 흙내음에 젖어드는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땅도 살리고 농촌도 살리는⋯.
‘⋯거시기가 유기농이제’ 하는 소리는 입안에서 굴리며 곽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농업기술센터 김 주사를 패대기치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이렸다. 곽 노인이 담배 한 모금, 깊숙이 빨아댄다. 곽 노인이 힐끗 나를 쳐다보고는 노래진 이 드러내며 웃는다.
서쪽 하늘로 노을이 시나브로 내려앉고 있었다. 들녘을 건네 보는 석포리 서촌마을 늙은 농사꾼들의 가슴 속에 불일듯 일어서는 농심이, 그래, 불꽃너울이, 버얼겋게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주1)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데보라 쿤스 가르시아가 2004년에 만든 영화
(주2)유전자조작(GMO) 식품의 재앙을 다룬 KBS 이강택PD의 다큐멘터리
(주3-1〜6)『문학동네』2006년 가을호, 권정생선생님의 <토종 씨앗의 자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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