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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이 바탕이 된, 진실하고 건강한 글쓰기
- 안선모 작가작품론
글 · 김경옥(동화작가)
Ⅰ. 올곧고 단단한 프로 근성의 작가
안선모는 1958년 바다가 보이는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던 중에 1992년 「대싸리의 꿈」으로 월간 『아동문예』에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연이어 1994년에 「낙타가 부르는 노래」 로 MBC창작동화대상, 1995년 「나는야 코메리칸」 으로 눈높이아동문학상, 1996년 제 16회 해강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한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30여년 가까이 140권이 넘는 어린이책을 저술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다.
안선모는 어린 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융통성도 없고 좀 맹한 아이’였다고 자신을 회상한다.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잣집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는데 좁은 골목을 뛰놀고 산과들을 쏘다니며 열매을 따먹던 그 시절이 온통 즐거운 기억뿐이었다고 말한다. 오로지 자식 교육이 우선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책을 좋아하고 엉뚱한 상상을 즐기며 자란 안선모는 대학시절 비로소 예비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학보사 기자 활동 외에도 대학에서 공모하는 소설에 당선되고 또 친구였던 동화작가 원유순과 함께 ‘3인 시화전’을 여는 등 그는 어느 틈엔가 작가라는 운명의 끈과 서서히 맞닿아가기 시작한다.
1992년 등단 후엔 동화에 대한 열정을 더욱 더 품어 나가는데 그는 밤을 새우며 저돌적으로 동화를 써나갔고 첫 동화집인 『모래 마을의 후크 선장』을 낸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는 수많은 저서들을 써낸 베테랑 중견 작가로 우뚝 선다. 안선모는 매사 정직하고 올곧으며 어떤 일이든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이런 성정은 동화쓰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동화를 쓸 때면 철저히 자료를 조사하고 직접 발로 뛰면서 쓰는 작가이다.
‘나는 신문 기사에 나온 이야기나 뉴스에서 다룬 이야기를 동화 속에 투입할 때 될 수 있 으면 그 장소에 가보고 나서 쓰는 편이다. 가보지 않고서 가보지 못한 곳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내 상상력이 빈곤해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을 될 수 있으면 꼭 찾아보아야 직성이 풀린 다.’
그의 글에는 거짓이나 속임수 등 얄팍한 술수는 없다. 그는 교육자와 작가적 양심으로 어린이를 위한 책을 저술하고 작품을 창작해나간다. 사실성에 기반을 두고 철저한 관찰과 자료 조사를 토대로 꼼꼼하게 글을 써가며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믿음직스러운 작가인 것이다. 장편 역사동화인 『성을 쌓는 아이』 를 쓸 당시 작가는 작품 집필을 위해 직접 도성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2년 동안 도성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많은 자료 조사와 취재를 통해 책상에서 깨작거리며 안이하게 쓰는 글이 아닌, 발로 뛰는 작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의 공력대로 ‘성을 쌓는 아이’는 완성도 높은 감동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다룬 동화나 자연의 삶을 추구한 작품에서도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해나간다.
안선모는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한 작가이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심리 및 그들이 겪는 여러 상황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바라보는 아동들은 주로 무언가 늘 부족하고 서투른 아이들이다. 학급에서 문제아로 지목되었거나 특별한 아이로 취급되는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가 근무했던 학교는 대부분 변두리거나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학교이다 보니 그런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고 보살핌과 소통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생생하게 써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교육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문제를 글로 써나갈 때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가진 장점과 긍정적인 면들을 찾아내는 등 교육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 다음엔 문학가로서 객관적 거리를 둔 채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문제와 고민을 헤아린다. 누구보다도 교육현장의 문제를 잘 알지만 교사의 시선만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가르치려드는 교훈만 담는 설익은 작품이 될 것이다. 그는 교사와 문학가 두 시선을 잘 견지해나가면서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심도 있게 아이들의 문제 속으로 파고든다.
작가 안선모를 말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연적 삶’이다. 그는 주중에는 도시학교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남편 송한경과 함께 운영하는 포천 ‘산모퉁이 농장’으로 달려가 자연 속에서 삶을 누린다. 그곳에서 작가는 동·식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때로는 생태 전문가가 된다. 벌을 키우고, 거위와 닭을 키우고 멧돼지 고라니 등을 만나기도 한다. 또 고된 농사일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연과 합일된 정신을 지향하기도 한다. 농촌 체험적 삶은 그에게 중요한 글쓰기 소재로 활용됨과 동시에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안선모는 진실에 근접한 체험적 글쓰기를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이다. 작가로서 그가 지닌 프로 근성은 대나무처럼 올곧고 단단하다. 그는 절대 허투루 글을 쓰도록 스스로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등단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의 세월동안 안선모는 초심 그대로의 열정을 간직한 채 진정성 있는 작품들을 창작해왔다. 그 결과 어린이 독자에게 건강하고 믿음이 가는 문학을 선사하게 되었다.
Ⅱ. 안선모의 작품 세계
안선모는 지금껏 140권이 넘는 다양한 어린이책을 펴냈다. 그는 동화작가이면서 또한 교육전문가이기에 출판사는 이런 작가를 가만 둘 리가 없다. 문학성과 교육성이라는 두 바퀴를 균형감 있게 잘 굴려 맛깔나게 글을 써내는 이만큼 신뢰할 수 있는 동화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기획의 청탁을 받으며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많은 양서들을 출간해왔다.
그런 왕성한 저술활동 중에서도 안선모는 순수 문학 작품에 대한 창작을 가장 중요시여기며 지금껏 40여권의 개인 창작집을 냈다. 26권의 장편동화집과 10여권의 단편동화집, 또 공들여 펴낸 몇 권의 그림책 등이다.
『마이 네임 이즈 민 캐빈』 , 『지구를 굴리는 쇠똥구리』 , 『안녕 바람숲 마을』 , 『날개 달린 휠체어』 , 『아기 햄스터 에햄이』 , 『아빠의 바퀴구두』 , 『미안 미안해 반달곰아』 , 『소리섬은 오늘도 화창합니다』 , 『우당탕탕 2학년 3반』 , 『자전거를 타는 물고기』 , 『안녕 베트남 신짜오 한국』, 『으라차차, 시골뜨기 나가신다』 , 『후라이드와 양념이』 , 『걱정 뚝, 안전짱』 , 『초록토마토』 , 『은이에게 아빠가 생겼어요』 , 『할머니는 알도 못 낳잖아요』 , 『성을 쌓는 아이』 , 『포 씨의 위대한 여름』 , 『싸움 구경』 , 『꿀 독에 빠진 여우』 , 『교실로 돌아온 유령』 , 『죽을 똥 살 똥』 등 작가는 많은 작품들을 써내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중 『소리섬은 오늘도 화창합니다』 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바다와 많은 인연을 갖고 있는 작가가 인천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을 취재하여 쓴 것이다. 실제 배경은 무의도이지만 ‘소리섬’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어촌 체험의 이야기를 써냈다. 이 작품으로 2006년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자전거를 타는 물고기』 와 『꿀 독에 빠진 여우』 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다. 그 밖에도 개발에 앞장서는 포클레인 ‘포’씨가 위대한 생명을 부화시키는 이야기인 『포 씨의 위대한 여름』 은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 창작의 주된 키워드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을 보이는데 ‘아이’, ‘자연’, ‘역사’ 이다. 교육현장에서 만났던 여러 ‘아이’에 관한 이야기, 또 농촌 체험의 삶에서 우러나온 ‘자연’에 대한 이야기, 또 작가가 애정을 갖고 계속 추구해 갈 것으로 예상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가지 유형은 앞으로도 안선모 작가의 창작 활동에 중요한 모티프가 될 것으로 파악이 된다.
이글에서는 안선모의 초기 작품들은 제외하고 중반기 즈음에 해당되는 2010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는 과연 어떤 정신과 시선으로 형상화되는지, 동화에 담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들을 엿보려 한다.
1. 아동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
교실을 배경으로 한 동화는 안선모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안선모는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 사건들 뿐 만 아니라 부모의 이야기까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구성하며 실감나게 쓰고 있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지만 작가들에게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일이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면서 하루가 다르게 첨단 과정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마저도 우리 시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관심사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마저도 그들만의 암호가 존재하는 듯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작가들은 옛날 고리타분한 교실 풍경을 그대로 써내거나 현실감 떨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기 십상이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설정이라면 아이들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안선모의 동화쓰기는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동화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리얼리티를 살려서 쓰는 동화에 아이들은 신뢰를 보내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낄 것이다. 책속의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경험은 어린 독자들을 책으로 푹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이다.
『우당탕탕 2학년 3반』 은 교실에 있는 각양각색의 말썽꾸러기들로 늘 시끌벅적한 교실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작가는 몇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어린이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고지식한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열린 마음의 관찰자이다. 조금 모자라지만 엉뚱하고 순수하고 거침없는 아이들을 꾸밈없이 동화 속에 나타내 개성 넘치고 건강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유쾌하게 선사한다. 작가는 교실 속의 마이너리티에게 긍정의 시선과 애정을 쏟아 붓는 각별함을 보인다. 또한 서사의 진행 면에서도 작가 관찰자 시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어린이들 간의 관계 형성 과정을 객관성 있게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 의식의 소산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은이에게 아빠가 생겼어요』 는 한부모 가정과 반려동물에 대해 쓴 작품이다. 편모 가정의 외로운 아이 은이는 잃어버린 강아지 앵두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처럼 외롭고 버림받은 강아지들을 만나면서 용서와 관용을 배우게 된다. ‘비켜비켜 아저씨’도 은이처럼 외로운 존재지만 은이는 이런 만남의 과정을 통해 맑고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결핍이 있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그려냄으로써 ‘결핍은 또 하나의 결핍을 만들어낸다’는 부정적인 사회 통념을 깨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싸움 구경』 은 단짝인 시우와 유민이가 장풍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다가 시우가 다치게 됐고, 급기야 엄마들끼리 싸움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벌써 화해했는데 부모들은 여전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싸움을 하고 있고 이런 부모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구경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실제 겪은 일을 동화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있어 읽는 독자들마저도 싸움구경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아이들의 속성은 단순하고 경쾌하다. 비록 싸움이 났어도 아이들끼리는 금방 화해하고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른이 끼면 오히려 문제가 커진다. 작가는 아이들보다 순수하지 못하고 욕심 많은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으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유쾌한 글솜씨로 담아냈다.
“이제부터 싸움하면 안돼요. 그런 의미에서 악수하고 껴안아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유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합니다.
“우리 싸우지 않았는데요?”
“어쨌든 친구가 다쳤으니까요. 자 얼른!”
시우와 유민이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악수도 하고 꼭 껴안았습니다.
“서로 화해했으니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요.”
그러자 유민이가 또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그런 유민이를 보고 시우가 픽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작가 안선모는 교실을 배경으로 작품을 써나갈 때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겪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무감각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글감을 발견했을 때는 리얼한 서사를 꾸려가기 위해 더 많이 관찰하고 숙성시켜나간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쓸 수 있다는 것과 아이들의 심리와 상황을 세밀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겪는 문제 상황을 생생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로 엮어내기가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요. 날마다 일어나는 새로운 갈등 속에서 명쾌한 주제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꼭 다 루고 싶은 소재나 주제를 발견했을 때 오랫동안 관찰하고 지켜봅니다. -하략- ’
그는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잘 쓸 수 있는 작가이지만 ‘교단 작가’라는 말에는 거부감을 표시한다. ‘학교 교사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을 교단 작가로 분류해 그들이 쓰는 글은 고작 교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식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작가를 어떤 범주에 가두어 평가하는 것만큼 창작의욕을 꺾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안녕 베트남 신짜오 한국』 은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 가정 아이의 이야기다. 한새는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베트남에서 살다가 4학년이 되어 한국으로 왔지만 문화적인 차이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배척당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자세와 당당함으로 한국 생활을 해나간다. 오히려 탈북자 가정의 인철이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마지막엔 다문화 아이들의 공연을 통해 친구들과의 갈등을 헤쳐 나가고 하나 되는 마음으로 건강한 관계 맺기를 한다.
안선모는 다문화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오히려 긍정적 시각으로 바꾸어 그들이 가진 장점을 세계화 추세에 걸맞게 살려주며 용기를 주고자 한다. 그는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오히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더 이해해나가며 그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일반화시키지 않고 어린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작가관을 엿볼 수 있다.
2. 자연적 삶이 묻어난 진실한 글쓰기
안선모는 2005년 포천에 ‘산모퉁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전원적 삶의 공간을 마련한다. 15년 동안 척박한 땅을 일구더니 꽃과 나무, 새, 동물들과 함께하는 더 없이 아름다운 터전을 이룩하였다. 작가는 주말이면 산모퉁이로 내려가 꽃밭을 가꾸고 땀 흘리며 농사일도 한다. 힘들게 수확한 건강한 농산물들을 주변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도 한다. 산모퉁이 농장은 세월이 갈수록 자연스런 멋을 갖춘 명소로 자리 잡으며 동화작가들의 힐링 장소로도 유명하다.
산모퉁이 농장의 안주인을 바라보노라면 미국의 동화작가 타사 튜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산속에 농가를 짓고 정원을 가꾸면서 자연주의 삶을 실천한 타사 튜더처럼 안선모 작가도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산과 들을 닮은 너그러운 모습으로 자연주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작가의 자연지향적인 삶은 동화 쓰기와 곧바로 연결된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또 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며, 포클레인의 오목한 손 안에서 생명을 부화시키는 이야기 등 싱그러운 동화들이 탄생된다.
『포 씨의 위대한 여름』 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동화의 주인공은 개발의 상징인 포클레인을 의인화 한 ‘포 씨’이다. 힘이 센 포 씨는 우거진 갈대숲을 밀어내 아파트를 짓는 일을 하거나,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강줄기를 파헤쳐 곧게 만드는 일 등 자연을 훼손하며 개발에 앞장서왔다. 포 씨는 자신을 위대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던 포씨가 구제역으로 돼지들을 땅에 묻은 뒤부터 시름시름 병을 앓는다. 그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 병든 포씨는 녹슬어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갈대숲을 잃어 알을 낳을 곳이 없는 개개비가 포씨의 손 안에 알을 낳게 된다. 포씨는 마침내 어린 생명을 키워내는 위대한 일을 한다.
‘알을 낳은 후에 개개비는 낮이나 밤이나 알을 품었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포씨도 함께 알을 품었습니다.
혹시나 사람들이 볼세라 마른 잎을 그러모아 아늑한 둥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포‘씨의 가슴속에 어떤 새가 둥지를 틀어도 될 만큼의 넉넉함이 쌓여
갔습니다. 푸른 더덕은 하늘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포씨의 가슴팍을 마냥 타고 올라가고,
바퀴 밑에서 살곰살곰 자라고 있던 덕다리 버섯도 덩달아 삐죽 키를 늘리는 뜨거운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은 산모퉁이 농장에 있는 포클레인이라고 한다. 그 포클레인을 더덕 줄기가 타고 올라가고 바퀴 밑에서는 버섯이 삐죽 올라와 생명의 잉태를 다함께 돌보는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보고 관찰한 일들을 동화속에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자연과 생명의 위대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으라차차 시골뜨기 나가신다』 는 아토피 때문에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된 아이가 처음에는 불만을 갖고 시골생활을 하였으나 점점 자연에 동화되어 행복감을 찾고 폐교 위기에 있던 시골 학교도 아이와 어른들이 힘을 합쳐 살려내는 이야기다.
이 동화는 도시 아이들이 경험하기 힘든 시골에서의 삶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거위 토끼 벌 지렁이 등 자연 속 생태와의 간접 체험을 도와준다. 또 텃밭에서 수업을 하고 시를 쓰는 등 작가의 이상적인 교육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무슨 벌이 그렇게 무섭냐? 이렇게 무서운 벌은 처음 봤어.”
지성이의 말에 찬수가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아마도 땅벌이었을 거야. 땅벌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움직이고 뛰는 사람은 끝까지
쫓아가. 또 이 벌은 다른 벌과 달라서 한 번 적이라고 생각하면 쏘고 또 쏘아. 다른 벌은
한 번 쏘면 벌침이 빠지는데 이 벌은 그렇지 않아. 옷소매를 파고들어 쏘기도 하고, 머릿
속까지 파고들기도 해.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이야.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달려들지 않아.
너희들은 시골뜨기가 아니어서 이런 사실을 몰랐을 거야.”
그때 갑자기 지성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칩니다.
“으라차차, 시골뜨기 만세!”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시골 생활에 대한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동화 속에 건강한 아동상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닮은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다.
『소리섬은 오늘도 화창합니다』 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앞바다의 섬을 배경으로 쓴 작품으로 작가의 경험이 윤활유처럼 녹아있다. 작품 속에서는 소리섬이지만 실제 배경은 무의도이다. 쌍둥이로 태어난 솔이는 여자라는 이유로 가족을 떠나 멀리 섬에서 살게 된다.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담았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솔이의 어촌 체험을 씩씩하게 그려내고 있다. 섬에서 만난 세 명의 여자 아이들 모두 활달하고 밝으며 긍정적이다.
외갓집으로 홀로 내려온 솔이는 가족들을 원망할 법도 한데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어촌 생활을 당당히 즐기는 모습이다. 제목에 ‘화창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솔이에게 보내는 작가의 응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씩씩한 솔이도 가슴속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독자들은 그리움 가득한 바다를 보듯 솔이의 내면의 그리움을 절로 헤아리게 된다. 포용하고 끌어안는 위대한 바다처럼 솔이도 어머니같은 넓은 마음으로 자신에게 처해진 부당함을 오히려 긍정의 시선으로 끌어안으며 더 당당한 모습으로 한 뼘 성장한다.
3. 지나간 역사와 현실의 관계를 더듬다
안선모는 호기심과 탐구심이 많은 작가이다. 그는 음악, 서예, 컴퓨터, 외국어 등 다방면으로 잘하는 것이 많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늘 진지한 자세로 공부하며 탐구하길 좋아한다. 무엇인가에 호기심이 꽂히면 깊이 알 때 까지 파고드는 근성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쓴 작품들은 유독 신뢰가 간다.
안선모는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작가이다. 그가 쓴 첫 번째 역사동화인 『성을 쌓는 아이』 는 이런 호기심과 탐구심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경이었을 거예요. 역사책을 읽다 ‘한양도성’이라는 네 글자에 감전이라도 된 듯 팍 꽂혔습니다. 도성은 누가 쌓았을까, 어떻게 쌓았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궁금증이 마구마구 솟아났어요. 멀리 지방 곳곳에서 성을 쌓으러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이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한양까지 왔을까, 원해서 이 먼데까지 왔을까? 온갖 궁금증 때문 에 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2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하략- ’
이 책은 한양도성을 쌓기 위해 조선팔도에서 동원된 수많은 백성들의 애환과 사연들을 남장 소녀 물미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미의 어머니는 여진족에게 붙잡혀가고 아버지는 도성을 쌓으러 한양으로 불려가 어린 물미는 혼자 남게 된다. 그러나 물미는 남장을 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함경도 땅에서 한양까지의 여정은 험난하다. 하지만 당차고 긍정적인 소녀 물미는 힘든 여정을 꿋꿋이 겪어낸다. 우리네 삶이 인연의 연속이듯 물미도 귀중한 인연들을 만나며 용기와 힘을 얻는다. 물미는 마침내 한양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기꺼이 성을 쌓는 일에 동참한다.
성곽 돌담에는 성을 쌓은 사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이름이 새겨져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참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백성들의 땀과 정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이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민초들의 사연과 고단함이 수 백 년흐른 지금까지도 남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독자들의 가슴은 뭉클해진다. 과거와 현재는 단절이 아닌 연속선상의 흐름 속에 있다. 어린이들은 성곽 돌에 새겨진 과거 물미의 흔적을 통해 오늘의 고달픔을 이겨낼 용기를 배우지 않을까.
안선모 작가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왜냐하면 또 다른 호기심이 벌써 그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릴 때 자신이 살던 부평 동네 골목에 줄줄이 있던 허름한 ‘줄 집’이야기를 작가들과의 사석에서 자주 꺼냈었다. 그런데 자신이 살던 그 동네에 조병창, 즉 무기제조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조병창은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1941년 인천 부평지역에 세운 무기제조 공장으로 조병창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는 적어도 1만 명 이상으로 파악된다.
‘부평 역사박물관에서 지금 제가 사는 고장에 일제강점기 시대 ‘조병창’이라는 곳이 있었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조병창에 취직을 했다는 생존인물의 인터 뷰 기사도 보았고, 조병창에서 일하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바로 내 가 태어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이 고장에서 말이죠. 옛날 조병창이 있던 곳은 지금 ‘부평공 원’이 되었고 그 흔적은 없지만 그 시대 역사동화를 쓰기 위해 날마다 부평공원을 거닐며 그 시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답니다.’
안선모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보낸 지역에 대한 애정과 함께 우리 역사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이다. 세월이 지났다 해도 우리 삶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같은 끈으로 이어져있다. 그는 인천 지역에 관한 아픈 역사를 그 동네 어린이와 요즘의 어린이에게 꼭 들려주고픈 작가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하필 자신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있던 자신이 살던 동네가 조병창과 관계되어 있으니 이런 것이 바로 작가의 운명적 만남이 아닐까 싶다. 탐구심과 열정, 책임감이 강한 안선모 작가이기에 그의 차기작이 될 역사동화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Ⅲ. 마무리
안선모의 작품들은 그가 실제 겪은 체험 중심의 서사들로 꾸며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교사로서 만난 아이들, 또 자연적 삶을 통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 또 자신의 유년시절과 관련되었거나 자신이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던 역사적 사실들에서 서사를 꾸려나가고 작품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화속에 그려진 아이들은 뛰어난 아이들이 아닌, 평범함에 묻혀있는 보통의 아이들이거나 결함이나 결핍을 가진 소외받는 아이들이다. 다문화 아이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들이 가진 문제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고 아이들이 뿜어내는 긍정의 에너지를 보여주면서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또 자연주의 삶을 통해 자연은 위대한 어머니처럼 인간을 품어주고 치유해 준다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이야말로 자연과 함께 해야 함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그의 동화는 요즘처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병들어있는 어린이들을 치유해주는 해결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안선모는 주로 체험과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통해 리얼리티를 살려주어 독자에게 신뢰를 주고 진실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때로는 상상력의 개입을 자신도 모르게 제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예상 가능한 평범한 이야기로 그치고 말 수도 있다. 안선모의 작품에서도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력의 개입보다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진실한 글쓰기를 통해 탄탄한 서사를 이루고 긍정적이며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특징은 평생 교육현장에 몸담았던 작가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작품 속 어린이들 모습은 결국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어린이상이다.
안선모는 현재 오랫동안 몸담아온 교사 생활의 퇴임을 1년 앞두고 있다. 그는 퇴직 후 산모퉁이 농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책 읽는 부엉이 도서관’ 을 비롯해 다양한 농촌체험활동을 펼쳐 산모퉁이를 어린이 문화체험의 명소로 만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계획이 어떤 방식으로 피어날지 자못 기대감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도 뛰어난 데다 무엇보다 식지 않는 열정과 근성, 노력의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변화된 생활이 퇴임 후 맞이하게 될 제2의 작가인생에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도 궁금해진다. 교사라는 직위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맞이하게 될 제2의 삶은 분명 작가로서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작가적 역량과 그동안 꾹꾹 눌러온 끼와 열정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모습으로 피어나 또 한 번 울창한 문학의 숲을 이루지 않을까.
올해도 안선모 작가는 벌써 새 책을 출간하였다. 난민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따세와 함께 한 10일』 또 『꼬마 난민 도하』 도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제껏 많은 작품 세계를 보여 왔지만 그는 더 많은 작품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안선모는 부지런하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오래 생각하고 오래 품으며 뚜벅뚜벅 힘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와 함께 문학의 길을 걷는 선·후배, 동료 작가들은 더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 (75매)
안선모작가작품론-체험이_바탕이_된_진실하고_건강한_글쓰기.hwp
첫댓글 김경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송구스럽고 쑥스럽네요.
고맙긴요...^^ 제게 써달라고 해주셔서 오히려 기뻤어요.
이게 다 작가들 삶의 추억이자 서로간의 윤활유죠.ㅎㅎ
선생님이나 저나 항상 건강하게 오래 오래 즐거운 글쓰기 해요~ ^^
잡지는 아직 안나왔네요. 여름에 나오려나봐요.
그러게요. 언제 나와도 상관은 없어요.ㅋ
교단작가라는 말이 있군요! 그냥 듣기에도 무척 기분 나쁜 말인데요?
예, 엄청 기분 나빠서 더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