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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피기 Marcello Malpighi 1628-1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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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에 있는 점액 속의 여러 가지 세균. fig.A는 간균(바칠루스), fig.B는 쥐의 간균이며, fig.C-D는 간균이 움직인 진로, fig.E는 2개의 구균, fig.F는 구강모상균, fig.G는 나선균. |
적혈구. 왼쪽 위의 fig.1은 연어, fig.2-4는 뱀장어, fig.5-6은 구체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종의 뱀장어 집합체, fig.7은 뱀장어의 동맥(HI)과 정맥(BA) 사이의 모세혈관. |
그러나 현미경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작은 생물을 살펴보고, 또 그러는 가운데 여러 가지 미생물의 세계를 개척하여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네델란드의 안톤 반 레벤후크(1632∼1723)야말로 생물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지름이 5mm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렌즈를 비롯하여 419개의 렌즈를 한평생 동안 자기 손으로 직접 갈아 만든 렌즈 기술자였다. 레벤후크는 자기가 만든 현미경으로 수많은 미생물을 발견했고, 처음으로 적혈구와 정충도 발견했다. 1683년에 그가 남긴 박테리아 그림은 그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박테리아를 발견한 과학자로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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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반 레벤후크 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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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을 이용하여 세포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영국의 로버트 훅이었다. 세포를 영어로는 '셀(cell)'이라 부르는데 그 이름을 처음 붙여 준 과학자가 바로 그였다. 또 그는 현미경을 이용해서 발견한 여러 가지 결과를 《현미경의 세계》(1655년)라는 책으로 남겼는데 지금도 그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로버트 훅 Robert Hooke 1635-1703 훅의 법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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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압력을 재는 기압계와 공기를 빼내는 배기 펌프가 처음 발명된 것도 17세기의 일이었다. 이러한 도구들은 공기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진척됨으로써 비로소 발명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갈릴레이는 이미 한 개의 호스로는 10미터 이상 물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던 그의 제자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1608∼1647)가 원인을 간단히 증명해 보여 주었던 것이다. 토리첼리는 한쪽이 막힌 길이 1m짜리 유리관에 수은을 넣고 그것을 수은통 속에 거꾸로 세우면 윗 부분에 진공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이 텅 빈 부분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라는 사실은 분명했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토리첼리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압력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곳에 따라 다른 대기의 압력, 즉 기압은 이 장치를 가지고 서로 다른 곳에서 재보면 쉽사리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은 이런 장치를 가지고 산 위로 올라갈수록 수은 기둥의 높이가 낮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수은 기압계였다. 게다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사람들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면서 이 세상에 진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 그런 생각도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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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파스칼의 법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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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처음으로 추를 이용한 시계가 발명되었고, 이것은 점차 기계 장치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시계로 발달해 갔다. 추시계의 원리를 처음 알아낸 사람은 바로 갈릴레이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피사의 성당에서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는 등잔을 보고 그 속도를 자기의 맥박 뛰는 속도와 비교해 본 결과 흔들이(추)가 넓게 움직이거나 좁게 움직이거나간에 한번 흔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항상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17세기에 '과학 혁명'의 물결이 일면서 발명된 여러 가지 실험 관찰 도구들은 또 다시 과학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와 함께 과학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많아져서 그들까지 한 달에 한 번 또는 일정한 기간에 한 번씩 모여 실험도 함께 해 가며 자기가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이런 모임은 그전에 이미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한 나라의 중요한 기관으로 발전한 경우는 1662년의 영국 왕립 학회, 그리고 곧이어 1666년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대표적이었다. 그런 연구·토론 기관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생겨나 과학 발달의 중심지가 되어 갔으며, 외국 과학자들과도 연구 논문을 교환하고 그 논문들이 회지에 발표되기도 함으로써 국제적인 과학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와 함께 과학이라는 분야가 독립된 학문 분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곧이어 과학자라는 직업도 생겨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