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밥을 먹으며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좋아한다.
누군들 막 지은 밥을 좋아하지 않겠냐마는 난 유난히 더 그렇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새밥을 앞에 두고
김치 하나만 있더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다.
만행 다니면서 들르는 식당들은 대개 밥을 새로 해주는 곳이다.
서울 인사동 '부산 식당' 은 내가 제일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밥을 주문하면 그때 짓기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 늦게 나오는 게 흠이긴 한데,
맛있는 밥을 기다리며 식당에 가득 찬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식기도 옛날 스테인리스인데 수북한 공깃밥 위엔 항상 강낭콩 서너개가 올라가 있다.
밥공기 주변에도 밥풀이 거의 몇 개씩 붙어 있는데,
옛날 할머니가 가마솥에서 밥을 퍼주며 몇 알 붙여좋으신
밥풀을 떼어 먹는 것 같아 그것 또한 매력이다.
어쩌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밥에서 냄새가 나는
묵은 밥이 나오면 그만 식욕이 떨어져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와 버린다.
아마 오랜 객지 생활에다 출가해서까지 식은 밥을 죽 먹듯 하니
은연중에 따뜻한 밥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스님들은 평생 식은 밥 먹고 살 운명이다.
대중처소에 있으면 반드시 발우공양을 하게 마련인데,
그 공양의 특성상 항상 식은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양간에서 뜨거운 밥을 지어 올려도 방에 들어와서
먹게 될 떄까지의 절차가 여간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하여간 실제 밥 먹는 시간은 오 분에서 십 분 정도인데
전체 공양 시간은 사십 분 정도 한다.
그러니 겨울에는 특히 모든 음식이 거의 식어 있을 수밖에 없다.
행자 시절 큰방 스님들이 따뜻한 밥을 맛있게 드시라고 공양하는 가마솥에 불을 때며
" 옴 고슬고슬 반지르르 맛나맛나 사바하" 라는 '정반 진언' 을 열심히 외던 기억이 새롭다.
이곳 무문관에서는 늘 식은 밥을 먹는다.
따뜻히 데워 먹는 전자레인지가 있긴 한데,
국만 데워 먹을 뿐 밥은 그냥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따끈하나 몇 숟갈 뜨다 보면 딱딱해져 먹지를 못할 정도가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식은 밥이 낫다.
그래도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는 겨울 이불 속에 묻어두면 아주 찬 기운은 면할 수 있다.
오늘 저녁에는 밥을 먹다 괜스레 목이 메어와 잠시 쉬었다 마저 먹었다.
저녁 무렵에는 밥도 완전히 식어 있고 찬 통에 한두 개씩 남아 있는
반찬 조각들을 보니 그냥 까닭 모를 설움이 복받친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누가 오라고 해서 온 길도 아니여,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길도 아니다.
오직 내가 선택해서 식은 밥 먹기를 원한 삶이다.
다만 지금 이렇게 앉아서 공양을 받아먹는 것만으로도 그 은혜가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식은 밥도 못 얻어먹어 굶어 죽는 중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밥이라도 따뜻하게 걱정 없이 먹고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7.29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