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마5;9
기독교인과 세상 사람과 모든점이 다른 것은
그 성품의 삶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자, 온유한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마음이 청결한자는 세상사람들이 따라갈수 없는 삶과 성품 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새 사람만이 이 새 삶을 살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진술에 매우 큰 쇼크로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국가 주의자이며, 그들의 압제자 로마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줄 정복자 메시야를 고대했다.
메시야가 자기 왕국을 세우고, 이스라엘에 복[물질적인 나라가 될 것].을 가져오길 바랐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낮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구유는 짐승의 여물통으로, 아기왕이 누을자리가 아니었다.
그의 탄생 했을 때 동방의 방사와 고작 목동들의 경배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미천한 환경에서 자라셨고,
멸시받는 지역에 위치한 이름 없는 가난한 마을에서 노동자 계층의 자녀로 성장하셨다.
오만하고 스스로 의로운체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예수님은 세리와 소외된 계층[도적, 술주정뱅이,매춘부 같은 죄인 ,그리고 멸시받는 사마리아인들을 섬겼다.
열두 제자는 대부분 어부였고ㅡ 한사람은 세리였다.
가륫 유다 한 명외에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랍비 학교의 교육을 받지 않았고, 정치적 야망을 좇지 않았고, 직위도 권력도 없었으며, 군대을 모으거나 통치기반을 닦지도 않았다.
더욱기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은 로마을 공격 하지도 , 하나님의 적을 무찌르지도, 사람을 모으지도 않았다.
오죽하면 옥에 갇힌 세례요한에게 이 동일한 대답을 매우 극적인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5에 요한은 주님이 갈릴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한은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요한은 두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오실 그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주님이 행하신 기적과 그분이 보이신 놀라운 권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그분과 그분의 능력 가운데 임했다는 표시입니다.
화평케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나의 나라는 이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화평케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왜? 복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 하나님의 자녀 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왜? 전쟁이 일어 납니까?
모든 불화와 소동은 “인간의 죄와 사탄”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 사람의 정욕, 탐욕과,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성에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사이, 사회안에서의 단체와 단체 사이 , 국가간의 모든 불화의 원인은 죄 때문 입니다.
세상은 이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서 평화을 위한 국제회의 , [U.N]만들어 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반대 합니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어리석움과 맹목적인 가운데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문제는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기 까지는 이런 문제는 해결할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는 새사람, 새마음이 아니고서는 문제 자체로도 해결할수 없습니다. 악한생각, 살인, 간음, 시기, 질투, 더러운 생각등 이런 모든 것은 “ 마음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속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평화 할수 있습니까?
우리는 산상수훈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과 전쟁의 소문은 놀랍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서로의 정당성을 말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수동적인 의미에서 . 평화 로운 사람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평화로운 사람 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화평 하는 사람은 능동적인 의미에서 “ 평화을 사랑하는사람, 평화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 그룹과 그룹사이가 평화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것을 위해 행동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이것은 새성품을 의미 합니다.
한마디 로 새마음과 깨끗한 마음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시기,질투에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어떻게 화평케 하수 있습니까? 화평케 하는 사람은 자아에 대한 새로운 견해을 가져야 함을 의미 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자아와, 자기이익과 자기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한 중립이 되어야 쌍방을 화합시킬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사을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봅니다.
“ 이것이 내게 공평한가?
나는 내 권리와 몫을 받고 있는가?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정신은 항상 싸움과 오해와 분쟁을 유도한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자는 [이 세상 에서는] 자기 생명을 읽어 버릴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 대한 평가입니다.
기독교 에게 두사람, 즉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옛사람에 대하여 “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인가? 라고 말한적인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말한적이 없다면 화평한자가 될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옛사람에 대해 “ 가만있어, 상관마,이것 아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는 새사람에 대한 새로운 견해입니다.
화평자는 공격적이며, 까다로울 때 그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습니다.
‘ 왜? 어째서 저 모양 이야! 라고 묻지 않습니다.
화평한자는 “ 그들은 아직 불순종의 아들들 속에서 역사하는 영인 이 세상의 영인 신을 받고 있다. 저 가련한 사람 사탄의 희생물이여 지옥을 향하고 있다. 라고 생각 하는 새로운 견해 가운데 비로소 도울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며 그의 화해자가 될수 있을 것 이다.
화평자의 관심은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의 삶도 그의 유일한 관심은 자기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 이었습니다.
화평자는 자신을 낮출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고난 당할 준비, 때로 악행과 불의을 당할 준비마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자기이익과 자기 관심하고 결별한 사실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사람들에게 그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고난을 감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강구 합니다.
“ 네 원수가 주리면 그에게 먹이라” 예수님은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대꾸 하지 않습니다. 혀을 억제 합니다.
그 뿐 아니라 “ 그 속에 있는 마귀의 역사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꾸해서 안됩니다. 오히려 그을 위해 , 그의 구원을 위해 그가 사탄에게 속고 있을을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한자는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 에게 접근하고, 그에게 말하고, 사과하고, 친절하려 애쓰고. 화평을 가져오기 위해서 모든일에 선수을 쳐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선언하는 축복은 “ 하나님의 자녀라 일컽음을 받으리라”
일컽음을 받는다는 것은 ? “ 소유된다” 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소유될”것 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들을 소유할 것 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자녀로 소유하시려 합니다.
이 말은 화평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의 의미는 무엇 입니까?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들어오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있어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시며,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까닭입니다.
전쟁은 어디서 옵니까?
인간의 죄, 사탄에게서 옵니다.
불화가 이렇게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을 이루기 위해 자기 아들속에서 자기을 낮추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을 낮추셨습니다.
그가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오신 것은 평화의 왕 [화평한 분]이기에 오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마음을 품으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각각 자기일만 돌보지 않고 서로 남의 일을 돌보아 주시오. 이것이 신약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는 죄을 지으신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 볼수 없습니다. 그는 욕을 당하셨으나 욕으로 갚으시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위협하지 않고 공의로 심판 하시는분 께 다 맡기신분을 따르십다. 평화의 하나님의 자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