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조혜연 8단과의 유쾌한 대화 "외도(?) 접고 영원한 바둑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조혜연을 만났다. 일요일 대국 불가와 그로 인한 혼성페어전 출전 불가 입장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조혜연 8단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난 조혜연은 '오랜만의 외출'이라며 좋아했다. 전에는 한 달에 서너 번씩 세종문화회관에 들러 공연을 감상했다는데 근래엔 그럴 짬이 좀처럼 없었단다. 그동안 와보고 싶었다며, 앞으로 꼭 다시 오고 싶다며 무슨 '거창한 계획'처럼 작심하듯 말하는 그다.
그를 붙들어맨 것은 '학업'이다. 몇 해 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한 조혜연은 올해 4학년이 됐다. 그런 그가 졸업까지 딱 한 한기 남겨두고 휴학계를 냈다.
바둑 공부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다. 함께 걸으면서,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며칠 전에 결심한 것이라며 처음 밝힌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바둑인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것은 지금까지 밖에 나가 있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동안의 학교 생활을 '외도'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 "바둑이 천직, 앞으로는 바둑에 전념할 터"
바둑인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단한 것은 아니고 바둑에 전념하겠다는 거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온 힘을 쏟아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동안 학업으로 바둑을 소홀히 한 점이 없지 않았다. 집중할 수가, 집중할 시간이 모자랐다.
학문에 뜻을 가져 대학에 들어갔고, 또 얼마 전까지 대학원 진학 이야기도 들렸는데.
그것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학자로서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전공(영문학)이 적성에 맞고 흥미로웠다.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나로선 중대한 결심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 그 2년간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심을 굳히게 된 데까지엔 동기가 있을 것 같다.
바둑계는 바둑돌을 잡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터전이며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제는 바둑인으로서 뭔가를 하고 싶다. 물론 기사로서 바둑 공부 욕심도 난다. 아시안게임이 빨리 돌아오게 만들었다.
어떤 것들을 하고 싶나.
지금은 틈이 없지만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책이라면?
전에 두 권까지 냈던 '창작 사활집'이다. 힘든 작업이 되겠지만 나에 대한 도전, 그에 따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문제를 잘못 만들거나 답이 틀리거나 하면 기사로서의 명예와 스스로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는다. 우선 몇 권을 구상 중이다. 원래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 "그동안 즐겁게 잘 놀다 돌아온 기분"
그게 전부인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을 것 같은데.
사활책은 아무래도 프로지망생이나 프로들이 주독자이기 때문에 새로운 층을 흡수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소설 형식을 빌어 책을 쓰는 거다. 현재 나와 있는 바둑 도서들은 강좌물 위주이고 '스토리'가 있는 책은 드물다. <마틸다>라는 동화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바둑을 소재로 해서 그런 책을 쓸 것이다. 그래서 어린 층, 젊은 층을 유입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 글의 힘은 강하다. 재능이 부족해 그때가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미련은 없는가.
어찌 앞날의 일을 100% 자신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로선 바둑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그동안은 즐거운 외도였다. 잘 놀다 돌아온 기분이랄까.
근황은 어떤가. 아시안게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을 것 같은데.
정신 없다. 일주일의 6일은 훈련 일정으로 뻬곡하다. 몸도 힘들다. 하지만 행복하다. 요즘처럼 바둑에 파묻혀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성실히 임하고 있다. 훈련을 빼먹은 적은 없다.
팀워크는 잘 맞는가. 대표팀의 분위기는 어떻나.
기사들은 개인 성향이 아주 강하다. 10명의 개성이 제각각이다. 10인10색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의견이 상충될 때도 더러 있고 훈련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선수들 입장을 가급적 이해하려 하시는 부드러운 양재호 감독님의 고충이 크다.
루이 9단과의 성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그렇게 절대 열세를 보이게 만드는가.
루이 사범님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참 많이 두었다. 너무 심하게 지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주눅도 많이 들었다. (박)지은 언니와 (이)민진 언니가 갖고 있는 자신감이 내겐 부족하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그것 이상도 분명히 있다.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훈련 때 극복 못하면 금메달도 없다.
○●… "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금메달도 없다"
그렇다면 금메달은 몇 개를 자신하고 있나.
목표는 두 개다. 두 개를 따서 바둑 종목의 종합우승을 이루는 것이다. 은메달로는 안 된다. 금메달을 못 따면 한국기원 담벼락에 전부 머리 박기로 했다. 훈련 시스템이 워낙 좋아 자신한다.
페어전엔 정말 안 나가는 건가.
내 생각은 변함없다. 주일의 경제활동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일요일에 대국한 적은 없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다. 입단 전엔 연구생리그가 주말에 치러지는 관계로 연구생 생활을 하지 않았고 세계대회는 2007년 원양부동산배 2회전 탈락 이후 출전하지 않고 있다.
아시안게임은 개인을 넘어 국가적 차원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팬들이 많다.
대표가 되고 나서 페어전을 뛰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페어전까지 뛰어야 한다면 애초 선발전에 출전하지도 않았다. 양재호 감독께서 단체전만이라도 좋으니 출전해 달라고 하셨고, 선발전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전력 증강에 도움된다고 하셨다. 내가 만일 의사라면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둑은 다르다. 개인적인 문제다. 바둑을 경시하는 그런 개념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세례명은 무엇인가.
아직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청을 했지만 믿음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아시안게임 말고 올해 개인적 목표가 있다면.
9단이 되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올 10월의 여류기성전을 우승하면 가능하다. 점수로도 승단하는 방법이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량면에서는 딱 한점만 늘었으면 좋겠는데….
영원한 바둑인으로 남고 싶다는 조혜연의 대답은 명쾌하다. 어투는 흡사 여군을 연상케 한다. 말마다 거의 '~습니다'로 끝난다. 억양도 높다. 여군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주관도 뚜렷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한마디만 더 물었다.
"남자 친구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방해 받을까 봐 일부러 안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그렇진 않습니다. 오늘처럼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케이크도 함께 먹고 싶습니다." "책을 애인으로 삼으니까 그렇겠죠." "하하."
첫댓글 금메달 한 개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