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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다원성(plurality)의 제약 : 입법부, 정당, 이해집단 등에 대한 정권 차원에서의 제약을 가하는 경우.
감정(emotion)에 기초한 정통성(legitimacy) 기반 : 특히 내란이나 저개발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사회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편으로써 정권을 필요악으로 간주할 때.
극소한(minimal)의 사회적 동원 : 대개 반정권 활동이나 정치적 적수의 억압 등에 의해 야기.
비공식성(informality) : 그 정체가 모호하거나 변하기 쉬운 행정부.
번역의 원어인 Authoritarianism는 어떤 사상이나 원리를 가리키지 않고 다만 강력한 중앙권력과 제한적인 정치적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 형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원의를 제대로 번역하면 권위주의 정치가 된다.
1.1. 설명
권위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결과물은 비스마르크가 만든 관료제다. 지금은 관료제의 비효율성이 종종 지적받지만, 그 당시 관료제는 혁신 그 자체였다. 상명하복을 핵심으로 업무를 실제적으로 수행하는 이 체제는 의사소통의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업무수행률을 늘렸다. 그 당시 관료제를 비판하던 권력층은 비스마르크만 사라지면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퇴임하자 오히려 그 후임들이 관료제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이런 모습을 기능적 권위주의라고 한다. 즉 권위주의에서 직급이라는 권위가 가지는 위상을 존중하고, 그 명령을 따름으로써 의사소통의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움직임을 가져왔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과 비판도 많지만, 예산을 타내기 위한 각 부처의 피터지는 도그파이트를 대통령이라는 권위로 제압, 샤워실의 바보로 상징되는 정부의 비효율성을 줄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창 발전이 필요한 시기에는 권위주의의 효율성이 빛을 발한다. 버튼을 누르면 전기 신호가 중간에 거쳐 말단에 닿듯 일사천리로 일을 척척 처리해서 극도의 효율을 뽑아내고, 누군가가 전체를 관리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내릴 수 있기 때문. 이런 부분에서 가장 극대화된 나라가 리콴유의 싱가포르다. 세계 최고의 공공부문 효율성, 의료 효율성, 주택 보급률, 사회보장제도 등. 비슷한 인구를 가진 북유럽, 스위스, 뉴질랜드 등의 나라들도 이런 높은 효율성을 못낸다. 단, 싱가포르는 매우 작은 도시국가이니 기본적으로 통치 행위의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권위주의의 맹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높은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윗선에서 모든 걸 판단하고 지시하여 아랫사람은 거기에 따르기만 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위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집단사고 참조). 해결책은 더 큰 권위로 찍어누르는 건데, 결국에는 권위의 최정점이 존재하게 되고 이 정점에 오른 자가 헛짓거리하면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 말고는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높은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이 있더라도 권위주의 체제는 장기적으로는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기에 언급된 싱가포르도 결국은 세습, 사실상의 일당독재 국가로서 부유한 북한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가족간 직위세습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158위로 꽤나 낮은 편이다. 그러나 2020년 싱가포르 총선에서 야당이 점점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 싱가포르에도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태다.
권위주의는 좌익, 우익 어디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이념이다. 권위주의의 상징인 히틀러와 스탈린은 각각 극우 사상인 나치즘과 극좌 사상인 공산주의 사상을 주장했다.
1.2. 관련 문서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 (권위주의로 인한 사고)
테네리페 참사 : KLM 기장의 권위주의로 인해 이륙하다 팬암기에 들이받은 사고
레닌주의 : 스탈린주의까지 가면 전체주의로 분류된다.
전체주의 : 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극단화되면 나타난다.
1.3. 둘러보기
2. 심리학 용어[편집]2.1. 성격 및 사회심리학 용어
이 분야들에서 권위주의는 19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초기에는 파시즘과 동일한 것으로서 취급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의 파시스트적인 경향 속에 외국인과 성소수자 등을 차별하는 경향이 발견되면서, 이것이 국가의 권위를 최우선시하는 "권위주의적" 인 측면 때문일 수 있겠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 점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T.Adorno)는 미국의 여러 심리학자들과 협력하여 대전 전후인 1950년에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이 책은 곧바로 수많은 초창기 사회심리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심지어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의 논문들에서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정신분석학이 굉장히 그럴싸한 이론으로 취급되고 있었으므로,[2] 사람들이 어째서 전쟁의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권위주의를 유년기의 양육으로 설명하려는 접근이 인기를 끌었다. 즉, 집에서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에게 양육된 자녀는 친부살해의 욕망으로 불타게 되지만, 이윽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거꾸로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정반대의 방어기제를 채택하여, 아버지에 대한 복종을 국가에 대한 복종으로 확산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은 거꾸로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게 되는 투사(projection)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
아도르노는 많은 한계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현대의 사회심리학 및 정치심리학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자신의 책에서 제안해 보인 권위주의 척도는 일명 F-척도(F-scale)라고 불리는데, 권위주의의 주요 특징들을 9가지로 정리해 묶어 놓았다.[3] 이 목록은 당대의 많은 다른 연구자들이 이론적으로 참고해서 변용하거나 개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대표적인 한계는 F-척도가 심리측정학적으로 믿을 만한 통계적 방법을 따르지 못했으며, 신뢰도와 타당도, 특히 내적 일관성 신뢰도와 구성 타당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F-척도는 단일차원적(unidimensional)인 개념을 상정하고 제작되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가리키는 개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인 것처럼 보였다. 이에 다른 연구자들이 대안적 개념을 만들겠다며 독선주의(dogmatism) 같은 것들도 제시하긴 했지만, F-척도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설득력 있는 통계적 문항분석과 척도개발에 난항을 겪던 나머지,[4] 심리학자들은 이후 거의 30여 년 동안 권위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에 당시 잘 나가던 인지(cognition)나 동기(motive) 같은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그러다가 1981년에 밥 알테마이어(B.Altemeyer)라는 인물이 비로소 나타나서 통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는 그 3대 요소(?)로서 권위에 대한 복종(authoritarian submission), 권위의 적들에 대한 공격성(authoritarian aggression), 그리고 인습주의(conventionalism)로 요약될 수 있었다. 각각을 설명하자면, 권위주의는 1) 정부나 권위 있는 집단, 지도자 등이 그 구성원들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억압하고 착취하더라도 이를 통해 질서와 안전이 달성될 수 있다면 기꺼이 복종하며, 2) 이 권위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나타날 경우에는 제재를 가하거나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5] 3) 그 사회가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관습적 가치나 인습, 종교적 의례, 가치관, 형식들을 고스란히 따르려 하는 경향이 있다.[6] 알테마이어는 이것이 대체로 우익적인 성향을 강하게 예측한다고 보아, 우익 권위주의(RWA; right-wing authoritarian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용어는, 현대에도 RWA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있을 만큼 대박을 쳤다.
알테마이어는 30년 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던 권위주의 연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하드캐리(…)를 펼쳤지만, 학계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그 역시 아도르노처럼 권위주의가 기본적으로 성격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많은 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연구를 해 보니 성격은 아닌 것 같다는 데이터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7] 하지만 2000년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하도 알테마이어의 이론이 설득력이 있어서 이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가, 이후에 크리스 시블리(C.G.Sibley)와 존 더킷(J.Duckitt)이 나타나서 관점을 뒤집어 놓았다. 즉, 권위주의는 성격이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태도가 표현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관과 세계관의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보인다. 권위주의가 높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위협으로 가득하고, 일신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따라서 그 위험요소들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누군가" 를 간절히 원하며, 그런 존재의 밑에 들어가서 기꺼이 보호받으려 한다. 반면 권위주의 성향이 태도에 약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은 사회 속의 불확실성과 다양성, 다원성, 미지성을 기꺼이 즐기며, 그것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딱히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와 유사한 다른 개념으로서 1994년에 제안되었던 사회적 지배 경향성(SDO; social dominance orientation)도 거론해 볼 수 있다.[8] SDO는 당초에는 '내집단 지배 정당화' 로 정의되었지만 이후 논쟁을 거치며 '평등주의 반대'(anti-egalitarianism)로 재정의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사람 밑에 사람 있고, 사람 위에 사람 있다, 우월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억압하는 건 필요악이다, 세상은 정글 같은 무자비한 곳이다, 세상이란 원래 불공평한 법이고 평등은 허상일 뿐이다" 의 논리를 따른다. 이 개념은 당초 사회적 지배 이론(SDT; social dominance theory)이라는 다른 이론적 조망이 만들어지던 와중에 발견된 것인데, 편견 및 고정관념, 차별,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반지성주의 등등 권위주의가 기존에 예측하던 사회적 현상들을 정확하게 예측해 내면서도 권위주의와는 개념적으로 너무나 독립적(independent)이고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시블리와 더킷은 이에 대해, 두 개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RWA는 "그들이 내게 위험하기 때문에" 거부하게 만든다면, SDO는 "그들이 열등하기 때문에"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약간씩 포커스가 다른 부분도 있어서, RWA는 독재나 검열, 전체주의, 갑의 횡포 등을 설명하기 좋다면, SDO는 경쟁만능주의, 사회진화론, 약한 것은 죄악 같은 사상들을 설명하기 좋다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권위주의는 일차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조망의 영향을 받던 주제였다. 그래서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권위주의에 대해서 "집에서 부모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저렇게 됐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곤 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연히 발달심리학 분야에서도 확고하게 퍼져 있어서, 그 당시에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D.Baumrind)는 부모의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2 by 2 매트릭스 모형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애정 있음 | 애정 없음 | |
통제 있음 | 권위적 양육 (authoritative child-rearing) | 권위주의적 양육 (authoritarian child-rearing) |
통제 없음 | 허용적 양육 (permissive child-rearing) | 방임적 양육 (neglectful child-rearing) |
위의 표에서 바움린드는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인 것과 권위적(authoritative)인 것을 서로 구분하였으며, 양자의 차이는 자녀를 통제하는 와중에도 자녀에게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는가에 있다고 하였다. 바움린드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양육 방식은 바로 권위적인 양육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양육의 경우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가 반항적이게 되거나 거꾸로 의존적이고 독립심도 부족하게 되며, 허용적 양육의 경우 책임감 없이 자란 자녀가 결국 일탈적이게 되고, 자신감과 허세가 가득하게 되며, 수직적 조직 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9] 물론 방임적 양육의 폐해는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권위적인 양육은 자녀가 부모로부터의 애정도 느끼고 존중 받으며, 적절한 통제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하면 되고 하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기에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를 복종시킬 때에도 윽박지르거나 찍어누르는 대신, 합리적인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상황의 합당함을 먼저 이해시킨다고 한다.[10]
물론 이 모형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논리가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 명쾌해서 널리 쓰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이 모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2 by 2 매트릭스 모형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 명쾌함을 뒤집으면 정확히 이 모형의 단점이 된다. 예컨대 자녀의 심리적 발달과 향후의 성취에 있어서, 부모의 양육 방식은 의외로 중요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각 양육 유형별로 차이가 얼마나 심하게 나게 될지도 생각만큼 확실하지 않고, 특정 양육 방식을 채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최선을 다해서 일관된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모형은 분명히 큰 의의를 지니며, 특히 본 문서에서 말하는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고 늘 통제만 하려고 드는 것이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권위란 요구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는 것임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애정" 이라는 점을 확장시켜 생각해 보면, 모든 '을' 들은 '갑' 이 자신에게 인간적인 애정과 존중을 드러내 보일 때 비로소 '갑' 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는 소박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에서의 사상을 가리킬 때는 "권위적인 행위로 일방적이거나 강제적으로 종적 지배관계를 형성하려는 질서원리"를 뜻한다.
4. 용어의 잘못된 사용
상당수 사람들이 잘못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권위에만 의존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인 '권위주의적/권위적'(authoritarian)이라는 용어를 '권위자/권위 있다'(authoritative (person))라는 뜻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잘못됐다. '권위 있다'라는 말은 강력한 논거가 된다라는 뜻이고 권위자는 일정한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라는 뜻이다. 잘 모르겠으면 어떤 저명한 학자를 소개할 때 "생명공학 분야의 권위자 아무개 교수", "조선 후기 당쟁사의 권위자 아무개 박사" 이런 식으로 쓰이는 걸 생각하면 된다. 반면 현대에 들어 부정적으로 쓰이는 권위주의적 또는 권위적이라는 말의 뜻은 불평등하게 암묵적으로 높으신 분들에 대한 비판 자체가 금기시되거나, 사안의 맞고 틀림보다 그 이해당사자의 지위, 힘 같은 면이 더 우선시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을 말하는 것이기에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와 거의 정확히 동일한 맥락에서, 위에서 소개했듯 아동발달 분야의 학문에서도 "권위주의적/권위적 부모"와 "권위 있는 부모"는 명백히 서로 다른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흔히 쓰이는 권위 있는 매체, 권위 있는 언론 등은 본인이 강요하도 않았는데 알아서 권위를 만들어 준 경우. 사람들이 "진짜 잘난 사람은 자기가 자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존경해 준다" 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권위이고 권위주의와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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