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에 갔던 때이다. F는 그곳에서 마리화나를 하게되었다. (참고로 암스텔담은 마약이 합법화된 곳이다.) 해쉬쉬를 하고나서 다음날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눈이 겔겔 풀린 유학생도 보았지만, F가 해 본 바로는 마리화나건 해쉬쉬건 중독성은 없다. 아찔했던 기억은 남아있지만, 각자의 몸에 허용되는 적당량의 흡입은 그리 큰 사회문제를 일으킬성 싶지않다. 물론 F는 매우 이성적이고 사려깊은 인간이므로, 이러한 결론을 누구에게나 수치화, 계량화 시키는건 매우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몸의 상태를 무시하고 끝까지 망가져버리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나 정부는 마약유통이나 복용을 금지하고 있다.
F가 그곳에서 그것을 했던 이유는 물론 기본적인 호기심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정당한 자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무척 거창하게 들릴줄로 짐작한다. 여기서 F가 말하는 자유란 막연한 자유가 아니라, 바로 "국가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이다. 마약을 하건 안하건, 내 몸에 대한 결정은 국가나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내리겠다는 것. 그 당시 F의 심리적인 상태로 볼 때,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규제에 대한 일종의 항거이자 독립행위였다. 정부가 개인의 "사소한 기호"에 대한 자유를 억압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법적인 제한과 규제를 가할 권리는 없다.
나는 여기서 "사소한 기호"라고 명명했지만, 그것에 반대의사를 표명할 인간들이 많을줄 안다. 마약이 사소한 기호는 아닐지 모른다. 물론 개인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것이란 것에는 나도 동감한다. 어떤 인간에게는 그것이 엄청난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지루한 삶에 최고의 환락을 가져다주며, 한때 에덴동산의 주인이었던 인간에게 레테의 강 이전의 추억을 순간적으로 되돌려주는 순기능을 한다. 실제로 나는 무릉도원의 복숭아에 마약의 성분이 들어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 못한 인간들이 문제다. 모든 사회문제는 이들 때문에 일어난다. 이들 의지박약형 인간들에게 마약은 바로 지옥행 특급열차의 편도승차권이나 마찬가지다.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고, 결국은 비루한 죽음에 이르고만다. 잠시의 환락이 끝난후, 그들을 어김없이 맞이하는 사악하고 구리구리한 현실에 그들은 굴복한다. 나는 여기서 "중독"이란, "회피"와 같은 이름임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선의의, 선택의 자유를 준 국가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결국은 이들 때문에 우리는 개별적인 자유보다는, 평등한 억압에 대해 이해하게된다.
그렇다면, 나는 "보다 사소한 기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마리화나보다 백배는 더 사소한 기호로 분류되고, 사소한 만큼 값도 백배쯤 싸다. 사소한 개인의 취향인만큼 정부나 국가에서도 그다지 규제의 필요성을 못느낀다.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자유에 달려있다. 나는 어쩌면 오늘 이 얘기로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담배"다.
F는 마리화나를 해보았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적마다 묘한 감동에 휩싸인다. 담배는 정말이지 마리화나와 맛이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마음껏 야외에서 얼마든지 피울수 있다는 데서 오는 해방감과, 한숨과 함께 뿜어져 나와 멋진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들의 자유롭고 풍부한 안무. 그것은 일종의 마술이자 환각이다. 장님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로지 연기를 볼수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담배의 연기가 흡연자에게 주는 만족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차지한다.
빨갛게 자신을 태워가며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리는 "일회성"과 "찰나성"도 담배의 엄청난 매력이다. 백시간을 피워도 꿈쩍도 안하는 담배몸통을 개발한다면, 중독자들은 모두 지겨운 담배를 끊어버릴 것이다. 미인들이 소중하고, 사랑이 소중한 이유도, 그것이 곧 끝나버리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담배의 매력은 피울때의 묘한 어지러움과 독한 페이소스이다. 담배는 자기연민이자 위로이다. 당신이 낯선곳에서 혼자일 때, 혼자라는 느낌과 고독을 절실히 느끼고 그것에 아무렇지않게 맞서고 싶을때, 담배를 한 대 멋지게 꺼내서 피워라. 당신은 외로움을 즐길 수 있고, 어디에 있건 스스로 위로받을수 있다. 반대로, 입에 모터를 단 시끄러운 인간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쓰레기같은 주제로 귀를 아프게한다면, 아주 천천히(마치 슬로우비디오를 찍듯이) 담배를 꺼내서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불을 붙여라. 순간적으로 수다쟁이들로부터 벗어나 이 우주에 오로지 혼자 존재하는 조용한 공간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갖가지 이유들이 담배중독자들을 중독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담배에는 그런 소소한 장점들외에 저항할수 없는 중독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것은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데 있다.
놀랍게도 담배의 위험성은 마리화나의 백배쯤된다. 담배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중독자를 가지고 있다. 담배의 중독현상은 매우 끈질기고 강력해서, 한번 진정한 담배의 맛을 알게된 사람은 헤어나기가 어렵다. 담배로 사망하는 인간들에 대해 다큐멘타리 특집을 제작하고, 담배가 백해무익임을 역설하며, 담배 갑에 폐암과 각종질병을 유발할수 있다라고 경고문을 써붙여봤자, 담배에 중독된 자들은 눈하나 꿈적하지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경고와 각종 다큐쑈(나는 진정 쑈라고 생각한다.) 들은 중독자들을 묘하게 자극할뿐이다. 그러한 켐페인을 보고 담배를 멀리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담배를 피우지않았던 고지식한 모범생들뿐이다.
<담배를 피우면 당신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담배갑에 씌어진 이 저주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삶에의 의지가 강하듯, 죽음에의 의지 또한 강한 법이다. 담배를 피울수록 조금씩 다가가는 죽음에의 유혹. 아주 서서히 자신의 목숨이 사그러져가듯, 하얀 몸통을 지그시 태워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흡연자는 묘한 흥분과 쾌감을 느낀다. 생에 대한 집착이 당연하듯, 죽음에 대한 애착 또한 못지않게 강하다는걸 우리는 잊고산다. 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런 유혹을 터부시한다. 그러나 애써 외면할 뿐이지, 알려지지않고, 알 수 없는, 오로지 직접 죽음으로써만 걷어찰수 있는, 비밀의 문을 박차고, 저편으로, 혹은 무로 건너가고 싶은 유혹. 죽음에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이것은 인간의 억압되어진 무의식속에 매우 강력한 욕망으로 존재한다.
삶의 지루하고 자질구레한 굴레를 벗고, 홀가분하게 떠나버리고 싶은 유혹. 장엄한 결말과 함께 미지의 신비로운 시작을 하고싶은 유혹. 혹은, 모든 생각으로부터 떠나 무로 돌아가버리고싶은 유혹. 그 모든 유혹이 죽음에의 유혹이다. 삶의 욕구가 죽음의 욕망보다 강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두 욕망은 등가이다. 다만 그 표현양태가 다를뿐이다. 삶의 욕구가 일생동안 대체로 지속적이고 변화가 적은 완만한 웨이브를 그리는 반면, 죽음의 욕망은 간헐적이지만, 순간적으로 치솟는 집중적인 에너지 표출의 양태를 갖는다. 위험도로 치면, 물론 죽음의 욕구가 훨씬 크다. 하지만 지속성에서 현저히 약한면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잘도 그러한 유혹에서 벗어나 삶으로 전환하여 삶을 유지하고 지속한다. 하지만 그러한 괴물같은 욕망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의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담배다. 딱히 담배뿐 아니라, 수명을 단축시키고 몸에 해롭다고 정평이 난 것들, 예를 들면, 술이나 마약등도 모두 그러한 죽음에의 대리만족이다. 만약 담배를 많이 피워도 전혀 몸에 해롭지않다거나, 혹은 홍당무처럼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고 한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담배중독자들을 양산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도 술도 모두 몸에 해롭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죽음에의 유혹을 맞을것인가. 자기 몸을 학대하고 상하게 하면서 느낄수 있는, 죽음에 한발짝 다가서는 묘한 쾌감은 어디서 얻을수 있는가. 설마 인도로 떠나 온몸에 난도질을 하며 느낄것인가.
모든 종류의 중독엔, 죽음에의 욕구가 있다. 폭식중독자들은 자신을 혐오할정도로 먹어댄후 결국은 죽기직전까지 먹어댄다. 섹스중독자들은 섹스를 하고나서 결국은 허무감으로 죽고싶어진다. 잠 중독자들은 잠들어서 영영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담배중독자들은 담배로 인해, 자신의 폐가 시커멓게 변할때까지 서서히 자신을 죽여나가길 바란다. 즉 죽음의 그림자를 동반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같이 담배를 나눠피는 인간들에게 동지의식과 친밀감이 형성되는 것은 그러한 은밀하고 터부시되는 몹쓸 유혹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동질감이 형성되서이다. 모든 종류의 중독자클리닉에서 만난 환자들은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위안을 받는다. 중독자들끼리 주고받는 위안은 중독증 퇴치에 있어서 매우 안좋은 신호다. 개인의 무의식이 집단무의식으로 전환되며, 그들의 거대한 죽음에의 욕구는 기정사실화되고 무의식에서 밖으로 나와 의식속에서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담배중독을 끊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굳이클리닉에 가지 않아도 주변엔 담배중독자들이 널렸고, 그들은 죽음의 은밀한 유혹을 공유하는 자들이다.
간혹 담배를 피우는 가족이나, 친구나, 애인에게, "몸에도 해로운데 왜 담배를 피워..피우지마" 라고 한다면, 그 충고는 진정 사랑스럽게 들리겠지만, 전혀 흡연자들의 심리를 파악하지못한 어설픈 충고임을 이제 알았을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중독자들을 담배에서 구출할수 있냐고? 훗. 충고 전에 당신의 "잔소리 중독증"부터 고치길.
** 염려의 덧글: 윗글의 F는 허구인물임을 밝힌다. 혹시 윗글로 인해 영향을 받아서 담배에 입문하거나 담배중독에 더욱 몰입하게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자 자유이다. 또한 위에 언급한 정서적, 심리적인 담배의 효과는 어디에서도 차용하지않는 순수한 나의 구라빨이므로 너무 믿어 의심치않지 않길바란다.
첫댓글암스테르담은 마약이 합법화 된 곳은 아닙니다. 지정된 곳에서 일정한 양의 Soft Drugs의 활용을 봐주고 있는 것 뿐이죠. 담배는 안피어 봐서 모르겠지만, 죽음의 유혹과 외로움을 제 정신으로 즐기기 싫으니까 담배 피는거 아니였나요 ? 담배를 피어보아야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건가요 ? ^^*
^^ Fuzzy 님 반가워요. 뭐, 님 말씀대로 하자면 '합법화' 됐다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에요. 소프트드럭은 마류와나, 하쉬쉬 등등이고 하드드럭은 코케인, 헤로인 등 인간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따라 구분되어 있어요. 님 글에 딴지 건거 아니고 그냥 제가 느낀거 쓴거에요 ~ ㅋ 님 글 즐겨 읽는답니다. ^
첫댓글 암스테르담은 마약이 합법화 된 곳은 아닙니다. 지정된 곳에서 일정한 양의 Soft Drugs의 활용을 봐주고 있는 것 뿐이죠. 담배는 안피어 봐서 모르겠지만, 죽음의 유혹과 외로움을 제 정신으로 즐기기 싫으니까 담배 피는거 아니였나요 ? 담배를 피어보아야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건가요 ? ^^*
죽음에의 유혹에 대한 퍼지님생각에 한표!
kashmir님 방갑습니다. 마약이 합법화 된거 맞는데요.^^ 무엇이 합법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복용하는데 법에 저촉이 안되니 합법이지요. 물론 coffeeshop같이 지정된곳에서 하게 되어있지만..^^ 그리고 소프트드러그라고 하셨는데....어디까지를 소프트로 보시는지 모르겠지만..웬만한건 다 취급합니다.^^
그리고 뭐.담배얘기. 요즘 하두 금연금연하길래 반대입장을 써본겁니다. 저도 담배와 인연이 그리 깊지는 않아서리..하루에 한대 핌.ㅋㅋㅋ
디스티노바님. 같이 한대 필까요? ㅋㅋ
^^ Fuzzy 님 반가워요. 뭐, 님 말씀대로 하자면 '합법화' 됐다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에요. 소프트드럭은 마류와나, 하쉬쉬 등등이고 하드드럭은 코케인, 헤로인 등 인간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따라 구분되어 있어요. 님 글에 딴지 건거 아니고 그냥 제가 느낀거 쓴거에요 ~ ㅋ 님 글 즐겨 읽는답니다. ^
잘 읽었습니다...
마커스 kim님..방갑습니다...찡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