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절 부처님의 병
1 그때 순다는 부처님 곁에서 떠나지 않고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병은 자기가 올린 공양의 탈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므로, 무척 마음이 괴롭고 초조하였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순다의 공양을 받고, 병이 더 더치신 까닭이다. 그러는 동안에 아난이 밖에서 돌아오므로 물러나왔다. 부처님께서는 순다가 근심하고 있는 것을 살피시고, 아난을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순다는 무슨 뉘우침이 있지 아니하냐?"
"부처님이시여, 순다는 공양 올린 것을 뉘우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난아,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내가 옛날에 대각을 얻었을 때에, 난다와 난다바라라는 두 여자는 목자의 딸로서 내게 공양을 올렸다. 그런데 이제 열반에 다달아서는 순다가 최후의 공양을 올려 주었다. 그러므로 난다나 순다가 내게 공양을 올린 공덕은 꼭같이 매우 큰 것이다. 너는 가서 순다에게 이르되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라. 네가 공양을 올린 공덕은 큰 것이다. 길이 복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너에게 들려주라고 하셨다고 말을 전갈하라."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전갈했다. 순다는 이 말씀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께 나와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죄송스럽게만 생각하였사온데, 그렇게까지 복을 쌓았는가 하고 생각하오니, 고맙기 비할 데 없나이다."
이때에 부처님은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공양을 올리는 자 큰 공덕 있고, 자비로 받아 그 덕을 쌓아 주나니, 탐심ㆍ진심ㆍ치심의 삼독을 끊고, 마침내는 열반에 들게 하리라.
순다야, 너는 반드시 이 게송을 잘 널리 펴서, 듣는 자로 하여금 어두운 긴 밤에 편안함을 얻게 하여라."
2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다시 등허리가 몹시 아프다. 나는 지금 눕고 싶다. 자리를 깔아 다오."
아난은 곧 자리를 깔아 드렸다. 부처님은 그 위에 누워 고요히 그윽한 생각에 드셨다. 조금 있다가 아난을 불러
"아난아, 칠각분을 말해 다오."
하셨다. 아난은 말씀대로 그것을 설명해 드렸다.
"지금 정진분을 설하였느냐?"
"예, 정진분을 말했습니다."
"아난아, 오직 정진하여 빨리 도를 얻는 것이 좋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그윽한 생각에 드셨다. 이때에 한 비구가 감격하여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정법의 왕이면서도 오히려 병을 참고 도를 들으시는구나. 하물며 나머지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나. 꼭 마음을 오로지하여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3 그때 겁빈나 존자는 아난에게 와서,
"나는 잠깐 부처님께 여쭈어 볼 말씀이 있는데 어떻겠는가?"
아난은 얼굴에 난색을 보이며
"지금 부처님이 편찮으신데, 번거롭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되오."
하고 거절하였다. 이 말을 들으신 부처님은
"아난아, 겁빈나를 불러 오너라 말하고 싶은 일이 있다."
고 말씀하셨다.
"겁빈나는 기뻐하며 들어가 부처님께 절했다.
"묻고 싶은 일이 있거든 무어든지 물어라."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에 지극히 높으신 어른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왜 모든 천신들은 약을 가지고 와서 병을 낫게 하여 드리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이 의문입니다."
"집도 지어서 오래 되면 다 무너지고 말지 않더냐? 그러나, 대지는 언제든지 편안한 것이다. 내 몸은 헌 집과 같은 것이요, 내 마음은 대지와 같은 것이다. 몸은 병 때문에 아프고 괴롭고 위태하지마는 내 마음은 편안하다."
"제비새끼는 제 부모에게 양육되고 있습니다. 이제 만일 부처님께서 돌아가신다면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하는 것이좋겠습니까?"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내가 항상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겁빈나야, 반드시 부처를 생각하고 또 계율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좋으리라."
겁빈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물러갔다. 부처님이 일찍이 이 근처에 계실 때에, 구시나가라의 연소한 사람들이 길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가 없는 큰 바윗돌을 부처님이 옮겨주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부처님의 위신력을 탄복하고 있었다.
4 그때 부처님은 아난을 불러
"아난아, 나는 지금부터 구시나가라의 성밖에 있는 희련 하숫가에 있는 사라의 숲으로 가려고 생각한다."
고 말씀하셨다. 이때에 부처님의 얼굴은 설산과 같이 엄숙하게 빛났다. 카쿳타 하숫가를 버리시고 여러 제자들에게 들러싸여, 희련 하수를 건너서 사라 숲 동산 밖에 도착하셨다. 그때 순다가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부처님이시여, 저는 멸도하고자 합니다. 사랑의 애착도 없고 미움의 증오도 없는 곳인, 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의 바다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때가 좋다. 네가 할 일은 이미 마쳤으니 생각대로 하여라."
순다는 부처님 앞에서 등불이 꺼지듯 숨을 거두고 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 한 바라문이 구시나가라에서 파바로 가려고 수풀 앞을 지나다가, 뜻밖에 부처님을 뵙고 사모하는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여쭈었다.
"제가 사는 촌락은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원컨대 같이 가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공양을 받으신 뒤에 이곳으로 오시는 것이 어떠하겠나이까?"
"그만 두라. 바라문이여, 너는 이제 나에게 공양을 올린 것과 다름이 없다."
바라문은 세 번이나 청하였으나, 부처님은 한결같이 거절하시고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그리고
"아난이 뒤에 있으니 거기 가서 그 뜻을 말해 보는 것이 좋으리라."
고 하셨다. 바라문은 아난에게 가서 그 뜻을 말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아난은
"그만 두시오. 그대는 그만해도 이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셈이오 날은 덥고 촌락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가실 수 있겠소. 부처님께서는 지금 피로해 계시니 그만 두시오. 피로하신 어른을 번거롭게 하여 드릴 수가 없소."
하고, 아주 거절하고 말았다.
5 사라 숲은 구시나가라성 밖 희련 하숫가의 언덕이 쑥 내민 삼각형으로 된 모퉁이에 있어서, 하숫물이 그 세 방면을 돌아 흐르고 있다. 부처님은 이것을 바라보시더니 아난을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숲 끝에 쌍수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거기 가서 자리를 깔고, 나를 북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고 베개하여 눕혀 다오. 나는 몹시 피로하였다. 오늘 밤중에는 저기서 열반에 들 것이다."
여러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슬퍼해 우는 자도 많이 있었다. 파바와 이 숲과의 거리는 십 리나 이십 리에 불과한 곳인데, 부처님은 이곳까지 오시기에 스물다섯 번을 쉬어 겨우 걸어오셨다. 아난은 비통한 나머지 눈물을 거두지 못하면서, 사라쌍수 밑에 이르러 깨끗하게 비로 쓸고, 물을 뿌리고, 법다이 자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말씀대로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같이 그 숲 속에 들어가 그 자리에 도착하셨다. 그리하여 머리를 북쪽으로 두시고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시고,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이시고, 두 발을 포개고 고요히 누우셨다. 그때에 하늘에서는 풍악이 진동하면서 천녀들의노래가 들려왔다. 사라 나무는 때도 아닌데 꽃이 피었다. 그 빛깔은 흰 학과 같고 꽃송이에서 떨어지는 꽃잎은 빗발처럼 부처님이 누우신 위에 폴폴 날아 떨어졌다. 마치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는 모든 천신과 수신이 내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보이느냐?"
"진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진실로 나를 공경하고 나에게 갚는 길이 아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갚는 길이 되겠나이까?"
"나의 모든 제자로서, 남자든지 여지든지 물론하고, 법에 머물고 법에서 걷고, 일의 대소가 없이 법에 의하여 행하는 자야말로, 참으로 나를 받들고 나를 공경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나를 따르고 내게 은혜를 갚으려는 자는, 반드시 향화와 기악을 쓰지 말고, '원컨대 나로 하여금 법에 머물고, 법에서 걷고, 일의 대소가 없이 법에 의하여 행하게 할지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권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곧 나를 향한 제일의 공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