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열반 20주년의 해에 펴내는
청화전기, 위대한 스승
김용출 지음
2003년 11월 12일 열반
"대중과 화합 잘 하시게"
하루 전날, 그는 자신을 찾아온 오랜 제자 태호 스님에게 이제 떠나겠다고,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나, 내일 갈라네. 다비 그런 것 하지 마소. 그냥 그냥 흐르는 강물에 훠이 훠이 뿌려버리소.”
마침내 그날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저녁 무렵, 그는 성륜사 조선당에서 중원을 조용히 불렀다. 낮에만 해도 사시 공양을 먹고 차담을 나누는 등 특이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이때는 이미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의복을 좀 갖춰주소.”
중원은 그가 평소 만행 때마다 입고 다니던 승복을 가져와서 입혔다. 평소 쓰고 다니던 모자도 씌워줬다.
“나 혼자서 10분 정도 앉아 있을라네.”
중원은 그의 몸을 부축해 일으킨 뒤 바로 앉혀주었다. 그는 한동안 평소 수행하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듯했다. 중원은 방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큰스님이 평소처럼 앉아 계시는구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얼마 뒤, 그의 용태는 확연히 달려져 있었다. 깜짝 놀란 중원은 다급하게 제자 및 상좌들에게 알렸다. 천도재를 지내고 쉬고 있던 도일을 비롯해 상좌와 제자들이 조선당으로 달려왔다. 그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도일이 스승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스님, 가시렵니까.”
“나, 갈라네.”
“큰스님, 앉혀드릴까요.”
“알아서 하소.”
도일은 이때 낮에는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오랫동안 이어온 스승을 한 번쯤 편히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큰스님, 그냥 편안하게 가십시오.”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제자 및 상좌들을 향해서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대중과 화합 잘 하고 살아가시게. 승가란 화합이네.”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자 한국 현대 불교의 큰스님 청화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화합이었다. 대중과 화합 잘 하라고. 승가는 화합이라고. 그는 성륜사 조선당에서 도일을 비롯한 제자 및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2003년 11월 12일 오후 10시 30분. 그의 나이 80세요, 법랍 56세였다.
원통불교의 중흥과
염불선의 대중화
종단 안팎의 비판과 비난에도, 그는 왜 염불선을 주장했을까. 숱한 가시밭길 속에서도, 그는 왜 염불선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먼저, 그는 염불선만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염불선은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이라고 확신했다. 즉,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간화선과 달리 염불선은 근기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서 더 많은 대중이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대승불교의 용수 보살이 「십주비바사론」에서 염불을 이행문이라고 말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아울러 염불선은 부처와 부처 되기를 간절히 희구하는 신앙심에 의존하기에 진리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기독교와 이슬람처럼 신앙심을 강조하는 다른 종교와 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점도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