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地乘),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충주목(忠州牧) 부분.
아래는 확대한 부분.
종당산(宗堂山), 심항산봉대(心項山烽臺)
, 대림산봉대(大林山烽臺), 향교(鄕校), 옆에 연원역(連原驛)이 보인다.
종당산(従堂山)으로 써있는데 종당산(宗堂山)이 바른 표기다. 従은 從의 이체자.
봉대(烽臺)는 봉수대(烽燧臺)를 말하고 종당산(宗堂山)은 계명산(鷄明山)을 말한다.
<광여도(廣輿圖), 1800년대 초반 제작>
아래는 확대한 부분.
이 지도를 보면 충주읍성과 종당산(宗堂山)이 뚜렷이 보인다. 충주 계명산은 동서(東西) 방향으로 사람 인(人)자 모습이다. 계족산(鷄足山)이라 부른 이유다. 계명산은 잘 쪼개지는 성질의 편마암(片麻岩)으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산능선이 날카롭게 보인다.
바로 위 광여도(廣輿圖)를 확대한 부분을 보면, 종당산(宗堂山)은 지금 종민동과 용탄동 일대에 있는 산을 말한다. 그리고 충주시 중심가에서 보이는 계명산 산줄기를 오동산(梧桐山)이라 했고 지금 남산(南山)은 금봉산(金鳳山)이라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 충주목을 산천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산천】 대림산(大林山):주(州) 남쪽 10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大林山。在州南十里。鎭山。)
심항산(心項山) 주 동북쪽 9리에 있다. --- 생략 ---
오동산(梧桐山) 주 동쪽 7리에 있다. 금봉산(金鳳山) 주 동쪽 5리에 있다. 종당산(宗堂山) 주 북쪽 13리에 있다. 이상한 돌이 생산되는데 세밀하여 비갈(碑碣)을 만들 만하다. --- 생략 --- 마산(馬山) 주 서쪽 30리에 있다
(心項山。在州東北九里 --- 생략 --- 梧桐山。在州東七里。金鳳山 在州東五里。宗堂山。在州北十三里。産異石,細密可作碑碣。--- 생략 --- 馬山。在州西三十里。)
【봉수】
대림산 봉수(大林山烽燧): 남쪽으로 연풍현(延豐縣) 주정산(周井山)에 응하고, 서쪽으로 마산(馬山)에 응한다.
심항산 봉수(心項山烽燧): 동쪽으로 청풍군(淸風郡) 오현(吾峴)에 응하고, 서쪽으로 마산에 응한다.
마산 봉수(馬山烽燧): 동쪽으로 대림산과 심항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음성현(陰城縣) 가섭산(迦葉山)에 응한다.(大林山烽燧。南應延豐縣周井山,西應馬山。心項山烽燧。東應淸風郡吾峴,西應馬山。
馬山烽燧。東應大林山及心項山,西應陰城縣迦葉山。)]
마산봉수(馬山烽燧)는 대소원면 소재지 가기전 도로옆에 있다. 아비숑 모텔 뒷산으로 150m의 낮은산으로 봉화산(烽火山)이라고 한다. 최근래 충청내륙 고속화도로가 지나가나 산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대림산(大林山)이 진산(鎭山)이란 뜻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의 진(鎭)은 국방 요충지에 설치한 군사기지이자 행정단위를 말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두만강 하류에 설치했다는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의 육진(六鎭)이 이에 해당된다. 고을이름 끝에 진(鎭)을 붙인 곳이다.
이외에 전남 완도에 있었다는 청해진(靑海鎭), 진해(鎭海), 부산진(釜山鎭), 충남 태안의 안흥진(安興鎭), 강화도 덕진진(德津鎭), 초지진(草芝鎭) 등이 있다. 이들 지역은 수군(水軍)이 주둔한 곳들이다.
조선시대에 대림산성(大林山城)과 봉수대(烽燧臺)가 있었기에 진산(鎭山)이라 칭(稱)한 것 같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대림성(大林城)이 나오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고적(古跡)으로 대림산성이 나오고 금폐(今廢)라고 나온다. 지금은 자취만 남고 산성(山城)으로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烽火四處, 梧城、【東準淸風、吾峴, 西準翼安、馬山。】 大林城 【西準馬山。】 馬山、【西準陰城、伽葉山。】 望伊山。 【東準陰城、伽葉山, 西準竹山、儉丹山。】 --- 세종실록 지리지 충청도 충주목」
계족산(오동산(梧桐山), 종당산(宗堂山)이라고 함)도 진산(鎭山)이라 쓴 기록도 보이는데 나중에는 <한 고을을 지켜주는 산>이란 뜻으로 널리 쓰던 말이 진산(鎭山)이란 표현이다. 진호(鎭護)하다는 뜻이다
1934년 이병연(李秉延)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충주군(忠州郡)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山川 鷄足山 在郡東折爲南山 卽郡之鎭山.
계족산은 군의 동쪽에 있어 꺾여 남산이 된다. 군의 진산이다. 절위(折爲)란 남산과 계족산 사이 마스막재에서 산능선이 꺾인걸 표현한 것이다. 」
진산(鎭山)이란 산성(山城)이 있고 군사들이 있으니 백성들을 지켜주는 산이란 뜻이었으나 후대(後代)로 가면 한 고을의 배후에 있어 풍수상으로 주산(主山)의 역할을 하여 지켜준다는 의미가 된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朝鮮의 風水』에 나온다.
대림산성 봉수대(烽燧臺)는 2020년 10월경 복원되었다. 이곳 산정상을 오르려면 가파른 창동(倉洞, 창골)마을을 올라가야 하는데, 중학교 동창이 이곳이 고향이라 오래전에 찾은적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 한번 찾아가 본적이 있는데, 고려시대 충주산성(忠州山城)이 있었다고 한다.
<복원된 대림산성 봉수대와 정상에서 바라본 달천, 인터넷자료>
<대림산성 정상 남문지(南門址) 부근에 있는 사모봉(紗帽峰)과 종주바위, 인터넷자료>
사모봉은 그렇다치고 <종주바위>의 유래를 고려시대 대몽항쟁기 충주부사(忠州副使) 우종주(于宗柱)에서 찾는다고 하는데 설득력은 없다고 본다. 800년도 더 전의 인물인데 시대가 너무 멀다고 보는 것이다.
애초에 종주바위는 대림산성을 한바퀴 종주(縱走)해야 닿는다고 이름지은 것인데 음(音)이 같은 종주(宗柱)를 결부(結付)한 것이다.
말은 시대와 유행에 따라 많이 쓰기도 하고 적게 쓰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남한강 종주, 백두대간 종주, 지리산 종주 등등 등산인들이 잘 쓰는 말이 종주(縱走)라는 말이다. 마라톤 종주는 종주(終走), 완주(完走)로 쓴다.
종주(宗柱)는 한 집안의 기둥이 되라고 지은 이름이 된다. 종당(宗堂)은 집안사당이란 뜻인데 조선시대 어느 간찰(簡札)을 보니 종택(宗宅)의 뜻으로도 썼다. 종인(宗人)은 집안사람을 말한다. 종친(宗親), 종가(宗家), 종중전(宗中田)은 흔히 쓰는 말이다.
수안보면 오산(吾山)마을에 있는 열락정기(悅樂亭記)를 보면 (楣之以說樂 宲是陜川李氏 世來藏修之所也 日其宗英 琪鉉 太鉉 潤鉉 訪余於龜山樵社)란 구절이 보인다.
열락(悅樂)이라 문미에 현판을 달았는데(楣는 정자나 건물의 편액(扁額)을 거는 門楣를 말하고 引防이라고도 한다.) 실로 이곳은 합천이씨가 대대로 학문(學文)하던 곳이다. 어느날 집안의 종영(宗英의 원뜻은 종친(宗親)의 뜻이다. 英은 아름답고 빼어나다는 뜻이 있으므로 집안을 이끄는 젊은이도 된다.)인 기현, 태현, 윤현이 구산초사(龜山樵社)에 있는 나를 방문했다.
열락정기(悅樂亭記)를 쓴 정암(精菴) 宋錫星翁은 앙성면 영죽리 상영죽(上永竹) 산막(山幕)마을에 살았다. 교통이 불편했던 1962년에 합천이씨 집안 사람들이 수안보면 온천리 오미마을에서 앙성면 영죽리 상영죽 산막마을로 직접 찾아 왔다는 뜻이다. 물론 기문(記文)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구산초사(龜山樵社)는 실제로 이름이 있는게 아니고 자신의 집을 일컫는 당호(堂號)로 봐야 한다. 이런 사례는 옛날 선비들의 문장에 흔히 나온다. 거북산 초옹(樵翁), 땔나무나 하며 먹고사는 늙은이가 사는 집이란 뜻이니 겸사(兼辭)로 쓴 것이다. 초사(樵舍), 초사(草舍)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산막(山幕)이란 마을이름도 그렇고 정암(精菴)이 살던 곳은 후미지고 궁벽(窮僻)한 산정상에 가깝다. 지금은 도로가 났다지만 불편한건 사실이다. 그리고 인근 돈산리(敦山里)에 산전(山田)이 마을이 있는데 공식으로 산정리(山亭里)로 쓴다. 마을이름이야 어떻든 산전(山田)에서 유래하였다. 일제시대 지도에 나온다. 화전(火田)을 달리 산전(山田)이라 한다.
종(宗)의 다른 뜻은 으뜸과 마루의 뜻이다. 종교(宗敎)나 대마도 종주(宗主)라고 할때 종(宗)은 으뜸의 뜻이고 지명(地名)에서는 마을의 뜻인 마루를 종(宗)으로 옮긴다.
조선시대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나 신증유합(新增類合)에서 종(宗)을 (ㅁㆍㄹㆍ 종, ㆍ는 아래아)으로 풀이한데서 연유(緣由)한다. 엄정면 탄방리와 대소원면 성마루 성종(城宗), 종민동 민마루 민종(民宗), 연수동 동수(東守)마루의 마루는 마을의 뜻이다.
마을의 뜻을 갖는 다른 한자로 지(㫖, 旨)자가 있다. 이도 훈몽자회나 신증유합에서 (ㅁㆍㄹㆍ 지, ㆍ는 아래아)로 새김을 달았다. 금가면 문산리(文山里) 문지(文旨), 엄정면 율능리(栗陵里) 밤아루(栗旨), 지금은 수몰된 살미면 문화리(文化里) 문지(文旨)를 들 수 있다. 마을이름 뒤에 지(旨)자로 끝나면 마을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종주(宗柱)바위를 산마루 정상에 기둥처럼 우뚝 솟은 바위란 뜻으로 쓸 수는 있다고 본다. 종주(縱走)란 본래의 뜻이 와전(訛傳)된 게 대몽항쟁기 충주부사 우종주(于宗柱)에서 유래했다는 종주(宗柱)바위다.
<충주군 읍지. 조병로(趙秉老) 1870년(고종7년)>
북변면 옆에 계족산(鷄足山), 심항티(心項峙, 마스막재), 금봉산(金鳳山, 남산), 발티(發峙), 대림산(大林山)이 보인다. 북변면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여단(厲壇), 향교(鄕校), 연원(連原), 객망산(客望山, 팽고리산, 광명산), 주봉(珠峰, 야현천주교 일대)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