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자를 얼마나 아십니까? 질문이 좀 야릇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남성 또는 여성인 우리는 여자들의 생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꼭 집어 말해 내가 궁금한 부분은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적으로 삼는 전쟁을 날이면 날마다 평생토록 치러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때 멸공통일의 대상이었던-멸공이라니요! 이 끔찍한 단어가 전국 초등학생들의 개나리꽃봉오리 같은 입술에 오르내리게 한 것만으로도 그 장본인은 정말 나쁘고 나쁜 놈이다- 북한과도 평화통일을 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 마당에 이르러, 어떻게 사회가 총력을 기울여 여성에게 전쟁을 권하는 것일까, 라는 점도 나는 무척 궁금하다.
예를 들어 A씨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보자. 20대 중반인 그녀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운 좋게 작은 기업체에 취직을 했다. 160센티미터를 좀 넘는 키에 50킬로그램대의 몸무게. 한 마디로 한국 표준 체형이라 할 수 있다. A씨는 출근하는 날엔 매일 색조화장을 하는데, 일단 그녀의 그 알록달록한 각종 메이크업 제품은 젖혀놓기로 하자. 이름만 화려하게 바뀔 뿐 색깔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도 대체 왜 계절마다 립스틱과 아이섀도우, 블러셔의 색깔과 종류를 바꿔야 하는지 나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여기선 그녀가 몸과 치르는 전쟁에 대해서만 집중하자. 팩이나 맛사지도 일단 얼굴 화장이니까 빼놓자.
A씨는 매일 머리를 감는다. 샴푸에다 컨디셔너, 트리트먼트까지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는 뻣뻣해지고 정전기가 일어날 것이고 파마에 염색을 거친 머릿결은 엉망으로 상할 테니까. 몇 달에 한번 큰맘 먹고 비싼 돈 들여 몇 시간 동안 파마에 염색까지 하고 나면 허리는 허리대로 뻐근하다. 돈 들여 화학적으로 망친 머릿결을 다시 화학성분으로 보호하는 아이러니. 부모님과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녀는 매일 샤워를 한다. 더러움을 없애주는 동시에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바디클렌저를 이용한 샤워가 끝나고 나면 보습을 위해 바디로션을 바른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몸의 묵은 각질을 없애기 위해 샤워할 때 목욕소금이나 스크럽제를 쓴다. 아, 샤워할 때 A씨가 빠뜨리지 않는 것이 또 있다. 비싸서 몇 번이고 망설이다 구입한 바디슬리밍 제품이 그것이다. 몸에 맛사지해 주면 울퉁불퉁한 지방질인 셀룰라이트를 없애준다는 이 크림은 주위 친구들이 효과가 있다고 권해서 맘이 동했다. 겨드랑이와 종아리를 면도하는 일도 샤워 중 행사로 빼놓을 수 없다. 면도 후에는 탤컴 파우더와 탈취제를 이용한다. 땀냄새 풀풀 풍기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녀는 눈썹을 정리한다. 요새야 여중생들도 다 눈썹을 정리하고 다닌다. A씨는 자신의 본래 눈썹이 "난폭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수시로 '뽑고 다듬고 매만진다'.
옷을 입을 때 여성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옷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어울린다'는 것은 곧 그 옷을 입었을 때 자신이 날씬해 보이는가와 거의 동격인 경우가 많다. A씨는 자신이 "뱃살이 장난이 아니고, 다리도 굵고 짧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옷을 고를 때마다 그런 단점이 감춰질지를 고려하곤 한다. 그 옷을 입었을 때 자신의 예쁜 까만 눈이 돋보이는지, 발그레해서 예쁜 혈색이 살아나는지의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그러다 보니 옷장 안에는 까만 옷 일색이다.
속옷에 이르러서는 A씨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요즘 나오는 속옷 선전문구는 거의 과학 실험도구나 새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매뉴얼 수준이다. 모으고 올리고 누르고 받치고……. 몸매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부담해야 하는 그녀는 그럴 때마다 애꿎은 부모님만 원망하곤 한다.
A씨가 유난을 떠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지? 하지만 우리의 A씨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미혼직장인에 속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자, 그럼 여기서 A씨가 위에서 말한 제반 과정을, 청결과 위생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행위만을 남겨놓고 한 달 이상 중단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녀의 외모는 어떻게 될까?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제멋대로 뻗치며, 눈썹은 눈두덩을 메우고 양미간을 침범해 순악질여사의 관상으로 변했을까. 함부로 자란 종아리털은 스타킹을 뚫고 나올까. 배 주위는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로 굴곡이 져 있을까. '기능성' 속옷을 입지 않은 덕분에 들어갈 곳은 나오고 나올 곳은 들어가 있을까.
사실 나로선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주위의 다른 여성도, 이렇게 엽기적이고 과감한 실험에 몸을 던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여성들이 그런 복잡다난한 과정을 거쳐 봐야 그 차이점을 변별할 수 있는 남성이 지구 위에 몇 명이나 된다고 여성들이 날마다 그 고생을 하느냐고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런 '미묘한' 차이점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여성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을 이 시지프스의 전쟁에 여성들을 몰아넣는 건 여성들 자신의 허영심과 경쟁심일까?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모든 잡지와 방송, 웹사이트며 신문-물론 중앙 일간지를 말하는 것이지요-들이 가르쳐 주는 정보와 주제는 오직,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백에 아흔아홉은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런 현상은 일제 강점기의 신문 잡지도 마찬가지(20세기 초의 박가분 광고를 기억하십니까?)이며, 북한 신문에도 민간요법에 가깝긴 해도 '거칠어진 손을 곱게 만드는 법'이나 '얼굴 살결이 보드라워지는 법'같은 '정보'가 실린다고 한다.
올해의 유행색, 유행치마 길이, 유행하는 패턴, 스타일, 화장법, 새로 나온 화장품, 첨단 기능성 속옷, 새로 나온 혁신적인 다이어트,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식당, 유행하는 음식……. 이런 것들만이 여성을 위한 정보라면, 나는 정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그리하여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