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궤와 이스라엘
사무엘상 6 : 19 – 7 : 2
여호와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백성들을 산 아래 머물게 하시고 모세를 시내산(호렙산)으로 불러올려 십계명과 율법과 규례와 법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짖고 궤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성막을 짖고 조각목(아카시아나무)로 궤도 만들었습니다.
길이가 두 규빗 반(90cm), 너비는 1규빗(48cm), 높이도 한 규빗 반(68cm)으로 하고 순금을 입히고 둘레는 금테를 두르고 금으로 입힌 채를 만들어 고리에 깨워서 성막 지성소에 두었습니다(출25:23-34).
궤를 성막 지성소에 들여놓았을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막을 덮었으며 여호와의 영이 충만했습니다(출40:34). 이스라엘 사람들은 궤를 하나님을 모신 성막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궤 안에 임재하신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시고 대적을 막아 주시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이 성막위에 떠 오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궤를 메고 앞으로 나아갔으며,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머물고 기다렸습니다(출40:36,37;민3:31).
낮에는 구름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리어 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어둡지 않고 따뜻하게 쉴 수 있었고, 주변에 대적들을 막아 주셨으며, 길 없는 광야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궤를 메고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물에 잠기자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고 길을 내어 백성들이 건넜으며(수4:9-18),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튼튼한 성도 무너졌습니다(수6:13).
그때 궤에 임재하셨던 여호와의 영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임재하셔서 성도들과 함께하셔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대적들도 막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두 번째, 여호와의 궤는 침묵하셨습니다. 사사기에는 이스라엘과 베냐민 자손이 싸울 때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벧엘로 올라가 울며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궤가 거기 있고”(20:27)라는 말씀 한 절이 있습니다.
사사들은 여호와께 궤를 찾지도 않았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사 시대 때 여호와께서 침묵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십니다.
세 번째, 여호와의 궤를 이방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하며 가서 궤를 가져왔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따라왔습니다(삼상4:3,4). 그러나 이스라엘은 패하고 궤는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제사장 엘리도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싸움에서 패하고 궤도 이방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신들과 같은 무능한 신으로 믿으면 패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이방신들처럼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신들처럼 믿는 것은 복을 받기보다는 재앙이나 화를 당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믿음입니다.
네 번째,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그들은 화를 받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리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고 하며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그들의 신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려져 있고 다음 날은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이방신의 무능함과 여호와의 궤가 우상이나 이방신과 같은 무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우리의 신을 친다고 하며 궤를 가드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궤를 옮기는 곳마다 재앙으로 사람들이 독종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곱 달 만에 궤를 새수레에 싣고 새끼 낳은 암소 두 마리에 수레를 끌게하여 이스라엘로 돌려 보냈습니다(삼상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수레를 끈 암소를 잡아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으로 (오만) 칠십 명이 살육을 당했습니다(삼상6:19).
그것을 보고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서리요’라고 두려워했습니다(삼상6:20). 그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봄으로 죽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가끔 ‘예배 본다’는 말을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남의 시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섬김입니다.
다섯 번째, 아비나답은 궤를 집에 두고 20년을 지켰음에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에게 거룩하게 구별하여 궤를 지키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 년 동안 있었습니다(삼하7:1,2).
그럼에도 그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삼상7:2). 그들이 복을 받지 못했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궤를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할 궤를 메지 않고 가져왔습니다(6:21). 그리고 궤를 지켰기 때문입니다(7:1).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궤를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궤를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키는 분이 아니라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아비나답은 아들 엘리아살에게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게 했습니다. 그래서 20년을 지켜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신 궤는 오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며 섬겨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규례와 법도에 따라 섬기며 드림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한국교회는 예배를 좋아합니다. 예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교회마다 구역예배를 드렸습니다. 구역예배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부흥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역예배로 인해서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돌아온 것을 본 벧셋메스 사람들은 기뻐하며 수레를 끈 암소 두 마리를 잡고 수레를 패서 제물로 바치고 제사 드렸습니다.
그들이 제사 드린 후에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살육을 당했습니다. 예배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십니다. 예배를 드려야 복이 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다가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습니다(레10:1,2).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궤 앞에서 제사 드렸습니다. 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간 가면 누구든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피가 없는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역예배란 말은 맞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구역공과를 가르쳤습니다. ‘구역모임’, ‘구역 성경 공부’라는 말이 합당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장례에 죽은 자의 사진을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서서 기도(묵도)하고 헌화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마치 이방신들 앞에서 하는 것을 교회가 보고 따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장례에 ‘임종 예배’,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등 예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천주교와 유교나 불교의 장례 형식을 본받은 것입니다. 죽은 자를 앞에서 예배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례이어야 합니다.
죽은 자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장례입니다. 살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위한 기도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죽음 즉시 그의 영혼은 즉시 그들의 믿음대로 돌아갔기 때문에 죽은 자 앞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방종교 형식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궤를 옮기다가 화를 당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먼저 여호와의 궤를 찾아 옮기고자 했습니다. 삼만 명을 뽑은 무리와 함께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여호와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여러 가지 악기로 연주하며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소들이 뛰므로 넘어지는 궤를 붙던 웃사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여호와의 궤를 버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버리고 간 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자기 집으로 메어 다가 석 달을 있었는데 그의 온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삼하6:1-11).
오벧에돔이 여호와의 궤로 인해 복을 받은 원인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라고 해서 이방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성전 문지기로 고라의 자손입니다(대상26:4). ‘오벧에돔’은 ‘예배자’란 뜻으로 고라의 자손으로 제사장입니다.
레위 자손으로 가드에서 나고 살았기 때문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가 다윗이 버리고 간 여호와의 궤를 메고 집으로 옮겨 가서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드리며 섬겼다는 것은 그의 이름이 암시해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했습니다(대상15:13).
새수레에 궤를 싣고 옮길 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새수레에 궤를 싣고 여섯 걸음을 가매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 드렸습니다.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주었습니다(삼하6:13,14).
궤를 메어 시온성으로 옮기고 온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의 송아지와 양을 잡고 궤 앞에서 제사 드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으며 다윗은 훌륭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백전백승하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방신이나 우상처럼 알고 섬기면 무서운 화를 당하거나 불행하게 됩니다. 구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도 침묵하십니다.
우리도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대로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섬기면 오벧에돔과 다윗처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과 규례대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예배를 보는 자가 되지 말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읍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약속의 땅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