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산책
김 난 석
배가 고플 땐 먹을 것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가슴이 고플 땐 조용히 침잠하거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쏘이는 게 버릇처럼 된 지 오래다.
양평의 두물머리를 찾는 것도 그와 같은 것들 중 하나지만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두물머리를 찾는 일은
특별한 맛이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삼백구십 킬로미터 남한강과 삼백이십 킬로미터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난다고 해서 두물머리라 한다는데
수령 사백년의 느티나무가 그 사실을 말해주는 듯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헐벗은 채 홀로 서있다.
구한말 당시에는 말죽거리라 했다니
강을 건너 말에게 죽을 먹이면서 느티나무 아래서 쉬고
가까운 주막에서 목을 축인 다음 한양 길을 재촉했을 테다.
날씨는 차고 수면은 얼어붙었을망정
얼음장 밑으론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매서운 추위도 칼날 같은 빙결도 아랑곳없이
두 물줄기는 서로 손목을 잡고 가슴을 맞대며
따뜻하게 흐른다.
서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물을 것도 없이
그렇게 몸을 섞어가며 흥얼흥얼 거리면서 말이다.
이왕 잡으려거든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손목을 잡으라 한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이왕 맞대려거든 등을 맞댈 게 아니라 가슴을 맞대라 한다.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가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고향이라고 하면 또 무엇이 떠오를까?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에서 어머니의 가슴소릴 듣는다.
핏덩이를 낳자마자 어머니는 당신의 가슴에
당신의 분신으로 끌어안았을 테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가슴은 내 최초의 고향인 셈이다.
젖을 빨아대며 가슴소리를 듣고
잠이 들면서 가슴소리를 들었을 테니
어머니의 가슴팍 속에서 흐르는 강물소리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강물소리가 들리는 곳엔
나의 어머니가 있으며 고향이 떠오른다.
어릴 적 말귀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
너는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을 받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노라 시며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라나면서 한참동안이나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만
얼마나 절묘한 표현이랴.
아래위로 벌어진 저 두 물줄기 근처에
긴 다리가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난 어머니의 육신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두물머리 강물이 흐르는 곳엔 나의 고향이 있으며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의 가슴에 내 가슴을 대이면서 어르셨다.
아마도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셨을 게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엔 네가 알아서 하라 이르셨으니
내가 알아서 할 만큼 자랐다고 생각하셨을까..
그러시다가 어느 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애초에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내 가슴에 어머니 가슴을 대이면서 어르듯 해드리지 못해
한없이 아쉬울 뿐이다.
배곯으면 음식을 탐하듯
아쉬움 뒤엔 그리움이 쌓이기 마련이요
그리움 뒤엔 욕망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메마른 사내들이 여인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그와 이치가 같지 않을까?
그 가슴이 어머니를 닮은 마음의 고향이라면 좋을 일이지만
그 가슴(흉, 胸)이라는 게 오로지
육신(물, 物)에 머무는 것이라면 흉물스럽기도 할 게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땐
육신이라도 만져보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오늘도 두물머리의 강물은 두 물줄기라 할 것도 없이
한데 어울려 얼음장 밑을 잘도 흐른다.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당신의 분신이
오른팔에 안기었다 왼팔에 안기었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날 한겨울에)
어느 글벗들과 함께 또 두물머리를 찾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의 두물머리.
그 두물머리를 중간에 두고
강원도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강화의 유도까지
장장 천삼백 리의 한강물줄기는 한민족의 젖줄이다.
백제시대엔 욱리하라 했고 고구려시대엔 아리수라 했다던가..
“아! 이수(二水)”를 연음으로 발음하여 아리수라 했을까?
그렇게 한강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쟁패 현장이기도 했고
현대에 와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니
오늘날 우리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인간의 힘이 보잘것없음을 말할 때
흔히 역발산(力拔山) 항우장사도 요강에 빠져 죽었다고 말한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중국 초나라의 장수였던 항우가 진나라를 멸한 뒤
서초패왕이라 자처하다가 유방과의 싸움에서 지자
오강(烏江)에서 자결했던 걸 두고 그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겠지만
삶을 강에서 마쳤다는 의미가 스며있다.
유장한 강의 발원지가 어디냐를 두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어느 샘이라거나 돌 틈이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 근원을 대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밤새워 받아놓은 것을 아버지가 한꺼번에 내다 버린
요강물이 그 발원이라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겠지만
강물이 나로부터 시작했음을 말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숨어있을 테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세계의 4대 강안(江岸)이다.
바로 이집트의 나일강, 아라비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그리고 인도의 인더스강과 중국의 황하 유역을 말한다.
기독인들은 이와 달리 인류의 발상지를 에덴동산으로 본다.
에덴동산은 네 개의 강이 만나는 네 물머리였으니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강, 그리고 유브라테강을 말한다(창세기).
이에 비하면 우리의 두물머리는 작은 에덴이 되는 셈이던가..
제2의 한강 기적을 이뤄낸다면 그 말도 틀린 게 아닐 게다.
동양문화권에선 이 세상과 저세상을 강으로 구분하여
차안과 피안이라 했다.
바로 강을 건너면 저세상이라는 것이니
그 강이란 운명의 가름길이기도 하다.
하여 가신 이의 유골을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일 게다.
인도의 힌두문화권에선 갠지스강을 최고로 신성시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한 윤회의 지도리에
바로 갠지스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아는 오로지 대도(大道)를 걸어야 한다고 이른다.
떳떳하게 살라는 뜻이지만 그게 어디 남성뿐만 이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도 한다.
역시 옳게 살아가라는 뜻일 테지만 그걸 누가 거부하랴.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이냐고 되묻는다면
대답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인생길, 학문의 길, 봉사의 길, 희생의 길,
산길, 물길..., 그 종류는 이렇게 수도 없이 많다.
오늘도 두물머리에 서본다.
북한강, 남한강 두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나
잠시 벙벙하게 맴도는 듯하지만
물길은 예외 없이 위에서 아래로
뻗기 마련이다.
위라는 건 작은 물줄기요 아래라는 건 큰 물줄기다.
작은 물길이 대양으로 드는 건 야망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큰 산길이 작은 산길로 드는 건 겸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어진 사람(仁者樂山)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비우려면 산길을 오르라 한다.
등짐에 먹고 마실 것을 가득 채우고 땀 뻘뻘 흘리며 올라야 한다.
하지만 더 높이 오르려면 등짐도 육신도 마음도 모두 놓아야 한다.
그게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방하(放下) 요 방하착(放下着) 일 게다.
마음을 비우려면 또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물길을 거스르는 건 순리가 아니어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면
하나의 물방울로 되돌아가보는 것이니
작은 물줄기나 큰 물줄기의 시원은 하나의 물방울이요
하늘에서 떨어진 요소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면
하나의 물방울로 되돌아가보라는 것이지만
그건 허욕을 버리고 존재의 근원이요 시원(始原)에
가 닿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사람은 두물머리에 와 머물다 사라지고,
또 어느 사람은 두물머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또 어느 사람은 두물머리에서 한숨 고르다 대양에 이르고,
또 어느 사람은 대양에서 머물다가 시원으로 돌아가고...
인생은 이렇게 물길 따라 흐르지만
모두 본디의 모습으로 돌아갈 뿐인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써두었던 글을 꺼내본다.
흐르네
흐르네
흘러서 가네
세월 물 되어
물 세월 되어
흘러서 가네
돌아가네
돌아가네
돌아서 가네
항하사 모래톱
해탈된 육신 척척 가려두고
돌아서 돌아서 가네 / 졸 시 '갠지스강 소묘"
두물머리 느티나무
첫댓글
두물머리는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어머니의 가슴과 품으로 부터
시작해서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한강의 기적을 나타내고,
인류 문화 발상지까지
훑어내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견식이 넓은
감히 文豪님의 글에
댓글 쓰기가 긴장됩니다.ㅎ
그저, 두물머리의 풍경과 함께 하여
晩秋를 즐기는 낭만적인 계절에
힐링하는 마음이 좀 쫄아지게 되네요.ㅎ
엊그제 가을비에 몸살이 들어서
제가 좀 무거워졌나보네요.ㅎ
가을은 그저 가볍게 걷는 게 좋은데요.
두물머리에 다녀 오셨군요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사진도 그림도 특히 두물머리에 관한 글을 더러 읽었습니다
두물이 합쳐지는 곳이니 그 곳에서는 모두 상념이 깊으지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요
두물이 합쳐지는 곳이면 풍성하고 매사 넉넉해 보여여 할텐데
해거름 녘의 사진 탓인지
본문도, 파장뒤의 허무함 같이 길게 널어진 그림자도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감이 있겠지요.
사진 찍을 때가 오후 다섯시 반쯤인데
몸이 으실으실해서 빨리 어디로 들어가고 싶데요.
가끔씩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두물머리 긴 강변에 나가 홀로 걷지요
마음이 울적할땐 친구를 부르지 않고
혼자서 호젓이 걷다가 강물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으면 하늘이 대신
울어 주는 것 같아 위로를 받고 온답니다
그러시군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하는 곳이니
거기에 다가가면 두 강물을 한꺼번에 맞는 운치도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데요.
울쩍하면 두물머리로 가나 봅니다.
밑에 수국화님도 그리 써 놓으셨네요.
나 울쩍할 때면 마로니에~~
노래도 있던데요.
울쩍함을 좀 삭이셨는지요?
고목이 엄청난 수령이겠습니다.
늘 가도 좋은곳이죠.
이번엔 지인들이 콜해서 다녀왔네요.
수령이 4백년이라고 써있는데
지난해에도4백년.ㅎ
두물머리 , 두물이 만나는 곳이며 삶의 태동이
시작되는 곳,
느티나무가 있는 정경이 여러가지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라는 기억입니다.
두물머리에서 머무는 물결, 또 다시 정처없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우리내 인생 같은 곳.
공연히 쓸쓸해지는 곳이기도 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오후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역광으로 찍었더니 더 쓸쓸한 분위기가 되었네요.
두물머리
말죽거리
네물머리
의미있고 사연있는 이름이군요.
그리고
발목을 잡지 말고
손목을 잡고 함께 가라는 문장이
가슴에 많이 와 닿습니다.
두물머리의 느티나무도
겨울을 맞이하는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저도 느티나무처럼 살면 좋겠어요.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의 덕을 본받으면 좋지요.
글이 선배님처럼 수려하면 글로 승부를
보겠지만 글이 어설프니까요.
사진하고 글을 넣어서 기행문을 발행하여
두툼한 인세를 받고 싶은 꿈을 한동안 가졌거든요.(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 안해요)
그래서요 사진기를 사고 사진에 사짜도 모르면서 맨 처음 출사를 따라 나선게 두물머리였어요.
춘삼월 두물머리는 황량하여 선배님 말씀처럼 어머니 품이 그리운 계절 같았어요.
그리고 몇 년 후에 한 여름 두물머리는 연꽃이 청조하게 피어나 무더위에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고 있었어요.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어느 진사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을 놓고 갑니다.
그랬군요.
사진이 황홀하네요.ㅎ
두물머리는 언제 가도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더군요.
문득 가을이 깊어진 두물머리 찾아가고 싶습니다
네에 그런거 같아요.
두물머리에 서서 제가 느꼈던 감상을 반추 해보니 석촌대형님의 느낌과 사색의 저변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새삼 느낄 수 있어서 곧바로 댓글 달지 못하고 수필쓰기 배움의 교재로 삼아 몇번을 다시 읽고 이제야 흔적 남깁니다.
함께 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아이구우 부끄럽습니다.ㅎ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뿐이겠지요.
오래전부터 눈팅만 하다가 석촌님 글을 보고는 너무 유려한 문체에 심오한 철학까지 담겨있어 감동으로 댓글을 처음 써보네요...
어머니의 가슴으로 보는 두물머리가 마음을 울리네요.
강을 중심으로 차안과 피안을 가르는 삶과 죽음에 관한 내용도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물방울 하나로 시작되어 시내를 지나 작은 하천으로 그리고 큰 강을 품고 대양으로 흘러드는 것은
단지 자연의 흐름만은 아닌듯 합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 속 어딘가에 스쳐가는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구우 부끄럽습니다.
글이야 저마다 개성이 있긴 하지요.